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파스테르, 화학에서 생물학으로(네이버에서)

 

1881년 5월 5일, 프랑스 푸이 르포르에서 양 스물네 마리, 염소 한 마리, 소 여섯 마리에게 백신이 주사되었다. 약한 탄저균 배양액이었다. 17일에는 이 동물들에게 좀 더 강한 배양액이 또 접종되었다. 31일에는 병독성이 강한 탄저균이 들어있는 용액이 주사되었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배양액을 백신을 맞지 않은 양 스물네 마리, 염소 한 마리, 소 네 마리에게도 주사했다. 그리고 6월 2일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푸이 르포르에 모였다. 그곳에 한 남자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환호를 보냈다. 백신 접종을 받은 동물들은 모두 건강하게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않은 양 스물한 마리와 염소 한 마리가 탄저병에 걸려 죽은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양 세 마리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으며, 소 네 마리는 열병 증상을 보였다. 탄저병 예방 접종의 가치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루이 파스퇴르는 1822년 12월 27일, 프랑스 동부에 있는 돌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가죽 가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림에 꽤 재능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는 과학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는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화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이 시절 그는 과학에서 실험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체득했다. 파스퇴르가 과학계에서 처음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타타르산과 라세미산이라는 화합물 연구였다. 타타르산 과 라세미산은 둘 다 포도주가 발효될 때 생기는 부산물이었다. 이 두 물질은 화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동일한 성질을 지녔다. 심지어는 맛까지 똑같았다. 당시의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이 둘은 동일한 화합물이었다. 하지만 타타르산 용액에 편광을 통과시키면 빛이 회전했지만 라세미산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파스퇴르는 이 문제를 결정을 이용해 풀었다. 그는 이 두 물질을 결정으로 만든 다음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타타르산의 결정면들은 모두 동일한 방향성을 띠고 있지만, 라세미산의 결정면들 중에는 마치 거울에 비춘 것처럼 서로 반대의 방향성을 가진 것들이 있었다. 이 두 물질에 대해 편광이 서로 다르게 반응한 것은 빛이 개개의 입자들을 통과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거울상 분자들의 이런 대칭 현상은 의약품에서 매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임산부의 입덧 방지용으로 개발되었던 탈리도마이드라는 의약품은 거울상 형태를 띨 때는 태아의 발육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실제로 이 약을 복용한 임산부들에게서 세계적으로 1만 명이 넘는 기형아가 태어나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후, 파스퇴르는 사탕무 용액을 발효시켜 에탄올을 생산하는 한 기업인의 의뢰로 발효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는 발효 과정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던 때였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발효를 화학 현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는 공장을 방문해 관찰하고 시료를 가져와 실험했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발효가 화학적인 과정인 동시에 ‘생명과 관련된 현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발효가 미생물의 작용 때문에 일어난다고 결론지었다. (발효가 일어나는데 살아있는 미생물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훗날 밝혀졌다.) 이 생각을 계기로 그는 화학의 영역에서 생물학의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발효를 연구하는 동안 파스퇴르는 미생물의 기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발효 작용이나 부패 현상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과연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미생물들은 포도즙, 우유, 고기 등 그 속에 원래부터 존재해 있던 것인가, 아니면 새로 생겨난 것인가? 어떤 이들은 발효나 부패가 일어날 때 무생물에서 미생물이, 즉 생명체가 직접 생겨난다고 믿었다. 이것을 자연발생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파스퇴르는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유기체가 공기 중에 살고 있으며 미생물은 미생물로부터만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려 했다. 그는 백조의 목처럼 긴 가지가 달린 플라스크 안에 발효가 가능한 여러 가지 액체를 넣고 끓이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자연발생설과 관련된 논쟁은 아주 오랫동안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당시의 불완전한 실험 설비와 살균 기술, 그리고 미생물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결론이 쉽게 나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발생설이 완전히 잦아든 것은 훗날의 일이었다.   발효 연구는 또 다른 성과물을 낳았다. 파스퇴르는 질병의 원인이 미생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865년 그는 프랑스 정부의 요청으로 당시 프랑스의 양잠업을 위협하던 누에병에 대해 조사해 누에병의 원인이 세균 임을 밝혀냈다. 당시의 기술로는 세균을 죽여 누에를 치료할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예방법은 찾아낼 수 있었다. 이 병은 누에에게는 발생하지만 알에는 생기지 않았다. 따라서 병든 누에를 모두 폐기하면 병의 전염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미생물이 번식하기에 좋은 불결한 환경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파스퇴르는 탄저병과 닭 콜레라 백신을 만드는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를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도 광견병 백신을 만드는데 성공한 일일 것이다. 그는 광견병에 걸려 죽은 토끼의 척수를 꺼내 건조시킨 다음 잘게 조각 내 현탁액을 만들었다. 이 용액을 개에게 접종시키면 다시는 광견병에 걸리지 않았다. 파스퇴르는 이 백신이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1885년 7월 6일, 미친 개에게 물린 조제프 메스테르라는 아홉 살 난 소년이 개 주인 과 어머니와 함께 파스퇴르의 실험실로 찾아왔다. 소년은 개에게 팔과 양다리를 심하게 물린 상태였다. 의사들이 진단을 해 보았지만 “손쓸 도리가 전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파스퇴르는 이 아이에게 마지막 방법으로 백신을 써보기로 했다. 소년은 이틀 후부터 백신을 접종 받았고 결국 광견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 남았다.     파스퇴르는 1895년 9월 28일에 일흔셋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의 장례식은 프랑스 정부가 주도하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스스로 “과학을 위해 살았다”고 말하던 한 남자의 죽음을 기리는 사람들의 긴 줄이 파리 거리를 온통 메웠고, 그의 시신은 자신의 이름을 딴 파스퇴르 연구소에 마련된 무덤에 안장되었다. 루이 파스퇴르는 페르디난트 콘, 로베르트 코흐와 함께 미생물학의 창시자란 영광을 나누어 받았다. 그리고 “백신 실험의 성공은 프랑스의 성공”이라고 말한 그에게 프랑스 국민들은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만들어주고 엄청난 지원금을 모금해 주었다. 살아 생전부터 그는 대중의 영웅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프랑스 시민들은 그가 나폴레옹보다 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빛에는 그늘이 있는 법.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거짓을 말하기도 했고,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훔치기도 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푸이 르포르에서 탄저병 백신을 공개 실험할 때, 그는 자신이 탄저병균을 산소에 노출시켜 백신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자신의 경쟁자인 장 투생이 사용한 방법 즉 중탄산칼륨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백신을 만든 것이다. 산소를 이용해 백신을 만든 것은 그가 백신 생산 독점권을 획득한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조제프 메이스테르에게 백신을 접종하기 전, 그는 자신이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광견병에 걸린 개 오십 마리를 치료했다고 보고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메이스테르에게 접종한 백신은 그가 개를 치료할 때 썼던 백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든 것이었다.     파스퇴르에 관한 우리말 전기로는 <미생물의 발견과 파스퇴르>(루이즈 로빈스/ 바다출판사)와 <과학을 향한 끝없는 열정 - 파스퇴르>(르네 뒤보/사이언스북스)가 있다. 두 권 중 앞의 책이 파스퇴르를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파스퇴르가 쓴 <대기 속에 존재하는 유기체성 미립자에 관한 보고서 - 자연발생설의 검토>는 <자연발생설 비판>(김학현 옮김/서해문집)이란 제목의 우리말 책으로 만날 수 있다.   한편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가 함께 쓴 <골렘>(해리 콜린스,트레버 핀치/새물결)의 제 4장 ‘세균들은 반대했지만.... - 루이 파스퇴르와 생명의 기원’은 자연발생설과 관련해 파스퇴르가 벌인 논쟁의 전개 과정과 의미를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