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협력자들
-마경덕
만지면 축축하고 어두운 것들은 배후가 있다
참나무 숲은 어둑한 기운을 풀어 저녁이란 옷을 입는다
해거름이 몰고 온 퍼덕거리는 어린 새 한 마리는 저녁의 마지막 단추가 되고
숲은 닫혔다
그때 내 감성의 치맛자락이 어둠의 틈에 끼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온전히 슬픔 한 벌을 갖지 못한 탓
솔기가 터진 늦가을 겨드랑이 사이로 저녁연기가 피어오를 때
어렴풋한 저편에서 울컥,
무언지 모를 뭉클한 것들이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덩어리들이
검게 그을린 발목이 보이고
노인의 손에 주저앉은 저녁의 황혼이 말간 콧물에 번져 굴뚝을 통과하고 있었다
슬픔의 주성분은 숲의 뼈가 타는 냄새라고 적었다
목이 잘린 해바라기가 줄지어 서 있는
외딴집이 보이는 그 언덕에서
가만히 무릎을 웅크리며 누군가에게 꼭 슬픔을 들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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