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삶과 문학을 하나로 꿰멘 보르헤스 / 장석주

나뭇잎숨결 2009. 1. 7. 04:11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소설가다. 보르헤스가 바로 거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내게 특별한 울림을 준다. 나는 언젠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게 되리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반구의 밤하늘에 떠오른 별자리들을 보게 되리라. 
 

 

 

칠일 밤
호르헤 보르헤스·송병선 옮김·현대문학·2004

 

 

 

 

 

 

카프카와 조이스에서 시작한 현대소설의 장강은 보르헤스에 와서 멈춘다. 보르헤스는 카프카를 의식했던가. "나는 카프카가 되려고 했다. 그런 다음에 나는 카프카가 나보다 훨씬 글을 잘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꽃 피우고 마침내 그것을 봉인해 버린 보르헤스는 현대소설의 종착역이다. 보르헤스는 평생에 걸쳐 왕성한 지적 욕구를 보였고, 특히 서사시, 앵글로색슨족의 무용담, 호머의 작품들, 서부극과 갱 영화, 단테와 셰익스피어와 허만 멜빌을 좋아했다. 보르헤스는 소설의 본질이 허구고, 그래서 그의 전 작품을 진지한 익살로 가득 채웠다. 보르헤스는 한 작품에서 가공의 작가가 쓴 가공의 작품을 매우 진지한 태도로 비평한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창안한 이 허구적 문학비평에서 제임스 조이스와 엘리어트 등을 언급하며 이 위작(僞作)에 대한 비평을 정교하게 펼쳐간다.

그 뒤에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당시 일부 평론가가 이 가공의 작품을 실재로 믿고 그것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보르헤스의 문학이 진지한 익살이라는 것을 망각한 비평가들이 한순간에 우둔한 존재로 떨어져버린 것이다. 보르헤스가 프랑스의 유명작가 로브 그리예를 만난 적이 있다. 로브 그리예가 보르헤스를 가리키며 자신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고 고백하자,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했다. "맙소사! 날 실망시키지 말아요."

보르헤스는 세계를 단 한 권의 책에 담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책이야말로 보르헤스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보르헤스가 그런 상상을 한 건 자연스럽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의 관장을 지내고, 무엇보다도 책을 사랑한 사람이었지만 말년에는 눈이 멀었다. 보르헤스는 우주를 무한하고 영원한 도서관이라고 부르고 낙원은 아마도 도서관 형태일 거라고 상상한 사람이다. 눈이 멀었지만 그는 책을 읽어줄 사람을 구해 책을 읽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뒷날 유명한 저술가가 된 알베르트 망구엘이다. 한 서점에서 일하던 열여섯 살의 소년 망구엘은 단골손님인 보르헤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위대한 작가 보르헤스의 아파트에 가서 눈이 먼 그에게 책을 읽어주며 많은 저녁을 함께 보낸다. 보르헤스는 왜 그토록 책을 사랑하고 탐닉했을까.

책은 행복의 가능성을 안겨주는 그 무엇이다. 아울러 책은 이야기이자 시이며, 그 안에는 현실과 세계의 정수(精髓)가 담긴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보르헤스의 말이 떠오른다.

"쟁기와 칼은 손의 확장이다. 망원경은 눈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그 이상이다. 책은 기억의 확장이다." 책은 관습이나 관행, 나태에 무릎을 꿇는 어리석음에서 우리를 구원한다. 보르헤스는 태어난 게 아니라 다독(多讀)과 다독 덕택에 일군 풍부한 상상과 사유를 통해 길러진 작가다. 보르헤스는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다.

보르헤스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은 보르헤스의 불명예가 아니라 바로 노벨문학상의 수치이자 불명예다. 제임스 조이스와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던 것처럼.

불교에서는 자아를 하나의 망상으로 본다. 보르헤스는 불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고정된 하나의 자아를 부정한다. 선불교에 심취한 보르헤스는 이 세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환영이고, '나'는 그 환영 속에 사는 그림자와 같다고 여겼다. '나'는 하나로 특정할 수 없는 그 무엇, 천 개의 자아를 가진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자아라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허상이라고 여기는 선불교의 핵심을 직관으로 꿰뚫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읽은 모든 작가가 바로 나이며,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내가 사랑한 모든 여인이 바로 나다. 또 나는 내가 갔던 모든 도시이기도 하며 내 모든 조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겪는 삶은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사건이다. 의지와 선택으로서의 삶, 행위들로서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종속된다. 불교에서는 그 모든 것이 "업이라고 불리는 정신구조 속에 촘촘히 얽혀" 있다고 본다.

종교는 논리가 아니라 초논리의 기반 위에 선다. 깨달음은 논리를 통해서 오지 않고 직관과 번개와 같은 영감으로 온다. 보르헤스는 명민한 작가적 직관으로 그런 선불교의 핵심에 도달했다.

'칠일 밤'은 보르헤스의 강연집이다. 강연은 1977년에 녹음된 것이지만 처음에 보르헤스는 이것이 글로 옮겨져 출판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태 뒤에 보르헤스는 생각을 바꿔 강연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고 수정한 뒤에 비로소 책을 내놓은 것이다. 칠일 밤은 각각 일곱 개의 주제를 상징한다. 신곡, 악몽, 천하룻밤의 이야기, 불교, 시,
카발라, 실명. 그것들은 보르헤스 문학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보르헤스는 단테의 위대성을 평범한 작가들이 오백이나 육백 페이지로 써야 할 것을 "인생의 암호로서 한순간을 제시하는 것"에서 찾는다.

그것은 보르헤스가 즐겨 쓰던 방식이기도 했다. 보르헤스는 "나는 여러 단편소설에서 그와 똑같은 것을 하고자 했고, 중세 때 단테가 발견한 방법 때문에 만인의 칭송을 받고" 있다고 쓴다. 보르헤스는 위대한 시이며, 위대한 책인 허만 멜빌의 '백경'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고 씌어진 것임을 말한다.

보르헤스는 '악몽'에서 자신이 항상 미로나 거울에 대한 꿈을 꾼다고 고백한다. 보르헤스는 평생을 미로의 악몽과 거울의 악몽과 싸운다. 그것은 도서관, 꿈, 우화, 원형, 밤, 우연, 신화 등과 더불어 보르헤스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미지요, 원형이다.

거울에 대한 공포는 '시'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된다. "거울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끔찍한 일입니다. 나는 항상 거울을 보면서 공포를 느끼곤 했습니다." 거울은 실재를 비추지만, 그것은 본질에서 환영의 세계다. 거울이 이 세계가 먼지와 재스민으로 채워진 허공을 떠도는 운명으로 가득 찬 하나의 거대한 환영의 세계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보르헤스는 자주 지옥의 갈라진 틈에서 흘러나오는 끔찍한 악몽들에 쫓겨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미로에 갇힌 환상에 빠졌다. 미로는 잠과 깸 사이에 펼쳐진 기억이 내는 길이다. 기억은 항상 기억의 기억의 기억으로 연결되고, 그래서 기억은 언제나 모호하다. 그 미로에서 보르헤스는 언제나 길을 잃었다.

보르헤스는 1955년에 장서가 90만 권이나 되는 국립도서관의 관장에 임명된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호세 마르몰과 폴 그루삭에 이어 눈이 먼 채 세 번째로 국립도서관장이 되었다고 말한다. 보르헤스는 아이러니에 대해 말한다. 책과 밤을, 그리고 도서관장과 실명을 동시에 주신 하나님의 아이러니에 대하여. 실명이 보르헤스에게는 완전한 불행이 아니었다. 보르헤스는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잃었다면, 이제 다른 세상을 찾아내자. 아주
오래된 미래, 혹은 머나먼 조상들의 세상.

보르헤스는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찾고 기어코 구원을 찾아낸다. 보르헤스는 실명한 뒤 더 왕성하게 문학과 신화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앵글로색슨어의 청각적인 세상"으로 바꾸며 "애가와 서사시로 가득한 앵글로색슨어의 시구들"을 잔뜩 외우는 것이다. 호머나 밀턴이 실명을 이겨내고 불멸의 작품을 썼듯이 보르헤스도 그랬다. "나는 어둠 때문에 몇 가지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앵글로색슨어, 아이슬란드에 대한 나의 보잘것없는 지식, 수많은 시구에서 느꼈던 기쁨, 어느 정도의 기만성과 어느 정도의 자만심으로 '어둠의 찬양'이라고 이름 붙인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이 모두 어둠의 선물이었습니다." 보르헤스는 자기의 모든 작품은 자전적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보르헤스는 평생 자기 자신에 대한 전기를 쓴 작가다. 보르헤스는 교묘한 방식으로 삶과 문학을 하나로 꿰맨다. 따라서 보르헤스의 삶이 보잘것없다면 그의 소설도 보잘것없을 것이며, 삶이 위대했다면 그의 소설도 위대할 것이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