백서(帛書)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모든 이에게 모든 것(1코린토9,22)

나뭇잎숨결 2021. 4. 28. 13:18

 

 

 

 

사진1939년 7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첫영성체를 받고 본당 문 앞에서 포즈를 취한 8세의 정진석 추기경. 한국교회사연구소 제공

정진석 추기경 어록-도서 발췌

 

         

 

#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따라서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선행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영광이 됩니다. (정진석 추기경의 행복수업60)

 

 

#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부모한테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라도 예외 없이 개성이 서로 다른 별개의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사명을 부여하고, 그 사명 수행에 필요한 재능을 첨부하여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내가 단 하나뿐인 독특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내 삶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자각해야 할 필요성과 의무를 알려 줍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왜 나를 존재하게 하셨을까요? 하느님이 오직 나를 통해서만 해야 할 사명을 나에게 맡기셨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우리는 그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완수하도록 최선을 노력을 하는 것이 인생의 존재 이유와 목적입니다.(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38)

 

 

# 셰익스피어가 말했듯이 이 세상은 커다란 무대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류 역사라는 대단원의 연극이 펼쳐지고 있는 드넓은 세상 무대에 어느 한 순간 작은 배역을 맡아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연극배우와도 같은 존재들입니다.

인생의 무대 위에는 60억 명의 배우들이 수만 가지 배역을 담당하여 열띤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무대에서는 각 사람이 배우들이고 하느님이 연출자이십니다. 명배우가 되려면 연출자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항상 연출자를 바라보고 연출자의 손가락을 주목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무대 위에서는 주연도 있고 조연도 있으며 단역도 있지만, 죽어서 무대 아래로 내려가면 모두가 평등합니다. 그때 그 배우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그의 연기를 관람한 우주 만물의 냉철한 비평과 아울러 각 배우를 선발하여 적절한 배역을 맡기고 연기를 지휘한 연출자의 엄정한 평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45)

 

 

# 태양빛은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골고루 비춥니다. 하느님은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애틋한 음성으로 상냥하게 속삭이십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속삭임을 들으려면 각자가 마음의 라디오 전원을 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마음의 다이얼과 볼륨을 하느님의 주파수에 잘 맞추고 있어야 하느님 사랑의 메시지를 그만큼 잘 들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흔히 함축적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할 마음의 준비가 잘 되어 있을수록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인식하게 됩니다.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52)

 

 

# 양심은 인간의 가장 거룩한 핵심입니다. 양심은 하느님이 세상에 사는 각 사람을 원격 조정하시기 위하여 각 사람의 마음속에 설치하신 리모컨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양심을 통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양심의 소리는 언제나 선을 사랑하고 실행하며 악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 주신 법이기 때문에 인간이 거부할 수 없고, 반드시 복종하여야 할 법입니다. 양심은 필요에 따라 이것을 하여라.’, ‘저것을 삼가라.’하고 타이릅니다.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53)

 

 

# 칭찬이나 축복의 말은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안겨 줍니다. 비난이나 저주의 말은 듣는 이에게 불쾌한 감정을 초래합니다. 복을 빌어주는 말이나 욕을 하는 말이나 발언자의 말은 본심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지킬 수 없는 것을 약속하거나 지킬 마음 없이 약속한 말은 거짓말입니다.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55)

 

 

# 인간은 자기가 평생 행하는 모든 말과 행위를 자기의 이성적 판단에 따라 정당하고 올바르게 평가되는 것에만 충실하게 따라가야 합니다. 사람은 선과 악을 분별해야 하는 때마다 자기 양심의 목소리를 잘 듣고 따르기 위하여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81)

 

 

# 자유는 심사숙고한 행동을 몸소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며, 이것이나 저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인간은 양심을 따르거나 어기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여러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선행의 자유는 언제든지 있지만, 자기와 남을 파멸로 이끄는 악행의 자유는 언제나 없습니다.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84)

 

 

# 인간은 선을 행하면 행할수록 더욱 자유로워집니다. 선과 정의를 위해 봉사할 때에만 참자유를 얻습니다. 인간은 창조주를 자유로이 따름으로써 완전한 행복에 이릅니다. 자유는 사람이 참행복이신 하느님을 향할 때 완전하게 됩니다.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85)

 

 

# 창조주의 하느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 선행의 기준입니다. 자기 자신과 이웃의 진정한 선익(진리와 정의의 관점에서 본 올바른 선익)에 이바지하는 행위가 선행입니다.

선행은 그 계획과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까지 선해야 합니다. 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악한 방법을 사용하는 행위는 선행이 아닙니다.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92)

 

 

# 선한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악인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고단하더라도 미소 띤 얼굴로 사람을 만나고 상대방에게 칭찬의 말을 건네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공동체를 위하여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면 하기 싫은 일이라도 자원해서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108)

 

 

# 선행이거나 악행이거나 처음 행할 때에는 망설여지고 막상 실행하면서도 어색해합니다. 그러나 자주 행하면 점점 더 쉽게 행하게 되고 무의식적으로도 행하게 되는 습관이 됩니다. 습관이 된 행위는 그것을 바꾸거나 벗어나기가 힘들게 됩니다. 선행의 습관을 덕행이라고 말하고, 악행의 습관을 상습 범죄라고 말합니다. 덕행의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을 덕망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합니다.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111)

 

 

# 사랑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희생이 내포된 사랑은 더욱 힘이 있습니다. 자신의 사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에게 사랑의 기쁨을 주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이 있는 사람입니다.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149)

 

 

# 하느님이 주시는 나날들은 베틀의 북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상징합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시간에 하느님께 보여 드릴 일생의 작품인 옷감을 자랑스럽게 펼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입니다. (정진석 추기경의 행복수업23)

 

 

# 용기는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서도 단호하고 꾸준하게 선을 추구하도록 이끌어주는 덕입니다. 용기는 도덕적인 삶에서 유혹을 이기고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결심을 확고하게 해 줍니다. 용기는 죽음의 공포까지도 이겨 내게 하며 시련과 박해에 맞서게 합니다. 또한 정당한 일을 옹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게 합니다. (정진석 추기경의 행복수업84)

 

 

# 건강, 부유함, 직장, 지위 등은 언제든지 사라져 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잃는 것이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 때문에 모든 것을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반드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죄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 우리의 생명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정진석 추기경의 행복수업86)

 

 

# 진정한 의사소통을 하려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상대의 표정을 주목하면서 경청하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진지하게 들어 줘야 비로소 의사소통이 완성됩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인내를 갖고 들어 주는 것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기초입니다. 이해해야 협조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고 협조하면 신뢰가 쌓이고, 신뢰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서로 생명을 주고받는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정진석 추기경의 행복수업150)

 

 

#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은 창조주의 손에서 완결된 상태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만물은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궁극적인 완성을 향한 진행의 상태로 창조되었습니다. 피조물들을 이러한 완전함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배려를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섭리로써 보호하고 다스리십니다. (정진석 추기경의 행복수업219)

 

 

#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와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면 영원한 진리를 터득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주 만물의 근원이시며, 최종 목적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를 완전히 계시하는 분이시기에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행동으로 하느님 아버지를 계시하심으로써 진리를 깨닫고 믿는 이들을 충만한 생명이 이루어지는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 속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정진석 추기경의 행복수업262)

 

 

# 하느님의 진리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그 진가를 깨닫지 못하며 그 진리를 인정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정진석 추기경의 행복수업266)

 

 

# 80세를 넘으면서 육체의 여러 기관이 하나둘씩 기능이 퇴화되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를 통해 육체와 연관된 길은 덧없는 것이고, 오직 생명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축복을 받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이 주신 삶의 의미를 올바로 깨닫고 이를 받들며 살수록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생명과 행복을 넘치게 베풀어 주신 주님을 온 마음으로 찬미하면서 세상을 떠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질그릇의 노래7)

 

 

# 무릇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 의지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옹기장이는 진흙으로 다양한 질그릇을 만듭니다. 만들어진 질그릇이 자기의 용도에 대하여 옹기장이에게 불평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출생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일은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질그릇의 노래12)

 

 

# 나의 여생이 얼마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건강하게 일어나는 나날을 마치 마지막 날인 듯이, 마치 나의 유일한 날인 듯이 살고 저녁노을을 감격하며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인생은 매일 순수한 날, 매일 후회 없는 날, 매일 착실한 날, 매일 보람찬 날, 매일 선행의 날이 될 것입니다. (질그릇의 노래17)

 

 

# 과거의 모습이 회한이 되지 않게 하려면 현재를 보람 있게 살아야 합니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흐뭇하게 의지할 수 있는 기초가 되도록 현재를 값지게 지내야 할 것입니다. 바로 현재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지금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게 하거나 괴로움이 되게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시점입니다. 과거가 후회되면 지금이 바로 바른길로 새 출발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현재는 화살처럼 빨리 지나갑니다.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가장 소중하고 긴급한 일입니다. (질그릇의 노래21)

 

 

# 우리가 가진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우리의 재물을 보관할 가장 안전한 금고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나눔과 자선의 현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질그릇의 노래26)

 

 

# 미래에 어떤 사람을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이 나를 꺼린다면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만나는 사람이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가 나를 행복하게 하거나 내가 그를 행복하게 할 수 있고, 그가 나를 슬프게 하거나 내가 그를 슬프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그릇의 노래36)

 

 

# 행복은 혼자 누릴 수 없고 반드시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바라던 부귀영화를 누리더라도 혼자만의 부귀영화는 외롭고 쓸쓸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이 나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고 함께 공감해 줄 때 비로소 내가 행복한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그릇의 노래37)

 

 

# 인생은 1m 되는 긴 젓가락으로 식사하는 가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팔보다 긴 젓가락으로 맛있는 음식을 집어서 자기의 입으로만 가져가려 한다면 아무도 먹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긴 젓가락을 집은 음식을 마주 보는 가족에게 먹여 준다면 가족 전체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질그릇의 노래42)

 

 

# 사랑하는 사람의 원의를 이루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 주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질그릇의 노래59)

 

 

#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빛과 비를 내려 주십니다. 이처럼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도 죄인이거나 선인이거나 누구든지 환영해야 합니다. 교회의 문은 활짝 열려 있기에 하느님 품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비하신 은총을 풍성히 받고 용서의 확신을 얻게 됩니다. 신자 공동체인 교회는 죄가 클수록 회개하는 이들에게 더 큰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신자 공동체인 교회는 서로가 외형적인 조건을 따지지 말고 마음속의 선의를 높게 평가해야 합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비에 이를 수 있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질그릇의 노래177)

 

 

# 걱정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욕심을 줄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부질없는 집착이 많은 것 같습니다. 종종 작은 일에 욕심을 부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때로는 해로운 것마저 원하기도 합니다. 철이 없는 어린이가 혹시 해로운 것을 원하면, 어른이 타일러 줍니다. 그러나 어른은 스스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옳지 않은 것을 원하면서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질그릇의 노래184)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삶과 신앙 Ⅰ 모든 이에게 모든 것(1코린토9,22)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기사원문보기]가톨릭신문 2021-04-28 등록

 

 

 

 

 

한국교회 두 번째 추기경이자 청주교구장과 서울대교구장으로, 교회법 학자와 교회 서적 집필자 등으로 60년 사제 생활을 마치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정진석 추기경. 정 추기경이 쉼 없이 걸었던 사제의 길은 곧 신앙의 길이다. 정 추기경이 이 땅에 남긴 ‘신앙인 정진석’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 가정생활이 곧 신앙교육

 

교회에 큰 족적을 남긴 성직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정진석 추기경도 1931년 12월 2일 서울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가정에서의 양육이 곧 신앙교육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 추기경은 태어난 지 4일 만인 12월 6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니콜라오’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정 추기경의 유아세례와 관련해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호적상으로는 태어나기도 전에 유아세례를 먼저 받은 것이다. 정 추기경의 호적상 출생일은 1931년 12월 7일로 기록돼 있어 ‘공적인 출생’보다 하루 빨리 유아세례를 받았다. 지금 생각으로는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과거 가톨릭 집안에서는 유아세례를 통해 교회에 먼저 이름을 올리고 그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정 추기경의 어린 시절 신앙에 큰 영향을 끼쳤던 인물은 외할아버지였다. 장롱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했던 외할아버지는 서울 명동본당 회장을 지낼 만큼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다. 정 추기경은 출생 후 줄곧 수표교 근처 외할아버지 댁에서 지내며 신앙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었다. 기도가 일상인 삶이었다. 어린 시절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듣던 어머니 이복순(루치아)씨의 말이 “진석아, 만과(晩課) 바칠 시간이다!”였다. 지금은 ‘만과’라는 용어가 생소하지만 오래 전 저녁에 가족들이 십자고상과 성모상 앞에서 드리는 만과는 어린 아이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에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정 추기경은 추기경 시절에도 어릴 때 만과를 바치던 때를 회상하곤 했다. 가족 모두가 저녁마다 바치는 기도이니 싫다 좋다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싫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기도가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됐고 정 추기경의 삶에도 두고두고 영향을 끼쳤음에 감사했다. 한번 세워진 신앙의 기초가 일생토록 지탱됐다.

 

정 추기경은 9살 때인 1939년 7월 23일 명동대성당에서 첫영성체를 했다. 이후에도 신앙적 분위기에 둘러싸여 살았지만 사제가 되겠다는 꿈을 처음부터 꾸었던 것은 아니다. 소년 시절 정 추기경은 발명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새로운 발명품으로 세상에 도움을 주는 일이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보았던 발명가들의 위인전은 정 추기경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심어줬다.

 

 

■ 전쟁 체험이 삶의 방향 바꿔

 

그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1학년 재학 중에 터진 한국전쟁은 정 추기경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 과학의 발명품들이 사람에게 선익을 주지 않고 살상 무기로 이용되는 것을 목격했다. 이전의 꿈에 회의감이 들었다. 사제의 길을 생각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외아들이었던 정 추기경이 신학교에 가려면 그 시절에는 주교의 허락이 필요했다. 집안의 반대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하지만 정 추기경이 “어머니, 제가 신학교를 가고 싶은데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음에도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이미 원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머니는 노기남 대주교를 찾아가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노 대주교는 처음에 반대했다. 외아들을 신학교에 보내면 부모는 혼자 살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어머니의 고집 앞에 노 대주교는 결국 신학교 입학을 허락했다. 정 추기경은 훗날 주교가 돼서 사제서품식을 주례할 때면 새 사제들의 부모님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자신의 신학교 입학 허락을 받아 냈던 어머니의 굳은 믿음을 되새기곤 했다. 정 추기경은 2006년 추기경 서임 발표 직후 “어머니께서 살아 계시다면 무엇을 해 드리고 싶으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자 1996년 6월 6일 편안하게 잠을 청하듯 선종한 어머니를 떠올리고는 “절을 하고 싶어요. 끝없이 많이….”라고 답하며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드러냈다.

 

정 추기경이 사제가 되는 데는 한국전쟁 체험이 하나의 계기가 됐지만 그에 앞서 1942년 12월 20일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한국인 최초의 주교인 노기남 주교 서품 미사 참례도 정 추기경에게 사제가 되는 실마리가 됐다. 정 추기경은 노 주교 서품식에서 복사로 뽑혀 난생 처음 주교 서품식을 볼 수 있었고 자신이 미사를 주례하는 상상을 했다고 회상했다.

 

정 추기경이 한국전쟁 후 어렵사리 입학 허락을 받아 신학교에 들어간 것은 1954년 봄이었다. 신학생 시절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던 정 추기경은 자신이 번역하고도 책이 나올 때는 신학생 이름을 책에 올리는 것은 성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번역자로 표기되는 일을 겪곤 했다. 그럼에도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은 정 추기경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은퇴 후 서울 혜화동 주교관에서 생활하던 시절에도 교회법 서적을 포함해 매해 책을 내는 것을 자신과의 약속이라며 끝까지 지켰다.

 

 

■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삶으로

 

주교가 된 정 추기경은 1970년 10월 3일 청주 내덕동성당에서 청주교구장에 착좌했다. 청주교구 첫 한국인 교구장이라는 역사가 새겨졌다. 그러나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시 청주교구 사제들은 절대다수가 미국인이었고 서품 연차도 정 추기경보다 대부분 높았다. 또한 당시에는 사제들에게 생활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교구 형편이 어려웠다.

 

1998년 정 추기경이 28년간의 청주교구장 사목을 마치고 서울대교구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 청주교구민들은 “주교님, 청주교구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눈물겹게 말했다. 사실 정 추기경은 28년 전 청주교구장으로 부임할 때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라 여겼고 서울대교구장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청주교구장 재임 시절 하느님께 ‘교구 사제 100명을 달라’고 기도했던 일이 106명으로 성취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서울로 떠난 것은 큰 감사와 보람이었다. 1998년 6월 29일 정 추기경은 명동대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했다. 후임 염수정 추기경에게 교구장 자리를 물려주고 2012년 5월 10일 교구장에서 퇴임하기까지 14년간 서울대교구를 이끌었다.

 

이제 정진석 추기경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은 오늘을 사는 신자들의 몫이다.

 

 

삶과 신앙 Ⅱ - 추기경이자 교구장으로서의 그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추기경으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정진석 추기경이 청주교구장과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이룬 사목적 성과는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젊은 나이에 첫 한국인 청주교구장이 된 정 추기경은 가난했던 청주교구에 놀라운 성장과 성숙을 가져왔고, 새 천년기를 맞은 서울대교구를 비롯해 한국교회 전체에 쇄신의 기틀을 마련했다.

 

 

■ 첫 한국인 청주교구장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교회법을 공부하던 중 미국에 잠시 머물던 1970년 6월, 정진석 신부는 자신이 주교에 임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초의 한국인 청주교구장이었다. 그것도 39세의 젊은 나이에 교구장 주교가 됐다. 당시 청주교구장은 메리놀 외방 전교회 선교사가 맡고 있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정 추기경은 늘 그랬듯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정 추기경은 교구 운영을 위해 두 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하나는 본당의 자립적인 운영, 또 하나는 한국인 사제 양성이었다. 아울러 신앙의 위기를 겪는 신자들을 위해 신앙 교육을 바탕으로 한 신앙 내실화와 복음화, 그리고 가정사목의 강화에 힘썼다.

 

특히 정 추기경은 자신은 굶어도 신학생은 양성한다는 각오로 성소계발에 힘써, 1990년 교구 신자 수 8만 명에 신학생 수 80명을 확보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러한 노력에 대해 “신자 수 1000명당 신학생 1명이라니, 전 세계에 이런 교구는 없다”고 치하했다.

 

 

■ 28년간 청주교구 성장 이끌어

 

정 추기경은 교구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서 순교 영성에 주목했다. 박해기 교우촌이자 가경자 최양업 신부와 선교사들의 사목 활동 거점이었던 배티성지의 땅을 확보하고 성역화에 박차를 가했고 1999년 양업교회사연구소를 설립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사목과 사회복지는 정 추기경의 한결같은 관심사였다.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사회사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수도회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 정 추기경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수도회들의 진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병들고 약한 이들을 위해서 병원도 필요했다. 가난한 교구의 재정으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정 추기경은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1998년 3월 청주성모병원을 개원했다. 병들고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그간의 고생을 모두 잊고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그러던 중 정 추기경은 주한 교황대사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었다. 이로써 28년 동안 교구장으로 재임하며 지역 복음화율과 신자 대비 본당 수, 사제 수 등에 있어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성장을 이끌었던 청주교구를 떠나게 됐다.

 

 

■ 새 천년기 사목 쇄신

 

정 추기경은 새로운 세기를 코앞에 둔 1998년 4월 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다. 그해 6월 29일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착좌식이 거행됐다. 정 추기경은 이후 2012년 6월까지 14년 동안 서울대교구장직을 수행하며 서울대교구의 새로운 면모를 다지고 새로운 천년기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밝혔다.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정 추기경은 교구 시노드 개최로 새로운 천년기를 시작했다. 새로운 세기를 맞는 교회의 쇄신을 지향하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르친 친교의 교회상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비 단계(2000년)·준비 단계(2001~2002년)·본회의 단계(2003년) 등 4년에 가까운 회의 여정을 거치며 논의한 내용들은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로」에 담았다. 총 208쪽 분량의 이 교서는 새천년기를 향한 서울대교구의 청사진일 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세상 안에서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나침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노드를 통해 종합되고 확인된 변화와 쇄신의 여정을 걸어가던 2002년,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 사목체계 쇄신에 관한 교령」을 공포했다. 이는 교회 대형화의 문제를 해소하고 친교와 일치를 바탕으로 하는 복음적 공동체를 위한 지역 중심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이는 구체적으로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 제도, 지구장 중심 교구 운영, 공동 사목 등의 사목적 조치들로 구현됐다.

 

 

 

■ 가정과 생명

 

청주교구장 시절부터 가정사목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정 추기경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시대, 교회를 생명의 최후 보루로 자리매김했다. 그 첫걸음이 생명위원회의 설립이었다.

 

당시, 산업과 결탁한 의학과 과학은 무분별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나섰다. 정 추기경은 “인간 배아를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비도덕적인 행위”임을 강조하고 2005년 10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발족하는 동시에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10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생명위원회는 교회의 인간 생명 수호 노력의 중심으로서 다양한 생명운동을 펼쳐왔다.

 

정 추기경은 그밖에도 서울대교구장 재임 시절 문화의 시대에 걸맞게 명동대성당 일대를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면서 민족화해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갖고 파주시에 민족화해센터를 건립하기도 했다.

 

 

 

 

■ 학자이자 사목자

 

정 추기경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어려서부터 ‘책벌레’로 불렸다. 1950년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 과학자를 꿈꿨지만 전란 속에서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신학도가 됐다. 신학교에서도 방대한 독서량과 탁월한 학업 성취로 유명했다.

 

뜨거운 학구열은 사제품을 받은 후에도 이어졌고, 이는 곧 왕성한 집필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정 추기경이 펴낸 교회법 관련 저서와 역서는 모두 65권, 1961년 사제품을 받은 후 매년 최소한 한 권씩의 책을 펴낸 셈이다.

 

그는 학자인 동시에 철저하게 사목자였다. 너그럽고 겸손하며 따뜻한 인품은 누구나 그를 가까이 여기게 했다. 그의 이러한 성품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라는 사목 표어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그는 언제 어디서든 기꺼이 만나는 어진 마음을 지녔다.

 

2012년 6월, 서울대교구장직을 물러나면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 추기경은 “그저 매일을 ‘이날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성실히 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 매순간을 살아갔기에,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 재임 시기 동안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했기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 희망이었다. 하느님이 모든 것이었기에 그분이 주신 생명은 존엄한 것이며, 하느님 섭리를 탐구함에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정진석 추기경 선종 첫 미사 강론 - 염수정 추기경

 

         

 

 

오늘 밤 10시 15분에 선종하신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의 선종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바로 1931년생으로 태어나시자마자 이 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고 이 성당에서 미사 복사를 서고 첫영성체, 견진성사, 신품성사를 받으시고 청주교구에서 보직하시다가 서울대교구장으로 사목 생활을 하시다가 주님 품에 오늘 안기셨습니다.

 

이 세상에 주님의 자녀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주님 품에 안기신 것입니다. 미사 중에 정 추기경님을 하느님께서 당신 품에 받아주시어 이제는 고통과 이별 없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히 행복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항상 신자들의 큰 사목자로서 교회 어른으로서 큰 발걸음을 남기셨습니다. 정 추기경님에게 보내주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정 추기경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가셨습니다. 또한 단순히 말이 아니라 당신 몸과 마음 전체로 고귀한 가르침을 실제로 보여주셨습니다. 옆에서 뵈었던 정 추기경님은 깊은 영성과 높은 학식과 부드럽고 고매한 인격을 소유하신 사제 중의 사제이셨습니다. 항상 겉으로는 엄격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소탈하시면서도 겸손하신 추기경님의 모습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고 안타깝게 합니다.

 

나는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사람들에게 보낸 그 편지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쓴 서한에 나오는 말씀, 정 추기경께서 주교품을 받을 때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을 사목 표어로 택하셨습니다.

 

서울대교구장에 은퇴하시던 날 미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이 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보면 제가 산 것이 아니라 제 안에서 주님께서 이끌어주시고 밀어주셨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행복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 또 기도하고 기도하세요. 하느님은 우리가 언제나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십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삶이지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은 기회가 될 때마다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교구 사제단에게 김수환 추기경께서 아버지였다면 정 추기경님은 어머니와 같이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고 우리들을 품어주시고 교회를 위한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선물로 주셨습니다. 장기기증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습니다. 정 추기경은 언제나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이었고, 또 자유로운 분이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정 추기경님을 통해 배운 물질적 유혹에서 벗어나 영원한 가치를 지향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닿는 대로 불쌍한 이를 도와주고 필요한 이들에게 나의 것을 나눠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사람은 죽어 흙이 되어도 사랑과 선행은 영원히 남습니다. 현재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은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해 실현했던 그 사랑입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정 추기경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강론과 말씀에서 이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 추기경님은 인간의 사랑과 존엄성 수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정 추기경님은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 존엄의 신성한 가치와 인간 사랑을 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셨습니다. 자신이 생명의 수호자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셨습니다.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북한 형제들과도 화해와 일치를 소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조건 없이 용서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상대를 받아들이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정 추기경님의 유지를 본받아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끌어안는 교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 입니다. 다시 한번 정 추기경님처럼 훌륭한 분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정 추기경님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2월 21일 주일 밤늦게 병원에 가셔서 오늘 4월 27일 밤 10시 15분 선종하실 때까지 그 병실에서 투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고통 중에서도 어떤 내색도 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감명 깊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저희 기도를 자유로이 들어주시어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시고 남아있는 저희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믿음의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