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는 두 가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찌꺼기이자 재고품을 의미하면서 또한 우리를 둘러싼 거대함,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말해주는 보이지 않는 거대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듯 하나의 낱말, 단 한 마디 말이 언어 전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그것을 움켜쥐려고 해봤자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면 그것은 우리를 다른 말들로 인도하며, 그 말들은 또다시 우리에게 다른 용어를 가리킨다. -「나머지」중에서(16p)
나는 밤이 내릴 때 짐수레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내가 바라보는 짐수레는 얼어붙은 고적한 어느 공원에서 우울하게 떠돌고 있는 짐수레가 아니라 점차 불이 꺼져가는 슈퍼마켓에서 별빛을 받고 있는 짐수레다. 나는 일요일 저녁, 별장을 떠나 도시로 돌아오는 군중들 무리에 끼지 않는다. 외곽순환 도로를 한 바퀴 돌면서, 가죽과 오디오와 음식물을 광고하는, 도시의 밤을 밝히는 초대형 광고판들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지나치며 살펴본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현대성의 이 유적들, 이 잔해들을 음미하는 것이다. -「특권의 폐지」중에서(94p)
나머지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처치할지 아는 한 그다지 불안한 조재가 아니다. 해변이나 풀밭에 던져진 담배꽁초 몇 개는 우리를 불쾌하게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주워 버리면 또 다른 어떤 흡연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꽁초를 던질 때까지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떠들지 않을 것이다. 한데 안타깝게도 우리를 온통 뒤덮어버릴 것 같은 엄청난 규모의 절대적 나머지도 존재한다. 그런 나머지는 도무지 없앨 수도 없을 것 같고, 세상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폭력과 잔혹행위, 그 폭을 측정하기 힘든 악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어쩌면 단 한 번의 야만 행위가 모든 해결 노력을 고갈시켜버릴지도 모른다. -「쓰레기, 폐기물, 그리고 배설물」중에서(114p)
뭔가를 안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의 부피를 늘리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새로운 지식은 우리에게 현재 알고 있는 것 저 너머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요, 또한 우리는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대상으로부터 우리를 다른 데로 전환시킬 줄 모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보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세부 사실이 나를 그 전체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지평선은 더 이상 지평선이 아니다. 어떤 것에 대한 지나친 열정은 다른 것들에 대한 미적지근함을 함축한다. 나는 늙어가고 있으며, 이 새로운 나이를 음미하고, 인정하고, 면밀히 검토하여 실행에 옮길 지혜를 갖고 있다. 그러자 나의 젊은 시절은 점점 더 나로부터 멀어진다. - 「나머지들을 활용하는 기술 특히 그들이 바라는 대로 살도록 내버려두는 기술」 중에서(140p)
생이 끝나는 날까지,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책을 불태워버리고 늦게 자도 부모님이 뭐라 하지 않아 늦잠을 잘 수 있었던 초등학교 방학을 다시 살고 싶다. 어디를 갈 때는 걸어서나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입는 것에 구애받지 않으며, 내가 책임지고 있는 세상에 휴가를 주고, 그런 영원한 여름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또한 그것이 짧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숨 막힐 듯 무기력해질 때는 좌초한 배(자기 방)를 타고 있다고 상상하고, 구원의 바람이 불어오지나 않나 살필 것이다. - 「인생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중에서(208p)
삶에 대해 그토록 바라는 것이 많았고, 씁쓸한 순간이건 달콤한 순간이건 매 순간을 사랑했던 그는 이 마지막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인간으로서나 사상가로서 자신이 걸었던 여정을 통해 얻은, 시련의 흔적이 역력한 대답들을 주고 있다. 이것은 결국 유언이 되리란 걸 알지 못한 채 구상된 것이기에 그래서 더 소중한 텍스트다. - 「이 책을 펴내며」 중에서(255p)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저자 피에르 상소의 마지막 전언. 한 위대한 철학자가 인생의 끝에서 노래하는 삶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
2005년 사망한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상소의 유고집 『아주 사소한, 그러나 소중한』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피에르 상소가 집필 중 사망한 뒤 앙리 토르그를 위시한 제자들의 손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피에르 상소만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며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로 전 세계에 '느림'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철학자 피에르 상소. 평생을 자유로운 시선으로 자연과 사람, 그리고 행복을 조망했던 그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천착한다. 아주 사소하지만 소중하고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작은 것들에 대해 노 철학자가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서 깨닫게 된 삶의 진리에 관한 진정한 사유가 펼쳐진다.
느림의 철학자 피에르 상소가 전하는 행복에 대한 깊은 성찰.
피에르 상소. 누군가는 그를 행복을 추구하는 현자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느림의 철학자라 칭하며, 어떤 평론가는 어느 곳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글을 쓰는 그를 일컬어 '집시철학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정작 피에르 상소 자신은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모럴리스트, 즉 언제나 자신을 더 완전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관찰하고 성찰하고 다듬어가는 사람이라 소개한 바 있다. 이런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그의 작품과 인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피에르 상소의 유고작 『아주 사소한, 그러나 소중한』은 이 노 철학자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존재를 일깨우는 대상화된 남은 것들을 통해서 완성을 향해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주 '사소하지만' 그러나 '소중한'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하여.....
피에르 상소는 삶으로 자신을 철학을 실천하며 살아왔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쓴 저자였지만 그의 삶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작은 소도시에서 살며 행복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탐구해왔던 그가 죽기 직전까지 마지막으로 매달렸던 것은 바로 '남은 것'이었다. 흔히 그동안 버려야 할 것,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온 '잉여' 혹은 '나머지'라는 개념에 주목한 그는 자신의 유고집인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비참한 궁핍이 아니라 과잉이, 잉여가 있다는 사실을 왜 즐기지 못할까?"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나머지'를 근본적으로 경시해왔다. 그래서 '남기는 것'은 곧 '낭비'이자 '사라져야 할 것'이었으며, 조금이라도 나머지가 덜 생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피에르 상소는 이런 우리의 생각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는 이 책에서 '나머지'라는 개념을 재정립하면서 잡동사니나 폐기물처럼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부터 사회적 소외나 인생의 의미 같은 대 명제까지, 세상의 모든 '남은 것'들에 따듯한 관심을 기울인다. 작지만 귀하고, 잊고 살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 아주 사소하지만 그러므로 더욱 소중할 수 있는 우리 삶의 나머지들에 대한 한 노 철학자의 애정 어린 시선은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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