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추운 날씨에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작가가 된 지 그럭저럭 20년이 됐습니다. 제 경험을 보태서 말하자면, 상은 운이 좋아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상복이 좀 있어요. 하지만 못 쓰거나 아예 안 쓴다면 운이 좋아봤자 소용없겠지요. 그러니까 꾸준히 쓰고, 그래서 잘 쓰게 된 사람 중에, 운이 좋은 사람이 상을 받는 게 아닌가 합니다. 제가 잘 쓴다는 뜻으로 들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제 기분에 취해도 괜찮지, 뭐 이렇게 생각합니다(만).
저는 이 상의 후보에 오른 지 여섯 번 만에 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상을 받든 안 받든 상관없이, 제가 쓰고자 하는 글을 계속 써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상을 받으니, 그래, 계속 써봐, 괜찮아, 하는 말이,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습니다. 늘 제가 저 스스로에게 해줘야 했던 말이 방송에서 흘러나온다고 할까요. 그래서 솔직히 수상 소식을 듣고 좀 흥분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미국 아이오와 대학의 국제창작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제가 거기에 참석하고 지난 주에 돌아왔는데요. 세계의 30개 나라에서 온 작가들이 3개월간 함께 생활하면서 글을 쓰는 프로그램입니다. 제가 수상 소식을 들은 것은 거기 참가하고 있을 때였어요. 당연히 상을 받았다고 자랑을 했지요. 한국의 문학상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 작가들은 상금에 더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영어가 잘 안 되고 계산도 늘 틀리는 사람이라, 잘못해서 '파이브 밀리언'이라고 말했어요. 약 50억원이죠. 다들 기절할 듯이 놀라길래, 저는 한국을 뭘로 아나 싶어서, "왜 그래, 저스트 밀리언이라니까" 라고 말해서 더욱 사태를 크게 만들었지요. 나중에 사태를 파악하고 정정을 했는데도 짓궂은 작가들은 계속 저를 500만불의 작가로 불렀고 그게 제 별명이 되었어요. 저는 몹시 당황했지만, 맞아, 나 500만불 작가야 하고 응수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혼자가 되어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자책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하는 일이 있습니다. 자책하고 그리고 풀이 죽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길을 헤매고 물건을 고장내고 물건 둔 자리를 잊어버리고 혼자서 엉뚱한 착각을 하고, 기본적인 사실을 까먹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모를까, 왜 이렇게 서툴까. 나이도 많고 겪어본 일도 많으니 이만하면 잘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아니면 그냥 부족하고 서툰 사람으로 살면 되지 않나.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도 잘 안됩니다. 저는 소설가이고, 또 휴머니스트라서 늘 인생을 해석해보려는 호기심과 삶을 개선해보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한테는 끊임없이 스토리가 생겨납니다.
한번은 술을 먹고 차를 놓고 와서 다음 날 택시를 타고 그 차를 찾으로 갔는데, 차키를 안 갖고 간적도 있고 10년을 지내는 작업실에 지금도 층을 잘못 내려 집이 달라졌다고 당황하는 일이 종종 있어요. 아이오와에서도 휴대폰을 잃어버려 같이 있던 작가들이 ‘내 폰 찾기’ 기능으로 탐정처럼 건물을 뒤지고 강을 건너면서 추적을 했는데 결국 핸드폰은 제 주머니에 있었습니다. 이야깃거리가 딸려본 적이 없으니 이것도 소설가로서의 재능이라고 우겨보지만 속으로는 늘 자책을 하고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이 시상식만 해도 그래요. 어떤 분들은 상을 여러 번 받았으니 익숙하지 않냐고 하지만 저는 오늘 수상 소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정말 막막했습니다. 네이버에 ‘수상소감’을 검색해 봤더니 연예인들의 수상소감이 많이 뜨던데 아직까지도 황정민씨가 “스텝들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 하나 놓았을 뿐인데”가 단연 수상 소감 레전드로 나와있는 걸 보니, 별 도움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상을 받고 마치 처음 받는 것처럼 기뻤던 것은, 수상에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상 소감에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겠구나.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그제서야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나서 익숙해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번 수상작이 실린 단편집의 작가의 말에도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대체로 헤맸다. 익숙한 시간은 온 적이 없다. 늘 배워왔으나 숙련이 되지 않는 성격을 가진 탓이고 가까운 사람들이 자주 낯설어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 익숙해지지 않는 서툰 마음이 나로 하여금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을 소설로 쓰게 한 건 아닐까?'
저는 새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수십 번 해 본 일인데도 어쩜 이렇게 모르겠고 어렵고 서툰가, 매번 자신감을 잃습니다. 후배들에게 문자를 보내 새로 시작한 소설의 첫 문장을 읽어달라고 하고, 제목만 알려달라고도 합니다. 영 선배답지 못하지요.
하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그 점이 나에게 질문을 만들고, 모색과 탐문의 동기를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봐도 모르겠고,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변해버리고 그 의외성과 놀람과 두려움 덕분에 내가 계속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안심하고 계속 이렇게 살기로 했습니다. 익숙해지지 않는 서툰 마음으로, 아무것도 모르겠는 마음으로 질문하면서. 솔직히 제 소설은 모자란 저에 대해 끊임없이 다양한 변명을 고안해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겠습니다. 계속해서 서툰 마음으로 질문해보려고 합니다. 난 왜 이 모양인가, 라고 말이죠. 작가가 쓰면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는 읽는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아무 질문이나 던지지는 않겠습니다.
상을 제정하고 운영하는 주최 측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아이오와에서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시상식 날짜를 미뤄주어 상금을 축내지 않게 도와준 신준봉 기자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예심과 본심, 모든 심사위원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한테 상을 주는 게 쉬운 결정이었기를 바라지만, 그럴 리가 없으니까요.
이 자리에 저의 엄마가 와 계신데요. 이번 수상작은 엄마의 주변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제가 딸로서는 엄마 말을 잘 안 듣지만, 이렇게 소설가로서의 귀는 열려 있어요. 엄마 고맙습니다. 가족들에게도 고맙습니다. 가족들은 어쩌면 내가 소설 쓰는 과정의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는데, 피해자들의 지지는 범죄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니까요. 특히 오늘 같은 날이 있어 3년간은 집 밖으로 떠돌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삶의 통각에 대한 도덕적이고 미적인 통제력을 일깨워주는 동료들에게 감사합니다. 제가 이번 아이오와 프로그램 중 국회 도서관에서 발표하는 행사가 있는데, 가장 영향받은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도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몇몇 작가들이 있지만 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작가는 동료 한국작가들이라고요. 같은 시대와 사회에 살면서 공감이 가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게 나와 같거나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포착하고 해석하고 표현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일이 나의 관점과 문학적 지평을 넓혀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때때로 90년대 작가로, 여성 작가로, 한국 작가로 불리지만, 그냥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문학을 애정하고 지지합니다.
이제 저는 지난 3개월간 가지 못했던 싸늘한 작업실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혼자가 되어 그동안 내 머릿속에 쌓인 서툴고 바보 같은 이야기들을, 나에게 고자질하듯 써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만은 떠들석하게 놀아야겠죠. 나의 서툼을 다해서. 마치 전혀 몰랐던 일처럼, 깜짝 놀라면서 내 생애 처음이라는 듯이. 익숙해지지 않는 서툰 마음이 소설가로서의 나의 동기이자 엔진이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황순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감은.
“이곳 시간으로 새벽에 수상소식 전해 듣고 너무 좋아했더니 전화한 사람이 핀잔 주더라. 새 작품을 발표하는 일은 언제나 두렵다. 문학상은 일종의 추인(追認), 격려 아닌가. 더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순원 선생님의 단편은 지금 읽어도 군더더기가 없다. 그 분의 이름으로 된 상이라 더 뜻깊다.”
-소설책 끝 ‘작가의 말’에 가끔 등장하는 K는 남편이라고 들었다. 어떤 축하를 받았나.
“나는 멘탈이 약하다. 자신감도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남편의 격려가 큰 힘이 된다. 남편은 대학 때 소설을 꽤 잘 썼다. 그가 구상이나 초고 단계 때 ‘말 된다’고 평해주는 게 가장 큰 칭찬이다. ‘상 받을 줄 알았다’고 하더라.”
-다양한 소설 소재를 어디서 얻나.
“쓸 게 없어서 걱정인 적은 별로 없다. 옛날에 한 얘기 왜 또 하냐는 얘기 들을까봐 두렵다. 살면서 어떤 일이 벌어져 기쁨이나 상처로 남으면 그게 머릿속에서 하나의 질문,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결국 인물에는 나 자신의 문제의식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나이·성별이 다를지라도 소설 속 인물은 결국 나다.”
- 당선작에도 자전적 요소가 있나.
“엄마에게서 소재를 얻었다. 소설 주인공 마리가 연상의 애인으로부터 받은 편지는 실제로 우리 아버지가 엄마에게 보낸 옛날 편지를 갖다 썼다. 집안에 소설가가 하나 있으면 3대가 털린다고 하지 않나.”
수상작 ‘금성녀’는 일흔셋의 할머니 마리가 갑자기 자살한 친언니 유리의 고향땅 장례식에 참가하다 오빠와 언니의 손자들인 완규·현과 조우(遭遇)하는 줄거리다. 표면은 그렇지만 작품이 수록된 소설집 제목이 시사하듯 요즘 은씨의 관심사인, 존중받아야 마땅한 개인의 독자성에 관한 얘기다.
은씨는 “지난해 어머니의 팔순 친구가 자살했다. 삶은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낯선 사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단순한 생각이 소설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또 “스침과 흘러감, 그 시간의 불연속선에서 스러져가는 삶의 플롯, 작은 위로가 되는 오래전 사소한 인연 같은 것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특유의 냉소와 독설은 덜한 것 같다.
“내 소설의 냉소와 독설은 객관적이기 위한 것이지 비관주의 때문은 아니다. 나는 내 소설이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소설을 쓸 수 없다.”
-상금은 어떻게….
“한국에서 글만 써서 먹고 살기 어렵다. 생활의 규모를 줄여 사는 편이다. 생활인으로 보내야 할 시간을 작가로 보낼 수 있게 됐으니 상금으로 시간을 산 셈이다. 그래도 어머니와 아이들, 3대가 떠들썩한 여행 한 번 하고 싶다·”
신준봉 기자
◆은희경=1959년 전북 고창 출생.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장편 『소년을 위로해줘』 『마이너리그』등. 이상문학상·동인문학상 수상.
황순원문학상 심사평
덧없는 삶과 운명적 고독 … 더 깊어진 작가의 시선

시간을 이기는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생겨난 모든 것이 소멸한다. 소설은 인간의 시간에 유난히 민감한 장르다. 어느 소설작품이든 시간을 따라 변화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소설은 시간과 싸운다. 변전을 겪다 죽음으로 끝나는 덧없는 삶에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려 하는 것이다. 위대한 소설의 근저에는 예외 없이 삶과 의미를 결합시키려는 열정이 있다. 은희경의 ‘금성녀’는 바로 그러한 열정을 품고 있는, 근래 보기 드문 작품이다.
70대 여성 마리는 언니 유리의 자살을 계기로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주인공이 대개 그렇듯이 그녀는 그녀의 인생이 희망적이었던 순간들로 돌아간다. 그녀의 회상은 운명처럼 반복되는 자신의 고독을 강조한다. 그녀의 별명 ‘금성’ 또는 ‘샛별’은 현실과 어긋난 사람을 뜻하기도 했다던가.
마리의 이야기가 그녀 세대와 계급의 역사에 깊이 이어져 있지 않다는 점은 불만이다. 그러나 상실과 고독의 운명을 수락한 그 노년의 심경은 아름답다. 덧없이 사라진 어느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모이고 흩어지는 희미한 순간이 그 심경의 거울에 영롱하게 비친다. 마리와 같은 사람이 실재한다면 그녀는 언젠가 여느 별과 마찬가지로 밤하늘에서 사라질 테니 그건 정녕 쓸쓸한 일이다. 올해 황순원문학상이 그 품격에 어울리는 수상작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심사위원=김인숙·우찬제·정홍수·최윤·황종연(대표집필 황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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