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황동규
1.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 알
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것.
겨울 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저 샛노란 유채꽃
땅의 가슴 간지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이국(異國) 햇빛 속에서 겁없이.
2.
그러나 이 시편들을 쓸 무렵 학교는 아직 방학이라 혼자 아파트에 남아 있는 날이 많았고,
아름답고 화려한 전망이 오히려 더 외로움을 낳을 수 있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나이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가능한 한 고국 생각은 덜하기로 했다.
산책을 했다.
음악을 들었다.
책을 읽었다.
작품을 썼다.
이윽고 외로움을 통한 혼자있음의 환희 '홀로움'에 이를때까지.
3.
뉘 알았으리
외로움과 슬픔이 이처럼 가까운 이웃!
마음과 음악이 만나
같이 여울지며 흘러가다
이윽고 잔잔해질 때
전화 벨이 울린다.
잘못 걸려온 전화.
수화기 속 사내의 사과 말
지금까지 들은 그 누구의 사과보다도 부드럽고 달다.
가만!
여권 속에 안전하게 끼워둔 우표를 찾아낸다.
외로움이 홀연 '홀로움'으로....
'시(詩)와 詩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김/박용하 (0) | 2020.12.27 |
---|---|
散散하게, 仙에게 (0) | 2020.12.27 |
율포의 기억 /문정희 (0) | 2020.11.19 |
나뭇잎 편지 /복효근 (0) | 2020.11.12 |
순수 원형을 찾아가는 존재론적 개진의 상상력 (0) | 2020.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