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家心學의 도덕적 인식과 실천
- 陸象山의 心學思想을 중심으로 -家心學의 도덕실천
안 영 석*
[한글 요약]
이 논문은 象山의 心學을 통하여 儒家心學의 도덕적 인식과 실천의 특징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象山의 도덕법칙인 理의 의미, 理의 인식방법, 理의 실천방법을 고찰하여, 그의 도덕법칙의 인식과 실천특징을 구체적으로 논해보았다.
象山은 존재법칙과 당위법칙이 일치하는 一理를 良心에 입각한 도덕적 실천을 통해 체득하였다. 이 과정은 행위를 반성하고 참됨에 힘써 공평한 理를 인식하는 反躬務實的 明理와 本心을 밝혀 宇宙一理를 체득하는 發明本心的 明理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事物의 理를 밝히는 及物的 明理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인식방법은 자신의 心을 밝혀 理를 자각하는 向內明理的 認識方法과 心의 변화를 통해 理를 체득하는 全人格的 直觀方法 그리고 인식주체와 대상이 일치·합일하는 主客一致의 認識方法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방식으로 성립한 心卽理說에 의거하면, 그의 도덕실천은 자신에게 존재하는 良心을 깨닫고 그에 따라 행위하는 '간이한 직접적 실천'과 마음의 주체성을 회복하여 理를 밝히고 실현하는 '주체적인 자율적 실천' 그리고 마음의 인격적인 변화를 통해 理를 체득·실천하는 '全人格的 실천'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象山의 사상은 孟子의 학문을 충실히 계승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孟子의 求放心과 盡心知性知天의 방법은 그의 '發明本心을 통한 理의 체득방법'에 그대로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그의 도덕실천 방법은 지식과 시간의 多寡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알고 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오직 자신의 良心을 끝까지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핵심이 되는 너무나 평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주제분야 : 윤리학
주 제 어 : 도덕법칙, 발명본심, 심학, 인식과 실천, 주체성
1. 시작하는 말
先秦時代 이래로 중국의 윤리적 사상, 특히 儒家의 학문에서는 도덕의 성립근거를 대체로 인간 내부의 心性에서 찾는 입장과 心性 外的 요소 즉 사회의 질서유지 및 평화 등에서 찾는 입장이 있어 왔다. 전자의 대표적 경우가 바로 孟子의 사상이라 할 수 있고, 후자의 경우는 荀子를 대표로 들 수 있다. 孟子는 선한 本性이 본래부터 인간의 心性에 내재하고 있음을 四端之心을 들어서 증명하였기에, 자연히 도덕의 기원을 인간의 내적인 心性에서 찾았고, 도덕의 실천 또한 그러한 本性을 회복·보존·확장하는 방법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荀子는 인간의 생물적 본능을 本性으로 여겼으므로 도덕의 기원을 이러한 본능을 초월한 사회적 규범인 禮에서 찾았고, 禮를 습득하는 인위적인 노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그의 사상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후대의 유가들은 荀子보다는 孟子의 입장 즉 人間本性의 선함을 긍정하고 이를 회복하고 확충할 것을 주장하는 性善說의 입장을 채택하여 儒家의 정통이념으로 확립하였다. 그리하여 송대이래 유학의 부흥기를 개창한 新儒學에서는 性善說에 바탕한 도덕실천과 수양론들이 한결같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性善說의 입장에 바탕한 이론체계라 하더라도 당시 유학계의 내부에서는 인간이 실현해야할 도덕법칙인 理를 어떻게 파악하고 실천하는가에 대한 異見이 차츰 형성되고 대립되게 되었다. 이러한 대립이 구체적인 논쟁의 형태로 표출된 것이 바로 남송시대 朱子와 陸象山 간에 공부방법론을 둘러싸고 일대 논전을 벌인 '鵝湖寺 會合'이라고 할 수 있다. 아호사 논쟁은 널리 살핀 연후에 요지로 집약할 것을 주장하는 朱子와 먼저 本心을 밝힌 이후에 널리 살필 것을 주장하는 象山 사이의 공부방법론에 관한 논쟁으로 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朱子와 象山이 공부순서를 달리 주장한 것은 도덕법칙인 理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理를 파악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도덕법칙의 실천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朱子學의 경우 고려말 性理學이 수입된 이래 지속적인 연구와 논쟁을 통해 중국에서 논의되지 못한 부분까지도 포괄적이고 깊이있게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心學의 경우 朱陸論爭의 당사자이면서도 儒家心學의 한 획을 그었던 象山의 사상에 대해서는 논의와 연구의 성과들이 극히 미미한 상태에 있어 왔다. 따라서 본 논문은 象山의 사상을 도덕적 인식과 실천에 관련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고찰하여 儒家心學의 도덕의 인식과 실천방식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하여 주륙논쟁에 대한 보다 완전한 이해와 心學의 이해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象山에 있어서 도덕법칙인 理의 의미와 내용, 理를 인식하는 방법, 理를 실천하는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南宋心學을 대표하는 象山에 있어서 도덕실천의 양상이 어떠한 특징을 지니게 되는지를 밝히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도덕적 실천행위에 어느만큼 적합하고 용이한 것인가를 밝혀나가도록 하겠다.
2. 理의 의미
象山에게 인간이 따라야할 도덕법칙은 理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象山의 理는 존재법칙과 당위법칙이 일치하는 一理이다. 아래 예문은 존재법칙과 당위법칙이 일치하는 一理를 보여주고 있다.
이 理는 우주에 가득차 있는데 天地는 이것에 따라서 움직이는 까닭에 해와 달이 지나치지 아니하고 사계절이 어긋나지 아니한다. 聖人은 이것에 따라서 행동하기 때문에 형벌이 깨끗하여 백성들이 복종한다.
이 이치가 우주에 가득차 있는데 누가 그것을 피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따르면 吉하고, 그것을 거스르면 흉하다. … 어둡고 어리석은 자는 이 이치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이 거역하여 흉함에 이르게 된다. 밝고 지혜로운 자는 이 이치를 보기에 따를 수 있어서 吉함에 이른다.
위에서 보듯이 理는 우주에 가득차 운행되는 존재적 운동법칙이자 인간이 따라야 할 당위법칙이다. 그런데 인간이 이러한 당위법칙을 따르지 않으면, 우주전체의 위대한 작용으로서 영구히 공평하게 작용하는 理에 위배되어, 개체와 그 주변은 자연히 불행해지고 흉해진다. 이처럼 一理는 우주운행의 법칙이자 당위법칙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象山이 밝힌 理는 朱子처럼 向外窮理的 方法 즉 事物에 다가가 궁구해서 밝힌 理라기보다는 그의 本心을 밝혀서 체득해낸 一理이다. 즉 發明本心을 통하여 '吾心卽是宇宙'라는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밝혀낸 一理이다. 朱子가 居敬과 窮理의 병행을 통해 理를 밝히고자 하였다면, 象山은 철저하게 敬이 근본이 된 道德實踐을 통해 理를 밝혔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象山이 '내 마음이 곧 우주'라는 깨달음을 통해 理를 자각하는 장면이다.
宇宙라는 글자 뜻으로 인해서 聖人의 學에 돈독하게 뜻을 두게 되었다. … 13세에 古人의 學에 뜻을 두었다. 先生은 3·4세때 부터 '天地의 끝은 어디인가?'를 생각하였는데, 알지 못하자 먹는 것조차 잊기에 이르렀다. 선생의 아버지가 그것을 꾸짖어서, 잠시 그러한 행동을 멈출 수 있었으나 가슴속의 의문은 끝내 남아 있었다. 후에 열살 남짓하여, 古書를 읽다가 宇宙 두 글자의 해석 즉 "四方과 上下를 宇라 하고, 옛날이 가고 오늘이 옴을 宙라 한다"는 구절에 이르러 크게 깨달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원래부터 끝이 없다. 사람과 천지 만물은 모두 무궁한 그 가운데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붓을 들고서 글을 쓰기를 "우주 안의 일은 바로 내 본분 안의 일이요, 내 본분 안의 일은 바로 우주 안의 일이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우주는 곧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은 곧 우주이다. 동해에 聖人이 나도 이 마음은 같고, 이 이치 또한 같다. 서해에 聖人이 나도 이 마음은 같고 이 이치 또한 같다. … 천백세 위로부터 천백세 아래에 이르기까지, 聖人이 나온다고 한다면 이 마음과 이 이치는 같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그가 學者를 깨우치고 인도함에 '宇宙'라는 두 글자를 많이 언급하였다.
위에서 보듯이 象山은 깨달음 직후 "이 마음은 같고, 이 이치 또한 같다"고 연이어 말함으로써, "내 마음이 곧 우주"라는 깨달음을 통해 心과 理의 궁극적인 진상을 밝혔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게 된 象山의 理의 인식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3. 理의 인식
象山의 '理의 인식방법'의 가장 큰 특징은 도덕적 실천행위를 기초로 그것을 통해 궁극적인 理를 체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象山은 깨달음을 통해 우주의 一理를 인식하였는데, 이에 이르는 공부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기를 반성하여 참됨에 힘쓰는 것(反躬務實)에서부터 시작하여, 뜻을 변별하고(辨志) 잘못된 마음상태를 박락하며(剝落), 잊어버리고 있던 그 마음을 되찾아(求放心) 그것을 보존하고 확충함으로써(存心 養心), 자신의 本心을 밝히게 된다.(發明本心) 그리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이 바로 우주이다'는 자각을 얻고, 거기에서 내 마음과 우주 그리고 우주에 가득찬 一理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러한 과정을 고찰하기로 한다. 理를 밝히는 象山의 공부는 대략 反躬務實의 단계와 發明本心의 단계 그리고 及物工夫의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1) 理의 인식 단계
첫째, 반궁무실적 명리(反躬務實的 明理) 단계: 이 단계는 자기 행위를 반성하고 참됨에 힘씀으로써 理의 왜곡된 인식을 없애고 막는 단계이다. 이 단계의 공부는 대략 자신의 생활을 절실하게 반성하는 절기자반(切己自反)과 생각과 의지를 義와 利, 公과 私라는 기준으로 변별하는 변지(辨志), 그리고 마음에 해가 되는 욕심과 생각을 없애는 박락(剝落), 그리고 잘못을 고쳐 善을 실행하는 개과천선(改過遷善) 등인데, 이것은 모두 求放心의 행위라 할 수 있다. 辨志란 글자 그대로 '뜻을 변별하는 것'인데, 義와 利, 公과 私라는 기준으로써 행위의 동기와 목적을 변별하는 義利之辨과 公私之辨을 말한다. 그리고 義利·公私로써 동기를 변별하고서 義와 公을 실천하는 행위가 剝落과 改過遷善이다. 利와 私를 마음에서 벗겨 없애는 '心의 실천'이 剝落이고, 利와 私의 행위를 고치고 義와 公을 실천하는 '행위의 실천'이 바로 改過遷善이다. 이렇게 도덕적 행위를 마음을 다해 철저하게 실천하면, 마음은 점차 공평해지고 밝아지며 넓어지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진 도덕적 심성(本心·本性)이 차츰 그 존재와 작용을 드러내어,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是非善惡의 事理 판단이 바르게 이루어진다. 이것을 反躬務實的 明理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또 자신에게 갖추어진 本心을 밝히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둘째, 발명본심적 명리(發明本心的 明理) 단계: 이 단계는 本心을 밝혀서 宇宙의 一理를 체득하는 단계이다. 反躬務實 단계에서 언급한 '잃어버린 마음을 구하는 것(求放心)'의 '잃어버린 마음'이란 良心·仁義之心·赤子之心 등으로 불리우는 순수한 도덕심을 말한다. 이러한 도덕심 즉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마음' 을 잘 보존하고 확충하면(存心·養心)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마음의 본체에 이르게 되어 그 本體心을 자각하게 된다. 이렇게 자각하게 된 本體心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心은 體는 지극히 크다. 만약에 내마음을 다할 수 있다면, 곧 하늘과 더불어 같게 된다.
선생은 그날의 부채 訟事의 시비를 가지고서 답하였다. 나(楊簡)는 홀연히 이 마음이 청명함과, 시작과 끝도 없음과, 통하지 않는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
기타의 體는 모두 형체가 있으나, 오직 心만은 형체가 없다.
이러한 本體心을 자각한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보았던 象山의 "내 마음이 곧 우주"라는 깨달음을 얻은 일이다. 내 마음이 곧 우주이기에 그는 "心의 體는 지극히 크다. 만약 내 마음을 다할 수 있다면, 곧 하늘과 더불어 같게 된다"고 하였다. 위에서 보듯 本體心은 형체를 넘어서 있는, 통하지 않는 곳이 없는 무한한 存在이다. 宇宙 또한 형체의 한계를 넘어선 무한한 存在이다. 그런데 형체를 넘어선 무한한 存在는 이 우주에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本體心과 宇宙는 하나이다. 결국 宇宙와 本心은 같은 하나의 무한한 통일체이며, 형체를 넘어선 것으로서 일치되어 있는 存在인 것이다. 理 또한 우주를 채우는 무한한 존재이자 形而下의 萬物이 이에 따라 움직이는 形而上的 法則이다. 결국 이렇게 본다면 이 理와 宇宙도 사실은 '동일한 무한한 통일체'이며, 형체를 넘어선 形而上者로서 하나로 일치된 存在이다. 이렇게 볼 때 시 공간적으로 무한한 形而上者는 이 우주에 있어서 하나밖에 없다. 이러한 '하나인 實在'를 시 공간적 형식의 개념으로 표현하면 宇宙라 할 수 있고, 형이하적 존재인 萬物의 작용법칙으로 표현하면 理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의 주체적 생명작용으로 표현하면 心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心과 宇宙와 理가 이렇게 실제로 동일한 '하나인 實在'이기 때문에, 자신의 本心을 깨닫고 밝히는 것이 우주의 一理를 인식하는 것이 된다. 이것을 象山의 發明本心的 明理의 내용이라고 하겠다.
셋째, 급물적 명리(及物的 明理) 단계: 이 단계는 本心을 밝히고 회복한 후 이를 바탕으로 事物의 理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궁구하는 단계이다. 이러한 공부는 두 방면으로 나눌 수 있는데, 本心을 밝힌 후 事物과 접하여 心을 연마하고 理를 실현하는 방면과 이전의 思想과 史蹟을 살피고 興亡治亂의 역사와 是非得失을 연구하는 방면이다. 전자를 象山은 연마(鍊磨)·마려(磨礪)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動的인 敬'이라 하겠다. 이에 대해 그는 "우리 집은 일족들이 함께 식생활 경제를 관리하였는데, 매번 돌아가며 자제들을 차출하여 창고를 2년간 관리하게 하였다. 나도 마침 그 일을 맡았는데 배우는 바가 크게 진전되었다. 이것이 바로 일을 함에 있어서의 경건함(敬)인 것이다"고 언급하였다. 후자는 전자에 바탕하여 事物과 事情과 事勢의 구체적인 법칙을 살피고 이유를 밝히는 것인데, 이에 대해 그는 "학문이 근본에 있어서 바르게 확립되었다면, 모든 미세한 것들을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구체적인 예로는 그의 독서공부를 들 수 있다.
이른바 독서는 마땅히 物理를 밝히고 事情을 헤아리고 事勢를 논해야 한다. 또 역사서를 읽음에 모름지기 그것이 성공하고 실패하며 옳고 그른 이유를 보아서 여유있게 무젖어 푹 潛心하여 헤아려 본다면 스스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만약에 이처럼 3-5권의 책을 읽는다면 3만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이러한 及物的 明理工夫를 수행해야만 세상에서 聖人의 학문을 펼칠 수 있는 실질적 학문(實學)으로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象山은 "모름지기 급물공부를 해야만 크고 작은 일에 따라서 이룸이 있게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反躬務實·發明本心·及物工夫를 일관하여 기본이 되는 것은 敬이다. 이로써 本心을 밝힘을 위주로 하는 象山의 인식이론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실제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진실로 이 마음이 보존되면 이 이치는 저절로 밝혀진다." 바로 이러한 사실적 관계가 그의 인식방법론의 현실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心存理明의 사실에 근거한 그의 인식이론을 간략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象山의 理의 인식방식은 心이 세계 인식과 행위의 주체임을 분명히 하고 도덕적 실천을 통해서 心의 왜곡된 상태에서 벗어나 그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 즉 도덕적 주체성과 존귀함·위대성을 회복하는 것을 기초로 삼았다. 이러한 작업은 바로 주체의 本心을 발명·회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될 때 知·情·意를 포괄하는 心 본래의 작용과 덕이 회복되며, 이로써 우주의 근본적 법칙이자 인간의 당위적 법칙인 理가 心에 체득되고 합치되어 밝게 드러나게 된다. 이리하여 인간은 그 자신의 생명적 본원과 그를 둘러싼 우주의 본질과 법칙을 동시에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象山의 理의 인식방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그의 인식방식은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2) 理의 인식 특징
象山의 인식방법의 특징은 대체로 '向內明理的 認識方法' '全人格的 直觀·體得方法' '主客一致의 認識方法' 세가지로 말해 볼 수 있다.
첫째, 向內明理的 認識의 특징 : 象山의 明理說은 자신의 心을 밝혀 理를 자각하는 向內明理的 認識方法이다. 이러한 인식방식은 눈·코·귀 등의 감각기관을 통한 인식만을 토대로 지식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인 心의 반성과 자각을 통해 理의 인식이 이루어진다. 현상적 측면에서 心을 사물과 대비하여 안(內)이라 할 때, '당위법칙'이자 '존재의 근본법칙'인 一理를 자신의 本心을 밝힘으로써 인식·체득하는 방법을 向內明理的 認識方法이라 하겠다. 象山은 다음과 같이 안을 통한 理의 밝힘을 주장하였다. 다음은 이러한 하나의 예이다.
서중성이 가르침을 청하였는데 象山은 중성에게『孟子』의 "萬物이 모두 내게 갖추어져 있으니 자신을 반성하여 성실하다면 즐거움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는 단락을 생각하게 하였다. … "이 일은 다른 데서 구하는 것이 아니니, 단지 중성 자신에 있을 따름이다"하고, 또 웃으면서 "이미 분명하게 말해졌다"고 하였다. 그런데 잠시 뒤 仲誠이 묻기를 "『中庸』은 어떤 것이 요지의 말입니까?"하였다. 그러자 象山이 "나는 너에게 안(心)을 말하는데 너는 오직 바깥만을 말하고 있구나!"라고 질책하였다.
위에서 象山이 그의 제자 서중성에게 "나는 네게 안을 말하는데 너는 오직 밖을 말하는구나"라며 질책한 것은, 그의 의도가 중성으로 하여금 안(心)을 집중 반성토록 하여 理를 깨닫게 하는데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象山의 理의 인식을 向內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류의 인식방법을 明道 역시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방법은 象山의 독자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儒家心學의 공통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둘째, 全人格的 直觀·體得의 특징 : 象山의 明理說은 心의 변화를 통해서 理를 체득하는 '全人格的 直觀·體得의 方法'이다. 공정한 인격을 위한 도덕실천을 통해 本心을 밝히는 象山의 인식방법은 朱子의 識別知 위주의 궁리방법과는 달리 주체인 心의 知 情 意의 작용을 다 발휘해야 하는 포괄적인 실천방식이다. 그리하여 心의 본래 상태와 작용을 밝히고 주체성을 회복함으로써, 心이 지닌 智 仁 勇의 도덕적인 성능을 회복하는 인격변화의 과정이다. 다음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예화이다.
선생이『孟子』의 "공도자가 묻기를 모두가 같은 사람인데"라는 장을 예로 들어 말하기를 "사람에게는 五官이 있고, 그 五官은 각각 그 맡음이 있다"라고 하였다. … 하루는 다락을 내려오다가 '이 마음이 이미 맑고 깨끗한 가운데 세워져 있음(澄瑩中立)'을 깨닫고, 마음 속으로 이상히 여겨 선생을 찾아뵈었다. 선생은 나를 맞이하여 보면서 말하기를 "이 이치가 이미 밝혀졌다"라고 하였다. …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바로 知이고 또 勇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통하여서 대답하기를 "知와 勇 뿐이겠습니까? 만가지의 善이 모두가 바로 이 물건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얻어지는 앎은 위의 本心의 체득과정에서 보듯이 깨달음이라는 직관적 방식이고, 이후의 앎 또한 지식습득을 통한 앎이 아닌 직관적 방식이 주를 이룬다. 宇宙의 一理, 本心인 一理를 직관하였으므로, 事物의 理 또한 그러한 一理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현되는가를 직접 보면 되는 것이다. 다음이 그 예이다.
이 이치는 우주에 가득차 있다. 옛날의 聖賢은 항상 눈앞에서 밝게 통찰하였다. 대개 그들은 사사로운 지혜를 쓰지 않았다. "의식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서 天帝의 법칙을 따른다"라고 하니, 이 이치가 어찌 識과 知를 용납하겠는가!"
이상의 예에서 보듯이 象山의 인식방식은 心 본래의 작용과 德을 회복하여 理를 직관하는 방법이므로, 인격적 변화를 통해 理를 체득하는 '全人格的 直觀·體得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셋째, 主客合一의 認識 특징 : 象山의 明理說은 인식주체와 대상이 일치·합일하는 主客合一의 認識方式이다. 朱子의 格物說이 인식주체와 대상의 대립적인 구도 즉 主客對立에 기초한 인식방식인데 반해, 象山의 明理說은 주체와 대상이 일치하는 主客一致에 기초한 인식방식이다. 앞에서 보듯 주체인 心의 진상을 밝혀보면 本心과 宇宙와 一理는 궁극적인 존재인 '하나의 形而上的 實在'이다. 다시 말하면 인식의 주체인 心과 그 대상인 理는 사실은 본래 하나의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우주의 궁극적인 一理를 밝히는 것은 本心과 一理의 동일함을 밝히는 것이 되며, 주체와 대상이 본래 동일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 된다. 이것을 현상적인 측면에서 보면, 분리되게 보이는 인식주체와 대상이 주체가 자신을 밝힘으로써 主客이 일치하는 체험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4. 理의 실천
象山은 도덕적인 실천수행 즉 本心을 밝히는 發明本心을 통해 우주 一理를 밝히고, 萬物의 변화를 통해 그러한 一理의 구체적인 드러남을 직관하고 밝혔다. 朱子의 경우 理를 궁구한 이후 그 理를 실현하는 도덕적 행위가 성립되는 반면, 象山의 경우 心의 도덕적 실천이 전제되지 않으면 窮極的 理를 체득하여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그 이유를 그의 心卽理說을 살펴보면서 알아보기로 한다.
1) 心卽理의 도덕적 의의
象山의 心卽理說은 인식이론적, 우주론적, 수양론적 측면 등으로 해명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도덕실천과 관계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논하고자 한다. 앞서 보았듯이 本心과 宇宙와 一理는 모든 존재의 가장 궁극적 존재인 '하나인 形而上的 實在'이다. 그런데 이렇게 主客一致의 체험을 통해서 깨달아진 形而上的 實在는 활동성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히 우주 속의 모든 존재들을 쉬지않고 생성·변화시키는 구체적인 작용의 實在이다. 모든 존재들을 생성·변화시키는 이러한 形而上의 實在가 바로 인간의 本心이면서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에 '心이 곧 理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본래적 측면의 心卽理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本心이 欲心이나 意見에 가려져 왜곡되지 않고 어떤 상황에 즉해 그대로 발용될 때, 이렇게 발용된 마음은 저절로 법도에 맞는 中節의 정감과 행위로 표출된다. 발용된 정감과 행위 그 자체가 바로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정감과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사회 속에서 모범과 준칙·법칙으로 이해되고 수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행위주체에게 있어서, 추상적 법칙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행위를 조절하는 매개행위나 여과를 거친 것이 아니기에, 내용의 어떠한 변경이나 굴절이 없는 本心 그대로의 행위이다. 그래서 '本心이 곧 理'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현상적 측면에서 心卽理의 의미이다. 그러면 이제 性卽理와 비교하여 心卽理를 설명하기로 한다.
그런데 性卽理라는 朱子의 견해는 心은 理가 될 수 없고 心 속의 性이 理이다는 주장이며, 心과 性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朱子는 心과 性을 만두와 만두 속알맹이의 관계로써 비유하였다. 그러나 象山에 의하면 心과 性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존재이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책을 읽는데 단지 글자만 풀이하지 혈맥을 구하지 않는다. 또 性·情·心·才 같은 것들은 단지 '같은 하나의 것'인데 말의 배당이 같지 않은 것이다"는 그의 말이 이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心과 性은 같은 것'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象山에게 心과 性은 현실의 물(水)과 그 물의 본래 모습의 관계이다. 물은 산 속의 샘에서 발원될 때 깨끗한 물이었지만, 사람사는 세상을 지나면서 불순물이 섞인 오염된 물이 된다. 그러나 더럽고 혼탁한 물이라고 해서 물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현실적인 마음이 청명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 마음이 性과 다른 존재라고는 할 수 없다. 물에 섞인 오염물이 차츰 가라앉고 걸러지게 되면 원래의 맑은 상태를 회복하듯, 마음에 있는 物欲과 意見이 걸러지면 원래의 맑은 상태 즉 本心(性)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그 물의 흐름에 따라 땅이 패이고 깎여 변화되는데 이러한 물의 흐름이 바로 理라고 비유할 수 있다. 혼탁한 물의 상태에서는 물은 자신의 흐름이 어떻게 땅의 변화를 가져오는지 보이지 않기에 작용하면서도 잘 알 수 없지만, 청명한 물의 상태가 되면 그러한 것이 훤히 다 보이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물은 낙동강 한강 등으로 이름이 다를지라도 다 이어져있는 하나의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 本心을 밝힌 상태의 능력과 효과라고 할 수 있다. 象山에 의하면 本心은 지극한 청명함과 어디에도 통하지 않음이 없는 관통성, 직각성, 평안함과 태연함, 진실성 등을 지닌 가치로운 존재이다. 따라서 本心이 현상세계에 작용할 때에도 그러한 가치성을 띠는데, 이것이 앞서 언급했던 良心·四端之心 등으로 표현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이 良心을 실천을 하지 않고서는 생명작용의 本源인 本心卽宇宙의 一理를 체득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心卽理說의 도덕실천적 의의라 할 수 있다.
2) 도덕실천의 특징
象山의 도덕실천의 특징은 대체로 '간이한 직접적 도덕실천' '주체적인 자율적 도덕실천' '포괄적인 전인격적 도덕실천' 이 세가지로 말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앞서 보았던 象山의 理의 세가지 인식특징에 기인하는 것이다.
첫째, 간이한 직접적 도덕실천 : 象山의 理의 인식은 向內明理的 認識이므로 도덕의 실천 또한 대상에 다가가 理를 궁구하는 매개적인 행위가 필요치 않다. 자신에게 이미 존재하는 良心 즉 本心을 깨닫고 그것을 보존하며 그에 입각해 모든 상황에 접해서 행위하면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것을 簡易한 工夫라고 하면서 鵝湖寺의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의견을 詩로 지어 제출하였다.
폐허가 된 묘지는 슬픔을 일으키고 종묘는 공경심을 일으키는데, 우리 인간 오래도록 이 마음 닳지 않네. 낙수물은 모여서 바다에 이르고, 주먹돌은 모여서 큰 산을 이룬다. 쉽고도 간이한 공부는 마침내 장구하여 크게 되고, 지리한 사업은 결국은 떳다가 가라앉아 버린다.
또 그의 실천이 직접적이라는 것은, 宇宙의 一理는 자신의 마음 속에 이미 작용하고 있기에 朱子처럼 一理를 밝히기 위해 事物의 理를 궁구하는 과정을 매개로 하지 않고, 자신에게 내재되어 발용되고 있는 理(良心)를 직접 자각하고 그에 따라 행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道德的 良心에 따라 행위하는 직접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道는 가까이 있는데 멀리서 찾으며, 일은 쉬운데 있는데 어려운데서 찾는다. 道가 어찌 멀리 있으며 일이 어찌 어렵겠는가. 의견이 참답지 못하여 스스로 어려움을 짓는도다!"라고 하고 있다.
둘째, 주체적인 자율적 도덕실천 : 象山의 도덕실천은 事物의 理에 心을 맞추어 행위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체인 心을 밝혀 그 理에 입각해 행위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사물이나 사건에 협착되어 주체성이 상실된 마음을 회복하는 방법 즉 本心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理를 밝히고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신의 本心인 理에 의해 자발적으로 정감과 행위가 발현되므로 자율적인 도덕실천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象山의 도덕실천은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 없는 本性 즉 心의 尊大性을 실현하는 길이다. 이러한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에 대해 그는 아래와 같이 언급하였다.
맹자는 그 心을 간직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 간직한다는 이 한마디 글자만으로도 저절로 사람들로 하여금 이 理를 얻어 밝히도록 할 수 있다. 이 理는 본래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것이며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이 아니다. 이 理를 얻어 밝히면 곧바로 主宰하게 되며, 진실로 주재노릇을 할 수 있으면 밖의 사물이 동요시킬 수 없고 사악한 말이 의혹시킬 수 없다.
셋째, 포괄적인 전인격적 도덕실천 : 象山의 心學에서는 理를 인식하는 실천 자체가 이미 도덕적인 실천행위이고, 이것이 진정으로 확보될 때만 궁극적인 理가 밝혀진다. 즉 朱子의 窮理說과는 달리 知 情 意를 포괄하는 本心의 작용과 덕을 회복하여 理와 합치되는 방법이므로, 인격의 전면적 변화를 통해 理를 체득하는 '全人格的 體得의 방법'이다. 그리고 이렇게 밝혀진 理는 어떠한 매개작용없이 그 자체의 자연적·즉각적 발현으로 도덕적 행위로 드러난다. 따라서 그의 학문에서는 도덕적 가치와 관심에서 벗어난 어떠한 지식과 학문도 성립될 수가 없다. 그러한 지식과 학문은 그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만약 그의 이러한 방법에 의해 진정으로 理를 체득했다면, 그 행위는 결코 도덕적 가치를 위배하고 이탈할 수가 없다. 인격의 포괄적인 완전한 변화가 수반되어 一理가 인식되므로 朱子처럼 心과 理의 불일치가 일어날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아래의『中庸』의 덕성을 높이는 공부(尊德性)와 지식을 배우고 묻는 공부(道問學)에 대한 그의 입장은 이러한 학문성격의 일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원회(朱子)는 일찍이 어떤 학자에게 다음의 편지를 보냈다. "육자정(象山)은 오로지 尊德性으로써 사람들을 가르친다. 그래서 그의 문하에는 실천적인 사람들이 많지만 道問學에 있어서는 부족하다. 그러나 내(朱子)가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렇지 아니하여 道問學에 관한 것이 제법 많다. 그래서 우리 문하의 사람들은 실천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함이 많다."라고 朱子는 말하였다. 그런데 내(象山)가 이것을 보건대 주원회는 양자의 단점을 없애고 양자의 장점을 합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불가하다고 본다. 이미 尊德性을 알지 못하는 데 어찌 道問學이 있을 수 있겠는가!
5. 맺음말
이상으로 象山心學의 도덕법칙인 理의 의미와 내용, 理의 인식방법과 특징, 理의 실천의 특징을 살펴 보았다. 朱子의 경우 理는 所以然과 所當然의 법칙을 말하는데, 존재법칙은 心의 기능인 식별지의 작용을 매개로하여 주체에게 당위법칙으로 주어진다. 이러한 認識心의 작용이 개괄적으로 표현된 것이 '格物補傳'의 卽物窮理說인데, 그러한 즉물궁리설은 향외궁리적·식별지 위주의 인식 그리고 주객분립의 인식방법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象山의 경우 존재법칙과 당위법칙이 일치하는 一理는 주체의 良心에 근거한 도덕행위의 지극한 실천에 의해 체득되어진다. 이 과정은 反躬務實的 明理와 發明本心的 明理 그리고 及物的 明理의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인식방식은 向內明理的 認識方法·全人格的 直觀方法·主客一致의 認識方法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에 기초해 성립한 心卽理說에 의거하면, 그의 도덕실천은 '간이한 직접적 실천'과 '주체적인 자율적 실천' 그리고 '전인격적 실천'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고찰에 따르면 象山의 사상은 인간본성의 선함을 천명하여 주체적인 도덕실천의 길을 연 孟子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求放心과 盡心·知性·知天이라는 孟子의 '心을 통한 知天의 방법'은 '發明本心을 통한 一理의 체득'을 주장한 象山에게 그대로 구현되어 있다. 이러한 방법은 인간본성의 선함을 절실하게 자각토록 주체에게 요구하고 또 그것을 열어주고 발양하는 방법이다. 그리하여 '주체성을 회복하는 실천(求放心)'으로써 앎과 함의 일치를 시작부터 이루어 가는 주체적인 도덕실천의 방법이다. 이러한 주체적인 인식과 실천의 방법은 지식의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는, 간명하고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운 방법이다. 왜냐하면 오직 자신의 良心을 위배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핵심이 되는 너무나 평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이러한 방법을 생활 속에서 당장 실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앎과 지극한 행위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세상의 여러 이익과 유혹을 초극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도덕적 의지의 순수함과 강함 그리고 지속성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 발생하는 善行과 非行의 여러 예에서 보듯이, 지식의 양이나 체계성과 도덕실천의 수준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은 도덕적인 동기나 목적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 때문에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수준은 지식의 양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이상(善)을 향한 동기와 의지와 그 실천의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象山의 心學은 이러한 善을 향한 동기를 먼저 문제삼고, 그 의지의 보존과 확충을 통해 그것을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도덕적 학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도덕실천 방식은 지식과 학식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인간 본연의 도덕적 요구에 부응하는 실천방식이며, 어느 누구에게나 당연히 요청되고 또 실현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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