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江(1977)
- 오정희
창틀에 동그마니 올라앉은 그는, 등을 한껏 꼬부리고 무릎을 세운 자세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혹은 늙은 곱추처럼 보인다. 어쩌면 表面張力으로 동그랗게 오므라든 한 방울의 수은을 연상시켜 그 자체의 중량으로 도르르 미끄러져 내리지나 않을까 하는 아찔한 의구심을 갖게도 한다. 그러나 창에는 철창이 둘려 있기 때문에 나는 마치 렌즈의 핀을 맞출 때처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냉정한 눈으로 그를 살필 수 있다.
그의 살갗 밑을 흐르는 혈액 속에는 표면장력이 있어 그는 늘 그렇게 자신의 표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염원으로 잔뜩 웅크린 채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미안합니다, 아주 죄송스럽군요, 하는 듯한 웃음을 언제든 필요할 때 즉시 내보낼 수 있도록 입 안쪽 어디쯤에 고여 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허공을 정확히 정육각형으로 조각조각 가르고 있는 창살 너머 잔잔히 깔린 비늘구름에 노을빛이 묻어 불그레하게 빛나고 있다. 나는 때때로, 특히 달 밝은 밤 창 바깥쪽에서 잠자리나 초파리의 수많은 겹눈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잠에서 깨어나 거의 유아적인 공포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는 여전히 웅크린 채 창틀에 앉아 휘익휘익 휘파람을 불고 있다. 바람 때문에 공기의 진동은 내가 있는 곳에 채 닿기도 전에 소리의 형태를 스러뜨리고 사라져 버려 나는 그가 어떠한 곡조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등이 서늘해지자 나는 벽에 걸린 그의 잠바를 떼어 어깨에 걸치고 다시 앉아 수틀을 집어 든다. 이내 손이 빨갛게 곱아 들어왔다. 창을 닫아 달랄까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고개를 흔들고 손을 엉덩이 밑에 깔아 잠시 녹인 뒤 다시 바늘을 잡았다. 소나무 가지 위에 나래를 펴고 외다리로 선 학의 자세가 아무래도 불안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실을 풀고 다시 놓아야 할 것 같았다.
그가 문득 이마에 잔뜩 주름살을 지으며 눈을 치떠 처마 밑을 올려다보았다.
"왜 그래요?"
아마 옥상의 물받이 홈통이 새는 것을 발견이라도 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물었다. 그는 대꾸 없이 얼굴을 바짝 치켜들고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위를 살피는 시늉을 했다.
"거기 뭐가 있어요?" 나는 짐짓 예사롭게 다시 물었다.
"응, 아니 아무 것도." 그러다 잠시 후에 다시 덧붙였다.
"거미줄이 있어."
"그래요?"
나는 제발 오늘 밤만은 그가 있어 주길 바라는 심사로 그러나 예사롭게 대꾸하고 수틀을 다시 집어 들었다.
"거미가 등에 새끼를 잔뜩 싣고 있어."
그는 예상대로 나의 심상한 반응에 조금 초조해진 듯했다.
"거미의 습성인 걸요."
"끔찍하군."
"거미의 생리일 뿐이라니까요."
나는 마침내 반쯤 수를 놓다 만 학의 날개 부분에 바늘을 꽂고 일어나 그의 곁으로 간다. 학은 오른쪽 날개 반쪽이 희게 비어 마치 날개가 부러진 듯이 보인다.
"이 꼭대기에 집을 짓다니."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창틀의 바로 위는 옥상이다. 그곳에 설치된 비상용 물탱크에서는 뚜렷한 틈도 보이지 않으면서 늘 조금씩 물이 흘러내려 벽에 더러운 얼룩을 만들고 용케도 그 물기를 피한 곳에 거미줄이 쳐져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엄지손톱 크기의 회흑색 거미가 등에 새끼를 잔뜩 진 채 거미줄 사이를 힘겹게 마치 곡예를 하듯 기고 있었다. 거미새끼는 어미 등을 파먹으며 산다지, 그래서 껍질만 남으면 훅 불어 버린대. 그러니깐 거미는 눈에 띄는 대로 잡아 죽이렴. 거미는 집요하게 쫓고 있는 이쪽의 시선을 느꼈음인지 심상찮은 입김을 느꼈음인지 때로 죽은 듯 다리를 사리고 멈추기도 한다. 그가 휘익 날카롭게 외마디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왠지 그 휘파람 소리가 무척 야비하게 느껴졌다. 거미줄이 물결치듯 흔들리자 속임수를 간파 당한 거미는 더 이상 죽은 체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위태로운 걸음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서슬에 어미 등에서 떨어진 새끼들은 더러 거미줄에 매달리기도 하고 6층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미는 떨어진 새끼를 위해 걸음을 멈추는 배려를 하지 않는다.
나는 아이처럼 조그맣고 주름살투성이인 그의 얼굴을 본다. 그는 어제도 밤을 꼬박 새운 뒤 폭삭 늙은 얼굴로 새벽녘에야 돌아왔다. 아침까지 마쳐 놓아야 할 일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얼굴은 지쳐 보였으나 나른한 표정 깊숙이에서 무엇인가 어둡게 긴장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밤 외출의 전조이다. 나는 다시 그의 밤의 出奔을 막을 자신이 없어진다.
요즘 들어 그는 밤 외출이 부쩍 잦아졌다. 밤일을 하고 새벽에 들어 온 날이면 영락없이 그는 해가 지기를 기다려 공연히 손마디를 뚝뚝 꺾거나 머리칼을 쓸어 보이며 머리가 많이 자랐어, 보기 흉하지? 혹은 목욕이나 갈까 봐, 온통 근질근질해서 살수가 있어야지 하고 주춤거리며 빠져나갈 구실을 찾고,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쓸쓸한 표정을 짓는 일뿐, 함께 가요, 혹은 데리고 가줘요 라고 말하지 못한다. 왜 그러는 거예요, 어디로, 누구에게로 가는 거지요? 라고 투정을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그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단호한 구석이 엿보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심약한 그는 밤의 외출을 그만둘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그가 갇혀 있는(그렇다, 그는 갇혀 있다고 밖에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동안의 그의 불안을 , 초조함을 메울 자신이 없다. 그 시간을 메울 수 있는 게임을 알지 못한다. 수틀을 메우듯, 북통을 메우듯 그와 나 사이에 놓여진 시간을 메울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잔의 차를 마시듯 그렇게 훌훌히 마셔 버릴 수 있는 것이 시간은 더욱 아니다. 차라리 시를 쓰는 편이 몇 배나 나아.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그는 거미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창 너머 나직이 내려다 뵈는 강 언저리를 더듬고 있다.
그의 둥글게 구부린 등 너머 모래바람이 부옇게 이는 강펄과 우리가 결혼 초에 가끔 저녁 산책을 나가곤 하던, 하얗게 뻗은 강둑이 강줄기를 따라 U자로 휘어 도는 구비에 발전소의 건물이 솟아 있다. 암울하게 솟아 있는 발전소의 굴뚝은 넘어가는 햇빛에 비늘이 돋듯 조금씩 반짝거리며 불그레 달아오르고 있는 듯이 보인다. 굴뚝은 창 아래 바짝 다가와 있어 창과 굴뚝 꼭대기를 잇는 직선 거리는 불과 몇 미터 정도로 보이지만 나는 햇빛 아래 으레 일으키게 마련인 심한 난시 현상으로 더욱이 발전소 건물은 비스듬히 측면을 보이고 있어 아직까지도 건물의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잿빛의 우중충한 3층 건물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화력발전소였으며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폐쇄되었고 서해 바다로부터 강을 타고 거슬러 올라온 배들과의 수운을 이용한 교역이 이루어지던 시대에는 해산물의 하치장으로 쓰였고 그 후에는 아주 오랫동안 제빙업자에 의해 얼음 창고로 쓰였다는 것, 제빙업이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자 그것은 다시 비어 있게 되었고 때때로 갱 영화의 촬영 현장으로 쓰이곤 한다는 것을 알뿐이다.
雨期면 영락없이 물에 잠겨 키 높은 포플러의 꼭대기만 수초처럼 비죽이 솟아 너울대던 강 건너의 섬은 여름내 계속되던 다이너마이트의 폭파음으로 분출과 퇴적의 흔적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까부수어진 바위와 모래땅 위로 사역병을 가득 실은 군용 트럭이 뽀얗게 흙바람을 일으키며 쉴 새 없이 지나갔고 불도저가 땅을 뒤집어 벌판을 만들었다. 군사상의 필요에 의해 비행장을 닦는다는 것이다. 부락은 없어지고 강의 이쪽과 섬을 잇는 도선장은 폐쇄되었다.
우리가 처음 이곳, 아파트의 6층 꼭대기 방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로 창 아래의 풍경은 급격히 또는 눈에 보이지 않게 서서히 변모해가고 있다. 거의 반세기 가깝게 서 있는 발전소 건물도 곧 헐리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나는 내가 최초로 그 건물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 높다란 굴뚝과 지붕 위를 지나가는, 감전력 없는 고압선 외에는 이렇다할 특징도 없는 회색 콘크리트 건물에서 왜 그토록 생생한 적의를 느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처음 이곳에서 살림을 시작했을 때 별다른 취미와 오락이 없었던 그와 나는 그의 밤일이 없는 저녁이면 강둑으로 산책을 나가곤 했다.
그때 그는 他地에서 온 손님에게 자기 고장의 명소를 소개하는 학생처럼 겸손하게, 그러나 자랑스러움을 가지고 발전소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우리는 강둑에 천막을 치고 살았지. 우리뿐이 아니었어. 아침에 눈을 뜨면 강을 향해 오줌을 깔기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곤 했어. 늘 배가 고팠지. 그래서 배가 참을 수 없이 고파질 대까지 강에서 헤엄을 치곤 했어. 섬까지 헤엄쳐 가서 설익은 땅콩밭을 두더지처럼 뒤집는 것이 일과였지. 그리곤 지쳐 늘어져 모래펄에 널브러져 하염없이 강 건너의 발전소를 바라보는 것이었어. 정신이 까무러칠 정도로 배가 고파진 눈에 발전소는 굉장해 보였어.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렇게 훌륭한 집을 두고도 움막에서만 살 뿐 아무도 그곳에 들어가 살 엄두를 못 내었어. 전쟁 때 그 안에서 대량 학살이 있었거든. 사람들을 한 데 몰아넣고 그냥 개 패듯 때려 죽였다는 거야. 벽에는 그 때의 사람들의 핏자국과 살점이 남아 있다느니, 때로 우리들이 건져내는, 강물에 떠내려오는 갓난 핏덩이는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이라느니, 발전소가 돌아갈 무렵 감전되어 죽은 사람들이 밤마다 그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느니, 남의 눈을 피해 발전소 속에 들어가 아이를 낳은 처녀가 아이를 죽이고 끝내 미쳐 그 주위를 아이를 찾으며 어슬렁거린다는 말들이 종잡을 수 없이 떠돌고, 그것은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차츰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온갖 신화를 만들어 내었지. 게다가 발전소의 문은 늘 굳게 잠겨져 있었어. 상상 속에서 그것은 입구는 있되 출구는 없는, 수많은 방과 미로를 가진 유령의 성이었어. 창문을 막은 판자를 뜯고 극소에 숨어 들어갔고 그곳의 수많은 방과 미로에 대해, 상금도 윙윙 울고 있다는 고압선에 대해 흡사 박쥐굴의 탐험담처럼 떠들어댔지만 나는 망설이기만 할 뿐 들어가질 못 했어. 망설이는 동안 그것은 더욱 거대해지고 견고한 적의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어. 자라면서 건물에는 으레 입구와 출구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끝내 그곳에 들어가 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강둑을 떠났지…….
나는 그때 허청허청 귓전에서 울리는 그의 말소리를 들으며 점차 스러져 가는 노을 아래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면모로, 암울하고 음흉한 적의로 새삼 활기를 띠며 검게 솟아오르는 발전소의 굴뚝을 보았다.
"발전소가 곧 헐리게 된다지요?"
나는 그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발전소 건물에 눈을 주며 말했다.
"응, 그렇다더군."
"잘 됐어요, 진작 그랬어야지. 어차피 달리 이용도 못할 건물을 오십 년 가까이 버려두다니. 부수는 작업도 쉽지 않을 거예요, 워낙 단단하지 않아요. 전쟁 때는 대포에 맞아도 끄떡없었다면서요?"
"그랬다더군."
"아마 다이너마이트를 써야 할 거예요. 한동안 또 시끄럽겠군요."
나는 여름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강 건너에서 들려오던 둔중한 폭파음을 생각했다. 느닷없이, 때로는 지축을 울리며 먼 데부터 포성처럼 은은히 그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그것이 결코 이곳, 우리가 살고 있는 방의 벽에 거미줄만한 균열도 가져오지 못하리란 것을 알면서도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창문을 닫곤 했다.
어느 집에서인가 유리잔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것은 한 줌의 찬 공기를 묻혀 그와 나 사이에 놓인, 치밀하게 짜여진 피륙처럼 팽팽한 긴장을 가르며 신선하게 뛰어들었다. 그리고 비로소 그 갈라진 긴장의 틈바구니로 지상에서부터 浮上하는 온갖 소음들이 들려왔다.
그가 창틀에서 내려와 두리번거리며 윗목에 벗어 놓은 양말을 찾아 신고 잠바를 입었다.
"나가려구요?"
나는 눈은 그대로 강펄에 준 채, 그러나 등뒤에서 움직이는 그의 기척을 낱낱이 헤아리며 물었다.
"밤일이 남아 있어. 허지만 밤에는 돌아오게 될 거야. 기다리지 말고 저녁을 들어요."
매양 하는 말이면서도 거짓말에 서툰 그는 허둥대며 바지에 다리를 꿰고 있을 것이다.
"저녁 식사는 어쩌려구요?"
나는 여전히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가 무어라고 입속말로 웅얼대었다. 필시 걱정하지 말라는 뜻의 말이리라.
그가 나간 뒤 성급한 발소리가 층계 아래로 사라지기를 기다려 나는 부리나케 부엌으로 나가 찬장 그릇들 뒤에 숨겨 놓은, 새벽에 피우다만 반동강이의 담배를 꺼내 붙여 물었다. 그리곤 다시 방으로 들어와 아파트 비탈길을 내려가는 조그만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발전소 건물과 잇닿은 염색 공장의 납작한 지붕들이 눈에 들어오고 공장의 앞마당에는 물들인 색색의 천들이 휘장처럼 걸려 있다.
콜타르를 입힌, 거의 평면으로 보이는 지붕 위로 검정 고양이가 스멀스멀 걸어다니고 있다. 때때로 이른 아침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지붕 위로, 또는 오후 비듬처럼 떨어져 내리는 햇빛을 받으며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고양의 모습이 마치 환각인 양보이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문득 가슴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에 아하 하고 한숨을 쉬곤 했다.
우리들의 몸짓에서, 검은 자줏빛으로 시들어 가는 꽃병에 꽂힌 꽃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온 그 두터운 시간의 부피 속에서 우리들의 대화에 묻어나는 입김 속에서,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시간 안의 숨막힐 듯한 범속함을, 잊었던 풍경을 떠올리듯 새삼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가 저녁마다 또는 새벽마다 실밥처럼 묻혀 들어오는 일터의 냄새는 무서운 삼투력으로 우리의 11평 아파트의 공기를 동화시키고 있다.
나는 몇 해 전까지,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아이가 죽은 후 얼마 동안 저녁때면 저녁을 지어 놓고 그이 일터로 전화를 걸곤 했었다. 재봉틀 소리가 수화기 가득 들, 들, 들, 들, 끓어오르고 있었다. 김씨, 김씨, 한동안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그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전화기 저쪽에서 놀라듯 매양 낮은 탄성을 울렸다.
"오늘도 밤일이 있을 거야, 일이 밀려서 말이야…… 내 손으로 다 뽑아야 하니까."
그가 잠시 말을 끊고 숨을 들이쉬는 사이, 내쉬는 사이로 재봉틀 소리는 재빨리 끼어들었다. 들들들들, 달달달달. 전화선을 타고 오는 그 소리는 마치 이를 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혼자 있기 무섭거든 영화 구경이라도 가라구."
토시를 낀 손으로 재봉틀을 돌리고 쉬지 않고 페달을 밟으며 실밥투성이가 된 재봉공은 속삭이듯 말하였다.
"잘 때는 문단속을 잘 하라구. 허지만 도둑이 든대도 우리 살림에 뭐 가져갈 거나 있어? 되레 보태 주고 갈걸."
그리고 그는 소리를 죽여 킥킥 웃었다. 나 역시 소리를 죽여 소곤거렸다.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그럼 끊어요."
나는 한숨을 쉬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수면 부족으로 충혈된 눈으로 재봉틀을 돌리고 있을 그를, 그의 일터를 생각하고 문득 전율을 느꼈다. 그가 묻혀 오는 일터의 분위기, 끓임없이 되풀이되는 그 들들들들 재봉틀 돌아가는 리듬이 우리 생활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가끔 그는 웃으며 말한다.
"한참 페달을 밟으며 졸다간 자전거 여행을 하는 꿈을 꾼다구. 쉬지 않고 달려 어디까지 왔나 싶으면 그대로 재단실이야."
나는 웃지 않는다. 그가 좀더 농담을 할 줄 알았으면 하고 생각할 뿐이다.
"거기선 무슨 일을 하지요?"
"종일 치수를 재고 옷감을 마르고 솔기를 박고 단을 꿰매고 싱을 박지."
"매일? 늘 그런 일을?"
"그럼, 늘 같은 일이야. 매일 바지를 짓고 윗도리를 짓고 조끼를 짓지."
그는 자기의 일에 대해 匠人다운 자부심을 갖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지긋지긋해 한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집에 와서도 재봉틀 소리뿐이야. 버스를 타고도 그 소리를 들어. 귓바퀴에 재봉틀 페달을 걸고 다니는 것 같애. 나는 때때로 내가 미쳐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밤에는 당신의 숨소리조차 재봉틀 소시로 들리곤 해. 그때마다 나는 다람쥐처럼 쳇바퀴에 갇혀 평생 그것만을 돌리고 살아야 될 거라는 생각에 문득 견딜 수 없는 무서움을 느껴."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나는 늙은이처럼 음침하게 말하는 것으로 그의 말을 일축해 버리고 말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일터의 상황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가 나가고 난 다음의 빈방에서 더욱 확연히 들려오는 재봉틀 소리, 때묻은 옷가지, 시든 꽃들, 낡은 벽지에서 묻어나는 시간의 찌꺼기, 그리고 언제든 창을 열면 바짝 다가와 시선을 막는 발전소 건물에 대한 끊임없는 적의, 그러나 나는 아직 마치 어항 속에서 죽어 가는 붕어가 조금이라도 산소를 더 마시기 위해 마지막까지 수면에 주둥이를 내놓고 뻐끔거리듯 절실하게 생활의 흐름을 바꾸고자 소망하지는 않는다.
해는 이제 완전히 져서 강물은 더욱 어둡게 가라앉아 보이고 발전소 건물은 뚜렷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드디어 외출할 준비를 한다.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루주를 고쳐 진하게 바르고 머플러를 깊이 눌러 쓰고 코트 깃을 바짝 치켜세웠다. 창문을 단단히 잠그고 수틀을 반짇고리에 넣었다. 그리고 현관에 열쇠를 끼워 넣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 종이쪽지에 급히 갈겨썼다.
‘잠깐 나갔다 오겠어요, 열쇠는 수위실에 맡겼어요.’
나는 그 쪽지를 4절로 접어 문틈에 끼워 두고 층계를 고꾸라질 듯 급한 걸음으로 뛰어 내려갔다. 갈 곳을 정한 것도 아닌데 현관을 나서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급해진 것이었다.
강바람은 차고 매웠다. 나는 코트 깃을 바짝 올려 귓바퀴를 가르는 바람을 막았다.
발전소의 건물이 검은 수면의 이켠 언덕에 성채처럼 솟아있고 그것은 낮보다 더욱 거대하고 견고해 보였다. X자로 널판자를 가로질러 막은 창의 틈서리에서, 또한 군데군데 판자가 떨어진 창에서 불빛이 새어나와 앙상한 건물의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내부의 나선형으로 비틀려 올라간 가파른 층계를 뛰어오르는 남자들의 모습이 먼 눈에도 확실히 잡혀 오고 모여 선 사람들의 윤곽이 불빛에 드러났다. 영화 촬영이 있는 모양이었다. 밝은 조명등 아래에서 그들은 시체가 되어 목에 돌을 단 채 강물에 던져지고 죽음과 같은 정사를 나누기도 하며 배반자에 대한 린치를 가하기도 한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성냥을 그었다. 바람에 성냥불이 꺼졌다. 나는 다시 성냥을 긋고 손바닥을 오므려 바람을 막으며 바알갛게 손안에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 나는 그와 함께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둑 아래 비탈에 길게 누워 손으로 마른 풀을 비벼대었다. 그리곤 느닷없이 내게 물었다.
"당신, 불의 기원을 알아?"
"원시인들이 벼락에서부터 불씨를 얻어 보존해 왔다는 것을 배운 적이 있어요."
"아니, 원시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나뭇가지들을 한없이 비벼 불을 일으켰어. 막대기가 성냥이 되기까지에는 수 만년이 걸린 거야."
나는 그의 손에서 뜨거워진 마른풀을 받아 들며 이건 좋지 않아, 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그의 속에서는 무언가 변모가, 적어도 달라지고 싶어하는, 자기의 궤도에서, 들들들들 끓어오르는 재봉틀 소리에서 탈출하려는 욕망이 자라고 있었다. 어쨌든 불에 대한 갑작스러운 관심은 그가 몰래 시를 쓴다는 사실보다 더욱 고약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그의 주머니에서 성냥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 후 거의 매일 성냥을 한 갑씩 찾아내게 되었을 때까지도 나는 그 사실에 대해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성냥을 꺼내 누운 채 마른 잔디에 불을 붙였다. 불빛에 얼핏 드러나는 그의 얼굴은 진지하고 아주 열중되어 있었다.
"당신에게 성냥갑 수집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나는 익숙하게 성냥을 긋는 그의 손놀림에 눈을 주며 말했다. 그는 움칠 손을 움츠렸다.
"그저 얻었어, 음식점에서 주더군."
그는 낭패한 기색이었다.
"뭐, 그냥 예쁜 칼 따위를 마스코트로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잖아."
불이 붙여진 자리에서는 별반 불기를 보이지 않고 흰 연기만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피어오를 뿐인데도 삽시간에 손바닥넓이의 잔디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건조한 바람이 불었다. 그가 팔뚝을 걷어 맨살을 바람 속에 드러내었다. 그리곤 코를 벌름거렸다.
"우선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가를 알아야지. 솜털이 까스스 일도록 바싹 마른 바람이어야 최적이야. 불을 일부러 붙이지 않아도 이런 바람에서는 저절로 저희끼리 부딪쳐 불이 일어나지, 원시인들의 마찰 발화법은 이것을 이용한 거야.“
그는 몸 전체가 풍향계가 되어 바람을 쫓고 있었다. 나는 거침없이 불이 번져 가는 잔디를 발로 마구 뭉개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그가 성냥을 지니고 다닌다는 것에 대해 그 자신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때때로 그의 주머니에서, 수첩 갈피에서 발견되곤 하는 양복 주문서, 청구서 따위의 뒷면에 적힌 ‘아, 河童의 꿈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영탄조의 시구절쯤으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가 결코 시인의 꿈을 갖지 않으면서도 탄식조의 시를 쓰는 것으로, 그의 재봉틀 소리에 묶인 생활을 질타하고 모욕하고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스스로 믿고 위안 받는 것처럼 성냥을 지니고 다니는 것도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은 탈출의 욕망, 이탈의 시도에 대한 보상 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시를 쓰지 않는다. 나는 그때 성냥불을 그어대는 그의, 마치 배화교도와도 같은 진지한 표정에서 비로소 그의 속에서 발아하고 있는 방화의 욕망이 구체적이 대상에로 접근해 가고 있다는 것이 막연하나마 꽤 확실성을 가지고 닿아와 가슴이 섬뜩해졌던 것이다.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나는 때때로 어둔 밤 기척 없이 들어서는 그에게 묻곤 했다.
"불 구경을 했어, 굉장하더군."
그때의 그에게서는 불에 탄 재 냄새가 흠씬 풍긴다. 흥분 때문에 목소리도 꺽꺽하게 쉬어 있었다. 또는 셔츠 깃에 피를 묻히고 들어오는 때도 있었다.
"사람들이 싸우고 있더군. 난 싸우진 않았어, 말렸을 뿐이야."
나는 무심코 담뱃불을 잔디에 갖다 댄다. 마른 바람이 불고 있다. 곧 봄이 올 것이다. 지난겨울은 춥고 건조했다. 농부들은 봄갈이를 걱정할 것이다.
나는 까맣게 타들어 가는 마른 풀 위에 침을 뱉고 발로 흙을 덮은 뒤 일어났다. 발전소 건물은 조명등으로 환하게 떠 보이고 사람들은 무리져서 웅성이고 있었다.
6층 꼭대기 우리의 방은 불기 하나 없이 캄캄하고 아파트 수위실은 바깥으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나는 수위실 앞에서 머뭇거리며 조금 더 기다려 볼 것인가 아파트로 올라갈 것인가를 망설이다 혹시 그가 들어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층계를 올라갔다. 6층 꼭대기, 새장처럼 철창이 둘린 곳까지 올라가려면 한참이 걸린다.
문틈에는 내가 끼워 넣은 쪽지가 그대로 꽂혀 있었다. ‘잠깐 나갔다 오겠어요, 열쇠는 수위실에 맡겼어요.’ 나는 누군가 펴 본 흔적을 살피느라 꼼꼼히 들여다보다가 구겨 버리고 벨을 눌렀다. 그리고 그 맑은 소리가 집의 안쪽 깊숙이 미쳐 휘돌아 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몇 번이고 다시 눌렀다. 문은 굳게 잠겨 있고 역시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나는 문을 밀고 당기고 열쇠 구멍에 핀을 넣어 휘젓는 공연한 노력으로 서서히 가슴께에 괴어오기 시작하는 불안을 밀어내었다.
집 안은 난장판일 것이었다. 잠긴 방들은 웅얼거리고 빗자루와 총채는 제멋대로 날뛰며 어두운 방에 먼지를 피워 올리고 양재기, 숟가락, 프라이팬들은 낄낄거리고 뛰어다니고 미끄러지며 달가닥거릴 것이다.
아래층에서는 악을 쓰며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층계참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담배를 붙여 물었다.
그는 아직도 내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나도 역시 뚜렷한 이유 없이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
언제나 그가 오기 전 창문을 열어 연기를 뽑고 양치질을 하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냄새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그도 그것을 알아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의 시에 대해, 그가 늘 지니고 다니는 성냥에 그러하듯 짐짓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담배를 안 피우다니요?"
그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내가 놀라 물었더니 도리어 그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게 뭐가 이상해. 자칫하면 일감을 버려 놓기 십상이지. 아차하는 사이에 불똥 하나로 옷 한 감이 날아가는 걸. 그래서 오야붕이 싫어하거든."
"지독한 사람이군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차 칭얼거림으로 변해 잦아들었다.
층계를 올라오는 발소리가 어지럽다. 층계를 사이에 둔 맞은편 집의 젊은 부부가 나란히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하여 걷고 있었다. 나는 벽 쪽으로 비켜 앉아 그들에게 지나갈 자리를 내주었다.
그들이 들어가고 안으로 문 걸리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새 담배에 불을 옮겨 붙이며 그들도 곧 아이를 갖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태 전에 죽은 아이가 생각 키웠고 그것은 별다른 감정을 일으키진 않았지만 가슴께에 생생한 통증을 가져왔다. 그 애는 돌이 지나고 얼마 안 되어 심한 탈수증으로 죽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나는 양복점으로 내걸었을 뿐 내재봉소에 지나지 않는 구석방에서 밤새워 바느질을 하고 하얗게 세고 겉늙은 얼굴로 돌아오고, 나는 아파트의 6층 꼭대기에서 날지 못하는 학의 날개를 메우며 바깥 날씨가 어떤지도 모르고 지내기가 대부분인 이런 생활에서 태어나는 아이를 상상할 때마다 고미 다락방에서 창틀을 타고 올라가는 콩덩굴을 바라보며 나날이 죽어 가는 병약한 소년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햇빛을 못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아마도 곱사등이나 심할 경우 척추가 퇴화한 연체 동물이 되어 버릴 것이다.
바깥 하늘은 아주 어두웠다. 나는 반도 안 탄 담배를 층계 창 밖으로 던지고 일어났다. 필터에 루주가 빨갛게 묻은 그것은 흡사 개똥벌레처럼 불똥을 단 채 길게 호를 그리며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수위실은 아직도 깜깜했으나 나는 층계를 내려왔다.
3층까지 내려왔을 때 나는 문득 열린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편에 등을 대고 프라이팬에 무엇인가 볶고 있는 여자의 모습 너머 마루 끝에 앉은, 머리통이 큰 사내아이가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아이의 힘없이 벌린 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값싼 식용유의 냄새, 언제나 공기 속에 무겁게 괴어 있는 연탄 가스의 냄새를 들이마셨다.
아이는 나를 보자 낯가림을 하듯 다시 울기 시작했다. 여자가 휙 돌아섰다. 그리곤 성난 얼굴로 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겨우 울음 끝을 잦히던 아이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아니, 원, 큰 구경이 났는 줄 아는 모양이지, 왜 남의……."
끝엣말은 문틈에 끼워 잘려 버렸다. 말도 채 끝나지 않고 사납게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여자의 물 묻은 매운 손이 내 뺨에 와 닿는 듯 화끈거리는 아픔에 볼을 감싸쥐고 급히 층계를 내려왔다.
수위실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
나는 공연한 짓인 줄 알면서도 아파트 광장에 설치된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다이얼을 돌렸다. 짐작대로였다. 수화기 가득 재봉틀 소리가 끓어오르고 상대방은 말했다.
"김씨요? 오늘 안 나왔시다. 내일 아침에 다시 거슈."
나는 깜깜한 6층 꼭대기 창을 올려다보고 수위실 앞에서 서성이다가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늘 그러하듯 작정을 하고 나서는 걸음은 아니었다. 그가 밤일에 묶여 있는 동안, 또는 때로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여 성냥갑 속의 불씨를 아껴서 알지 못할 어두운 골목골목을 야행동물처럼 눈을 빛내며 서성이고 있을 동안, 나는 몇 개비의 담배를 피워 없애듯, 때로는 한 잔의 소주를 조금씩 아껴 가며 삼키듯 밤의 그 현란한 풍경 속으로 산책을 나가 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 양치질로 담배 냄새와 소주의 독한 맛을 간단히 가셔내듯 활활 걷어붙이고 세수를 하고 발을 씻고 자리에 누워 결코 들릴 리 없는, 풀잎에 듣는 빗소리에라도 귀 기울이는 시늉을 함으로써 거리의 흔적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첫닭이 울기까지 돌아올 것이다. 전화를 걸고 차(茶)를 사고 술을 마시고 여자를 사고 마침내 이런 모든 행위를 길거리에 버려 둔 채 달아나 버리는 무책임한 사내들에게서 떠나 나는 남편의 야윈 허리를 껴안고 눕게 될 것이다.
사막의 한복판에 꽃을 든 그가 서 있다. 아랍식의 터번 아래 드러난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납빛이다. 왜 그러고 있는 거예요. 나는 그에게 외친다. 그는 꼼짝 않고 직립 해 있을 뿐이다. 그의 손에서 진한 자줏빛 꽃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내 목소리는 곳곳에 구릉지대를 이루고 겹쳐 있는 모래 언덕에 스며 되돌아오지 않는다. 해는 보이지 않는데 모래의 반사로 하늘과 땅은 붉은 색의 셀로판지를 통해 보듯 온통 붉은빛이다.
그것은 어쩌면 오래 전에 본, 이미 기억의 늪에 깊숙이 가라앉아 까맣게 잊혀진 영화의 한 장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을 깨어서도 그것은 무심히 흘려버린 화면처럼 뚜렷이 떠오르지 않는 대로 막막한 절망감은 확실한 느낌으로 남아 있다.
창문이 버얼겋게 밝아오고 있다. 동이 트려는가 보다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금 꿈속으로 빠져든다.
禁酒 시대였는데 술집 주인은 먼길을 가는 우리를 위해 술을 한 병 내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들고 사막을 건넜다. 사막은 여전히 불투명한 붉은 빛이었고 그에 대한 기억은 확실치 않다. 함께 가고 있다는 느낌 뿐 실체는 느껴지지 않았다. 사막을 다 건넌 후 마른 목을 축이고자 병을 땄을 때 술은 뜨거운 물이 되어 수증기로 피어올랐다. 마법의 병처럼 그 곳에 갇힌 수증기는 좁은 아구리로 빠져 나오려고 뒤엉겨 비비적대고 있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동남풍이야, 바람이 알맞게 부는군.
먼 곳에서부터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창문이 버얼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벨 울리는 소리가 계단에 설치된 화재경보기 울리는 소리로 들린 것은 창의 붉은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불에 탄 재 냄새를 풍기며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계단 등의 흐린 불빛 아래 서 있는 그를 끌어들이고 급히 문을 잠갔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바로 눈 아래에서 발전소가 타고 있었다. 불꽃놀이처럼 불티가 날고 강은 온통 붉은 빛이었다. 건물은 불길에 싸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굴뚝만이 외연히 솟아 있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나는 짐짓 태연하게 물었다.
"발전소에서 불 구경을 했어. 굉장히 큰 불이야. 빠져 나오느라고 혼났어."
그가 허덕이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때로 불덩이는 솟구쳐 강물로 떨어져 내렸다. 주위는 낮같이 밝았다. 불길은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고 더욱 밝고 기름지게 타올라 소방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장난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자, 주무세요, 이제 괜찮아요."
나는 그의 옷을 벗겨 자리에 눕히고 턱에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 주었다. 그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다. 나는 사이렌 소리가 울릴 적마다 흠칠 몸을 떨며 흐득이는 그를, 아이를 달래듯 팔에 힘을 주어 안았다.
창의 붉은 빛은 좀체로 사라지지 않고 방안을 가득 채워 우리는 마치 조금도 뜨겁지 않은 화염 속에 나란히 누워 있는 듯했다. 나는 어린아이를 잠재우듯 그의 머리를 가슴 깊숙이 안고 있지만 꺼멓게 타버린 재를 안고 있는 듯한, 또한 불이 타고 있는 강 건너, 꽃보다 더 진한 어둠 속에서 메마른 목소리로 울고 있는 한 마리 삵을 보고 있는 듯한 쓸쓸함에 짐짓 소리 내어 우는 시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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