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말씀의 우주에서 마음의 우주로의 편력-김명신

나뭇잎숨결 2009. 1. 12. 13:39

 

 <말씀의 우주에서 마음의 우주로의 편력-김명신> 작가세계 1997년 가을호 박상륭특집 

 

 문학적 연대기-말씀의 우주에서 마음의 우주로의 편력

 

 1.<어머니콤플렉스>의 문학적 구현

 

 박상륭은 그의 뛰어난 작가적 역량과 한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독보적 위치와 작가적 개성 그리고 그가 거둔 놀라운 문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아주 낯설고, <잘 모름>에서기인한 다소 신비감을 주는 소설가였다. 여기에서 <낯설음>은 <일반독자>라는 비전문적인 대중적 독자뿐만 아니라 비평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까지도 포함해서임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그가 캐나다의 벤쿠버에 30년이 가까워오도록 머물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작가들에게는 그리도 흔한 그에 관한 이력이나 자신이 쓴 자전적인 글 한 조각 제대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구나 그의 작품에서는 작가의 원체험이라고 유추할 수 있는 자전적인 내용들은 거의 기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나 유추는 위험한(?) 것이어서 직접, 작가에게 설문의 형태로써 물어보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서의 서신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박상륭은 그 자신의 삶의 이력, 그의 말대로 하자면 <육신적 삶으로서의 족적(足炙)>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그리하여 5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올라가서 되살아보게 될 그 과정을 무척 곤혹스러워했고 심지어는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박상륭을 안다는 것은 그가 쓴 작품 속에 녹아 있는 그의 정신과 사유의 핵들을 앎으로써 가능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이 결국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자신도 설명해낼수 없는 어떤 세월의 앙금, 한의 앙금 같은 것을 그 어떤 독자만큼이나 더 궁금해질 것이기에 우리는 결국 작품을 통해서만이 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40년 8월 26일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면 노곡리에서 부친 박봉환과 모친 최달래의 사이에서 9남매의 막내로 출생하였다. 9남매라고는 하지만 박상륭의 바로 웃형은 네 살 때 죽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8남매였다. 이때 모친의 나이가 45세인데 이 사실, 즉 <늙은 어머니로부터 태임받았>다는 사실은 그에게 <산 삶에 대한 수치 콤플렉스>를 갖게 하고 그것은 어머니 콤플렉스의 한 변용으로서 작용하게 되어 박상륭의 소설,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그곳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박상륭 소설의 핵심적 추동력으로 작용하게 한다.

 제가 아마, 장편을 쓰기 시작했었을 그때부터나 아니었나 하고 추측하는데, 그때 저는, 하나의 出家를 단행했었습니다. 저 스스로, 하나의 중[僧]을 꾸미기 시작했었더라는 말씀이지요. 이 돌팔이 중은 그러면, 대체 어느 종파에 속하느냐고 묻는 자가 있다면, 그렇지 않아도, 불머슴구하기가 어렵던 차에, 저는 그를 저의 불머슴으로 만들고 싶어함에 분명합니다. 어제의 삶의 수치-비린내나는, 미끄덩거리는, 흐린, 누런, 羊水속에 담겨, 새끼 하마꼴로, 그것 마시느라 전신을 떨기,의 수치, 아무런 즐거움도, 영광도, 내일에 대한 희망도 없이, 홍진속에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기, 의 수치....(중략)....이런 따위로, 수치의 고통으로 늙어가는 한 글꾼이 뭐든 <문학>이라는 것을 해본다고 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저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몸서리쳐지는 한 몸부림의 표현이었을 것을 분석해내기는 어렵지 않을 것인데, 저 콤플렉스라는 것은, 어떻게 뒤집으면, 곧 바로 종교적 콤플렉스였던 것이기고 하여, 제가 <해본다고 했던 문학>이, 별수없이 종교적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어렵잖게 분석되어질 것입니다.

                                                                                -1997.7.13 서신에서

  일제시대부터 장수에서 상당한 대농가였던 박상륭의 집안은 8남매나 되는 자녀들을 전주 등지로 보내 교육시키면서 점차로 기울어간다. 일과는 무관한 유복한 시절, 박상륭은 책과더불어 유년기와 초년기를 보내게 된다. 대대로 내려오는 유교적 전통속에서 한학을 한 부친으로부터 박상륭은 어려서부터 동양학에 관한 것을 배웠고 천자문을 읽을 시절에는 부친이 두보 시를 읽어주기도 하며 막동이 겸 손자 겸 무릎위에 올려놓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회고한다. 이렇게 부친과 모친의 사랑을 극진히 받으며 자란 박상륭이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여 잔병치레를 많이 하였으니-참고로, 그는 몸이 약해 군대를 가지못했다-막내로 태어난 어린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1953년 장수초등학교를 40회로 졸업한 박상륭은 그해 4월 장수중학교에 입학하여 1956년 졸업을 하게 된다. 중학교 시절의 기록을 보면 졸업 후의 상황에 대해 <가정환경으로 인하여 전주 진학이 불능>하여 <장수농고에 올 뜻>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 이 당시 이미 형편이 꽤 어려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졸업하던 해인 17세 때 모친이 61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박상륭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어머니에 대해 박상륭이 술회하고 있는 부분 을 보면 그는 건강이 안좋아 항상 앓아 누워 계시곤 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항상 걱정스런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모친이 죽으면 어쩌나 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항상 맞대어 살았다고 술회한다. 45세에 박상륭을 낳은 허리 굽고 촌노인인 어머니가 거무스레하게 탄 얼굴로 학교에 오면 부끄러워 숨곤 했는데 그래도 그는 집에만 가면 늘 어머니 치마꼬리를 붙들곤 했다고 한다. <문학에 병들어 있던>형님들과 누이들로 인해 모이면 문학이야기를 하고 했던, 문학이 낯선 학문이 아니었던 환경에서 박상륭의 문학에의 집념은 시작되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죽음을 면대해왔던 박상륭은 어머니 죽음과 함께 고향을 등지게 된다. 어머니는 평생 끊어야 할 집착의 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친에의 집착, <어머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그의 작품창작에의 투혼으로 연결되며 대중으로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60년대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글쓰기를 계속하게 한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때 주목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그가 5백여편이나 되는 <시작(詩作)>을 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소설창작을 하기 전에 학창시절 <시작>을 했었던 경험을 통해 문장의 기본기를 다지는 훈련이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다. 나중에 소설로 장르를 바꾸게 된 것은 시로써는 생계가 어려운 그 당시 우리 문단의 열악한 풍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박상륭은 1959년 장수농고를 1회로 졸업한다. 그는 고교시절에도 계속 시작과 독서에 몰두하며 문예부에서 활동하였고 <위대한 문학가>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고등학교시절의 그는 <지도적 인물이고 장래가 촉망되는 모범적 인물이었으나 자존심이 매우 강한>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성격은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잘 드러나는 점이다. 그에게는 특별히 교우하는 문인이 없다. 그의 정신적 후원자였던 고 김현의 표현(『김현 전집』13권 3부, 「박상륭이란 놈」)에 의하면 <그는 항상 막걸리 한 되와 이문구와 낙지를 먹는다.>고 하여 <이문구라는 친구밖에 친구다운 친구가 없었다>고 말할 정도다. 1961년 그는 서라벌예대 문창과에 입학한다. 이문구는 회고하기를 소설합평회 때 박상륭이 말하는 <세계내의 존재>가 어려워 다들 폭소를 터트린 적이 있는데 박상륭은 자존심과 고집이 대단했고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당당하며 <자기 존재를 분명히 한 작가>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때 이미 자신의 철학적 종교적 사유의 기반을 다지기위한 독서에 매우 열중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1963년 24세 때 『사상계』에 「아겔다마」가 입상하여 등단하게 되고 이어서 「장慣ㅣ傳」(1964년 11월),「南道見聞錄」(1965년 5월)등을 발표한다. 1965년 4월 10일에 서라벌예대 문창과 동기생인 배유자와 결혼한 그는 1965년에 경희대 정외과에 편입학하였다가 휴학한 상태로 금호동에 살림집을 차려놓고 아현동 산번지에서 살면서 막노동 등 공사판을 전전하던 이문구와 매일 만나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 시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때 엄청나게 독서에 몰두하여 사서삼경, 신구약성경, 팔만대장경 등을 탐독하고 그의 소설의 기조를 이루는 종교와 신화의 세계에 대한 이론적 전거를 마련하는 귀중한 시기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의 독서량은 엄청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양한 분야 특히 종교 신화 무속등등에 대해 그리고 캐나다에 가서는 영역판 코란과 아프리카 신화의 연구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다방면에 걸친 연구 및 탐독을 젊은 시절부터 끈기있고 일관되게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소설들에 있는 수많은 각주와 생경하고도 난해한 개념들과 어휘들이 무진장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그것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생존조차 버거운 어려운 상황에서도 끈기 있게 물고늘어진 그의 투자가 평생을 한 주제에 매달려서 잇달아 두 대작을 세상에 내놓게 하였던 것이다.

 1967년에는 당시 어려운 지경에 처한 사상계에 들어가서 사상계가 정상화되면서 문예담당기자로 활동한다. 아내는 1959년부터 국립의료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1968년 9월 밴쿠버로 취업이민을 떠나 Vancouver Genernal Hospital에서 1977년 8월 18일 사직할 때까지 9년간 근무하게 된다. 그 뒤 1969년 3월 21일 박상륭은 6개월 먼저 떠난 아내를 따라 캐나다에 간다. 이즈음에 발표한 작품들을 보면 「뙤약볕」(1966년 10월),「下元甲섣달그믐」(1967년 2월),「詩人一家네 겨울」(1967년 4월),「쿠마場」(1967년 9월),「열명길」(1967년 9월),「山東場」(1968년 1월),「나무의 마을」(1968년 12월),「子正女」(1969년 1월), 「山南場」(1969년 1월),「經外典 세 篇」(1969년 2월)등이 있다. 그는 원고를 주로 그의 유일한 지우인 이문구편에 보냈왔는데 「南道」(1969년 11월),「7일과 꿰미」(1969년),「千夜一話」(1970년 1월),「세 變調」(1970년 5월),「늙은 것은 죽었네라우」(1970년 6월),「늙은 개」(1971년 3월),「최判官」(1971년 6,7월),「山北場」(1971년 12월),「宿主」(1972년 7월),「심청이」(1973년 2월),「왕모傳」(1973년 4월)등을 계속해서 발표하게 된다.

 1970년 9월 비로소 큰딸인 CHRISTINA가 출생한다. 1971년 8월에는 『박상륭소설전집1』을 민음사에서 간행하고 1973년에 『열명길』을 삼성출판사에서 간행한다. 그리고 1973년 8월에 탈고되었던 『죽음의 한 연구』를 들고 1974년 10월 9일 출판하기 위해 일시 귀국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장편의 출판과 관련된 일들을 이문구가 맡아서 1975년 3월 드디어 한국문학사에서 간행하게 된다. 3년여 매달린 끝에 힘겹고도 고통스런 글쓰기를 통해서 출간되었으나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하던 박상륭 소설은 1986년 문학과지성사를 통해서 『열명길』과 『죽음의 한 연구』를 재출간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의 한 연구』를 출판차 한국을 방문한 직후 집필을 시작한 『七祖語論』은 그 뒤로 1990년에 『칠조어론1』이 완성되어 나오기까지 17여 년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 17여 년 그 오랜 세월동안 오로지 『칠조어론』을 출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고혈을 짜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대작인 『칠조어론』이 나올수 있었다. 다분히 다작을 문학적 업적으로 보려고 하고 고갈된 소재와 지쳐버린 작가의식이 역사소설등으로 퇴행하며 자기 자리를 찾아 나가려고 급급해하는, 깊이있는 천착을 하기엔 사유의 밑바닥이 말라버린 물량주의가 판치는 우리 문단의 상황에서 박상륭의 작품에 임하는 자세와 정신이라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 흔한 연재의 과정을 통한 단행본 출간이 아니라 전작 장편의 형태로 작품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가 『죽음의 한 연구』를 탈고하기까지 7.8번 정도의 가필과 수정을 하였는데 이때의 수정이라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작품전체를 통틀어서 처음부터 원고지에 다시 고쳐쓰기를 그렇게 했다고 하니 그의 그 집요한 장인정신과 집념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이것은 『칠조어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박상륭의 글쓰기 방식과 자세는 수많은 문학청년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딸 onDING가 1974년 7월, 셋째딸 AUGUSTINE이 1977년 8월 출생한다. 1982년 3월에는 서점 <READERS RETREAT>를 인수하여 운영하다가 1992년 11월 서점문을 닫는다. 1993년 5월 『죽음의 한 연구』출판차 왔던 이후로 17년 여 만에 한달 여 간 한국을 방문한다. 이렇게 하여 『칠조어론』이 90,91,92,94년도에 각각 3부 4권으로 완성된다. 그외, 1994년 6월에서 10월까지 월간에세이에 「山海記」를 발표하였고 그 뒤 『문학동네』로 지면을 옮겨 「산해기」를 현재 연재하고 있다. 『문학동네』에서 1994년 겨울호부터 1996년 여름호까지 <동화 한 자리>라는 부제로 산문을, 1995년 겨울에 『창작과비평』에서 「로이가 산 한 삶」을, 1997년 3월에는 『현대문학』에 중편 「왈튼씨 부인이 죽은 한 죽음」을 발표하는등, 1994년 12월부터 <NORTHSHORE BOOKS>을 운영하면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2.박상륭의 사유의 원형질-상극적(相剋的)질서 안에서 생명에의 탐구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60년대의 단편들과 1975년도에 발간된 장편『죽음의 한 연구』 그리고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90년대의 『칠조어론』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겠다.

 단편들은 1963년부터 『죽음의 한 연구』가 나오기 이전까지인 70년대 초반에 걸쳐 30편정도가 발표되었다. 이 중에 중편 분량의 작품이 「유리장」「7일과 꿰미」「열명길」「숙주」등이다. 특징적인 것은 그는 연작의 형태로 작품을 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뙤약볕」연작과 「남도」연작 등이 그것인데 장타령 시리즈인 각설이 연작은 『죽음의 한 연구』까지도 포괄하는 것이다. 『칠조어론』이 『죽음의 한 연구』를 감안할 때 그는 평생 한 작품을 쓰기 위해 그 긴 문학적 편력의 길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각각의 연작 시리즈 내의 작품들은 서로 상관관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독립된 형태를 띠고 있다. 1963년도에 발원하여 『죽음의 한 연구』에서 절정을 이루는 박상륭의 소설은 『칠조어론』에서 보이는 선불교에의 경도와는 달리 기독교적인 사유체계를 그 뿌리에 두고 있다. 특히 단편소설들에서는 그 경향이 직접적이고 기독교적 메시아의 열망을 근원으로 하고 있으며, 『죽음의 한 연구』에서는 기독교적 사유체계의 완성과 함께 불교의 한 갈래인 밀교적인 정신세계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칠조어론』에서는 기독교적 사유는 지양되고 선불교적 사유가 기저를 이루게 된다. 기독교에서 라마교로 다시 선불교로 그의 종교적사유의 핵이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비유와 알레고리로 가득한 박상륭의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신화적 공간과 시간안에서 세계의 본질과 구원의 해법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적 종교소설의 형태를 띠게 되는 박상륭의 소설은 필연적으로 난해할 수 밖에 없고 이 점이 그의 작품에의 용이한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다음은 <대중과 유리된 문학이 존립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그가 답한 내용으로 작가의 문학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에게 믿기워지기엔, 이 세상엔 그렇게나 많은 主題들이 있어보임에도, 종합하고 분석하고 다시 종합해본다면, 많이도 말고, 두 종류에로 집약된다고 해옵니다. 그 하나는, 땅에 관계된 것으로서, 투박하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하면 세상을, 보다 밝게 할수 있을 것인가이며, 다른 하나는, 하늘과 관계된 것으로서, 다시 투박하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하면, <죽음>이라는 비극에 맞선 유정을, 그 비극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前者는, 제가 여기서 저기서, 주목해주기를 바라, 육성을 다해 부르짖었던 (셋의 우주와 관련된 것으로서,) 그 구분대로 따른다면, <몸과 말씀의 우주>의 주제며, 後者는, <말씀과 마음의 우주>의 주제인 것은 자명할 터입니다. 그런데, 전자를 후자와, 후자를 전자와 맞선 자리(동궤)에 놓고 보려 하면, 그때 우리들의 이해력에다 혼란을 야기하게 됨은 분명할 터입니다....(중략)....<대중과 유리된 문학이 존립할 수 있는지?>와 같은 부분은, 어떤 부분은, 약간 혼란을 겪고 있어 보이는바, 그런 경우, 그런 혼란은 어떻게 하면 극복되어질 수 있는지를, 한번 실험해 보이고 싶어 그럽니다. (그렇다고 하여, 제가 지금, 별로 써먹지도 못하게도, 하나의 설교자의 꼴을 꾸미게 하게는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 그럴 때, 저의 믿음엔, 이 세상은, <셋의 우주(三世를 휩쌓아 있는 한 세계를 이를 때, 저는 <우주>라는 어휘를 써옵니다)>에 의해, 그것도 相剋的으로 질서체계를 이뤄 있다는 것을(<몸의 우주><말씀의 우주><마음의 우주>) 염두하시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는, 자기가 취급하고 있는 바의 그 주제가, 이런 때는 그러면, 어디에 소속되는 것인가를 가름해보아야 되는데, 그런다면, 김선생께서 情誼을 가지시고 다름아닌 <몸과 말씀의 우주>, 어쩌면 보다 더 <몸의 우주>에 던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됨에 분명합니다. 물론 그러함에도, 禪寺의

<대웅전>은, 오래오래 전에 <칠성각>으로 바뀌어져 버렸을 것이었습니다. 오는 세상을 운영하려는, 모든 메시아 콤플렉스를 가진 이들은, <대중>이라는, 하나의 實한 幻想을 깨는 일부터 성공시키는 일이 권고될 터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두 번째 千年의 섣달그믐이 불어오는, 불길한 황진에 당하고 있음에 분명하여, 神이나, 전능자의 모습을 꾸며서는 안될 것이, 예를 들면 <대중>같은 것이, 神이나. 전능자의 모습을 꾸며 나타나, 모든 <個我>들을 냉큼냉큼 집어 삼키고 있어 보이는데, 세계는 그럼에도, <대중>에 의해 그 진로가 바뀌기도, 좋아지거나 나빠지기도 하는 것이 아니며,

 그 실은, 그 <대중>의 그늘의 무게에 깔려 있는 듯한, 몇 안되는 知的 정예들에 의해, 바뀌기도,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 두신다면, <대중>이란, 그것의 훈륜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의 알맹이 없는 환상, 다시 말하면, 역사라는 큰물의 물결에서 이뤄졌다 스러졌다 이뤄지는 포말과 같은 것보다 더 實함이 없다고 알게 될 것입니다. 역사라는 저 큰 흐름 자체는 그러면, 누구들에 의해 이뤄진 것인가라는 의문은 금방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만, 그것을 이룬 것은, 그 시대 시대를 살고 간 사람들이지, 꼭히 <대중>이어야 할 까닭은 없다라는 대답 또한 뒤따르게 될 것은 뻔합니다. 이러자, <그 시대를 살고 간 사람들>과 <대중>사이에, 어디선지 엇물린 자리가 있어 보이는데가 나타나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자리에서, 제가 이해하고 있는 <대중>에 관해, 장광설을 펴려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컨대, <대중과 유리된 문학이 존립할 수 있는지?>라는 설문은, 이렇게 되어, 이 자리에서 다시 고려해본다면, <충분히 이해력을 계발하지 못한 다수의 독자들과 유리된 문학이 존립할 수 있는지?>라는 식으로 번안이 된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자리엔 그렇다면 문학적 메시아의 출현이 매우 갈급하게 기대되어집니다.

  -1997.7.14서신에서

박상륭의 사변의 장은 방대하여 제대로 독해해내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더구나 그 내용과 더불어 박상륭식의 개성 있고 독특한 문장은 전통적인 소설문법에 익숙해진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박상륭의 소설, 특히 60년대 작품세계에서 찾을 수 있는 공분모라는 것은 메시아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메시아 콤플렉스라는 것은 기독교적 사유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탐색해나가면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깊은 절망감을 문학으로 승화시켜나가면서 자연적으로 갈망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때의 사유는 기독교적 자장(磁場)안에서의 사유이면서 정통기독교에서 행해지는 관점과는 사뭇 다른 입장 오히려 이단적이라 할 만한 위험한(?)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서 지적해야 할 사항은 비록 기독교적  사유가 주조를 이루고 있지만 그런 단선적인 서구적 의미에서의 기독교가 아니라 박상륭식의, 내면화한 상당한 변용을 겪은 기독교적 사유라는 것이다. 주요 모티브가 기독교일 뿐 그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미 질적인 변환의 과정을 겪은, 말하자면 문학적 형상화라는 과정을 통해 연금술적인 변환의 과정을 겪은 것들이라는 것을 밝혀야 할 것이다.

 박상륭의 소설은 <죽음>과 <재생>이란 그의 지속적인 주제의식을 설명해내기 위해 상극적(相剋的)인 두 요소인 <살욕>과 <성욕>이란 모티프를 사용하고 있다. 삶을 위해서 죽음은 필연적이며 죽음을 통해서만이 삶은 가능한 것을 말한다. 그는 남녀의 성교속에서 한 우주를 보고 한 죽음과 삶을 보고 있는데 이것은 조르주 바타이유가 에로티즘을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 이라고 표현한 것과도 연관된다. 이러한 상극적 질서 안에서의 생명성 탐구는그의 작품안에 빈번하게 등장하여 작품의 주요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기이한 정사>와 다소 이해가 안되는 <살해>의 장면에서 드러난다. 이것은 박상륭이 그의 장편 『죽음의 한 연구』에서 <성교란 하나의 명상법이며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놓여진 것이>(p.420)고 성교가 『죽음의 한 연구』를 위한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데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장편 『죽음의 한 연구』에서 나오는 <구도적 살해>라고 불리워지는 것들에 대해 독자가 갖게 되는 의문은 그러므로 박상륭 소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체득할 때 풀릴 수가 있는 것이다.

 3.「아겔다마」와 박상륭의 1960년대 단편들

 1960년대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메시아 콤플렉스의 구현이며 그 안에서 대지적 생명력을 염원하는 생명사상이 흐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메시아 콤플렉스라는 것은 긍정적인 개념과 부정적인 개념모두를 포괄한다. 메시아 콤플렉스와 대지적 생명력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원리의 중층적인 구조로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박상륭은 이 이질적으로 보이는 여러 원리들을 연금술적인 세계관 안에서 융합, 용해해내고 있다. 대지적 생명력은 박상륭이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죽음과 재생의 주제와 연결되는 것으로서 초기소설들에서부터 등장하고 있다. 이후의 작품에서 메시아 콤플렉스는 인물의 득도의 긴 여정을 통해 스스로 주인공 자신이 人神을 구현하는 것으로 변모된다. 스스로 <인신>을 구현하는 것도 연금술적인 세계에서의 <神性>의 회복과 연관된다. 선/악, 하늘/땅등의 이원화된 세계관 속에서 갈등하고 번뇌하던 인물이, 장편으로 전이되어가면서 상호모순된 원리의 통합과정을 거쳐 새로운 생명의 원리안에서 구원의 희망을 역설하는 인물로 변모해간다.

「아겔다마」는 의식적인 전개가 약간 부자연스럽고 경직된 느낌을 주지만 박상륭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특이한 시공간의 설정, 죽음, 가학적인 성의 탐닉, 광기들을 바탕으로 기독교 성서를 패러디하여 구원의 갈망이라는 인간의 본원적인 욕망의 원형을 추구하고 있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늙은 노파>와 <젊은 사내>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그 이후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유형성, <노파>와 <젊은>사내라는 <老/少>의 대비적인 인물형상화를 보여주고 있다. 바라바가 단순한 강도가 아닌 <열심당>의 당수(黨首)로서 묘사하고 예수를 그 반대축인 천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 유다는 예수임이 분명한, <푸른 눈>의 사내를 만나 그로부터 위로를 얻고 추종하였으나 <그 사람은 유다의 지상적인 갈증을 흡족히 해갈시켜주지 못하였으므로 유다의 가슴 밑바닥엔 언제나 외로움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아겔다마」,『사상계』, 1963, p.465)던 인물이다. 작가는 바라바와 예수를 대비시킴으로써 지상/천국, 현실과 생활/관념과 저쪽 세상에 대한 분열되고 이원화된 의식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유다를 내세워 작가가 고민하고 있는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눈>에 대한 묘사를 보면 잘 드러나 있다. 위로 향해 시선을 다루는 파란 눈의 왼쪽눈과 정면을 바라보는 갈색눈의 오른쪽 눈은 유다의 정신세계에 대한 은유로서 지상/하늘의 상호모순된 두 세계를 동시에 혹은 억지로 추구하려는 데서 결과된 <사팔뜨기>라는 불구적이며 기형적인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파란 눈은 <천상>을 상징하는 예수를, 갈색눈은 <지상>을 상징하는 것으로서의 <바라바>등의 열심당원들을 의미한다. 문제는 유다가 갈색의 오른쪽 눈은 정상으로 똑바로 보는데 파란 눈의 왼쪽은 사시(斜視)라고 말하는 데서 드러난다. 작가는 지상적인 것의 가치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눈>의 빛깔에 의한 상징은 중편인 <열명길>에서도 나타난다. 「열명길」에서의 대목수는 <碧眼의 눈>을 가진 인물로 나와 있다. 여기서는 천상/지상의 설정에 대목수가 <혼혈>이라는 외부로부터 들어온 인물임을 통해 외부에서 유입되어온 것들, 예컨대 이념등이 어떻게 정착되어 원래의 의미를 벗어나 퇴행, 도그마화되어가는지를, 혹은 무의미했던 것들이 어떻게 유의미한 것들로 변모되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예수의 파란 눈과 흡사한 눈을 가진, 그 동안 자신을 거두었던 어머니이기도 했던 노파에게서 같은 눈을, 즉 폐쇄되어버리고 불멸 자체인 무(無)로서의 눈을 발견하고 노파를 잔인하게 강간한 후에 유다는 평안을 맞게 된다.  첫 작품인데다 단편이라는 분량의 성격상 박상륭이 표현해내고자 하는 것들이 제대로 담겨지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었지만 그의 소설의 지향점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노파는 치욕스러움으로 자살하지만 그 주검 옆에서 <비로소><평안>을 맞은 유다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다는 <저 세상의 절대적 존재>가 아닌 <인간적인 지상적인 존재로서의 구원자를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파를 강간한다는 것은 자신을 배신한 예수에 대한 보복의 의미를 지니면서 신에 대한 모독의 거리낌없는 감행을 통해 인간의 현실적 삶에 전혀 무용한 신에 대한 조소이다. 노파에 대한 강간을 통해 한 초라한 신의 실상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저 세상>에 있는 신은 어떤 실질적인 힘을 행사할 수도 없는 존재일 뿐이다. 지상적인 갈증을 해결하지 못하다가 바라바들과 어울리는 모습이나 노파의 생계문제로 인해 결국 예수를 팔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초월적인 신을 거부하면서 작가는 인간의 심리와 광기라는 인간 원형질의 탐구를 행하고 있다. 강간은 파괴적인 행위이면서 역으로 그 <파괴>를 통해 새로운 영적<재생>의 길로 들어선다.

 박상륭의 중요한 모티프 중의하나가 바로 이 <살욕>과 <성욕>이라는 상반된 질서의 원리이다. <살욕>은 통과제의적인 것으로 기존모럴의 파괴이면서 지상/천국, 선/악이 공존하고 있음을, 창조만큼이나 파괴또한 불가피한 삶의 원리임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즉. 인간의식의 쌍생아로서의 선과 악의 공존을 설명해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선이 선일 수 있는 것은 악이 있음으로서 가능한 것이고 더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신에 대한 도전장으로서의 강간. 신성모독의 감행을 통해 신을 이 땅 위로 끌어내리려는 작가의식에서 연원되었음을 나타낸다고 본다. 그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살욕>과 <성욕>이라는 타나토스적인 욕망과 에로스적인 욕망이 동일한 것으로서 그려지고 있는 그 원형이 「아겔다마」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승리감과 예수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초월자에 대해 인간이 갖는 의식의 극복을 작가가 내세운 유다라는 인물이 행하는 노파의 강간에서 확인한다. 유다는 무용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예수의 현실적 무력함.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면서 최종적인 자기의 승리를 확인하고 평정을 되찾아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유다가 들여다보고 있던 성서의 「스가랴서」는 메시아의 강림을 예언하고 있는 부분으로서 결국 초자연적인 강림(降臨)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예수를 거부한 것이다. 그러므로 박상륭은 인격적인 예수의 부분보다는 초월적인 존재의 성격에 초점을 맞추어 강한 조소를 보내고 있다.

 

 눈 앞에는 하늘보다도 넓게 보이는 두 개의 파란 눈이 유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웃음도 없고, 다정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워하는 눈도 아닌,-―의미가 바래 버리고 빛이 없는 눈이었다. 그 눈 속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포도주 담그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 방울의 즙도 짜낼수 없는 듯 했다. 그 눈속엔 무(無)가 있고, 휴지(休止)가 있었고 그리고 그것은 불멸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다는 그런 눈을 원하지 않았다. 증오든 사랑이든 그 어느쪽의 의미를 담은 눈을 원했다.

 -「아겔다마」,『사상계』, 1963, p.46

작가가 예수보다는 유다라는 인물 혹은 유다적인 인물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다른 소설, 이를테면 『죽음의 한 연구』]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른바 <구도적 살인>으로 표현되는 <살인>은 6조인 <나>에 의해서 5조촌장에게 행해지고 6조는 7조가 될 촛불중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5조에 대해서 6조가 갖는 위상이나 6조에 대해서 7조가 갖는 역할이란 것은 예수에 대한 <유다>의 역할이나 거의 유사한 <유다적 인물의 변형>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죽음의 한 연구』에서 주인공 <나>가 여러 묘사를 통해서 예수와 방불한 인물로 여겨지면서도 동시에 이 6조의 인물구현은 <혼돈>으로서의 유다적인 것의 강화(强化)를 느끼게 한다. <예수>이면서 동시에 <유다>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상극적>인 것들이 한데 통합되어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에게는 없는 작가 자신의 말로 표현하면 <폐쇄된><無>의 <不感자체>의 인물이 아닌 <증오면 증오, 애정이면 애정>이 깃들인, 인간적인 측면이 강화된, 유다적인 모습이 강화된 그런 예수를 느끼게 된다. 예수가 자신의 구속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유다>라는 악한 인물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듯이 6조나 7조에게서도 <유다>적인 역할을 해줄 인물이 필요했고 그 인물은 각각의 제자에 해당하는 인물들인 6조나 7조에 의해서 행해진다. 예수의 구속사업을 위해 <헌신>했던 유다가 죄책감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것과는 달리 박상륭 소설에서의 인물은 그 죽음을 숙주삼아 득도를 위한, 새로운 재생의 길을 위한 과정으로 이해하고 운명을 수락한다.「아겔다마」는 첫 작품이면서 박상륭소설의 원형질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4.장편화로서의 전조로서의 「유리장」

중편 「유리장」은 장편 『죽음의 한 연구』로 곧바로 이어지는 작품으로 『죽음의 한 연구』의 직접적인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 자신이 밝히듯 <양극을 갖는 타원형>은 성배 전설과 관련된 Fisher Symbolism과 Fisher KIng에서 암시를 받은 것으로 시간에서 오두의 문제와 함께 사복이란 인물의 구도적 편력인 인신(人神)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데 『죽음의 한 연구』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박상륭은 작품을 일종의 신화적인 것으로밖에 가능시킬수 없었던 이유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화적으로밖에 가능시킬 수 없었다는 말은 어느 한 시작에서 어느 한 종말에 걸치는 한 시대를 共時態에서 보았을 때 일어나는 현상 때문인데, 그때 그 한 시대는, 河圖나 洛書같은. 암호만을 남기고, 그 저변에 길게 누운 時體로부터 유리되고, 그래선 그것 자체로서 폐쇄되어버렸던 것이다. 가령, 한 오십 년에 걸친 한 시대를 통시태에서 본다면, 그것은 암호같은

것으로 변해져야 될 이유는 없는 것이며, 문제가 되는 것은 좋은 보습일 것이다. 그런 통시적인 한 시대란. 그 한 시대를 산 어떤 한 인물이나. 집단의 눈과 체험을 통해, 또는 한 이대나 삼대쯤의 성숙을 통해, 그 시대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러면 독자는, 그 시대를 살지 않더라도 그 시대를 살 수 있게 된다. ―나는 <살 수 있게 된다>고 요약했을 뿐이다.―그리고 그러한 방법이란 확실히 고전적이다. 그러나 그 오십년을, 어떤 동시성의 축에서 볼 땐, 반복되지만,時體 저쪽에 암호만 남게 된다. 그러면서 그 암호는. 그 오십년간의 한 시대만의 왕국인 것을 떠나며, 어떻게는 오 초의 것으로도 응축되고, 어떻게는 오천 년의 것으로도 확대되는 공화국이 된다. 다시 다른 단어로 바꾸면, 그 암호란 바로 어떤 구조 그 자체인 것이다.

 -「열명길」, 문학과지성사, 1986, p.409~410

다소 길게 인용되었지만 이러한 관점은 박상륭의 문학적 형상화를 이루어내는 방식일 뿐 아니라 그의 세계관과 역사관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역사관이라는 것은 편협하고 좁은 의미에서의 역사가 아닌 우주적인 광대함을 지닌. 한 개인 안에 전 우주가 용해되어 있는 것으로서의 역사이다. 박상륭이 삶의 본질과 원형을 탐색해나가기 위해 보편적인 신화와 종교, 무속, 연금술등등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을 말하는 방식은 우리의 현실과의 긴밀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육성으로, 직접적인 기술의 방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유리장」에서 대지와 세월과 하늘이라는 <따님><땋님><땉님>은 기독교 삼위일체의 변형으로 시간의 문제와 깊이 연관된다.

 

모든 시간이란, 최초의 시간으로부터 그 끝에 이르는 시간이, 쌓여선, 자꾸만 뒤집혀지는. 그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을 바꾸면, <태초>로부터 그 <최초의 끝>까지의 시간을 제외한 그 이후의 모든 시간은 과거의 시간의 재유출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시간은 그러니까. 미래의 시간이 현재화하며 죽어서 된 그 과거의 시간에서 흘러나오고, 미래의 시간은 그러니까 과거의 시간으로 쌓여가게 된다. 그래서 이 견지에서 보자면, 너나 나나, 또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누구나 어쩌면 우리는 몇만년 전의 할아버지들의 생명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며, 그 할아버지들이 우리의 생명을 살아 버렸는지도 모른다는 결과가 된다.

 -위의책, p.374

 인간이 시간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며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인간이 죽음을 면대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필멸할 신육(身肉)에서 불멸할 신육(身肉)으로서의 연금술적 존재의 변환이라는, 영적인 대오(大悟)를 통해 자연의 섭리라는 죽음까지도 초극할수 있음을,새로운 재생의 문으로의 전환이 가능함을. 죽음과 생명이 한 나무의 두가지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중편 「유리장」과 장편『죽음의 한 연구』에 이르는 그의 문학세계의 지형도를 알수 있게 해주는 원형적인 작품으로 「뙤약볕」연작이 있다. 「뙤약볕」은 세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서 각기 1966년 10월과 1967년 2월 그리고 1969년 1월에 발표되었다. 연작의 첫작품인「뙤약볕1」이 그의 작품중 네 번째 발표된 것을 볼 때 지속적인 작가적 관심사와 작품세계의 주류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알게 해준다.

「뙤약볕」연작은  다른 초기 소설들이 그렇듯이 기독교적 색채가 아주 강한 작품이다. <말>을 모시는 사당이란 설정 자체도 <말씀이 된 육신>이 된 성육신의 패러디임을 알 수 있다. 이 <성육신><人現>이란 것은 그 이후 소설들에게서 박상륭 소설을 독해해내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관문이다. 여기서는 성육신으로서의 예수와 비견될만한 존재로서 <말>을 모시는 사당으로서의 오각입체의 동굴을 설정하고 있다. 바로 이 <오각입체>라는 것이 뒤의 소설들 <유리장>이나 <죽음의 한 연구>등에서 나오는 시간에 있어서의 오두(五頭)의 문제에서의 <5>와 동일한 맥락에 있는 것이다. 60년대의 단편들에서 파편적으로 보이던 박상륭 사유의 원자들이 『죽음의 한 연구』에 이르기 전, 중편인 「유리장」에서 작은 봉우리를 형성하게 된다. <양극을 갖는 타원형>을 도출하게 된 사복은 이 원에는 <시작과 종말의 그 양극이 있고, 종말은 동시에 시작으로, 시작은 동시에 종말로 이어지는, 그 출산과 묘혈이 있다. 영겁을 두고 진행하고, 영겁을 두고 정지하고, 따라서 영겁을 두고 회귀한다. 그리고 그것의 한 극이 양이 되면, 다른 한 극은 음이 되고. 그래서 그것은 음도 양도 아닌, 저 너머의 것이나, 그 아래의 것으로 화한다.>(「유리장」,p.400)고 결론짓고 세월이란 다섯얼굴을 지닌 것이라는 <五頭>의 이론을 제시한다. 박상륭이 전개하는 시간에 대한 기술들은 연금술에서 꼬리를 물고있는 아우로보로스(ouroboros)뱀을 연상시킨다. 이 뱀은 끝도 없고 시작도 없고 생명과 죽음. 창조와 파괴는 끝없는 순환과정으로부터 나온다. <죽음>과 <재생>을 설명해내기위해서 이 상징물을 전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세월이란 다섯의 얼굴을 가진 괴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선 과거,현재,미래가 있고, 그리고 그런 세월이란 가로줄의 모양이고. 헌데 현재는 현재의 시간을가지면서. 세로줄 형상의 두 시간을 동시에 갖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시간은. 그 시간의 현재속에. 가장 적은 시간과 가장 큰 시간을 갖고 있었다. 가장 작은 시간이란. 매 찰나의 전이 속에 끼이는. 그 시중(時中)을 말하며. 가장 큰 시간이란, 그 시간의 현재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시간을 감싸고 있는, 그 우주적 시간을 말한다. 그것은 정지의 시간이며. 무의 시간.......

- 「유리장」 p.401

이 시간과 관련된 오두의 문제는 「뙤약볕3」의 원제가 「子正女」임을 볼 때 이른바 <자정>의 의지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서 드러난 작가의 특별한 시간에 대한 관념을 알수 있다. 자정은, 어제의 끝이고.......내일의 시작이고......헌데 오늘이 끼이지 못했고....... 하, 그것은 (零時)  묘혈(墓穴)이며 산실(産室)이고.....그건, 정말, 그래!  거기서 아마 거소를 잃은, <말>은 살고 있는 모양이다. 

 -「뙤약볕3」 p.133

「유리장」에서는 같은부분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건, 알다시피, 오늘이 어제로, 어제가 오늘로 갈아드는 그 사이의 일정이다. 그러니까 자시란. 오늘의 끝과 오늘의 시작 사이에 있는, 그 공백한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거기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아직 없는데. 그 이유는. 내일이 오늘로 아직 바꿔들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끝나버려 오늘이 오늘이 아닌 오늘이, 아직 어제로 바꿔들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건 일종의 보류나 유예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때 그것은, 내일이 내일이 아니며, 어제가 어제가 아닌 것으로, 뭔지 이해할수 없는 막연한 것으로 남겨지거나 미뤄져 있게 된다.

-「유리장」 p.371

장편 『죽음의 한 연구』이 오두에 대한 설명에서 <양극을 갖는 타원형>을 도출해내면서 최후의 도식으로서의 <陽을 싸아안은 女根>으로 보고 그가 자주 쓰는 육자명주(六字明呪)인 <옴마니팟메훔>인 <연속에 담긴 보석>을 <해골의 골짜기에 세워진 십자가>의 의미와 연결시켜 은유적으로 설명해내고 있다. 특히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시간>개념의 천착을 통해 그 명제를 도출해내고 있는데서 절정을 이룬다. 다음 대목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태어난 어린 아들은 태초부터 있었던 늙은 여호와 자신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아들이며. 이 아들은 또한 늙은 아비 자신이면서, 자기 자신의 아버지가 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한 연구』, p.248

이처럼 박상륭의 소설에서 <시간>의 문제는 작품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연금술에서 말하는 영적인 변성(變性)과도 동일한 맥락이라고 보여진다. 이로 볼 때 박상륭의 문학에 드러난 사유체계는 연금술적 세계관과 기독교가 혼융되어 있어 초기기독교에 미친 연금술의 이론을 연상하게 한다. 연금술사들은 화학작요을 초기기독교의 분파인 그노시스파의 어휘로 설명해내고 있었음을 상기할 때 더욱그렇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서, 족장과 당굴의 대비는 『죽음의 한 연구』에서 장로와 촛불중의 대비와 동궤에 있다. 지상적인 것과 천상적인 것의 대비라는 박상륭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추구되고 있는 주제의식의 표현이다. 이런 점이 「뙤약볕」에서 장편『죽음의 한 연구』를 향한 원형질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말>의 구체적 형상화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오각입체 돌집인 사당의 사당지기로서의 당굴의 고뇌가 다음에 잘 드러나 있다.

주요모티프들이 어부왕 전설과 관련되어 있다 할지라도 주조를 이루는 골격은 시간에서의 오두의 문제나 이른바 <음기의 遺傳>등에서 보이듯이 <역경>에서 보이는 음양사상과 기독교적 죽음과 재생 및 부활을 연금술에서의 화학적 금제조과정에서 보여지는 사물의 변환 및 변화과정의 각각에 해당하는 것으로 환치시켜 설명해내고 있다. 기독교의 핵심적 교리인 <원죄><삼위일체><人現>등의 독특한 해석들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는 바로 위의 설명에서 알수 있다. 종래에 박상륭 소설을 탈역사적인 것으로 규정해버리려는 단선적이고도 부분적인 평가방식에 대한 쐐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하나의 용광로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 『죽음의 한 연구』로서 그동안의 작품들에 간헐적으로 그리고 중복적으로 등장하던 내적 계기와 모티프들을 큰 줄기 안에 융해시켜나가면서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을 통해서 사상적 체계화 및 사유과정을 일단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적 역량은 기독교에 대한 단순한 연구이상의, 실존하는 한 개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고뇌와 그 고뇌를 가능케 하는 사색과 통찰을 수반하는 경우에나 가능한 역사와 현실에 대한 나름대로의 진단에서 가능한 결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5.말씀의 우주에서 마음의 우주로-『죽음의 한 연구』와 『칠조어론』

『죽음의 한 연구』는 1971년에서 1973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쿠마장」에서 시작된 각설이의 방랑과 구도에의 편력은 「유리장」에서 다시「쿠마장」으로 귀환하여 돌아오는 원환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각설이들의 고행과 구도의 길은 동시에    『죽음의 한 연구』에서 걸승이 40일에 걸쳐 유리라는 사막에서 겪게 되는 수도에 해당하는 세속적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수도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각각의 장에서 얻어진 귀결은 재생과 부활의 이루어내기 위한 요나의 고랫속 3일에 해당하는 것과 같은 구도의 여정에해당하고 있다. 죄과에 대한 형벌로 주어진 <마른 늪에서의 고기낚이>와 최후로 나무위에서 7일에 걸쳐 죽어가는 과정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예수와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맞이한 예수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피하지 않고 수락하는 과정이나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

 각설이의 나이가 33세에, 제 17일에서 성서의 <창세기>3장 1~7절에 이르는 내용과 <요한계시록>6장 1~8절의 내용을 예로 들어 원죄와 예수의 죽음 및 부활 그리고 성육신에 대해서 50여페이지에 걸쳐 기술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해석의 독특함에도 불구하고 사유체계가 기독교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작가 자신이 새로이 <변절>과 <개종>을 감행하기까지 그 뒤로 17년이 더걸려<칠조어론>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박상륭의 소설전체는 개종과 변절의 역사며 그 과정을 통해 우주적 작용력을 보여주고자 한다.  박상륭 소설의 특징은 주제의식의 깊이, 그 심오함, 독보적인 형이상학적 소설이라는 것만이 아니라 춤추는 듯 물흐르는 흘러가는 마력같은 문장, 운문같은 산문, 최면에 걸린 듯 만들어버리는 문장에 있다.

하나의 죽음이, 처음에 아주 느리게 살아나고 있었는데, 그때는, 가얏고위를 나르거나 춤추는 손은 손이 아니라 온역이었으며, 청황색 고름이었으며, 광풍이었고, 그것이 병독의 흰 비둘기들을 소금처럼 흩뿌리는 것이었다. 내가 흩뿌려지는 것이었다. 그러며, 내가 저 소리에 의해 병들고, 그 소리의 번열에 주리틀려지며, 소리의 오한에 뼈가 얼고 있는 중에 저 새 하얗게 나는 천의 비둘기들은 삼월도 도화촌에 에인 바람 람드린 날 날라라리리루 루러 러르르흐 흩어지는 는 는느 느등등드 드등 등드 드도 도동동 동도 도화 이파리 붉은 도화 이파리, 이파리로 흩날려 하늘을 덮고 덮어날을 가리고, 가려 날도 저문데, 저문 해 삼동 눈도 많은 강마을, 강마을 밤중에 물에 빠져 죽은 사내, 사내 떠 흐르는 강흐름, 흐름을 따라 중몰이의 소용돌이 잦은몰이의 회오리 휘몰아치는 휘몰이, 휘몰려 스러진 사내, 사내 허긴 남긴 한 알맹이의 흰소금 흰소금 녹아져서, 서러이 봄 꽃질 때쯤이나 돼설랑가, 돼설랑가 모르지......계면(界面)하고 있음의 비통함, 계면하고 있음의 고통스러움, 계면하고 있음의 덧없음이, 그리하여 덧없음으로 끝나고, 한바탕 뒤집혔던 저승이 다시 소롯이 닫겨 버렸다.

 -『죽음의 한 연구』pp.338~339

놀라운 문장이다. 가야금소리와 문장이 한데 어울려 물결치듯이 출렁이며 그 감동을 전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야금소리는 읽는 이의 영혼을 공명시키고 있을 뿐만아니라 소리의 흐름, 글의 유연한 흐름의 굽이굽이에 따라 흔들리며 함께 나부끼고 있다. 『칠조어론』의 문장에 대해서 고 김현이 박상륭문체가 갖고 있는 기묘한 환상감이 <육체없는 육체적 말>(김현,「병든세계와 아프기-칠조어론의 주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죽음의 한 연구』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약동같은 것이 『칠조어론』에서는 서사구조의 약화와 관념의 승함에 따라 다분히 환상감으로 채색된 결과라고 본다.『죽음의 한 연구』이전의 모든 작품들이 이 작품에서 수렴되어 대해를 이루었다가 『칠조어론』에서 사유의 영역을 더욱 깊이 심화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으로 비로소 한국문학은 한 단계 우뚝 올라서게 된 것이다.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나이가 대개 33세라는 것은 예수가 죽음을 맞이한 나이이기도 하고 작가 자신이 『죽음의 한 연구』를 완성한 나이이기도 하다. 예수가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말하고 부활을 설파하고 죽은것처럼 이 작품을 통해 작가 자신이 말할 수 있는 <죽음>의 의미의 통종교적인 탐색뿐만 아니라 삶의 본질과 구원의 여정을 묘파해내고 있다. 그리고 다시 변절과 개종을 시도하여 『칠조어론』을 통해 새로운 칠조를 낳게 되는 것이다. 박상륭의 소설들은 대개 이름이 없고 인물의 어떤 특징에 의해서 명명되곤 한다. 이를테면 <독장수영감>이나 <꼽추><외다리><촛불중><노파><장로><수도부>등으로 말이다. 이러한 무명의 존재에게 이름이 부여되는 유일한 장면이 바로 『죽음의 한 연구』에서 나오고 있다. 자신의 운명과 죽음을 수락하면서 공간으로서의 유리가 하나의 몸을 입고 육화되는 순간인 것이다. 『칠조어론』은 『죽음의 한 연구』에서의 촛불중이 7조가 된다는 가상적 계보를 설정하여 인신적인 구도의  편력을  묘파해내고 있다. <中道[觀]論><進化論><逆進化論>의 3부로 이루어졌는데 『죽음의 한 연구』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를 그동안 일관되게 천착해온 삶과 죽음의식에 대한 심오한 형이상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장장 3부 4권에 걸쳐 펼쳐보이고 있다. 6조가 스승살해라는 구도적 살인 이후에 유리의 촌장이 되었듯이 7조도 6조의 전기인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으로서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역시나 선대에 대한 개종과 변절을 보여주고 있다. 박상륭은 살욕과 성욕. 삶과 죽음이라는 상극적 질서의 세계가 진화를 가능케 하며 마음,말씀,몸의 세 차원으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인간이 도달해야 할곳은 마음의 우주라고 보고 있다.

『칠조어론』과 『죽음의 한 연구』를관통하는 주제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우주는 마음의 우주, 말씀의 우주, 몸의 우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신이 인간과 짐승의 아름다운 부분만 닮은 희랍신화의 우주는 몸의 우주랄수 있고, 예수가 등장하면서 말씀의 우주가 도래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최고로 도달해야할 곳은 마음의 우주가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소설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중략).... 저는 글쓰기를 통해 종교나 샤머니즘과는 다른 어떤 <원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이겟지요. -조선일보 1993.5.11

6.마무리하며

박상륭에 대해서 일반독자들이 낯설어하는 것은 그의 소설이 고급독자들을 겨냥한 것이어서 무척 난해하기도 하지만 극소수의 평론가들을 제외하고는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박상륭을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데도 기인한다. 그의 작품의 완성도나 규모 그리고 사유의 깊이와 그것의 소설적 구현을 염두에 둘 때 그동안 박상륭은 거의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채 그야말로 극히 소수집단의 문학으로서 존립해왔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박상륭과 박상륭의 작품은 문단과 문학사에서 배척되어 고립 소외되어 왔으며 그러에도 불구하고 보석처럼 은은히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의 모순들에 대해서 육성으로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현실반영적인 작품들, 당대성을 띠고 있는 작품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오면서 세상과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는 소설은 역사적인 퇴행 내지는 탈역사적인 공간에 위치지으려했다. 박상륭의 정신적 후원자였던 고 김현이 <그것이야말로, 내 좁은 안목으로는 70년대 초반에 씌여진 가장 뛰어난 소설이었을뿐 아니라. <무정>이후에 씌여진 가장 좋은 소설중의 하나였던 것>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품인 『죽음의 한 연구』에 대한 평가도 몇몇 평가들에 의해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러한 박상륭의 작품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것은 우리문학계의 고질적인 경직성과 불행한 민족현실과 관련된 지사적 문인들이 갖는 근거없는 적대 의식과 파벌의식 그리고 대중추수주의와도 관련있다. 70,80년대 이른바 민중적 리얼리즘일색이었던 우리 문학의 현실에서 또 다른 의미에서의 필자가 <우주적 리얼리즘>이라고 감히 붙여보고 싶은 박상륭의 소설이 갖는 의미는 그러므로 더욱 확장 증폭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굉장히 외로운 작업이었을것이며 고독 그 자체였을 것이다. 더구나 순수문학에서는 이미 불모지로 변한 상업주의 문학만이 판치는 이국땅에서 일상어는 영어로 하고 글은 한국어로 써야하는 이중언어생활에서 오는 극심한 실어증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한획 한획 써 내려간 글쓰기는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거의 목숨내놓고 썼을 전장(戰場)과 같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박상륭의 소설쓰기의 과정은 작가 자신의 구도의 과정이기도 하다 .소설속의 주인공의 구도의 과정, 탐색의 과정이기도 하면서 작가 자신의 모습이 전적으로 투영된 것이다. 자신이 고군분투하며 하나의 우주를 작품속에 품어내고 출산하면서 단순한 문장가로서의 작가, 현실의 모사 내지 반영이라는 소박한 의미의 리얼리즘이 아닌 이 모든 것을 이미 넘어서있는 근원에의 통찰을 감행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그는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작가 자신이 갖고 있던 의문과 혼돈과 교조적인 온갖 이념에의 저항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수 없었을 것이다. 단편적인 사상의 편린들이 점점 살을 입어 생명을 채워 나가는 과정이 곧 소설쓰기의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내부에 가득한 주체할 수 없는 열망. 일종의 문학적 메시아의 도래를 갈망하며 스스로가 그 역할을 수행할수 있기를 희망하였다고 본다. 또한 그것이 종교적 메시아의 출현이 변형된것으로서 문학이 종교를 대신하리라는, 대신할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출발했음이 분명하다. 그 결과 그의 소설의 주체가 종교에의 탐구가 되었고 전 시간을 통해 불변하는 원리를 추출해내고자 했다.

 그가 주장하는 <음기의 유전>이란 개념을 차용해보건대 이젠, 그 동안의 음지에서 벗어나 정당하고 온당한 평가가 그의 작품에온당한 평가가 내려져야 할 때이다. (필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