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입장에서 본 상대론적 시공간
곽 윤 항(서울대)
지금까지 시공간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관점에서 칸트의 시공간 개념은 잘못된 것으로 비판받아 왔으나, 이 논문에서는 반대로 칸트의 관점에서 상대론적 시공간을 조명하였다. 이러한 조명을 통해서 칸트의 시공간과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시공간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시공간에 대한 칸트와 아인슈타인의 관점이 양립할 수 있음을 논하였다.
물자체와 현상 그리고 시공간에 대한 칸트의 관점에서 볼 때, 칸트의 시공간과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시공간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진다.
공통점은, 첫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취급하는 대상은 칸트가 의미하는 현상과 같다. 둘째, 아인슈타인에 있어서도 칸트의 시공간의 경우와 같은 인식 주관의 성질로서의 선천적 시공간 표상이 상대론적 시공간의 근저에 있다. 셋째, 상대론적 시공간도 칸트의 시공간 처럼 칸트가 의미하는 현상에 대해 실재성을 가지고 물자체에 대해서는 관념성을 가진다.
차이점은, 시공간이 현상을 서술하는데 있어서, 즉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측면에서 다음과 같다.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칸트의 시공간은 경험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수학적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은 빛에 의해 경험적으로 규정되며 민코우스키 시공간을 성립시키고,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은 물질 분포에 의해 경험적으로 규정되며 리만 기하학에 의해 서술된다.
시공간을 선천적인 측면과 경험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할 때, 칸트의 시공간과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시공간은 다음과 같이 양립할 수 있다. 시공간에 대한 칸트의 관점에서 시공간이 인간의 인식 주관의 선천적 형식이라는 선천적 측면을 취하고, 시공간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관점에서 시공간이 경험적으로 규정된다는 경험적 측면을 취하면, 시공간에 대한 칸트와 아인슈타인의 두 관점은 동시에 모순없이 수용될 수 있다.
Ⅰ. 서 론
19세기 이후 과학의 발전과 과학의 형식적 성격의 인식 그리고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견등은 시공간에 대한 칸트의 관점의 매력을 감소시켰다. 20세기 초 기하학에 대한 리만, 힐버트, 아인슈타인의 연구 이후로 칸트의 시공간에 대한 개념은 잘못된 것 처럼 보였다. 칸트가 부분적으로 선택한 뉴턴의 시공간에 대한 절대적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시공간 이론에 의해 대체되었고, 이에 따라 시공간에 대한 상대론적 관점에서 칸트의 시공간 개념은 지금까지 잘못된 것으로 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반대로 칸트의 관점에서 상대론적 시공간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조명을 통해서 칸트의 시공간과 상대론적 시공간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칸트의 시공간 개념과 상대론적 시공간 개념을 보다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시공간 개념을 개관하고, 칸트의 시공간 개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자체(物自體)와 현상의 구분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칸트의 시공간 개념을 분석 정리하고, 칸트 관점에서 상대론적 시공간 개념을 조명하였다. 맺음말에서 칸트의 시공간 관점과 상대론적 시공간 개념의 양립(兩立)이 가능함을 논하였다.
Ⅱ. 상대론적 시공간
1.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
특수 상대성이론에서 시공간은 다음 두 가지 원리에 의하여 규정된다.
(h1) 상대성 원리 : 서로 등속도 운동하는 모든 관측자에게 물리법칙은 동일하다.
(h2) 광속 일정의 원리 : 서로 등속도 운동하는 모든 관측자에게 빛의 속력은 일정하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는 빛의 전파에 의해 동시성이 정의된다. 동시성을 정의하는 한 가지 예로서, 두 점 A와 B의 중간지점 M을 자를 써서 정한 다음, 관찰자가 그 곳에 서서 양쪽에서 오는 빛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장치 (예를 들면 90도의 경사각을 가진 두 거울)를 가지고 관찰하는 것이다. 만약 그 관찰자가 A와 B에서 온 번갯불의 빛을 동시에 지각한다면 그 두 사건은 동시에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빛의 속력의 유한성으로 인해 빛의 전파에 의해 정의되는 동시성은 절대성을 가지지 못한다.
시간의 정의는 동시성에 근거하여 조작적으로 주어진다. 예를들어, 똑같은 구조를 가진 시계들을 선로상의 (직선 좌표계) 여러 점 A, B, C … 에 놓고 동시성의 정의에 따라 그들의 시계바늘을 같은 위치에 놓도록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건의 시간이란 그 사건이 일어난 위치에 (또는 그 위치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시계의 바늘이 보여주는 눈금을 의미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관측 가능한 모든 사건들 하나하나의 시각이 주어진다. 즉 각 사건의 위치- 시각이 좌표값을 부여받게 된다.
이제 이러한 시간의 정의를 따라 나타나는 시간 간격을 운동 상태가 서로 다른 두 관측자에 대해서 알아보자. 지구에 대해 정지해 있는 관측자 A에 대해 일정한 속도 v로 달리는 기차 안에 관측자 B가 정지해 있다. 기차 안에서 일어난 두 사건 E1 , E2 사이의 시간 간격을 관측자 B가 t'로 측정하고 관측자 A는 t로 측정한다고 하자. 이 경우 광속 일정의 원리(h2)에 의해 다음 관계가 성립한다.
t'= t
여기서 C는 광속이다. (1)식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두 사건 E1와 E2사이의 시간 간격의 측정에 대해 A의 관측 시간은 B의 관측 시간보다 더 크다. 이와 같이 특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두 사건 E1과 E2간의 시간 간격은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다르게 측정되므로 , 시간은 관측자의 측정과 관련된 경험적인 것이라 할 수 있고 , 경험적으로 유도될 수 있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제부터 공간 간격에 대해서 알아보자. 앞에서와 같이 지구에 대해 정지해 있는 관측자 A와, A에 대해서 일정한 속도 v로 달리는 기차안에 정지해 있는 관측자 B를 생각하자. 기차가 달리는 방향은 x 방향이다. 기차 안에 x방향으로 놓인 어떤 막대의 길이를 관측자 B가 '로 측정하고 관측자 A는 로 관측한다고 하자. 이 경우 광속 일정의 원리와 상대성 원리에 의해 다음 관계가 성립한다.
'=
(2)식에서 알 수 있는 것 처럼, 관측자가 자신에 대해서 운동하는 물체의 길이를 보면 그 길이는 그 물체의 고유 길이보다 줄어든다. 이와 같이 특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공간 간격이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다르게 측정되므로, 공간적 규정은 관측자의 측정과 관련된 경험적인 것이라 할 수 있고, 공간은 경험적으로 유도될 수 있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특수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공간 표상은 경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각각 다른 시공간 표상을 가짐을 알 수 있다.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에 대해서 좀더 살펴 보자. 두 좌표계 o (t, x, y, z) 와 o' (t', x', y', z') 를 생각하자. 이때 o' 는 o 에 대해 일정한 속도 v로 +z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하자.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에 대해서는 두 좌표계 o와 o' 사이에 로렌쯔 변환이 성립한다.
매우 인접한 어떤 두 사건 사이의 좌표 간격들을 o 에서는 dt, dx, dy, dz로 측정하고 o'에서는 dt', dx', dy', dz'로 측정한다고 하자. 이때 다음과 같은 로렌쯔 변환식이 성립한다.
dx'=dx
dy'=dy
여기서 그 두 인접한 사건 사이의 간격 ds에 대해서
ds2 = -c2dt2 + dx2 + dy2 + dz2 = -c2dt'2 + dx'2 + dy'2 + dz'2 이 성립한다. 그러므로 두 인접한 사건 사이의 간격을 나타내는 일반식 ds2=gαβdxαdxβ 의 계량 텐서는 서로 등속도 운동하는 모든 관측자에게 똑같이 gtt=-1, gxx=1, gyy=1, gzz=1, 나머지 gαβ= o 이 된다.
이러한 계량 텐서의 값을 가지는 시공간은 민코우스키 시공간이다. 그러므로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은 민코우스키 시공간이 된다.
2.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은 다음 두 가지 원리에 의해 규정된다.
(g1) 일반 상대성 원리 : 관측자의 운동 상태와 관계없이 모든 관측자에게 물리 법칙은 동일하다.
(g2) 등가 원리 : 밀폐된 실험실 내에 있는 관측자는 중력장에 의한 효과와 그 실험실의 가속도에 의한 효과를 구별할 수 없다.
중력 효과에 의한 시간의 지연을 알아보자. 두 시계 U1과 U2는 강체 막대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그들이 형성하는 계는 U1 , U2를 연결하는 직선상에서 이 직선과 강체 막대가 평행하게 가속 운동을 한다. 운동 방향은 U1 에서 U2로 향하는 방향이다. U1은 각 단위 주기마다 U2로 신호를 보낸다. 이 경우 가속 운동의 효과로 인해 U1에서 단위 주기마다 보낸 각 신호가 U1에서 U2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U2와 함께 움직이는 관찰자는 U1의 지연이라는 의미에서 도플러 효과를 경험할 것이다.
U1의 지연은 등가원리에 의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중력장 내에서 정지해 있는 두 시계는 그에 대응하는 국소적 관성계에 대해 가속 운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통해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더 높은 절대적 중력 포텐셜 값을 가진 위치에 놓여져 있는 시계는 지연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력장은 시간을 지연시킨다.
자유 낙하하는 승강기안에서는 등가원리에 의해 지구의 중력효과가 가속도 효과에 의해서 상쇄되어 사라져버린다. 그러므로 그 안의 어떤 물체의 운동도 관성의 법칙을 따르게 되고 자유 낙하하는 승강기는 관성좌표계가 된다. 이러한 중력의 변환시킴의 가능성은 즉 이 좌표계의 관성은 공간과 시간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중력장을 오직 미소한 지역 내에서만 변환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이 등가원리에 의해 중력은 좌표계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힘으로서, 좌표계를 적당히 변화시킴으로써 기술할 수 있는 기하학적인 힘이다. 그러므로 중력장은 각 좌표계에 대응하여 규정된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어떤 선택된 좌표계에서 매우 인접한 두 사건간의 거리 ds를
ds2=gμνdxμdxν(4차원 시공간의 경우 μ,ν=0,1,2,3) (3)
로 나타냄으로써 리만 기하학을 사용하여 중력장을 서술한다. gμν는 선택된 좌표계에서의 중력장을 나타낸다. 중력장은 물질분포에 의해 결정된다. 중력장과 물질분포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방정식은 아인슈타인 방정식이다.
(4)
(Rμν: Ricci tensor, : Ricci scalar, gμν: metric tensor, k: 상수, Tμν: stress energy tenser)
선택된 좌표계에서 (3)식에 대해서 (4)식을 풀면 그 좌표계에서의 gμν를 구할 수 있다. 이렇게 구해진 gμν에 의해서 그 선택된 좌표계에서 시공간에 관한 규정들을 얻을 수 있다.
중력장은 좌표계가 변환할 때 함께 변환되므로 중력장을 나타내는 gμν는 좌표계의 변환과 함께 변환한다. 좌표계의 변환때 gμν가 변환한다는 것은 시공간에 대한 규정이 좌표계마다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일반 상대성 원리(g1)에 의해서 좌표계마다 시공간에 대한 규정이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일반 상대성이론에서는 물질 분포에 따라 중력장이 달라지고, 중력장은 좌표계에 따라 그 표현 gμν가 달라진다. gμν는 시공간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시공간의 규정도 좌표계에 따라 달라진다. 좌표계는 관측자간의 속도, 관측자의 위치, 그리고 시간에 관련되는 것이므로, 시공간 규정은 관측자의 운동, 관측자의 위치,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일반 상대성이론에서는 특수 상대성이론에서보다 더욱 더, 시공간은 관측자의 측정과 관련된 경험적인 양이며, 시공간은 경험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 개념임이 드러난다. 결국 일반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공간 표상은 경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관측자의 운동과 위치 그리고 시간에 따라 각각 다른 시공간 표상을 가짐을 알 수 있다.
Ⅲ. 칸트 입장에서 본 상대론적 시공간
공간과 시간에 대한 칸트의 관점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시공간을 고찰하기 위해 먼저 칸트의 현상과 물자체 그리고 칸트의 공간과 시간을 살펴보겠다.
1. 칸트에 있어서 현상과 물자체 그리고 공간과 시간
1) 칸트의 현상과 물자체
칸트는 대상에 관해서 우리의 인식 주관에 주어지는 현상적인 영역과 나머지의 영역 즉 우리의 인식주관에 주어지지 않는 물자체의 영역을 구분하였다. 칸트는 물자체를 우리 감성적 직관의 객체가 아닌 사물, 즉 소극적 의미의 가상체(可想體)로 사용한다(B307 참조). 즉 물자체의 개념을 감성적 인식의 객관적 실재성을 제한하기 위한 한계개념으로 사용할 뿐이다 (B310 참조). 이에 따라 대상에 관해서 현상적인 것만을 인식할 수 있고, 물자체로서의 대상은 인식할 수 없다고 하였다. 칸트에 의하면 현상은 단지 표상으로 우리 주관안에서만 실재하고 우리 주관 밖에서 자체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즉 현상은 경험 중에서만 표상으로 실재한다. (B518∼521 참조).
칸트는 「감성계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감성계의 대상을 아무리 깊게 탐구하더라도 우리는 오직 현상만의 사실을 다루고 있다.」(B63). 감성계의 대상 즉 현상을 아무리 깊게 탐구하더라도, 그 탐구의 결과로 우리에게 인식되는 것은 현상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우리의 전체적인 지식은 경험에 의지하고 있으며, 그 경험은 바로 사물들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그대로를 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체적인 지식이 경험 즉 현상에 대한 인식으로 부터 나오기 때문에 현상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물자체는 현상 안에는 비록 간접적으로라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칸트에 의하면 현상을 아무리 깊게 탐구하더라도 물자체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 수 없다. 즉 "물자체라는 개념은 자연과학에서나 전체적인 이론철학에 있어서 사람이 전혀 알 수 없는 것을 표시하는 기능만을 가진다."
원자와 같이 우리가 전혀 볼 수 없는 것도 현상에서 추론되므로, 그것은 현상이고 물자체는 아니다. 그 이유는 "현상계는 연결되어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지각에 있어서도 사람이 직접 보는 것과 추론하는 것과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령, "의자를 보고 있을 때 그 후면은 보지 못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전면과 같은 확실성을 가지고 그 후면을 받아들인다." 이와 같이 칸트에 의하면 현상에서 추론된 것은 여전히 현상이다.
칸트는「가령 우리는 무지개는 여우비가 내릴 적의 순 현상이지만, 여우비는 물자체 그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물자체 그것의 개념을 오직 물리적으로만 이해하는 한에서 이런 말은 정당하다. 즉 비가 그 일반적 경험에 있어서 그것이 감관에 대해 아무리 다종(多種)한 사정이더라도, 우리의 직관 중에서는 이러이러하다고 규정되고, 그 외의 다른 것으로 규정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는 한에서 정당하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적인 것 일반을 취해서, 그것과 모든 인간 감관과의 일치를 고려하는 일이 없이, 경험적인 것이 대상자체 그것 (빗방울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현상으로서 경험적인 객관이기 때문이다.)을 과연 표시하느냐 하는 것을 묻는다면, 그것은 표상과 대상과의 관계에 관한 물음이고, 이런 물음은 선험적인 것이다. 이 경우 빗방울은 그저 현상일 뿐만 아니라, 빗방울의 둥근형태와 빗방울이 떨어지게 되는 공간까지도 자체 그것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성적 직관의 한갓 변양(變樣)이거나 토대인 것이며, 선험적 객관은 여전히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B63)
물자체를 물리적으로만 이해하는 경우 즉 물자체를 물리적인 이해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 '여우비가 물자체'라는 말은 정당하다. 다시 말해서 비가 우리 감관에 주는 다양한 인상들에도 불구하고, 경험 중에서는 비가 일관되게 어떤 한 가지로 규정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 '비는 물자체'라는 말은 정당하다. 그러나 경험적인 것은 인간의 감관으로 부터 독립적인 대상 자체를 나타내지 않는다. 즉 물자체를 감성적 직관의 객체가 아닌 사물로 이해할 때 경험적인 것은 물자체가 아니다. 경험적인 것은 그저 현상일 뿐이며, 선험적 객관 즉 물자체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경우 빗방울은 현상일 뿐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칸트에 의하면 물자체를 물리적인 이해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 경험적인 것은 물자체라는 말이 정당하다. 그러나 물자체를 감성적 직관에 주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경우에는, 경험적인 것은 물자체가 아니고 한갓 표상으로서의 현상일 뿐이다. 이 경우 현상을 아무리 깊게 탐구하더라도 인식은 현상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며 우리는 물자체를 전혀 알 수 없다.
2) 칸트의 공간과 시간
현상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칸트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형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칸트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심성의 주관적 성질일 뿐이라서 이런 성질 없이는 (심성과 독립해서)공간이니 시간이니 하는 객어가 사물에 부여될 수 없다](B37∼38).「공간은 외적 현상의 근저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선천적 표상이다.」(B39). 「시간은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다.」(B46). 즉 공간과 시간은 인간 심성의 주관적 성질을 표상한 것으로서, 선천적인 표상 즉 경험으로 부터 독립적인 표상이며, 인간의 주관을 떠나서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관에 주어지지 않는 물자체에 관해서는 공간과 시간은 관념성을 가진다. 그러나 공간과 시간은 현상의 형식으로서 실재성을 가진다. 즉 공간은 외적 현상의 형식으로서, 시간은 모든 현상의 형식으로서, 현상과 관계를 가지고, 현상의 내용물들을 일정한 관계에 의해 정돈시킴으로써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주관적 조건들이다. 공간이라는 형식은 형태, 크기, 상호 관계(위치, 방향)(B37 참조)를 줌으로써, 외적 현상을 가능하게 하고 경험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공간은 모든 외적 현상을 포괄하며, 외적 현상에 관해서 객관적 타당성 즉 경험적 실재성을 가진다. 시간이라는 형식은 계기, 공존, 지속의 관계 (B67, 219 참조)를 줌으로써, 내적 외적인 모든 현상을 가능하게 하고 경험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간은 모든 현상을 포괄하며, 모든 현상에 관해서 객관적 타당성, 즉 경험적 실재성을 가진다. 즉 공간과 시간은 현상에 관해서 실재성을 가진다.
칸트는 공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두점 사이에 하나의 직선만이 있다.」(B39). 즉 칸트가 표상한 공간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성립하는 공간이다. 또 시간에 대해「시간의 계속을 무한히 진행하는 선이라고 표상한다.이 선에 있어서 다양한 것은 일차원만을 갖는 계열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런 선의 성질로 부터 시간의 모든 성질을 추리한다. 그러나 선의 부분들은 동시적으로 존재하되 시간의 부분들은 항상 계기적으로 있다는 한 성질만 제외된다.」(B50). 즉 칸트의 시간은 선의 부분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선의 성질과 같다고 함으로써, 칸트의 시간은 선의 부분들의 동시적 존재를 제외하고 유클리드 일차원 공간의 성질을 가짐을 의미하고 있다.
공간에 대해서 칸트는 [공간은 순수직관 이다. 왜냐하면 단지 하나의 공간만을 표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공간이란 말은 하나의 동일한 공간의 부분들을 의미한다](B39). [공간은 주어진 무한한 크기라고 표상된다](B39). [공간에서의 다양한 것과 따라서 보통 공간들 일반이라는 일반개념은 전체적인 하나를 구획지움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간에 관하여 (경험적이 아닌) 선천적인 직관이 모든 공간의 관념들의 근저에 먼저 있다](B39). 「공간이라는 근원적 표상은 개념이 아니라 선천적인 직관이다.」(B40).
시간에 대해서 칸트는 「각종 시간들은 동일한 시간의 부분들일 뿐이다.」(B47). [모든 한정된 시간량은 그 기초에 있는 유일한 시간을 제한하여서만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시간의 무한성의 의미이다. 따라서 시간이라는 근원적 표상은 무제한의 것으로 주어져 있어야 한다.](B48) [부분들 자체와 대상의 각 시간량은 제한을 통해서만 규정된 것으로 표상될 수 있기 때문에, 전체 표상은 개념에 의해 주어지지 않고 개념의 근저에 직관이 직접 있어야 한다](B48).
여기에서 칸트의 공간표상과 시간표상은, '근원적 표상'과 '근원적 표상을 제한하여 생긴 부분 표상'으로 구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근원적 표상은 유일하고 무한한 표상이다. 이 표상은 각종 부분 표상들의 근저에 있는 것으로서 경험으로 부터 독립적으로 인식주관에서 부터 유래된 순수 직관적 표상이다. 이 근원적 표상 자체는 현상이 가능하기 위해 현상의 근저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표상이지만(B39, 46 참조), 현상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때는 아무런 실재성을 가지지 않는 인간 심성의 주관적 성질일 뿐이다. 즉 현상과 독립적인 근원적 공간 표상 자체만으로는 구체적으로 형태, 연장, 상호관계 등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또한 현상과 독립적인 근원적 시간표상 자체만으로는 구체적으로 계기, 공존, 지속 등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현상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근원적 공간·시간 표상은 현상에 형식으로 관계함으로써, 제한되어 부분표상이 된다. 이 부분 표상은 현상의 형식으로서 현상에 관해 실재성을 가지게 된다. "외적 현상의 다양은 공간의 한정에 의해 관계가 부여되고 연속성이 부여된다. 마찬가지로 내적 현상의 다양은 시간의 한정에 의해 관계와 연속성이 부여된다." 즉 근원적 공간표상이 제한되어 생긴 부분 공간표상들은 형태, 연장, 상호관계 등의 의미를 가지며, 근원적 시간 표상이 제한되어 생긴 부분 시간표상들은 계기, 공존, 지속 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상이 칸트가 주장하는 현상과 물자체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중요한 내용이다. 이상의 칸트의 주장을 다시 다음과 같이 요약 진술하자.
(a1) 대상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현상의 영역과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물자체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a2) 공간과 시간은 인간 심성의 주관적 성질로서, 경험으로 부터 독립적인 선천적 표상이다.
(a3) 공간과 시간은 인간의 주관에 주어지지 않는 물자체에 대해서는 관념적인 것이다.
(a4) 공간과 시간은 현상을 인식하는 형식으로 작용하여 현상에 대해서는 경험적 실재성을 가진다.
(a5) 현상에 형식으로 작용함으로써 실재성을 가지는 공간과 시간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성립시킨다.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이 공간과 시간은, 경험과는 관계없이 순수하게 수학적으로 규정된다.
(a6) 모든 경험으로 부터 독립적인 인식 주관의 성질로서의 근원적 공간 표상과 근원적 시간 표상은, 현상과의 관련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에는 아무런 실재성이 없다.
(a7) 유클리드 기하학을 성립시키는 칸트의 근원적 공간표상과 근원적 시간 표상이 현상과 관계할 때, 현상들에 의해서 제한되어 생기는 부분공간 표상들과 부분시간 표상들은 현상의 형식으로서 실재성을 가진다. 즉 근원적 공간·시간 표상이 현상들에 의해 제한되면 (a4)가 된다.
이제부터 (a1)∼(a7)와 관련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시공간을 고찰해 보겠다.
2. 칸트 입장에서 본 상대론적 시공간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서로 등속도 운동하는 모든 관측자에게 물리법칙은 동일하다.'는 원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어떤 대상 X에 대해서 측정되는 물리량들 e1, e₂의 값은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달라지지만, 측정되는 물리량들 사이를 연결하는 법칙은 서로 동속도 운동하는 어느 관측자들에게든 같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모든 관측자에게 물리법칙은 동일하다'는 원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어떤 대상 X에 대해서 측정되는 물리량들 e1, e₂의 값은 관측자의 시공간적 위치와 운동상태에 따라 달라지지만, 측정되는 물리량들 사이를 연결하는 법칙은 모든 관측자에게 같다는 것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경우 서로 등속도 운동하는 모든 관측자에게 동일한 형태를 가지는 e1, e₂사이의 연결법칙을 발견할 때, 비로서 대상 X의 어떤 면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객관적이란 서로 등속도 운동하는 관측자들 사이에 있어서의 객관성을 의미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경우 모든 관측자에게 동일한 형태를 가지는 e1, e₂사이의 연결법칙을 발견할 때, 비로서 대상 X의 어떤 면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객관적'이란 모든 관측자들 사이에 있어서의 객관성을 의미한다.
칸트의 현상과 물자체에 관한 앞의 논의에서 고찰된 것처럼, 칸트에 있어서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감성계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은 모두 현상에 속한다. 그러므로 상대성 이론에서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어떤 영역도, 감각인상들과 관련하여 이해하고자 시도되는 것이므로 모두 칸트가 의미하는 현상에 속한다. 칸트처럼 대상을 a1과 같이 구분할 경우 상대성 이론에서 탐구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모두 칸트가 의미하는 현상에 속한다.
아인슈타인은 공간의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한 가지는 물질적 대상들의 세계의 위치를 나타내는 성질로서의 공간이고, 또 한 가지는 모든 물질적 대상들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공간이다. 전자의 경우는 물질적 대상이 없는 공간은 생각할 수 없다. 후자의 경우는 물질적 대상은 공간안에 존재하는 것으로서만이 생각될 수 있고, 공간은 어떤 면에서 물질세계를 초월한 실재(reality)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공간의 두 개념들 모두 우리의 감각 경험을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고안된 수단으로서, 인간의 상상이 임의로 만들어낸 창작물이다."
또 아인슈타인은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인상들에 순서를 매기고 한 사건이 다른 사건보다 앞에 발생했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의 마음 속에 시간을 주관적으로 느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공간은 인식주관의 상상물이고 시간은 인식주관의 성질이라는 것이다. 즉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공간과 시간은 인간의 인식주관에 근거하여 생긴 주관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공간과 시간은 칸트의 공간과 시간처럼 a2의 성질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상대론적 시공간의 근저에 있는 공간표상과 시간표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있어서, 빛이라는 관측도구에 의해 두 사건간의 시간 및 공간이 결정되고 '빛의 속력 일정'의 원리에 따라 시공간의 성질이 결정된다. 즉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은 경험에 의해 알 수 있는 빛의 성질로부터 규정된다. 그러므로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은 경험적으로 규정된 것이다.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은 물질분포에 의해 규정된다. 여기서 물질은 감각경험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므로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도 경험적으로 규정된 것이다.
이렇게 규정된 상대론적 시공간은 상대성 이론에서 탐구의 대상으로 하는 것, 즉 칸트가 의미하는 현상에 속하는 것을 서술하는데 사용된다. 이것은 바로 상대론적 시공간이 현상을 인식하는 형식으로서, 현상에 대해서 객관적 타당성 즉 경험적 실재성을 가짐을 의미한다. 즉 상대론적 시공간에 대해 a4가 성립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대로 상대론적 시공간은 경험적으로 규정된 것이고, 칸트가 의미하는 현상에 속하는 것을 서술하는데 사용될 뿐이므로, 우리에게 전혀 인식될 수 없는 것 즉 칸트가 의미하는 물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상대론적 시공간에 대해 a3가 성립한다.
칸트처럼 대상에 관해서 a1을 받아들이는 경우 상대론적 시공간에 대해서도 a3와 a4가 성립한다.
그런데 '현상에 형식으로 작용함으로써 실재성을 가지는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은 민코우스키 시공간을 성립시킨다. 그리고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은 앞에서 논한바와 같이 감각경험적 도구인 빛에 의해서 경험적으로 규정된다.'(이것을 a5′라 하자) 바로 이점에 있어서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은 칸트의 시공간과 다르다. 즉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칸트의 시공간은 경험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수학적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은 경험에 의해서 규정된다. 그러므로 칸트의 시공간의 경우 성립하는 a5는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의 경우는 a5 대신 a5′가 성립한다.
또한 '현상에 형식으로 작용함으로써 실재성을 가지는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은 리만 기하학에 의해 서술된다. 그리고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물질분포에 의해 경험적으로 규정된다.'(이것을 a5″라 하자). 이점에 있어서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은 칸트의 시공간과 다르다.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것으로서의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은 경험적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경험과 독립적으로 규정되는 칸트의 시공간과 다르다.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의 경우는 a5대신 a5″가 성립하는 것이다.
앞에서 상대론적 시공간의 근저에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아인슈타인의 공간개념과 시간개념을 생각하였다. 이 공간과 시간은 앞서 말한대로 a2가 성립하는 것이므로 칸트가 의미하는 인식주관의 성질로서의 근원적 표상으로 볼 수 있다. 즉 이 공간과 시간은 상대론적 시공간의 배후에 있는 근원적 공간표상과 근원적 시간표상으로 볼 수 있다. 이 근원적 공간 표상과 근원적 시간표상은 우리 인식 주관의 성질을 나타낼 뿐, 그 자체만으로는 현상에 대해 아무런 실재성이 없다. 따라서 아안슈타인의 이 근원적 공간표상과 근원적 시간표상도 a6가 성립한다.
현상의 형식으로 적용됨으로써 실재성을 가지는 상대론적 시공간은 경험적으로 유도된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적으로 유도된 것이 아닌 인식주관의 성질을 나타낼 뿐인 아인슈타인의 근원적 공간표상과 근원적 시간표상은 상대성 이론에서는 현상의 형식으로 적용될 수 없다. 즉 아인슈타인의 근원적 공간표상과 근원적 시간표상이 단순히 제한됨으로써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상대론적 시공간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상대론적 시공간의 경우 a7은 성립하지 않는다.
요약하면 공간과 시간에 대한 a1∼a7의 7가지 칸트의 관점에서 볼때,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시공간은 칸트의 시공간과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칸트 처럼 a1을 받아들이는 경우 상대론적 시공간은 a5 와 a7에서 칸트 시공간과 차이가 있다.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에 대해서는 a5 대신 a5′가 성립하고,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에 대해서는 a5 대신 a5″가 성립한다. 즉 칸트와 아인슈타인에 있어서 현상을 서술하는데 사용되는 시공간의 성격은 a5 , a5′, a5″ 로서 다르다. 그 근저에 있는 근원적 시공간 표상은 칸트나 아인슈타인에 있어서 똑같이 인식 주관의 성질을 나타낸다. 그리고 상대론적 시공간도 칸트의 시공간처럼 칸트가 의미하는 현상에 대해 실재성을 가지고 물자체에 대해서는 관념성을 가진다.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과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 모두에 대해서 a7 은 성립하지 않는다
Ⅳ. 맺 음 말
칸트 입장에서 본 상대론적 시공간에 관한 앞의 논의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취급하는 대상은 칸트가 의미하는 현상과 같다.
아인슈타인에 있어서도 칸트의 시공간의 경우와 같은 인식 주관의 성질로서의 선천적 시공간 표상이 상대론적 시공간의 근저에 있다. 아인슈타인의 이 선천적 시공간 표상은 현상에 대해 실재성이 없다.
상대론적 시공간도 칸트의 시공간 처럼 칸트가 의미하는 현상에 대해서 실재성을 가지고 물자체에 대해서는 관념성을 가진다.
칸트 시공간과 상대론적 시공간은 현상을 서술하는데 있어서 즉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다음의 (ⅰ) (ⅱ) (ⅲ)과 같다.
(ⅰ)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칸트의 시공간은 경험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수학적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해 규정된다.
(ⅱ)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특수 상대론적 시공간은 빛에 의해 경험적으로 규정되며, 민코우스키 시공간을 성립시킨다.
(ⅲ)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일반 상대론적 시공간은 물질 분포에 의해 경험적으로 규정되며, 리만 기하학에 의해 서술된다.
이상의 고찰과 함께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칸트에 의하면 공간과 시간은 현상을 인식하는데 필요한 인식 주관의 선천적 형식이다. 즉 공간과 시간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경험에 앞서 인간의 인식 주관에 먼저 있는 형식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공간과 시간을 인간 주관의 인식 형식으로 봄으로써 칸트는 공간과 시간의 선천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상대론적 시공간은 물질 분포와 관측자의 운동, 위치, 시간에 따라 다르게 규정된다. 그러므로 상대론적 시공간은 경험적 측면이 강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간과 시간이 인간 주관의 인식 형식이라는 칸트의 입장과 공간과 시간이 물질 분포와 관측자의 운동, 위치, 시간에 따라 규정된다는 상대론적 입장을 종합하면, 공간과 시간에 대해 선천적인 측면과 경험적인 측면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공간과 시간에 대해서 두가지 측면 중 어느 한쪽만이 옳다는 증거는 없으므로, 어느 한쪽을 취하고 어느 한쪽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취하여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 주관의 인식 형식으로 본 공간과 시간은 인간만이 공통으로 소유하는 인식 주관의 성질 혹은 인간 주관의 인식 방식임을 의미한다. 공간과 시간이 주관의 인식 형식이라는 것은 인간이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현상을 인식한다는 것만을 의미할 뿐, 현상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사용되는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는 공간과 시간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질을 가지는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즉 공간과 시간이 인간 주관의 인식 형식이라는 것 (이것을 K1이라 하자)과 현상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사용되는 공간과 시간은 어떠 어떠한 성질을 가진다는 것은 서로 분리되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현상을 인식하는데 사용되는 공간과 시간의 성질 (이 성질을 K2라 하자)이 어떠하든 K1은 독립적으로 주장될 수 있다. K2는 규정되어야 할 문제이다. 칸트는 K2를 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해서 순수하게 수학적으로 규정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해서 규정된 시공간을 K21이라 하자). 상대성 이론에서는 K2를 리만 기하학에 의해서 경험적으로 규정한다 (리만 기하학에 의해서 경험적으로 규정된 상대론적 시공간을 K22라 하자). K21과 K22는 현상계에 있어서 양립할 수 없고 어느 한 쪽은 버려져야 한다. 인간의 경험 세계에 대해서는 K22 즉 상대론적 시공간이 K21 즉 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해 규정된 시공간 보다 더 잘 적용됨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경험의 세계에 대해서는 상대론적 시공간 즉 K22가 칸트가 현상계에 적용한 시공간 즉 K21 보다 우월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공간이 인식 주관의 형식이라는 것은, 경험 세계에 적용되는 시공간이 어떠한 성질을 가져야 하는가 라는 것과는 독립적인 내용이므로 우리는 시공간이 인식 주관의 형식이라는 칸트의 관점은 여전히 취할 수 있다. 따라서 시공간이 인식 주관의 형식이라는 칸트의 관점과 경험적인 상대론적 시공간은 양립(兩立)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서 시공간이 인식 주관의 형식이라는 칸트의 관점과 상대론적 시공간의 조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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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istic Space-Time as seen by Kant
- Kwack, Youn Hang -
Up to the present Kantian conception of space-time has been considered faulty from Einstein's relativistic viewpoint of space-time. However, in this paper I studied Einstein's relativistic space-time from Kantian viewpoint. I found that relativistic space-time has something in common with Kantian space-time. And I cleared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Then, I argued the compatibility of the two.
From Kantian viewpoint of things in themselves, appearances and space-time, the commonness and difference between Kantian space-time and Einstein's relativistic space-time are as follows.
The first commonness is that objects of our knowledge in both Einstein's relativistic theory and Kant's doctrine of space-time are appearances meant by Kant. The second is that an a priori representation of space-time as the constitution of the cognitive subject underlies relativistic space-time like in Kantian space-time. The third is that like Kantian space-time relativistic space-time has reality in respect of appearances meant by Kant and ideality in respect of things in themselves.
The difference between relativistic space-time and Kantian space-time lies in describing appearances, namely, in the aspect of empirical reality of space-time. Kantian space-time that has empirical reality is dertermined mathematically by the Euclidean geometry independent of experience. Howerever, special relativistic space-time that has empirical reality is dertermined empirically by light and constructs Minkowski space-time. General relativistic space-time that has empirical reality is dertermined empirically by the distribution of matter and is described by the Riemannian geometry.
When we devide the properties of space-time into the a priori aspect and the empirical aspect, Kantian space-time is compatible with Einstein's relativistic space-time as follows. When from Kantian viewpoint of space-time we take the a priori aspect that space-time is the a priori form of the human cognitive subject and from Einstein's relativistic viewpoint of space-time we take the empirical aspect that space-time is dertermined empirically, Kantian viewpoint and Einstein's viewpoint of space-time are compat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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