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새벽밥 / 김승희

나뭇잎숨결 2021. 1. 2. 09:36

새벽밥 / 김승희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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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2 / 김승희.


아침에 눈뜨면 세계가 있다,
당연의 세계가 있다,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있다.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거기에 있다.

당연의 세계는 왜, 거기에,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처럼,
왜, 맨날, 당연히, 거기에 있는 것일까.
당연의 세계는 거기에 너무도 당연히 잇어서
그 두꺼운 껍질을 벗겨보지도 못하고
당연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

당연의 세계는 누가 만들었을가,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당연한 사람이 만들었겠지.
당연히 그것을 만들만한 사람,
그것을 만들어도 당연한 사람.

그러므로 당연희 세계는 물론 옳다.
당연은 언제나 물론 옳기 때문에
당연의 세계를 벗기려다가는
물론의 손에 맞고 쫓겨난다.
당연한 손은 보이지 않는 손이면서
왜 그렇게 당연한 물론의 손일까,

당연의 세계에서 나만 당연하지 못하여
당연의 세계가 항상 낯선 나는
물론의 세계의 말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
물론의 세계 또한 정녕 나를 좋아하진 않겠지.

당연의 세계는 물론의 세계를 길들이고
물론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를 길들이고 있다.
당연의 세계에 소송을 걸어라
물론의 세계에 소송을 걸어라
나날이 다가오는 모래의 점령군.
하루종일 발이 푹푹 빠지는 당연의 세계를
생사불명, 힘들어 걸어오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은
그와의 싸움임을 알았다.
물론의 모래가 콘크리트로 굳기 전에
당연의 감옥이 온 세상 끝까지 먹어치우기 전에
당연과 물론을 양손에 들고
아삭아삭 내가 먼저 뜯어 먹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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