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에만 눈물이 난다
- 허연
어차피 나는
더 나은 일을 알지 못하므로
강물이 내게 어떤 일을 하도록 내버려둔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강물이 내게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다
한 번도 서러워하지 않은 채
강물이 하는 일을 지켜본다
나는 오직 강물에만 집중하고
강물에만 눈물이 난다
저 천년의 행진이 서럽지 않은 건
한 번도 되돌아간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를 지나온 강물에게
내력을 묻지 않는다
모두 이미 섞인 것들이고
이미 지나쳐버린 것들이고
강변에선
묻지 않는 것만이 미덕이니까
강물 앞에서 나는 기억일 뿐이다
부정확한 시계공이 가끔 있었고
뜻하지 않은 재화가 있기도 하지만
강물의 행진은
이유를 묻지 않은 채 계속된다
강물이 나에게 어떤 일을 한다는 것
한 번도 서럽지 않다는 것
내가 기억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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