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여, 언젠가 그대는 쉬게 되리라. - 헤세
마음이여, 언젠가 그대는 쉬게 되리라. 언젠가 그대는 마지막 죽음을 주고, 고요 속으로 몰입하여,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을 자게 되리라. 때때로 죽음은 황금색 어둠 속에서 그대에게 손짓하고, 때때로 그대는 죽음이 다가오길 그리워하리라. 그대의 나룻배 망망대해에서 떠다닐 때, 이리저리 폭풍에 쫓기며 머나먼 항구를 그리워하듯이. 그러나 그대의 피, 아직은 붉은 파도를 타며 행위와 꿈을 찾아 흔들거리고, 마음이여, 아직은 그대 삶의 충동과 열기 속에 불타오리라. 저 높이 세상의 나무로부터 열매와 뱀이 그대로 하여금 소망과 열망을, 죄와 쾌락을 추구토록 달콤하게 유혹하리라. 수백 가지의 목소리를 가진 노래들이 감미로운 무지개 놀이를 그대 가슴에 연주해주리라. 사랑의 유희가, 쾌락의 원시림이 환희의 경련 속으로 그대를 초대하니, 여기서는 취한 손님이 되고, 저기서는 짐승과 신이 되어, 목적도 없이 경련하며 흥분하고 무기력해지는도다. 예술이라는 조용한 여자 마술사가 황홀한 마술로 그대를 자기 생활 속으로 이끌어가서는, 죽음과 슬픔에 형형색색의 베일을 그려놓고, 고통을 환희로, 혼돈을 조화로 둔갑시키리라. 정신으로 하여금 최고의 유희를 하도록 유혹하고, 죽음은 그대를 별들과 마주서게 하고는, 그대를 세상의 중심점으로 삼아 합창하는 전 우주를 그대 주위에 정돈시키리라. 짐승과 태곳적 진흙으로부터 그대에 이르기까지 조상들 그대 혈통의 수많은 발자취를 보여주고, 그대를 목표로 그리고 대자연의 종착점으로 만들 것이다. 그 다음에 죽음은 어두운 성문을 열어줄 것이며, 신들을 설명해주고, 정신과 충동을 해석해주고, 어떻게 무한한 것이 계속 새로이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리라. 그러고는 유희의 거품을 일게 했던 세상을 이제야 비로소 그대가 새로이 사랑토록 할 것이니, 세상과 신과 우주를 꿈꾼 자가 바로 그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음산한 골목길을 따라가노라면, 거기엔 피와 충동이 소름끼치는 일을 일으키고, 또한 그쪽으로 좁다란 오솔길이 열려 있는데, 거기엔 공포에서 도취가, 사람에서 살인이 꽃피어나고, 범죄가 김을 내뿜고 광기가 불타오르는데, 꿈과 현실을 구분해주는 어떤 경계석도 없으리라. 이 많은 모든 길들을 그대는 가게 될 것이고, 이 모든 유희들을 그대는 유희하게 될 것이며, 하나하나의 길 다음에는 더욱더 유혹적인 새로운 길이 뒤따르는 것을 그대는 보게 되리라. 재물과 돈이란 것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재물과 돈을 경멸하는 것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단념한 채 세상을 멀리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격정적으로 세상의 매력을 열망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저 위로는 신을 향해, 저 뒤로는 짐승을 향해, 어디에서나 행복의 불꽃이 순간적으로 번쩍이리라.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보라! 인간이 되고 짐승이 되고 나무가 되라! 세상의 오색찬란한 꿈은 끝이 없고, 문과 문은 그대를 위해 끝없이 열려 있을 것이며, 그 문마다마다에서 충만한 삶의 합창이 울려퍼지고, 그 문마다마다에서 유혹의 손길을 뻗치며, 덧없는 행복이, 덧없이 자비로운 향기가 그대를 부르리라. 두려움이 그대를 사로잡으면, 체념을 그리고 덕망을 수행하라! 가장 높은 탑으로 올라가 그대 자신을 아래로 내던지라! 그러나 알아두라! 어디에서나 그대는 그저 손님일 따름이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손님이면, 무덤 속에서도 손님이라는 것을. 그대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그대는 새로이 탄생의 영원한 물결 속으로 다시 솟아오르게 되리라. 그러나 수천 가지의 길들 중에서 하나의 길을, 예감하기는 쉽겠지만,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니, 그 길은 온 세상의 생활권을 한 걸음에 측량해내고, 더 이상 잘못됨이 없이 궁극적 목표지에 다다르게 하리라. 이 길을 가게 되면 그대는 인식의 꽃을 피우게 되리니, 즉 죽음도 결코 파괴할 수 없는 그대의 가장 내면적 자아(自我)란 오로지 그대만의 것이지, 이름에 귀 기울이는 세상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나긴 그대의 순례는 오류의 길이었고, 이름 모를 잘못에 속박된 오류의 길이었다. 기적의 길이 언제나 그대 가까이에 있었건만, 어찌하여 그대는 그리도 오랫동안 눈이 먼 채 걸어다니고, 그대의 두 눈이 이 길을 한 번도 보지 못할 정도로 어떻게 그런 마술이 그대에게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이제 마술의 위력도 끝이 나고, 그대는 각성하게 되어, 방황과 관능의 계곡에서 아득히 울려퍼지는 합창소리를 듣게 되리라. 그리고 그대는 외면으로부터 몸을 돌려, 그대 자신에게로, 내면으로 향하게 되리라. 그러면 그대는 고요히 쉬게 되고, 마지막 죽음을 죽게 되며, 정적 속으로 몰입하여,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자게 되리라. |
출처 : 매혹된 영혼
글쓴이 : 지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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