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촛불
-복효근
나도 누구엔가
삼겹살 함께 싸 먹으라고
얇게 저며 내놓은 마늘쪽 가운데에
초록색 심지 같은 것이 뾰족하니 박혀 있다
그러니까 이것이 마늘 어미의 태 안에 앉아있는
마늘아기와 같은 것인데
내 비유법이 좀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알을 잔뜩 품은 굴비를 구워 먹을 때처럼
속이 짜안하니 코끝을 울린다
무심코 된장에 찍어
삼겹살 함께 씹어 삼키는데
들이킨 소주 때문인지
그 초록색 심지에 불이 붙었는지
그 무슨 비애 같은 것이 뉘우침 같은 것이
촛불처럼
내 안에 어둠을 살짝 걷어내면서
헛헛한 속을 밝히는 것 같아서
싹이 막 돋기 시작한 마늘처럼
조금은 매콤하게
조금은 아릿하면서
그리고 조금은 환하게 불 밝히는
사랑이고 싶은 것이다
토란 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이는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르면 안되나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내가 꽃피는 일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꽃은 피어 무엇하리
당신이 기쁨에 넘쳐
온 누리 햇살에 둘리어있을 때
나는 꽃피어 또 무엇하리
또한 내 그대를 사랑한다 함은
당신의 가슴 한복판에
찬란히 꽃피는 일이 아니라
눈두덩 찍어내며 그대 주저앉는
가을 산자락 후미진 곳에서
그저 수줍은 듯 잠시
그대 눈망울에 머무는 일
그렇게 나는
그대 슬픔의 산 높이에서 핀다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
* 용담꽃의 꽃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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