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심장이라는 사물/한강

나뭇잎숨결 2020. 10. 6. 18:20

심장이라는 사물

 

 

- 한강

 

 

지워진 단서를 들여다본다

 

희미하게 남은 선의 일부

또는 ㄴ이 구부러진 데

지워지기 전에 이미

비어 있던 사이들

 

그런 곳에 나는 들어가고 싶어진다

어깨를 안으로 밀고

허리를 접고

무릎을 구부리고 힘껏 발목을 오므려서

 

희미해지려는 마음은

그러나 무엇도 희미하게 만들지 않고

 

덜 지워진 칼은

길게 내 입술을 가르고

더 캄캄한 데를 찾아

동그랗게 뒷걸음질치는 나의 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