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의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라이프니츠를 조롱하는 철학적 소설 [캉디드]를 썼다. [캉디드]에는 팡그로스 박사가 등장하는데, 그는 말할 것도 없이 라이프니츠의 분신이다. 팡그로스는 세상의 온갖 불합리와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최선의 세계라고 믿으며 목적론적 세계관을 포기하지 않는다. 볼테르는 팡그로스를 조롱하면서 매우 시사적인 말로 [캉디드]를 마무리한다. “내가 내 밭을 일구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이 완전한 신에 의해서 최선의 세계로 창조되었다고 믿으면서 신의 섭리만을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조롱하고 인간인 내가 무엇인가를 직접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프랑스의 또 한 명의 계몽주의 철학자 디드로는 라이프니츠를 어떤 철학자보다도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고 말하고, 라이프니츠를 플라톤에 비견할만한 철학자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디드로는 “우리가 우리의 재능을 라이프니츠의 재능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저서들을 집어던지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퉁이에서 조용히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조롱을 받고, 또 한편으로는 천재라고 칭송되는 라이프니츠, 그는 도대체 어떤 철학자이기에 이처럼 조롱과 찬사를 동시에 받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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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원리는 라이프니츠의 진리에 관한 이론으로 유명한 ‘술어 포함 개념 원리’ 이다. 이 원리는 참인 명제는 모두 궁극적으로 주어의 개념에 술어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다’는 명제가 참인 한, 이 문장의 주어인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개념을 분석하면 ‘철학자’라는 개념이 들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개념에는 ‘철학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 ~한 철학자’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다’는 명제는 결국 ‘~ ~한 철학자는 철학자이다’가 되고, 이는 ‘A는 A이다’라는 형식의 문장에 다름 아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다’와 같이 참인 명제는 궁극적으로 ‘동일률(A는 A이다)’의 명제로 환원된다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술어포함 개념 원리
세 번째 원리는 충분 이유율인데, 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나 발생하는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존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발생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술어포함 개념 원리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다’가 참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자이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없고, 그가 철학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에는 ‘철학자’라는 개념이 반드시 포함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술어포함 개념의 원리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다’가 참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 개념에는 ‘철학자’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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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과 찬사라는 양 극단의 평가를 받았던 철학자 라이프니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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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단자가 전체 우주를 비추지만 단자들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이프니츠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유명한 괘종시계의 비유를 든다. 매 순간 정확하게 같은 시각을 가리키는 두 개의 괘종시계가 있다고 하자. 그 괘종시계가 매 순간 정확하게 같은 시각을 가리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가능한 첫 번째 대답은 두 개의 시계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시계가 다른 시계에 영향을 줌으로써 항상 같은 시각을 알리도록 작동한다고 답하는 것이다. 두 번째 가능한 대답은 시계공이 매 순간 계속해서 같은 시각을 알리도록 뒤에서 조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대답은 두 시계 모두 애당초 빈틈없이 정교하게 제작되어 독립적으로 작동하지만 매 순간 정확한 시각을 알려준다고 답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마지막 대답이 가장 설득력 있고, 이 우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주장이다. 즉 신은 애당초 두 개의 실체가 이미 스스로 타고난 고유의 법칙을 지킴으로써 서로 완전한 조화에 도달할 수 있도록 창조했는데, 이런 사실이 두 개의 실체가 마치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식되거나 아니면 신이 언제나 손수 개입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신은 매 순간 각 단자의 지각이 매우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각 단자와 단자의 본성을 창조했다. 요컨대 모든 단자는 완전한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창조될 때 그것의 완전한 본성을 부여 받고 그것에 따라 운동하고, 지각하고 발전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완전한 신의 예지에 의해 예정된 것이라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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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의 단자론 첫 필사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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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어포함 개념 원리
모든 참인 명제는 그것이 보편명제든, 특칭명제든 술어의 개념은 주어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의 토대가 되는 원리 중 하나이다.
- 단자
하나를 의미하는 그리스 어의 모나스(monas)에서 나온 ‘모나드’의 번역어로 실재를 구성하는 단순실체(simple substance), 개체적 실체(individual substance)이다. 단자는 외부 세계로부터 독립된 지각을 지니고 있고, 지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인 단자의 욕구는 창조 때부터 내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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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르네상스의 출발지인 플로렌스에서 활약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건축가, 도시설계, 기계설계, 무대의상, 수학, 철학, 해부학 등 다루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만능 천재였다. 약 200년 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라이프니츠 역시 철학, 수학, 물리학, 지리학, 생물학, 정보기술, 법률가, 어학, 중국학 등등 수많은 분야에서 ‘처음으로 …을 했다’라는 평을 듣는 다빈치와 동일한 유형의 인간이었다.
물론 다빈치와 라이프니츠와 같은 만능 천재들은 평생 한 우물을 파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를 파면 샘이 나올지를 직감과 영감으로 알아차렸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샘솟는’ 아이디어를 주체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호기심을 좇아 방랑하는 지적 유목민(nomade)이었지만 동시에 후원자(patron)를 찾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야만 했다. |
라이프니츠는 20살이 되던 해인 1666년에 [조합의 기술에 대하여(On the Art of Combinati ons)] 문헌에서 모든 개념들을 제한된 수의 단순한 개념들의 조합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피력하였다. 예를 들어, 모든 명제를 복합명제(분자명제)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단위명제(원자명제)들로 분류하고, 전자를 후자의 조합으로 보는 현대 명제논리학의 기본적 발상은 사실 라이프니츠에서 출발하였다. 라이프니츠의 이 발상은 19세기 말 독일의 논리철학자 프레게(G. Frege)가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에서 형식적으로 완성하였다.
특히 우리의 일상언어가 갖는 애매함을 제거하고 모든 문화권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언어의 발명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관심은 20세기 초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 -Philosophicus)]에서 피력한, 세계를 그림처럼 기술할 수 있는 ‘이상언어(ideal language)’의 발상과 다를 바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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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예수회 선교사로 북경에 파견된 조아심 부베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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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와 괘
효(爻)는 주역의 64괘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효를 셋 쌓으면 소성괘(小成卦)인 8괘를 얻을 수 있다. 이 중의 4개가 태극기에 사용된다.(☰, ☷, ☵, ☲) 소성괘를 위 아래로 중첩시키면 대성괘(大成卦) 64괘를 얻을 수 있다.
- 추상(abstraction)
철학에서 추상이라 함은 일련의 개별자의 여러 특징들 중에서 공통적인 속성만을 추출하는 (나머지는 제거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국인에 대하여 언급할 때, 男, 女, 老, 小, 職業 등은 모두 버리고 오로지 한국인이라는 공통적인 속성만을 취하여 새로운 추상적 존재를 만든다. 따라서 추상화는 일상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추상이 집합추상(class abstraction)이며 집합은 이런 의미에서 추상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K={x|x는 한국인이다.} 이때 집합 K는 구체적인 한국인들로부터 한국인이라는 점 이외의 모든 속성을 버리고 얻은 추상적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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