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시는 후회를 낳고, 후회는 시를 낳습니다.

나뭇잎숨결 2008. 12. 22. 20:43

 

산문의 언어는 딱정벌레의 등처럼 딱딱합니다. 그것으로 연약하고 부드러운 시의 육질을 보호해 줍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산문의 껍질 속에 숨어 있던 속살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늘 생명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급소를 훤히 보여줍니다. 시의 언어는 누가 찌르지 않아도, 상처 없이도 피를 흘립니다.

 

- 이어령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
       

 

하느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별 사탕이나 혹은 풍선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는 없습니다.

너무 얇아서 작은 바람에도 찢기고 마는 까닭입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지요. 하느님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다가
풍선을 손에 든 채로 잠든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느님, 그리고 저 별을 만드실 때,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고통을 느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코피보다 진한
후회와 발톱보다도 더 무감각한 망각 속에서
괴로워하는데 하느님은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느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떨리는 몸짓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느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 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가슴 속 암흑의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가장 향기로운 초원에 구름처럼 희고 탐스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길러
모든 사람이 잠든 틈에 내 가난한 제단을 꾸미겠나이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느님, 당신의 발 끝 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에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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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동안 문단생활을 해오면서 처음으로 시집을 냅니다.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기쁘기도 합니다.

 초승달이든 보름달이든 우리는 달의 한 면 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영원히 어둠에 싸여 있는 달의 이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볼 수는 없어도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인간은 달의 경우처럼 죽을 때까지 남이 볼 수 없는 다른 이면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상상력이 있기 때문에, 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상상 속에서 따오르는, 볼 수 없는 초승달 같은 것, 그것을 우리는 시라고 부릅니다. 

딱정벌레가 있습니다. 겉은 갑추처름 딱딱하지만 뒤집어 놓으면 말랑말랑한 흉부가 있습니다. 생명은 부드러운 것이기에 딱딱한 껍질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상하기 쉬운 온몸을 무쇠로 지키기 위해서 항상 무쇠처럼 단단한 물질에 둘러싸여 지냅니다.

산문의 언어는 딱정벌레의 등처럼 딱딱합니다. 그것으로 연약하고 부드러운 시의 육질을 보호해 줍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산문의 껍질 속에 숨어 있던 속살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늘 생명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급소를 훤히 보여줍니다. 시의 언어는 누가 찌르지 않아도, 상처 없이도 피를 흘립니다.

태초의 공간에는 물질과 반물질이 었었다고 합니다. 상반하는 이 플러스 물질과 마이너스 물질이 서로 부딪치고 결합하면서 거대한 빛의 에너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플러스 물질이 마이너스 물질보다 조금 더 많아 빛이 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질계라고 합니다.

나의 몸 나의 집은 태초게 빛이 되지 못한 플러스 물질의 파편들 가운데의 하나라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반물질을 만나면 그것들은 곧 빛이 되고 섬광이 되어 사라진다고 합니다.

 시의 언어는 반물질인가 봅니다. 리얼한 것, 물질적인 것, 만질 수 있는 견고한 것, --- 시의 언어는 이러한 물질들과 결합하여 빛이 되려고 합니다. 태초에 빅뱅을 일으킨 빛의 대폭발, 그 모방과 축소, 시는 반물질의 추억으로 지금 거친 모래알들을 화약처럼 푹발시켜 불꽃을 만들려고 합니다.

시를 썼습니다,. 절대로 볼 수 없는 그리고 보여서는 안될 달의 이면 같은 자신의 일부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딱정벌레의 껍질 뒤에 숨어 있는 말랑말랑한 내 알몸을 드러내는 것과 가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를 쓰고 나서는 늘 후회합니다. 빅뱅이 일어난 뒤 타다 남은 재처럼 물질에 매달려서 후회를 합니다.그래서 나의 이 첫시집은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기쁜 빛의 축제처럼 즐겁습니다. 나는 아직도 산문의 갑옷으로 무장하여 내 생명의 속살을 지켜갈 수밖에 없는 한 마리 딱정벌레 아니면 중세 때의 한 갑추병입니다.

 

- 이어령,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기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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