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서정주, 꽃밭의 독백(獨白)

나뭇잎숨결 2012. 8. 19. 08:49

 

 

 

 

 

 

 

꽃밭의 독백(獨白) -사소(娑蘇) 단장(斷章)

 

 

- 서정주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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