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는 이유를 말합니다 - 남녀관계, 연립 10차 방정식 풀이법
제인 오스틴을 읽을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저는 제인 오스틴을 시간을 견디는 힘을 가진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남녀 문제에 대해서 관계의 본질적인 면에 그토록 집중한 작가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제인 오스틴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혹자는 너무 고전적이어서 지루하고 남녀간에 연애문제 이외에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 작가라 평가지만, 저같은 누군가는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그녀에게서 발견하기도 합니다.
사실, 몇 편만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에서 결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항상 그렇듯 '남녀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사랑을 확인했다'가 결론이니 말입니다. 문제는 사랑과 조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서로의 마음을 오해하는 데서 생기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놓느냐의 문제입니다. 특히 <설득>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흔하게 부딪히는 문제로 주변 사람들이 그들에게 벌이는 '설득'에 대해 고민하게 합니다. 과연 옆사람, 혹은 부모님의 설득을 혹은 이야기를 어디까지 들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죠?
사귀고 있는 두 남녀를 주변 사람들이 반대하고 안 된다며 설득하는 건 너무 흔해 빠진 이야기가 아닐까 싶지만, 사실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지 않나요? 주인공 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조건이 너무 부실(?)하다는 주변의 설득에 넘어가 그와 헤어지게 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제법 성공한 그와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리고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가 이 소설의 백미입니다. 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실 겁니다. 보증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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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을 이야기할 때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시점'입니다. 소설에서 전지적 시점은, 무엇이든 쓸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드러내는 특성상 소설이 지나치게 건조해질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요컨대 너무 많이 드러내는 바람에 독자들이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인 오스틴은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 작가가 직접 글에 등장해서 논평하는 장면을 넣기도 하고, 전지적 시점임에도 심리상태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주인공 앤만으로 한정합니다. 요컨대 독자들이 가장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인 셈입니다. TV에서는 남녀 주인공과 모든 인물들의 심리를 열심히 보여주려 하겠지만,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주인공 앤의 심리뿐입니다. 사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는 게 아닐까요?
고전을 읽는 이유를 제인 오스틴에게서 찾는 저는 사람 사이의 관계, 조금 더 지엽적으로 보자면 남녀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사랑에 관한 한 남녀가 고민하는 것은 비슷하고 주변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도 비슷하지 않나요? 제인 오스틴이 시간을 넘어 멋진 작가로 불리는 이유는 알다가도 모를, 연립 10차 방정식을 푸는 것과 비견될 남녀의 심리 문제에 대해 혹은 사랑과 조건 사이의 갈등에 대해 고민에서 나온 공감의 글을 썼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시간은 변하고 표현 방식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결국 고전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