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칼리아
- 김이듬
발끝으로 공중을 딛고
꿈을 꾸고 난 후에도
거세게 고백한 뒤에도
남녀가 춤을 추었을 것이다
바로크식으로 부모의 포즈로
목에 매달린 여자
허리를 감은 남자
화음의 연쇄
별안간 파트너가 바뀌었을 것이다
사랑의 분배에 시름하느라
다투는 템포 찢어지는 음성에 귀를 막느라
나의 서곡은 우울하고 비참했다
두 여자를 미워하느라 삶을 싸우며 계속했다
두 개의 신격을 버리고 싶었다
차고 딱딱한 인격을 지닌 여자와 격정적인 본성의 여자
깨어 있는 시간을 예지의 순간을 찾는 여자와
남자와 잠들기를 탐닉하는 어여쁜 여자 사이에서
예전처럼 쓸 수가 없다
변주되는 악장처럼 나에게는 두 개의 세계가 끝나간다
판이한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는 성경을 새어머니는 불경을 줄줄 읽었으므로
진리가 나를 사랑하여
원수가 스승이 되어갈 때
내가 피해 가야 할 길을 몸소 보여준 두 여인의 일생을
나는 더 이상 참혹극의 무용수가 아니다
벽에 귀를 대고 가슴을 졸이던 소녀가 아니다
발끝의 세계를 벅차게 날아
웅대한 혼돈을 직시하라
엄마가 많거나 없는 소녀여
이제 네가 춤출 차례다
가슴 내밀고 세계와 키스하자
지긋지긋한 반복 악구
무서운 서곡은 끝난다
시작 메모;
나를 만든 건 3할은 어머니, 3할은 새어머니, 3할은 아버지시다. 나머지 1할은 그들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것 .흐느끼며 사랑한다. -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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