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문명 속에 갇힌 인간에게 던지는 '야생'의 의미

나뭇잎숨결 2008. 12. 4. 12:45

박광수, 『참 서툰 사람들』

 

 

어떤 사람은 사랑에 서투르고, 어떤 사람은 대화에 서툴다. 어떤 사람은 화해에 서투르고, 어떤 사람은 이별에 서툴다. 어떤 사람은 일에 서투르고, 어떤 사람은 젓가락질이 서툴다. 어쨌든 그들은 서툴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해 상처를 입기도 하고, 스스로 괜히 못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긴 '서투르다'라는 말을 기분 좋게 들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서투르지 않기를 바란다.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많은 것을 빨리 능숙하게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세상에 서투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세상 일이 원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인데, 잘 풀리는가 싶다가도 꼬이기 일쑤인 게 인생인데 말이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한글을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떼었고, 고등학교 때 좋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파출소를 드나들었고, 대학입시에 낙방해 재수를 해야 했으며, 언젠가는 예비군 훈련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9시 뉴스에 실렸고,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해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으며, 어설프게 사업을 벌였다가 젊은 나이에 꽤 많은 빚을 진 사람, 게다가 늘 뚱뚱하고 변변치 못한 콤플렉스 덩어리였다고 자신을 밝히는 한 사람. 그는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박광수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난 백전백패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늘 패자였다. 어떤 경기나 승부에서 이기려면 능숙함이 필요한 법인데, 내게는 그런 능숙함이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만일 오늘이 어제와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라면 이렇게든 저렇게든 다르게 해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내게 오늘이라는 하루는 늘 생경한 출발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제의 나도 서툴렀고, 어제의 나도 서툴렀고, 오늘의 나도 서툴다."


하지만 그는 한없이 부족하고 서투른 자신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지랄맞더라도 한결같이 지랄맞게' 사는 자기 자신을 감히 사랑한다고 말하며, '삶이란 녀석은 내게 아주 조그마한 행복과 기쁨을 주었다가 금세 다시 빼앗아 간 뒤 고통만 잔뜩 안겨 준다'고 읊조리면서도 결국 또 질지도 모르는 세상이라는 큰 적과의 싸움에 '기꺼이' 응하겠다고 말한다. '날씨야, 네가 암만 추워 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말이다.


『참 서툰 사람들』은 그처럼 모든 게 서투르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 박광수가 써 내려간 책이다. 서툰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때로는 한 줄의 글에, 때로는 한 컷의 사진에, 때로는 한 컷의 만화에 담아내고 있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가슴을 울리는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숨 가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한번쯤 돌아보게 된다. 그가 서툰 사람들에게 주는 마지막 한 마디!
"서툰 이들이여, 서툰 지금을 창피해할 필요 없다. 아니 후일에는 절대 다시 느낄 수 없을 그 느낌을 지금 충분히 만끽하기를 바란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필시 서툰 오늘이 다시 그리워질 터이니 말이다."

강하다. 박광수라는 인간, 사실은 무지 약한데 강한 척이다. 못됐다. 그러나 사실은 조금 착하다. 이 사람, 상처받기 쉬운 울기 쉬운 그러나 멀어지기 쉽지 않은 이 사람. 칭찬받고 싶어 하는 모든 영혼은 외로우니 외로운 내가 말해 줄게. 참 잘했어요. - 황경신(PAPER 편집장)

 

힘들고 지친 날, 나는 가끔 또 다른 내가 있었으면 한다.
내가 날 꼭 안아 줄 수 있게. - 26페이지

그 사람이 왜 좋습니까? 이유요? 그런 거 없습니다. 싫은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고, 좋은 데 어떤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내 심장이 그 사람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 35페이지

어린 시절 몸이 아파서 열이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할 때면, 머리맡에 앉아 밤새 내 이마에 찬 물수건을 대 주시던 어머니는 아픈 내가 안쓰러웠는지,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는지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 아들아, 네가 아픈 건 더 크기 위해서란다. 오늘 밤만 아프고 나면 너는 더 커져 있을 거야"라고..... 그로부터 벌써 20년여 년이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다 자라지 못했나 봅니다. 이 나이에도 사는 게, 사랑하는 게 이토록 아픈 걸 보면 말입니다. 어머니 궁금합니다. 얼마나 더 아파야 하나요? - 29페이지, 내가 아픈 이유

더 이상 밤에 탄산음료와 과자 먹지 않는 것, 만화 가게에서 혼자 낄낄대며 시간 보내지 않는 것, 노는 게 좋아도 오직 일에만 매진하는 것, 어떤 일에도 계산적으로 나만 생각하는 것, 헛되이 사람 만나지 않는 것, 술자리에서 과음하여 허튼소리 안 하는 것, 마음에 없는 일이라도 이로우면 하는 것, 더 이상 사랑 따위는 없다고 믿고 사는 것, 친구들과 어울려 쓸데없는 농담 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모르는 척 지나치는 것...이런 것들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철듦'이라면 절대 철들지 말아야지. 이를 악물며 나의 철들지 않음으로 인해 살기 힘들어도 절대 철들지 말아야지. - 30페이지

혼자라고 느낄 때 외롭지만, 외로워서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을 때 혼자라는 걸 더 절실히 깨닫게 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나쁘고, 더럽고, 치사하기까지 한 제 성격이 전 싫지 않습니다. 그 나쁘고, 더럽고, 치사한 성격이 이 험한 세상에서 이곳까지 저를 밀고 온 힘이니까요. 전 사랑합니다, 제 성격. 그 누가 뭐라 하든. - 43페이지

정말, 진짜, 너무. 이런 단어들이 왜 생겨난 줄 아세요? 그건 단지 '사랑한다'는 말로는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정말, 진짜, 너무. - 48페이지

나는 어쩌면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좋은 형이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좋은 동생이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그저 내 편이 필요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이 내게 다 등을 돌려도 끝끝내 내 편이고야 마는 사람, 세상 사람들이 내게 돌을 던지면 같이 돌 맞아 줄 사람. 나는 친구, 동생, 형, 사랑하는 사람보다도 그저 단 하나, 내 편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 137페이지

솜처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 옷을 벗는다. 먼저 윗옷을 가지런히 접어 개어 놓고, 바지를 벗어 가지런히 접어 개어 넣고, 속옷도 벗어 가지런히 접어 개어 놓고, 마지막으로 그리움을 가지런히 접어 내려놓는다. 하루쯤은 내 모든 걸 내려놓고 편히 쉬어야지. 지치고 슬픈 내 영혼. - 178페이지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그녀는 키가 작고, 피부도 곱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다고.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그녀는 현명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멋진 여자가 아니라고. 그래, 그 말이 다 사실이라고 하자. 그래도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얼마나 더 어리석은 사람들인 게냐. 내가 그들처럼 그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면 사랑에 빠졌겠느냔 말이다. 허, 참. - 45페이지

김밥을 말아 보면 알게 됩니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들어 있는지를, 김밥을 말아 보면 압니다. 그 안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잘 어울리며 살아가는지를. 각박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때 김밥을 말아 보면 알게 됩니다. - 60페이지

쓰러져 다시 일어나려고 애쓰는 내게 또 다른 내가 말한다. 그만, 그만, 그만! 이제 그만 애써도 괜찮아. 충분히 힘들었잖아. 다시 일어나 달리는 것도 분명 중요한 일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잠시만 그대로 있어. 그만, 그만, 그만! 충분히 노력했어. 내가 옆에서 다 지켜봤잖아. 세상 사람들이 몰라준다 해도 내가 옆에서 지켜봤으니 그래도 괜찮아. 조금만 쉬렴. 쓰러져 있는 나도, 쓰러져 있는 나를 쳐다보는 나도 두 눈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그만, 그만, 내가 다 알아. -241페이지, 내가 나에게

비바람을 맞고, 추위를 견디고, 비를 맞고 뜨거운 태양을 견디고, 오랜 시간 외로움을 견디며 꽃이 핀다. 세상의 그 어떤 꽃도 흔들림 없이 피는 꽃은 없다. 지금 흔들리는 것, 다 괜찮다. -160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