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괴테,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인도한다

나뭇잎숨결 2009. 2. 13. 23:51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 소설가이자 시인, 화가, 법률가, 정치가, 철학자, 과학자로 살았던 그의 삶에는 18세기 유럽 역사가 녹아있다.

도서출판 '우물이 있는 집'이 기존 번역본의 오역과 누락 부분을 바로 잡아 새로 펴낸 '괴테 자서전'은 노년의 괴테가 젊은 날의 자신을 육성으로 소개한 책이다.

독일의 권위있는 출판사인 크리스티안 베그너 출판사의 12권짜리 '함부르크판 괴테전집' 중 9-10권에 포함된 '나의 인생, 시와 진실'을 완역한 것으로 괴테가 태어나서 26살이 되기까지의 성장과정이 실렸다.

괴테는 4부로 구성된 이 자서전의 제1부를 62세 때인 1811년에 완성하고 마지막 제4부를 타계 1년전인 1831년에 완성, 장장 20년에 걸쳐 썼고 괴테 사후에 책이 출간됐다.

1부 '매질 없는 가르침은 없다', 2부 '젊은 시절에 원하는 것은 노년에 풍족하게 얻는다', 3부 '나무는 하늘을 뚫고 자라지는 않는다', 4부 '신 밖에는 신에 맞설 자가 없다'로 구성돼 괴테 일생에 큰 영향을 끼쳤던 부모에 대한 추억과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청년시절의 기억을 담고 있다.

특히 젊은 시절 루소, 하만, 셰익스피어 등에게서 영향을 받고 하만의 제자인 헤르더 등 당대 재인들과 교류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회고하고 있어 18세기 유럽 문화계의 단면을 엿볼 수도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소재가 된 샤를로테 부프와의 가슴 아픈 사랑 등 많은 여인들이 등장하는 러브 스토리도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이관우 옮김. 

 

 

 

요한 페터 에커만의 산문『괴테와의 대화』1권. 이 작품은 젊은 문학도 에커만이 괴테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년간 약 1000번의 만남을 가지면서 그와 나눈 대화를 꼼꼼하게 기록하여 정리한 것으로, 당대의 문학과 예술, 성서 해석과 종교 문제, 정치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지식인의 역할 및 세계 문학의 대가들에 대한 괴테의 독창적 해석, 그리고 삶의 지혜를 담은 잠언으로 가득한 이 작품에는 괴테의 삶과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다. 1836년에 1부와 2부, 그리고 1848년에 3부가 출판된 이후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책은 괴테 연구의 필독서로 평가받으며 괴테에 관한 책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고 있다.

에커만은 이 책에서 괴테의 말을 그대로 전하며, 괴테의 문체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괴테의 어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 바이마르 지역의 풍광에 대한 기록도 세밀하여 마치 우리 자신이 바이마르 시내를 거닐고 괴테의 집을 드나드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또한 괴테의 전 작품까지 빠짐없이 언급, 인용되고 있는 이 책은 괴테의 다른 문학 작품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괴테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괴테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시공을 초월한 위대한 멘토, 인간 괴테가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주옥같은 메시지책표지를 클릭하시면 창을 닫습니다.


인생, 예술, 학문 그리고 사랑에 대한 괴테와 젊은 지성 에커만의 대화


요한 페터 에커만의 산문『괴테와의 대화』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76, 177번)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젊은 문학도 에커만이 괴테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년간 약 1000번의 만남을 가지면서 그와 나눈 대화를 꼼꼼하게 기록하여 정리한 것이다. 당대의 문학과 예술, 성서 해석과 종교 문제, 정치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지식인의 역할 및 세계 문학의 대가들에 대한 괴테의 독창적 해석, 그리고 삶의 지혜를 담은 잠언으로 가득한 이 작품에는 괴테의 삶과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다. 1836년에 1부와 2부, 그리고 1848년에 3부가 출판된 이후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책은 괴테 연구의 필독서로 평가받으며 괴테에 관한 책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고 있다.

한 가난한 문학청년이 대문호 괴테를 만나 영혼의 성장을 이루다

만년에 접어든 괴테의 조력자이자 동료였던 에커만은 1823년 「시학 논고」라는 원고를 괴테에게 보냈고 관심을 느낀 괴테가 초청하자 바이마르를 방문한다. 그의 자질을 알아본 괴테는 자신의 전집 발간을 위해 에커만을 바이마르에 묶어 두었다. 1823년부터 1832년까지 에커만은 대략 1000번 가량 괴테와 만난다. 그리고 그때마다 대화를 기록해 두었다가 괴테 사후에 정리하여 출간하는데, 이것이 니체가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책”이라고 평한 『괴테와의 대화』이다.
가난한 문학청년에 불과했던 에커만은 괴테와의 만남을 통해 정신적, 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독일을 넘어 이미 세계적인 대문호로서 우뚝 서 있던 노년의 괴테는 젊은 에커만에게 삶의 본질과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워 주는 수많은 교훈을 남겼다. 가령 ‘파괴하는 인간이 아니라 건설하는 인간이 되어라’, ‘최고를 만나면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부정하는 것은 무익하며 바른 일을 하라’ ‘한 분야에서 유능해져라’, ‘적대자들에 대해 초연하라’,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배우게 된다’ 등 오늘날까지도 유익한 잠언과 같은 글들이 이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괴테만 일방적으로 에커만에게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괴테의 조수로서 에커만은 괴테의 원고와 일기, 편지 등을 정리하여 괴테 전집을 편집하였으며 특히 괴테가 『파우스트』 2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시와 진실』을 마무리 지을 때 에커만과 함께 원고를 읽으면서 수정하여 완성한 것을 알 수 있다.

생생한 육성으로 듣는 괴테의 명언들

괴테의 명언 중 몇 가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현명한 자는 모든 산만한 요구를 거부하면서 하나의 분야에 자신을 제한하고 그 하나 속에서 유능해진다네.”
“생각한다는 일이 이렇게 어렵지만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하지만 불행하게도 모든 생각은 생각 그 자체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 다만 천성적으로 정직하다는 것이 중요하네. 그래야만 훌륭한 착상들이 마치 신의 아들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언제나 우리들 앞에 나타나서, ‘우리 여기 있네!’ 하고 소리쳐 부를 걸세.”
“가장 분별 있는 행동은 언제나 스스로 지니고 태어난 일, 자기가 배워서 익힌 일에 힘쓰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그들의 직분을 다하는 걸 방해하지 않는 것이네. 구두장이는 언제나 자기의 구두골 앞에, 농부는 쟁기 뒤에 있으면 되고, 군주는 나라를 통치하는 법을 알면 되는 것이겠지. 왜냐하면 정치라는 것도 배워야만 하는 직업의 하나이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주제넘게 개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네.”

이렇듯 에커만이 괴테의 말을 전하는 서술 방식은 단순하면서도 생동감에 넘치며 다채롭다. 대부분이 괴테의 말을 그대로 전하며, 괴테의 문체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괴테의 어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래서 괴테의 며느리인 오틸리에는 “마치 시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처럼 현장성과 구체성을 확보한 묘사는 이 작품의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바이마르 지역의 풍광에 대한 기록도 세밀하여 마치 우리 자신이 바이마르 시내를 거닐고 괴테의 집을 드나드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또한 괴테의 전 작품까지 빠짐없이 언급, 인용되고 있는 이 책은 괴테의 다른 문학 작품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괴테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괴테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문학, 철학, 법학, 자연과학 등 다방면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이상적 인간 괴테

작품의 전체 구성은 괴테와 에커만 사이의 대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 밖에 괴테가 가족이나 친구들, 예술가와 학자, 멀리서 그를 찾아온 외국인들과 나눈 대화 등이 일기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눈 인물들은 나폴레옹, 헤겔, 실러, 베토벤 등 그 시대를 대표하는 거물들이었다. 시인이기도 했던 에커만은 이 방대한 자료를 치밀하게 재구성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에 대한 해설에서부터 프랑스의 고전 비극, 몰리에르의 희극 작품, 셰익스피어 문학, 영국의 바이런과 월터 스콧, 이탈리아 문학, 세르비아 문학, 페르시아 문학과 중국 문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자신의 생각을 토로하는 괴테의 육성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 문학의 풍성한 흐름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또한 바이마르 궁정에서 정치에 관여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정치인으로서의 고민, 바이마르 극장을 지휘하면서 얻은 체험으로 정리했던 연극술에 대한 세세한 토로, 프랑스 혁명으로 혼돈에 빠진 유럽의 정세 한가운데서 직면해야 했던 진보와 보수의 갈림길에서의 고뇌, 정치 상황에 절망하고 자연 연구에 몰두해야 했던 정황 등, 인간 괴테가 겪어야 했던 총체적인 상황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자유에 대하여’, ‘건강과 생산성’, ‘제도에서 오는 속물’, ‘투쟁 끝에 자라나는 아름다움’, ‘인류의 진보’, ‘성서 이야기’, ‘고전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 ‘파우스트에 대하여’,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하여’, ‘헤겔 철학에 대하여’, ‘종교와 철학’, ‘독창성이란 무엇인가?’, ‘세계 문학의 이념’, ‘작가는 순교자’ 등 이 책의 소주제들은 실로 진선미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광대한 영역에 걸쳐 있다. 그런 점에서 에커만은 이 책이 ‘일종의 교과서이자 괴테 사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대한 분량으로 기록된 『괴테와의 대화』는 생성의 상상력으로 가득한 문학의 보고다. 괴테는 세계가 끊임없는 생성의 흐름 속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대자연의 순환 체계 속에서 물질의 도전에 맞서고 물질을 제어함으로써 정신이 제몫을 다하는 것이 자연과의 소통이라는 괴테의 사상은, 자연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반역의 역사였던 근대 이후의 역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컨대 괴테가 말하는 인간 정신의 교양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세계의 변화에 대한 믿음은 결국 물질에 대한 정신의 지배를 확인해 나가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괴테는 다방면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전인적인 인간이었으나 그를 더욱 위대하게 만든 것은 이렇듯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애 때문이었다. 희망의 원리를 설파하는 진정한 대가의 목소리를 담은 이 책은 괴테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필독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요한 페터 에커만
요한페터에커만 만년의 괴테 조수이자 절친한 동료로 기억되고 있는 애커만은 1972년 독일 빈젠에서 출생하였다. 혹독한 가난 속에서 자랐고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북부 독일 해방전쟁에 참가했으며, 하노버에서 육군성의 서기가 되었다가 그 이후 괴팅겐에서 1년동안 공부했다. 괴테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우상이었다. 1821년 시집을 내기도 했던 그는 1823년 <시학논고>라는 원고를 괴테에게 보내 그의 관심을 끌었다. 괴테가 그를 바이마르로 초청하자 그는 시인이 되려고 했던 자신의 포부를 버리고 기꺼이 무보수로 괴테의 문학조수가 되었다. 1823년부터 1832년까지 10여년 동안 에커만은 1천회 가량 괴테의집을 방문하였고, 그 가운데 1/4정도에 해당하는 날에 나눈 대화를 괴테의 허락을 받아 글로 기록하였다. 에커만은 인생과 예술과 학문을 주제로 괴테와 대화를 나누며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숙했으며 이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잇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에커만에게 있어 괴테는 지적 동반자이자 절대자였던 것이다.

 

 
 
 

 

 

괴테(독일어: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 ~ 1832년 3월 22일)는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이며, 한때에는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이었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출생으로,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자로서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이고,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아버지는 법률가이며 제실고문관(帝室顧問官)으로서 엄격한 성격이었으며, 시장(市長)의 딸인 어머니는 명랑하고 상냥하여 아들의 좋은 이해자였다. 7년전쟁(1756∼1763) 때에는 프랑스에 점령되어 평화롭고 부유했던 괴테의 집도 프랑스 민정장관(民政長官)의 숙사(宿舍)가 되고,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계획 역시 중단되었으나, 괴테는 자유롭게 프랑스의 문화에 접할 기회를 얻었으며, 15세 때 그레트헨과의 첫사랑을 경험하였다.

 

1765년에 라이프치히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하면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보내다가, 1768년 각혈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생활을 하였다. 그 무렵에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鍊金術)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머니의 친구인 크레텐베르크의 감화로 경건파(敬虔派)의 신앙에 접근하였다. 그녀는 후일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의 모델이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머무르면서 J.G. 헤르더를 알게 되어 종래의 로코코 취미의 문학관은 철저히 분쇄당하고,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 감정의 순수성에 시의 본질을 구하려는 노력이 《들장미》의 가작(佳作)을 낳게 하였다.

이 무렵 근처 마을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과 목가적(牧歌的)인 사랑을 하였고 약혼까지 하였으나, 결국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하였다. 그 후 회한(悔恨)과 마음의 부담 속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 겪은 내적 체험이 훗날 그의 시의 주제가 되었다. 1771년 변호사가 되어 고향에서 변호사업을 개업하였고, 1772년에는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 때 샬로테 부프와의 비련(悲戀)을 겪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1774)을 썼는데, 이 작품으로 일약 문단에서 이름을 떨쳤고, 독일적 개성해방(個性解放)의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질풍노도)’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1775년에 바이마르 공국의 젊은 대공(大公)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을 받고 바이마르로 가서 여러 공직에 앉게 되고 재상이 되어 10년 남짓 국정(國政)에 참여하였다. 이 동안 그는 정치적으로 치적(治積)을 쌓는 한편, 지질학·광물학을 비롯하여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1784년, 동물에만 있고 인간에게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던 간악골(間顎骨)을 발견하여(죽기 1년 전에 학회에서 인정되었음) 비교해부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무렵 괴테는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 12년에 걸친 연애를 하여, 부인으로부터 인간적 및 예술적 완성에 큰 영향을 받았으나, 1786년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남으로써 부인과의 애정관계는 끝을 맺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수업하는 화가로서의 생활을 보내면서 l,000매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렸으며, 희곡 《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 Iphigenie auf Tauris》(1787), 《에그몬트 Egmont》(1787) 등을 써서 슈타인 부인에게 바쳤다. 이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괴테의 생애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고전주의로의 지향(志向)을 결정한 시기로서 중요하다.

 

1788년에 바이마르에 돌아온 괴테는 조화업(造花業)을 하는 가난한 집안의 딸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동거하면서(정식 결혼은 l806년), 비로소 가정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이 무렵에 그는 시인과 궁정인의 갈등을 그린 희곡 《타소 Torquato Tasso》(1789)와, 관능의 기쁨을 노래한 《로마 애가(哀歌)》(1790)를 발표하였다. 과학논문 《식물변태론(植物變態論)》도 이 시기의 산물이다. 1791년에는 궁정극장의 감독이 되었으며, 그 때부터 고전주의 연극활동이 시작되었다.

 

한편, 1789년 이후의 프랑스 혁명의 격동은 바이마르 공국도 휩쓸게 되어, 1792년에 괴테는 아우구스트 대공을 따라 프랑스로 종군하였다. 1794년부터 그는 J.C.F. Von 실러가 기획한 잡지 《호렌(Horen)》에 협력하여 굳은 우정을 맺었다. 이념의 사람 실러와 실재(實在:자연)의 사람 괴테와의 이 우정은 l805년에 실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10년 남짓한 시기에 괴테는 실러의 깊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Faust)》의 재착수, 《빌헬름 마이스터의 도제(徒弟) 시절(Wilhelm Meisters Lehrjahre)》(1796)의 완성,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Hermann und Dorothea)》(1797)의 발표 등, ‘현재에서의 완성을 지향하는’ 독일 고전주의는 여기서 확립되었다.

 

1797년에는 실러의 《시신연감(詩神年鑑)》에 공동작의 단시(短詩) 《쿠세니엔(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414편을 발표하여 문단을 풍자하였다. 또한 문단의 물의(物議)를 외면한 채 이야기체로 쓴 시(詩)를 경작(競作)하여, 1797년은 ‘발라드의 해’라고 일컬어진다. 1805년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괴테는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만년의 괴테의 문학활동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이었다. 괴테는 그 무렵에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치에서 프랑스·이탈리아·영국, 나아가서 신대륙인 미국의 문학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 국민문학의 교류를 꾀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세계문학적 시야를 넓혔던 것이다.

 

만년의 문학작품으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Wilhelm Meisters Wanderjahre)》(1829)와 《파우스트》의 완성이 최고봉을 이룬다. 전자(前者)는 당시의 시대와 사회를 묘사한 걸작이라 할 수 있으며, 후자(後者)는 한 인간의 생애가 전인류의 역사에 뒤지지 않는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엄한 드라마이다. 《파우스트》는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83세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된 생애의 대작이며, 세계문학 최대걸작의 하나이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가였던 괴테는 만년에도 세 차례의 연애를 체험하였다.

 

그 하나는 미나 헤르츨리프와의 사랑으로서, 이 소녀를 모델로 하여 소설 《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1809)을 썼다. 또 하나는 아내 불피우스가 죽은 뒤에 알게 된 빌레머 부인과의 사랑으로, 그녀를 사모하여 읊은 《서동시집(西東詩集)(Westöstlicher Divan)》(19)이 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괴테는 마리엔바더로 피서여행을 갔다가 74세의 노령으로 19세의 처녀 우를리케 폰 레베초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사랑은 거절되었으나, 그 연모의 정이 시집 《마리엔바더의 비가》(1823)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밖에 만년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기행 (Italienische Reise)》(1829)과 자서전인 《시와 진실(Dichtung und Wahrheit)》(1833) 등이 있다.

 

또한 그의 광학(光學) 연구의 결정인 《색채론(Zur Farbenlehre)》이 1810년에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뉴턴의 이론에 대한 잘못된 비판이 들어 있어 순학문적인 견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나, 탁월한 관찰과 견해가 많이 보이고 있다. 괴테는 문학작품이나 자연연구에 있어서, 신(神)과 세계를 하나로 보는 범신론적(汎神論的) 세계관을 전개하였으며, 그의 종교관은 범신론적 경향이 뚜렷하지만, 복음서의 윤리에는 깊은 존경을 표시하였다. 그의 유해는 바이마르 대공가(大公家)의 묘지에 대공 및 실러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1. Seid von Herzen froh!
Das ist das A und O.   

진심으로 기뻐하라!
그것이 중요하다.

Gesellige Lieder
(사교의 노래)

 

 

 

 

2.

Weinende Männer sind gut.

우는 남자들은 선량한 자들이다.

West-östlicher Divan
(서동시집)

 

 

 

 

3.

Es ist viel mehr schon entdeckt, als man glaubt.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이미 발견되어 있다.

Maximen und Reflexionen
(금언과 성찰)

 

 

 

 

4.

Das Ewig-Weibliche zieht uns hinan.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인도한다.

Faust
(파우스트)

 

 

 

 

5.

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것이다.

Faust
(파우스트)

 

 

 

 

6.

Am Abend schätzt man erst das Haus

저녁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집의 고마움을 알게 마련이다

Faust
(파우스트)

 

 

 

 

7.

Wären's Bücher[...], ich würd sie nicht lesen.

그 사람들이 책이라면 [...], 나는 읽지 않을 걸세.

Venezianische Epigramme
(베니스 경구)

 

 

 

 

8.

Ein guter Mensch in seinem dunklen Drange
Ist sich des rechten Weges wohl bewußt.

선한 인간은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혀 있을 지라도,
항상 바른 길을 알고 있는 법이다.

Faust
(파우스트)

 

 

 

 

9.

Gib ungebändigt jene Triebe,
Das tiefe, schmerzenvolle Glück,
Des Haßes Kraft, die Macht der Liebe, Gib meine Jugend mir zurück!

내 청춘을 내게 돌려다오!
그 억제되지 않던 충동들을,
고통에 가득찬 절절한 행복을,
증오의 힘과 사랑의 위력을!

Faust
(파우스트)

 

 

 

 

10.

Was glänzt, ist für den Augenblick geboren,
Das Echte bleibt der Nachwelt unverloren.

번쩍이는 것은 순간을 위해 생겨난 것이니,
참된 것은 후세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는 법이다.

Faust
(파우스트)

 

 

 

 

11.

Und dein Streben, sei's in Liebe,
Und dein Leben sei die Tat.

그대 사랑을 위해 추구하고 노력하라.
그러나 그대의 생활은 행동이어라.

Wilhelm Meisters Wanderjahre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12.

Die Tat ist alles, nicht der Ruhm.

중요한 것은 행위이지 명성이 아니다.

Faust
(파우스트)

 

 

 

 

13.

Die gute Tat, das schöne Wort,
Es strebt unsterblich, wie er sterblich strebte.

선한 행위, 아름다운 말,
예술가의 인생은 유한할지라도, 이들은 불멸이다.

Künstlers Apotheose
(예술가의 신격화)

 

 

 

 

14.

Im Anfang war die Tat!

태초에 행위가 있었느니라!

Faust
(파우스트)

 

 

 

 

15.

Der Schein, was ist er, dem das Wesen fehlt?
Das Wesen, wär es, wenn es nicht erschiene?

본질이 결핍된 외관은 무엇일까?
그런데 외관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런 본질은 존재하는 것일까?
 

Die natürliche Tochter
(서녀(庶女))

 

 

 

 

16.

Welch Glück, geliebt zu werden!
Und lieben, Götter, welch ein Glück!

사랑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요!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신들이시여, 또 얼마나 큰 행복인가요!

Gedicht: "Willkommen und Abschied" 
(시: "만남과 이별")

 

 

 

 

17.

Wie sich Verdienst und Glück verketten,
Das fällt den Toren niemals ein;
Wenn sie den Stein der Weisen hätten,
Der Weise mangelte dem Stein.

업적과 행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바보들은 결코 생각하지 못한다.
바보들이 현자의 돌을 갖고 있다해도,
그 돌맹이에겐 현자 주인이 없는 것이다.

Faust
(파우스트)

 

 

 

 

18.

Das Glück
Und nicht die Sorge bändigt die Gefahr. 

걱정이 아니라
행복이 위험을 몰아낸다.  

Die natürliche Tochter 
(서녀(庶女))

 

 

 

 

19.

Das Glück macht alles gleich,
Den Faulen und den Tät'gen. - Arm und Reich.

행복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들어준다,
게으른 자든 행동하는 자든. - 가난하든 부자이든. 

Gedichte: Auf Miedings Tod
(시: "미딩의 죽음에 부쳐")

 

 

 

 

20.

O weh der Lüge! Sie befreit nicht,
wie jedes andre, wahrgesprochne Wort,
Die Brust; 

오 거짓말에 화있을지라! 거짓말은
진실된 말처럼 우리 가슴을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하니.

Iphigenie auf Tauris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

 

 

 

 

21.

Und wer der Dichtkunst Stimme nicht vernimmt,
Ist ein Barbar, er sei auch, wer er sei.

문학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는,
그가 누구든 간에 야만인이다. 

Torquato Tasso
(토르콰토 타쏘)

 

 

 

 

22.

Wir fa ssen ein Gesetz begierig an,
Das unsrer Leidenschaft zur Waffe dient.

우리는 우리 열정을 위한 무기로 쓸 수 있을
법칙은 미친 듯 거머쥔다.

Iphigenie auf Tauris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

 

 

 

 

23.

Die Leidenschaften sind Mängel oder Tugenden, nur gesteigerte.

열정은 단점이거나 장점이다, 단지 고조된 것일 뿐.

Maximen und Reflexionen
(금언과 성찰)

 

 

 

 

24.

Unsre Leidenschaften sind wahre Phönixe. Wie der alte verbrennt, steigt der neue sogleich wieder aus der Asche hervor.

우리들의 열정이야말로 진정 불사조이다. 옛 것이다 타버리고 말면, 그 재 속에서 조심스럽게 다시 새 것이 소생한다.

Maximen und Reflexionen
(금언과 성찰)

 

 

 

 

25.

Große Leidenschaften sind Krankheiten ohne Hoffnung. Was sie heilen könnte, macht sie erst recht gefährlich.

열정은 절망적인 병이다. 이 병을 낫게 할 수 있을 것이야말로, 이 병을 진짜로 중병이 되게 하는 것이다.

Maximen und Reflexionen
(금언과 성찰)

 

 

 

 

26.

Die Leidenschaft erhöht und mildert sich durchs Bekennen. In nichts wäre die Mittelstraße vielleicht wünschenswerter als im Vertrauen und Verschweigen gegen die, die wir lieben.

열정은 고백을 통해 고조되거나 완화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모든 것을 털어놓느냐 비밀로 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보다 그 중도의 길을 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Maximen und Reflexionen
(금언과 성찰들)

 

 

 

 

27.

Die Wahl ist schwerer als das  Übel selbst,
Die zwischen zweien Übeln schwankend bebt.

두 개의 악 사이에서 멈칫거리며 선택하기가
그 악 자체보다 더 힘겹구나.

Die natärliche Tochter
(서녀(庶女))

 

 

 

 

28.

Eigentlich lernen wir nur von den Büchern, die wir nicht beurteilen können. Der Autor eines Buches, das wir
beurteilen können, müßte von uns lernen.

본래 우리는 우리가 평할 수 없는 책에서만 배운다. 우리가 평할 수 있는 책의 저자라면 그가 우리에게서 배워야만 할
것이다.

Maximen und Reflexionen 
(금언과 성찰)

 

 

 

 

29.

Wer das Dichten will verstehen,
Muß ins Land der Dichtung gehen,
Wer den Dichter will verstehen,
Muß in Dichters Lande gehen.

시를 쓰고자 하는 이는
시의 나라로,
시인을 알고자 하는 이는
시인의 나라로.

Noten und Abhandlungen zu West-östlicher Divan
(서동시집에 대한 주석과 해설에서)

 

 

 

 

30.

Das ist der Weisheit letzter Schluß:
Nur der verdient sich Freiheit wie das Leben,
Der täglich sie erobern muß.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것이다:
자유도 생명도 그것을 매일 매일 싸워 얻는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는 것.

Faust
(파우스트)

 

 

 

 

31.

[...] möchte ich [...]
Auf freiem Grund mit freiem Volke stehen.
Zum Augenblicke dürft' ich sagen: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Es kann die Spur von meinen Erdetagen
Nicht in Äonen untergehn. -
Im Vorgefühl von solchem hohen Glück
Genieß' ich jetzt den höchsten Augenblick.

 [...] 내 [...]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다.
그러면 순간을 향해 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는 너무도 아름답구나!>
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이같이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내 이제 최고의 순간을 맛보노라.  

 Faust
(파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