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같은 곳에서 아침을 드셨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커피 한 잔과 함께 조간신문을 읽고 계신 곳, 잘 다려 입은 흰색 셔츠에 까만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익숙한 인사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 세련된 음악 하나 흐르지 않는 조용한 그 공간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 에스프레소니 마키아또니 하는 어려운 말을 몰라도 언제든 신선하고 따끈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그곳에, 매일같이 먹어도 질리지 않을 아침메뉴가 있다.
_p.53 <나만의 카페 뤼미에르를 찾아서 다방 모닝세트> 중에서
녹차에 밥을 말아 먹는다는 참으로 미스터리한 음식. 그 맛이 너무나 궁금해 집에 가자마자 봉투 겉에 쓰여 있는 조리법을 따라해보았다. 와사비 색깔을 띠는 국물 안에서 반신욕에 돌입한 하얀 쌀밥, 그리고 그 위엔 정체 모를 건더기들이 올라가 있었다. 일단 비주얼은 비호감. 근데 맛있는 거니까 줬겠지? 점점 사그라드는 기대감을 무시하고 얼른 한 숟가락 떠 먹어봤다.
_p.83 <날카로운 첫인상의 추억 오챠즈케>
자그마한 포장마차 가득 김을 뿜어내고 있던 야끼소바. 널찍한 철판 위에서 타닥타닥 듣기 좋은 소리로 볶이며 저절로 입맛을 자극하던 그것. 하지만 조금 어색한 그 분위기에서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후루룩거리며 먹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엉뚱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내년 이맘 때 또 도쿄에 와야지. 그땐 꼭 함께 야끼소바를 먹어야지.'
_p.102 <4월 이야기 야끼소바> 중에서
사람이 북적대지 않는 평범한 주택가 역에 일단 내려, 역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골목을 굽이굽이 걸어가다 보면 아줌마들 자전거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슈퍼마켓이나 상점가가 나온다. 힘든 여행 일정에 아무리 지쳤어도 그때부터 내 눈은 반짝거리고 발걸음은 한껏 가벼워진다. 상점가에서 좋~다고 채소를 구경하고, 슈퍼마켓 육류코너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나를 그 동네 아이들은 희한하다는 듯 쳐다본다.
_p.130 <내가 편애하는 동네 델리세트> 중에서
쇼핑 가방이 적당히 무거웠졌을 때쯤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있다. 그때가 되면 어김없이 포장마차로 달려가 타코야끼 한 팩을 산다. 초콜릿색 소스와 마요네즈가 X선을 그리고 있는 타코야끼 위에 소복이 뿌려진 초록 김가루. 반가운 마음에 얼른 하나를 입에 넣으면 입천장과 혀와 어금니가 동시에 뜨거워지며, 통통한 문어가 입 안에서 춤을 춘다.
_p.167 <한낮의 맥주타임 타코야끼>
인연이란 참 묘하다.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은 그 만남이 몇 년 후 또 한 번 반복되었으니까. 그 도쿄 여행 몇 년 후, 서울 대형서점 일본 서적코너를 구경하던 중 일본 거리 아티스트들에 관한 인터뷰 잡지를 발견했다. 일본엔 이런 잡지도 다 나오는구나 싶어 신기한 마음에 한장 한장 넘기다 눈에 들어온 낯익은 얼굴! 바로 그때 그 오모테산도에서 만난 아티스트의 모습이었다.
_p.263 <오모테산도, 길 위의 추억 커피 브레이크> 중에서
싱글의 소박한 도쿄 나들이
수많은 싱글들의 추억이 담겨 있을 도쿄.
그래서인지 도쿄는 날이 갈수록 풍성해진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그곳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기 위해
다음 번 도쿄행을 또 기다린다.
조용히 걷고 싶은 도쿄 뒷골목에서 만나는 정겨운 식탁
일본인들이 먹는 소박하고 간단한 한 그릇 음식들과 함께하는 도쿄 느리게 걷기 여행. 도쿄 여행의 추억어린 잔잔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간편하고 저렴하게, 그리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도쿄의 정겨운 한 그릇 음식을 소개한다.
싱글 여행자를 위한 도쿄에서의 한 끼, <도쿄 싱글 식탁>
도쿄 여행과 맛있는 건 좋아하지만 아쉽게도 길치인 안타까운 싱글 여행객을 위해, 맛은 물론이고 혼자서도 맘 편히 들어갈 수 있는 식당, 지도를 미워하고 약도와 친하지 않은 여행자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 혼자 온 손님을 무심한 듯 반겨주는 도쿄의 다정한 식탁을 찾아보았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레 떠오른 도쿄에서의 추억들. 그 모든 얘기들엔 어김없이 인간미 폴폴 풍기는 도쿄의 한 그릇 음식이 있다.
가깝지만 먼 여행지 도쿄는 아무리 봐도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도시다.
그래서일까, 도쿄는 가끔 우리에게 몸으로 말을 건다.
그리고 그 어리둥절한 아픔 이후 우리는 조금씩 달라져 있다.
빈틈 없어 보여도 허점투성이,
하지만 그 허점을 꽁꽁 싸매고 무표정으로 가장한 도시.
그래서 도쿄가 유난히 싱글에게 잘 어울리는 건 아닐까.
-본문 중에서
'사유(思惟)'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0) | 2008.11.17 |
---|---|
성학십도를 올리는 글 (0) | 2008.11.14 |
聖學十圖 (0) | 2008.11.13 |
죠셉 캠벨의 <신화의 힘>과 <그리스로마신화>를 읽기 전에 (0) | 2008.11.01 |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읽기 전에 (0) | 2008.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