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자신과 닮았다는 사실 때문에 아무리 줄여서 말해도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지만, 그뿐이었다. 닮은꼴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쌍둥이가 한 예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육십억 명의 사람들 중에 정확히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점일 것이다. (29쪽)
제일 불안한 건, 그는 마침내 정리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저 자가 나를 닮았다는 사실, 내 복사판이라는 사실이 아냐. 그건 그렇게 진기한 일도 아니지. 쌍둥이도 있고,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있고, 같은 종에 속한 생물들은 서로의 모습을 복제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인간도 머리, 몸통, 팔, 다리를 똑같이 갖고 있잖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정말로 불안한 건 오 년 전에 저 자와 내가 똑같은 모습이었다는 사실이야. 그러니까 우리 둘 다 콧수염을 길렀다는 것까지 똑같았단 말이지, 게다가 오 년이 지난 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그 자가 나랑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더 불안해. (32쪽)
문제는, 고통스럽고 영원한 문제는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람들이 때로 사랑은 물론이고 열정으로 착각하기도 하는 애정에 다시 불이 붙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양초가 완전히 꺼지기 전에 더 높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더 밝게 타오르는 친숙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 걸까. 우리가 이렇게 타오르는 양초의 빛을 참을 수 없는 것은 순전히 그것이 마지막 불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이 그 빛을 거부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눈은 그 빛을 홀린 듯이 바라보며 여전히 행복해할 테니까 말이다. (144~145쪽)
소설 같은 허구의 세계에 비해 현실은 항상 우연의 일치에 인색한 것 같다. 우리가 우연의 일치라는 원칙이 바로 이 세상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진정한 지배자라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만약 그런 것을 인정해야 한다면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우연의 일치도 글 속에 등장하는 우연의 일치만큼이나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235쪽)
사실 난 독신이에요. 그래도 당신은 내 복사본, 내 분신, 거울 속에 비친 영원한 나의 모습일 거에요, 거울 속에서 나는 내 모습을 볼 수 없겠죠. 그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에요. (298쪽)
둘 중 한 사람, 그러니까 배우와 역사교사 중 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여분의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너는 아니었다. 넌 여분이 아니었다. 너 대신 나타나서 네 어머니의 옆자리를 차지할 복사본은 없다. 너는 독특한 존재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독특한 존재이듯이. 진정으로 독특한 존재이듯이. (41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