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황동규

나뭇잎숨결 2020. 11. 19. 13:59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황동규

 

 

1.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 알

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것.

겨울 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저 샛노란 유채꽃

땅의 가슴 간지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이국(異國) 햇빛 속에서 겁없이.

 

 

2.

 

그러나 이 시편들을 쓸 무렵 학교는 아직 방학이라 혼자 아파트에 남아 있는 날이 많았고,

아름답고 화려한 전망이 오히려 더 외로움을 낳을 수 있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나이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가능한 한 고국 생각은 덜하기로 했다.

산책을 했다.

음악을 들었다.

책을 읽었다.

작품을 썼다.

이윽고 외로움을 통한 혼자있음의 환희 '홀로움'에 이를때까지.

 

3.

 

뉘 알았으리

외로움과 슬픔이 이처럼 가까운 이웃!

마음과 음악이 만나

같이 여울지며 흘러가다

이윽고 잔잔해질 때

전화 벨이 울린다.

잘못 걸려온 전화.

수화기 속 사내의 사과 말

지금까지 들은 그 누구의 사과보다도 부드럽고 달다.

가만!

여권 속에 안전하게 끼워둔 우표를 찾아낸다.

외로움이 홀연 '홀로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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