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셸러의 지식사회학: 그 철학적 토대와 전개
이을상
1. 머리말: 지식사회학이란?
지식사회학(Wissenssoziologie)이란 ―그 개념 정의에 따르면― ‘지식의 사회적 피제약성’1) 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식사회학은 20세기 초 독일에서 형성되었으며, “여러 관점 중에서 하나의 관점이 하필이면 왜 이런 형식으로 나타나며, 또한 과거와 동시대의 다른 형식과는 다르게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사회적 문제들에 관한 각자의 견해가 그의 사회적 생활조건에 의존한다는 ‘의존성’을 확인하려는 것이고, 나아가 이 의존성에 근거하여 “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견해와 관점을 갖는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식사회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막스 셸러(Max Scheler, 1874-1928)이다. 셸러는 1924년에 쓴 ‘지식사회학의 문제들’(Probleme einer Soziologie des Wissens)이라는 장편논문에서 ‘지식사회학’(Soziologie des Wissens)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예루살렘(W. Jerusalem)의 ‘인식사회학’(Soziologie des Erkenntnis)을 고쳐 부른 것이다. 어쨌든 셸러는 지식사회학이라는 이름 아래 지식의 생산-분배-소비에 관한 체계적인 경험적 연구를 정초하려 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특수한 세계관이나 선입견이 갖는 사회적 피제약성의 폭로가 필수적이다. 이와 같이 지식의 사회적 피제약성이 드러남으로써 우리는 기존의 알고 있었던 것이 부분적 진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 이 고백을 통해 또한 진리에 대한 올바른 통찰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인간의 지식이 사회적으로 제약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20세기 초에 형성된 독일 지식사회학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된 것이 아니다. (지식의) 사회적 피제약성이 지식사회학의 문제의식으로 주형되기 전에 이미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전통적인 윤리적-종교적 계율의 배후에 있는 그 사회․경제적-정치적 요인을 통찰한 것에서 우리는 지식사회학의 발생사적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압데라의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of Abdera)가 말한 인간척도론(“인간은 만물의 기준이다”)은 사회적 규범이나 법, 관념 등이 인간 스스로 만든 것이며, 따라서 상대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음을 역설한다. 그러나 이 명제는 유감스럽게도 진리의 본성에 대한 성찰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고, 이로써 지식의 사회적 피제약성을 주장한 소피스트들의 견해는 소크라테스(Socrates), 플라톤(Platon),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확립한 장엄한 철학체계에 의해 철저하게 억압되고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환상’을 구별하려는 비판적 지식인은 언제나 있었다. 이런 지적 전통은 근세에 와서 베이컨(F. Bacon)의 ‘우상론’에서 부활되었고, 18세기 말에는 프랑스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이데올로기’(Ideologie) 개념으로 정립되었다. 이와 함께 ‘이데올로기 비판’이 하나의 학적 체계를 갖추게 되는데,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인간의 의식이 사회적으로 제약되어 있음을 밝히고, 이 의식이 사회적-정치적으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폭로하는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 비판과 더불어 지식사회학의 근본명제인 ‘인간의 관념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필연적 산물’이라는 명제도2) 또한 형성된다.
그렇다고 하여 이데올로기 비판이 곧 지식사회학은 아니다. 양자는 물론 등근원적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념적으로 엄밀하게 구분될 필요가 있다. 먼저 양자는 모두 근대 부르주아지사회의 성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중세 봉건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하는 시기에 신흥 부르주아지들은 자신들의 사회적-정치적 기반을 굳히기 위해 새로운 세계관을 도모함으로써 새로운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생성시켰고, 이 이데올로기가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이데올로기 비판’은 비판한다. 여기서 이데올로기 비판은 다만 인식론적으로 고찰되고 있을 따름인데, 이것은 만하임(K. Mannheim)에 의하면 한갓 ‘이해심리학적’(interessenpsychologisch)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3) 이 말은 이데올로기 개념이 ‘거짓말’이나 ‘간계’를 의미하는데 지나지 않고, 아직 ‘사회적으로 필연적인 현상’(gesellschaftlich notwendigen Schein)으로는 확대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데올로기 비판은 지식사회학의 문제제기와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이해심리학적 차원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사회적으로 필연적인 현상으로 고양시킨 것은 맑스(K. Marx)의 공적이다. 맑스는 프랑스 계몽사상가들이 제기한 ‘이데올로기-권력’이라는 문제설정을 ‘이데올로기-계급사회-계급지배’라는 테마로 확대시켜 이른바 ‘상부구조-하부구조’론을 제출한다. 이에 따르면 상부구조에는 정치적-종교적 관념뿐만 아니라 도덕, 법률, 예술, 언어, (철학적-과학적) 지식 등 모든 문화적 소산과 정신적 산물, 계급의식 또는 개인의식을 특징짓는 모든 심리적 상태와 행위들이 속하고, 이에 대해 하부구조인 생산관계는 모든 법률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사회관계 및 사회생활의 모든 과정을 규정하는 토대로 정식화된다. 여기서 지식과 사회적 존재 간에는 명실 공히 하나의 ‘결정관계’가 성립하는데, 이 결정관계가 지식사회학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맑스가 지식사회학―물론 맑스가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지만, 지식사회학의 문제제기는 실질적으로 맑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4) ―을 확립함에 있어서 근거한 방법론은 ‘실증주의’(Positivismus)이다. 맑스에게 실증주의란 부르주아지 관념론을 비판하는 이론적 무기이고, 자본주의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을 해방시키는 과학적 방법이다. 그렇지만 맑스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루카치(G. Lukács)에게 계승되면서 실증주의적 태도는 반실증주의로 바뀌는데, 루카치에 의하면 실증주의는 인간과 자연의 차이를 무시하는 기계론적 접근방법으로 부르주아지 학문의 전형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를 세속화시킨 주된 원인이 바로 이 실증주의에 있다는 것이 루카치의 진단이다. 루카치의 반실증주의적 태도는 비맑스주의적-부르주아지적 지식사회학, 즉 막스 셸러와 만하임의 지식사회학 전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하여 셸러와 만하임에 의해 형성된 지식사회학이 루카치의 노선을 따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셸러와 만하임의 부르주아지적 지식사회학은 맑스주의와 대결하면서 지식의 사회적 피제약성에 대한 통찰에서 당시의 학문적 위기상황을 세계관의 혼란으로 진단하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을 이데올로기 비판과 문화적 종합, 교육엘리트의 역할 등에서 찾는다. 이 점에서 셸러와 만하임은 의견의 일치를 보이지만, 만하임이 ―자신의 ‘동태적’ 지식사회학과는 반대로― 셸러의 지식사회학을 ‘정태적’이라고 규정한 것에서 보듯이,5) 이후 행보에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다. 즉 만하임이 실천적-정치적 이데올로기 비판을 통해 적극적으로 맑스주의에 맞선 것과 달리, 셸러는 지식사회학을 다만 자신이 구상한 ‘철학적 인간학’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초로 삼고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셸러의 거대한 철학체계에서 볼 때 지식사회학은 새로운 형이상학 수립을 방해하는 모든 지적 흐름을 격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셸러의 지식사회학이 높이 평가되는 까닭은 사고와 사회의 관계에서 역사적-사회적 조건으로부터 독립적인 가치와 정신의 세계를 논증하려 한 노력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셸러의 실증주의 비판의 기준과 지식사회학의 인식론적 전제인 ‘현상학적 방법’, 셸러 지식사회학의 핵심인 지식유형론과 사고유형론, 셸러에 있어서 지식사회학과 철학적 인간학의 관계에 관해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2. 반실증주의의 논거로서 ‘현상학’과 지식사회학의 인식론적 전제로서 현상학적 방법
지식사회학이 근대 자본주의적 시민사회의 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은 이미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지식사회학이 왜 하필이면 20세기 초에, 그것도 독일에서 생겨났을까?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에서 출발해 보자. 그것은 당시 독일의 국가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당시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시민계층’의 형성이 순조롭지 못했지만, 비스마르크(O. Bismarck) 이후로 추진되어 온 국가 관료들에 의한 이른바 ‘위로부터 개혁’이 성공함으로써 일약 유럽의 신흥 산업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대량생산에 따른 소비시장의 확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독일은 불가피하게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되고, 이런 역사적-사회적 현실은 독일 지식인들로 하여금 ‘합리주의적 이성’에 대한 회의를 증폭시키는 결과(즉 ‘이성의 도구화’)를 가져왔다. 이런 와중에 전통적으로 이성에 근거하여 안정을 구가해 온 세계관의 붕괴와 함께 정치적 사회세력간의 분열은 실증주의적-감각주의적인 과학주의의 대두와 함께 이념적 분열을 초래했고, 이념적 분열은 곧 서구문명에 대한 전반적인 위기로 파악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 독일이 20세기 초에 처한 지적 상황인데, 이런 시대적 위기를 일찍이 후설(Ed. Husserl)은 ‘학문의 위기상황’으로 규정하고, 이로부터 인간성의 근본적인 생활위기도 나온다고 진단한다. 그 원인을 후설은 실증주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즉 ‘19세기 후반 이후로 근대인의 모든 세계관은 실증과학에 의해 규정되고, 실증과학으로 이룩된 ‘번영’에 현혹되고 있는데, 이런 독단적인 생각은 진정한 인간성을 결정하는 기준의 문제와는 무관한 물음으로의 전향을 의미한다. 단순한 사실과학만이 단순한 사실적 인간을 결정한다.’7) 이에 따르면 실증과학이 주관적인 것을 모두 제거해 버렸으며, 이로써 실증주의가 학문의 이념을 단순한 사실과학(Tatsachenwissenschaft)으로 환원시켜 버렸다는 것이 후설 비판의 요체이다. 이런 실증주의 비판은 다시금 셸러에게로 이어지는데, 후설과 같은 맥락에서 셸러는 당시의 서구 산업화의 전형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콩트(A. Comte)와 스펜서(H. Spencer)의 실증주의를 들고, 이런 실증주의적 원리가 인간 지식이 갖는 근원적인 생명성의 기원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로 인해 인간 지식의 욕구를 오해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와 형이상학적 본질에 관해서도 잘못된 인식으로 인도했다고 비판한다.
종래의 통일성을 추구해 온 서구의 세계관은 19세기 말부터 해체되기 시작하는데, 이런 절대적 의미의 세계관이 와해되기 시작한 원인을 셸러를 비롯한 지식사회학자들은 모두 실증주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실증주의는 근대적 사고의 근본 속성을 상징하는 말인데, 이런 실증주의적 사고의 특징은 자기 사상의 외부에 있는 초인식적 인식근거(예를 들어 칸트의 ‘물 자체’ 개념)를 배제함으로써 사고의 자기 완결성을 주장하는데 있다. 그러나 이런 사고의 자기 완결성은 다른 의미에서 사고의 폐쇄성을 의미하고, 사고의 폐쇄성은 지식산출자의 사회적 존재에 대한 자기 물음으로서 주관성에 대한 탐구와 특정한 지식의 사회적 존재 의의 등에 관한 문제는 폐기시켜 버린다.
이런 실증주의가 지닌 사고의 폐쇄성이 다름 아닌 지식사회학의 형성을 불러온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지식사회학자들의 주장이다. 모든 세계관이나 사고형식은 언제나 역사적-문화적 세계에 대해 통일적 의미를 갖는 바, 이들이 사회적 측면으로 외재화될 때 지식산출과 관련된 인간적 주체의 매개기능을 주체의 자기반성을 통해 해명하려는 것이 지식사회학의 관점이다. 이 관점을 보다 구체화할 때, 지식사회학의 근저에는 세 개의 동기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성의 자기 동일성을 회의하는 ‘역사적’ 관점에서 시대의 ‘전체적’ 인식상황을 사회적 국면으로 외재화시켜 ‘비판’한다는 세 동기가 그것인데, 이때 비판이 반실증주의적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셸러에 있어서 이런 반실증주의의 태도를 가능하게 해 주는 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현상학’(Phänomenologie)이다. 현상학이란 독일관념론이 붕괴된 이후 후설에 의해 고안된 인식비판이론이지만, 셸러는 칸트의 ‘형식주의’ 비판을 통해 마침내 현상학에 이른다. 즉 근대 계몽주의의 완성자로서 칸트는 종래의 합리론적 전통과 경험론적 전통을 인식론적으로 형식과 내용의 결합으로 종합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는데, 먼저 『순수이성비판』이 ‘선천적 종합판단’의 형식에 뉴턴(I. Newton)의 고전물리학을 포섭시켰다면, 『실천이성비판』은 무제약적 ‘정언명령’의 형식에 개인의 욕구를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이 하나의 단순한 원리적 (선천적) 형식에서 근대과학과 실천의 모든 영역을 포섭시켜 탐구하려 한 칸트의 입장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이 ‘형식주의’이다. 칸트의 형식주의는 셸러에 의하면 ‘강철과 청동으로 이루어져 있고’,8) 그런 까닭에 칸트 철학을 내재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의해서는 결코 분쇄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난공불락의 형식주의라 할지라도 관점을 바꿔서 보면, 이미 확립된 형식적 개념에 근거하여 실질내용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에 불과한 것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칸트의 윤리학은 당시의 프러시아적 에토스를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칸트의 형식주의에 항거한 셸러로서는 실천의 영역에서 기존의 형식에 가치를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가치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또한 가치 현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태도결정에 가장 유효한 방법이 다름 아닌 현상학이었다. 현상학은 ‘사상 그 자체로’(zur Sache Seblst)라는 모토가 말해 주듯이, 근세의 관념론에 의해 부당하게 취급되어 온 ‘객관’으로 다시금 전회할 것을 요구한다.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일방적으로 우리의 의식과 의식의 형식 및 기능을 향하는 반면에, 현상학의 ‘객관으로 전회’는 모든 철학함의 출발점인 동시에 확고한 정위점(Orientierungspunkt)을 ‘현상’(Phänomenon)에 둔다. 현상이란 우리의 의식에 주어지는 직접적인 소여(所與, Gegebenheit)의 총체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소여하는 것으로서 현상은 ―실재하는 것의 측면에서 보자면― 실재의 ‘나타남’(Erscheinung)이고, 그것은 사상(事象, Sache)의 본질성을 의미한다. 현상학에서 현상과 본질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의 사상(事象)은 실재하는 현존재(Dasein)를 소유함으로써 시간-공간적인 인과관계 속에서 ‘지금-여기’에 실존하는 것이다. 이런 현존재의 계기들을 배제함으로써 우리는 사상의 구체적인 본질존재(즉 ‘그렇게 있음’, So-Sein)을 소유하게 되는데, 셸러에 의하면 이런 사상의 본질존재를 증류하는 ‘장치’가 곧 현상학이다.9) 따라서 셸러에게 현상학은 하나의 인식비판이론이라기보다 ‘방법’으로서 의의를 갖는다고 하겠다.
방법으로서 현상학은 (현상학적) 경험에서 근원적으로 본질을 ‘직관’하는 방식이다. 이때 직관이란 단순한 감각적 지각과 달리, 근원적 방식에 의해 본래적인 존재자 자신에게로 향하는 감지(感知, Wahr-Nehmung), 즉 지각이다. 이 점에서 셸러는 후설의 전통에 서 있다. 후설에 의하면 직관이란 우리에게 존재와 존재의 원리적 형식을 매개하는 근원적 방식이고, 이를 ‘본질직관’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것이 학적으로 확정되고 전달될 수 있기 위해 후설은 직관의 내용을 현상학적으로 ‘기술’하고 ‘분석’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후설이 인식론적 비판에 천착하는 반면에, 셸러는 후설의 현상학을 계승하여 다만 ‘가치파악’에 적용했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셸러의 현상학적 방법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세계 그 자체와 가장 강렬하고 생생한 그리고 직접적인 결합’에 있다고 할 수 있고, 이런 맥락에서 셸러는 또한 자신의 현상학을 ‘근본적인 경험주의와 실증주의’라고 부른다.10)
그러나 셸러가 실증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하여 그것이 콩트의 실증주의와 같은 것은 아니다. 비록 셸러가 (현상학적) ‘환원’이라든지 ‘직관’이라는 실증주의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셸러의 현상은 콩트의 ‘감각적 소여’와는 전혀 다른 본질적 존재를 가리킨다. 이런 본질을 직관하는 방식인 셸러의 경험주의도 또한 동일하거나 유사한 ‘다수’로부터 하나의 법칙을 도출하는 귀납법이 아니다. 종래의 경험주의 및 실증주의와 달리, 셸러의 현상학은 현상학적 환원(직관)을 통해 하나의 사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 즉 무매개적으로 본질을 간취하는 것이다. 이 본질직관의 내용을 셸러는 ‘현상학적 사실’ 또는 ‘순수사실’이라 부른다.11) 현상학적 사실은 ―현상학적 방법이 다른 방법(경험주의와 실증주의)과 구별되듯이― 다른 사실, 즉 ‘자연적 사실’이나 ‘과학적 사실’과 구별될 때 가장 분명해진다. 먼저 자연적 사실이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에 의한 소박한 신념으로부터 도출된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른다고 믿는 프톨레마이오스적 관념이 이에 속한다. 이런 견해는 우리의 감각에 근거하여 확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과학적 세계관에 의해 단호히 배격된다. 또한 과학적 사실은 자연적 영역으로부터 고도의 상징적 추상화에 근거한다. 예를 들어 천문학에 관한 코페르니쿠스적 구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매우 인위적이고, 현상학적 사실은 이런 인위적 조작을 배격한다. 바로 이 점이 셸러가 실증주의를 비판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자연적 사실이나 과학적 사실과 구별되는 현상학적 사실은 우리 체험 속에 소여된 직관적 내용을 가리킨다. 셸러에 의하면 이 직관적 내용에서 ‘순수사실’, ‘본질’, ‘선천성’ 등은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모두 귀납적 경험에 선행하여 주어지는 ‘무엇’(Washeit)의 가장 근원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말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칸트적 의미에서 오성의 구성물과도 전혀 다른 것이다. 이와 같이 셸러의 현상학적 방법은 우리 지식이 근거하는 전제비판을 통해 ‘사실 그 자체’를 지향하려는 것인데, 이런 전제 비판이 셸러 지식사회학의 인식론적 토대가 된다.
3. 지식의 사회적 피제약성: 지식과 사고의 성격에 관한 셸러의 입장
현상학적 사실을 확정지은 다음, 셸러의 학문적 관심은 점차로 지식 일반의 문제를 향하는데, 이와 함께 셸러의 지식사회학도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셸러는 먼저 콩트의 3단계 법칙과 맑스의 상부구조-하부구조 도식에 대항하여 특정한 세계관과 이론이 생성되고 보급되는 사회적 조건에 관한 일종의 형이상학적 이론을 전개한다. 이로써 사고와 사회의 관계에서 역사적-사회적 조건으로부터 독립적인 정신의 영역을 증명하려는 노력에 의해 셸러의 지식사회학은 주형된다. 이하에서 우리는 먼저 콩트의 3단계 법칙과 관련하여 셸러의 ‘지식유형론’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맑스의 상부구조-하부구조의 도식과 관련하여 셸러의 ‘사고유형론’을 살펴볼 것이며, 끝으로 ‘이데올로기와 진리’의 문제에 관해 언급할 것이다.
가. 지식유형론
셸러는 콩트의 3단계 법칙과 대결하면서 자신의 ‘지식유형론’을 확립한다. 콩트의 3단계 법칙이란 인류의 정신적 진보과정이 최초의 종교(신학)적 단계에서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최종적인 단계로서 실증적 단계에 이른다는 이른바 지식이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단계를 말한다. 그러나 셸러에 의하면 이런 콩트류의 지식발전단계설은 유럽 중심의 편협한 시야에 불과한 것이고, 이런 유럽중심주의는 결국 실증적 사고에 입각한 자연과학이 한갓 자연의 인식과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셸러는 후설이 제기한 ‘유럽학문의 위기’를 간파했던 것이다.
콩트의 오류는 종교와 형이상학이 과학의 발달로 말미암아 점차로 해체되고 사멸한다고 본 점이다. 셸러에 의하면 여기서 콩트는 근대 시민사회의 발흥과 더불어 생겨난 인류의 한 작은 집단의 종교적-형이상학적인 현대사적 퇴폐(Dekadenz)―즉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부르주아지들의 퇴폐―를 종교적-형이상학적 정신 일반의 사멸과정으로 오해한 것이다.12) 이런 오해는 셸러의 입장에서 볼 때 현상학을 몰랐기 때문에 생겨난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에 대해 현상학적 방법에 기초한 셸러는 종교적-신학적 인식과 사고, 형이상학적 인식과 사고 및 실증적 인식과 사고는 지식발전의 역사적 단계가 아니라 인간정신의 본질 그 자체와 함께 주어지는 본질적-지속적인 정신태도와 인식의 형태라고 본다.
물론 셸러는 콩트가 지식의 형태를 세 개―종교적 지식, 형이상학적 지식, 실증적 지식―로 구분한 것을 수용한다.13) 그러나 역사적 발전단계설은 부정한다. 이와 같이 지식의 역사적 발전단계설이 부정됨으로써 종교적 지식과 형이상학적 지식, 실증적 지식은 모두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형태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세 개의 지식유형의 배후에는 동기(충동), 지식의 사회적 기능, 이 지식유형에 전형적인 지도적 인물, 이 인물과 관련된 지식의 전달 형태, 사회적 기원 등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데, 바로 이들 지식의 배후요소들에 대한 탐구가 셸러에 있어서 지식사회학의 과제인 것이다(다음 <표> 참조).14)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지양식 | 동기(충박) | 지식습득의 원천과 그 방법 | 이념형적 지도자 | 사회형식 | 사회적 기원 |
종교 | 구원을 통한 자기유지 | 신과의 접촉을 통한 구원 | 카리스마적 지도자, ‘신성한 사람’, 성직자, 종교인 | 교회 종파 공동체 |
계급 |
형이상학 | 세계와 사물에 대한 의심 | 본질직관을 통한 지혜 | 현명한 사람, 현자 |
학교 | 직업 |
실증과학 | 자연과 사회에 대한 통제의 욕구 | 실험, 연역, 귀납을 통해 만들어지는 수학적 상징의 세계상 | 연구자-학자 | 국제적 과학공화국 | 신분 |
① 먼저 동기의 측면에서 종교는 세계를 조종하는 어떤 신성한 힘, 즉 절대자의 의지에 귀의하려는 충동에 기인한다면,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경이’에 기인하며, 실증과학은 직업적으로 노동하는 인간의 목표와 목적에 따라 자연과 사회를 조종하려는 욕구에 기인한다.
② 인식행동의 측면에서 종교는 인간정신의 수용적 특수한 행동(신과의 접촉을 통한 구원 행동: 예를 들어 소망, 공포, 사랑, 의지, 인식 등)에 기초하고, 형이상학은 본질인식(‘본질직관’), 실증과학은 관찰과 실험, 귀납, 연역에 기초한다.
③ 종교의 목표는 인간과 집단의 구원이고, 형이상학의 목표는 지혜를 통한 최고의 인간 형성이며, 실증과학의 목표는 수학적 상징 속에 세계상을 수립하는 것이다.
④ 종교는 자신의 지도적 유형을 ‘종교인’(homo religious)에서 찾는데, 이런 인간유형은 그의 배타적인 카리스마로 인해 믿음, 추종, 신뢰를 요구한다. 형이상학에서 지도자 유형은 ‘현자’(der Weise)인데, 현자는 세계의 본질구조에 대한 지식체계를 제공해 준다. 실증과학에서 지도자 유형은 ‘연구자’(Forscher), 즉 학자이다. 학자는 세계의 전체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한 부분이나 한 측면을 연구한다.
⑤ 종교인에 상응하는 사회적 범위는 교회, 종파, 교단이고, 현자에 상응하는 것은 고대적 의미의 학교(즉 학파: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학파 등)이며, 연구자에 상응하는 것은 연구조직(예를 들어 대학, 연구소, 아카데미, 학회 등)을 갖고 있는 국제적 과학공화국(wissenschaftlichen Republik)이다.
⑥ 종교로부터 사회적 ‘계급’이 유래하고, 형이상학으로부터 ‘직업’이, 실증과학으로부터 ‘신분’이 유래한다.
셸러는 지식의 유형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의 고삐를 놓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당시 유럽학문의 위기와 관련하여 그의 지식사회학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모든 지식의 최고 규범으로서 통용되고 있는 실증주의의 지배적 지위를 타파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셸러는 실증주의적 방법과 현대과학에 대해 단지 서구사회가 취득한 극히 중요한 획득물임을 인정할 따름이다.15) 다시 말하면 셸러에게 과학이란 기술합리적인 (실증적) 방법에 의해 자연과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을 창조하는데 관심을 가진 근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르주아지 계층의 계급적 산물인 것이다.16)
나. 사고유형론
셸러는 지식의 유형에 따른 사회적 기원을 계급, 직업, 신분으로 정리한다. 이들 계급, 직업, 신분은 다시금 역사적-사회적으로 형성된 무의식적인 집단 편견적 프리즘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고 평가하게 되는데, 이때 편견 그 자체는 정당화 이데올로기로서 의식적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정당화 이데올로기에 의해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집단은 필연적으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라는 두 계급으로 분화된다.17) 물론 이 구분은 맑스가 처음 한 것이지만, 셸러는 이 두 계급―즉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의 ‘이해관심의 전망’(Interestsperspektive)을 그 법칙성의 측면에서 파악함으로써 지식사회학이 각 계급 성원에게 편견에 경도된 이해관심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교육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의 전형적인 사고경향을 셸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18)
① 시간의식의 가치전망주의=하층계급, 가치회고주의=상층계급
② 형성고찰=하층계급, 존재고찰=상층계급
③기계론적 세계관=하층계급, 목적론적 세계관=상층계급
④ 실재론(현저한 ‘저항’으로서 세계)=하층계급, 관념론(현저한 ‘이념의 왕국’으로서 세계)=상층계급
⑤ 유물론=하층계급, 유심론=상층계급
⑥ 귀납, 경험론=하층계급, 아프리오리한 지식, 합리론=상층계급
⑦ 실용주의=하층계급, 주지주의=상층계급
⑧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 과거에 대한 비관적 회고주의=하층계급, 미래에 대한 비관주의, 과거에 대한 낙관적 회고주의(‘고대의 황금 시기’)=상층계급
⑨ 모순을 발견하는 ‘변증법적’ 사고양식=하층계급, 동일성을 추구하는 사고양식=상층계급
⑩ 환경결정론=하층계급, 생득주의적 사고=상층계급
이 구별은 셸러에 의하면 계급적으로 제약된 잠재의식적인 경향을 나타낸 것이고, 한 계급이 지닌 ‘편견’이 아니라 편견을 형성하는 작용의 형식적 법칙을 나타낸 것인데, 이 점이 중요하다. 이를 셸러는 ‘사회학적 우상론’이라 불렀다.19) 그것은 ―외부지각에 관한 베이컨의 우상론과 달리― 사고와 직관, 가치평가를 그 대상으로 삼는 내부지각에 관한 우상론을 말한다. 이와 같이 사회적으로 규정된 우상은 그 성원에게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대상에 관한 형식으로 계급 내부에서 전통적으로 계승되어 온 것이며, 그런 한에서 세계 그 자체를 제공하는 각종 형식의 신념들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이 모두 대립적인 방향에서 세계를 관조하고 사고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셸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하층계급은 언제나 과거의 역사를 탄핵하고 비난하는 경향을 띠는데, 그 이유는 역사야말로 그들을 지금 위치에 처하게 해 준 장본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상층계급은 늘 감사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조망한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결코 인류역사가 유죄인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하층계급은 ‘문화’에 대해 그 기원을 자연주의적인 충동요인에 귀착시켜 버리고, 최고선을 미래의 영역으로 이행시켜버린다. 예를 들어 신앙심 깊은 시대에는 신의 기적에 따라 생겨나는 것을 간절하게 기다려온 것이 최고선이며(종말론), 이상적 사회주의자들(utopischen Sozialisten)은 최고선을 ‘당위’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맑스주의 사회주의자들은 계급 없는 사회를 목표로 하는 ‘자유에의 비약’이 곧 최고선이라고 직관한다.20) 이에 반해 상층계급은 미래에 대해 항상 불안에 가득 찬 시선을 보낸다. 왜냐하면 상층계급은 현실 속에서 늘 하층계급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2.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도 하층계급과 상층계급은 차이를 보이는데, 하층계급이 생성을 고찰하는 반면에, 상층계급은 존재를 고찰하는 경향이 있다. 즉 하층계급은 언제나 새롭게 생성되는 것을 쫓아가고, 상층계급은 역사상의 모든 시점에서 비교적 안정된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의 차이는 하층계급이 역사과정을 활발한 힘의 상호 ‘변증법적인’ 반발관계에서 이끌어냄으로써 ‘끊임없는 생성의 흐름’ 속에 다시금 침전된 것을 역사로 보는 반면에, 상층계급에게 역사과정은 고정된 ‘과거의 왕국’이라는 구조로 되어 있고, 이들은 역사를 마치 ‘위인과 영웅의 기념관’처럼 생각한다.
3. 기계적으로 ‘왜’라고 묻는 것은 사물을 적극적으로 분해하고 작동시켜 재합성하려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이유를 구하려는 욕구는 변화 그 자체를 문제삼는 경우에 ‘추론’의 직접적-부정적인 평가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목적론적 고찰과 ‘의미 충만한’ 세계의 인상은 모두 ‘좋다’고 판단되는 변화를 통해 생겨난다고 보고, 이런 변화에는 우리가 관여할 필요도 없고, 그 운동인(運動因)에 대해서도 ‘왜’라고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기계론과 목적론의 두 범주는 모두 인간행위를 통해 체험된 것이고, 다음으로 자연으로 전용(轉用)된 것인데, 이것을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명령하는 사람[상층계급]에게 범주는 모든 행위 속에 들어있는 목표이념으로서 나타나지만, 명령에 따르는 사람[하층계급]에게 범주는 같은 행위 속에 담겨있더라도 본능적 충격충동(또는 ‘추진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층계급은 언제나 소여된 사회 상태를 안정되고 유의미하며 목적론적이고 객관적인 세계질서의 소산으로서 체험한다. 이에 대해 하층계급이 실재론적인 사고양식에 애착을 느낀다. 왜냐하면 모든 실재성의 체험은 의욕과 관심의 활동에 대한 저항의 체험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런 하층계급과 상층계급의 차이는 다른 대립 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논증할 수 있을 것이지만, 셸러는 이것만으로도 ‘이해관심의 전망주의’를 확립하는데 충분하다고 본다. 이로써 셸러는 더 이상 에토스의 각 대립 항을 언급하는 대신, 맑스의 경제주의가 봉착하는 물신화와 유물론에 대한 비판으로 눈을 돌린다. 즉 셸러는 이해관심의 전망주의가 물신화될 때 과학도 계급 상대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그리하여 맑스의 경우에 ‘부르주아지’과학과 ‘프롤레타리아’과학을 각기 특수한 논리를 가지고 정초하려는 난센스가 생겨난 것이다.21) 이 난센스로부터 맑스는 “사회적 존재가 필연적으로 의식의 형태를 규정한다”는 근본적인 오류에 빠지고 만 것이지만, 셸러에 의하면 이런 계급적으로 제약된 사고양식은 근대 (독점) 자본주의의 ‘이익사회’라는 상황에서 취해진 것이지, 결코 맑스가 생각한 것처럼 역사의 발전단계에 따라 진행되어 온 것이 아니다.
이를 발판으로 하여 셸러는 유물론 비판으로 나아간다. 즉 근대 (독점) 자본주의적 상황에서 맑스의 경제주의는 옳다. 그러나 맑스의 경제주의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오류를 범하고 만다. 즉 첫째로 계급적으로 제약된 우상의 체계들을 사물의 존재 형식 및 생성 형식과 동일시할 때, 둘째로 사상적으로 타당한 사고와 직관, 평가의 형식과 동치시키고, 계급적 이해관심이라는 범주적 전망주의와의 유추를 통해 평가할 때, 셋째로 경제주의를 ‘필연적인’ 사고경향과 직관의 동인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계급에 속하는 모든 개인의 인식적 정신활동이 반드시 이런 경향과 동인에 따라야만 한다는 주장을 인과적 필연이라고 생각할 때 오류가 생겨난다. 이런 사고양식은 셸러에 의하면 원리적으로 극복 가능한 것이다. 즉 그것은 사회학적 우상론에 의해 그 사회학적 법칙성이 인식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것인데, 바로 이 점에서 셸러는 이른바 지식사회학의 실천적-교육적 가치를 찾는다.22)
다. 이데올로기와 진리
셸러의 지식사회학은 우리의 사고가 계급적으로 구속되어 있음을 간파하고, 이런 계급편견과 계급이데올로기는 원칙적으로 극복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렇다고 하여 이데올로기적으로 드러나는 계급 구속적 사고를 우리는 ‘비진리’라고 섣불리 속단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비진리란 일종의 ‘허위의식’을 말하는데, 이런 허위의식은 셸러에 의하면 거대한 형이상학적 도식을 간과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이에 반해 셸러에게 진리란 구체적인 역사 속에 나타난 인간의 실천에 의해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집단들과 계급들이 몫을 나누어 가지는 영원한 객관적 ‘로고스’(Logos)를 말한다. 이 로고스는 역사 초월적인 하나의 원리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 그 자체는 상이한 계급―상층계급과 하층계급―에게 ‘상이한 종류의 형식적 각인’을 자신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각 계급의 보편적 이해관심의 전망주의는 다양한 전망들이 다만 부분적인 진리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셸러에 있어서 영원한 객관적 로고스와 계급 전망적 사고, 진리와 이데올로기의 관계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분적 진리인 이데올로기를 실체화할 때, 여기서 사고는 필연적으로 ‘허위’의 사고, 즉 허위의식으로 나아가게 된다. 셸러는 맑스주의를 피억압자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로 파악한다.23) 그렇다고 하여 맑스주의가 ‘허위’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셸러는 맑스주의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고의 계급적 피제약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한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 다만 맑스의 교리가 허위로 되는 것은 계급의 이해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하나의 세계관 지식으로 실체화되고, 이 실체화가 ‘본질지식’을 대신할 때 생겨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이데올로기 비판으로서 지식사회학의 의의가 있고, 지식사회학은 특정한 이념의 진리 또는 허위에 관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보편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다름 아닌 ‘이념요인’(Idealfaktoren)과 ‘실질요인’(Realfaktoren)이다. 이념요인이란 역사적-사회학적인 실질요인과 독립적인 가치영역과 정신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실질요인으로서 셸러는 혈연, 권력, 경제 등 세 개의 ‘충동’을 든다.24) 이와 같이 셸러가 이념요인과 실질요인이라는 두 영역의 존재론적 이원론에 지식사회학을 정위한 것은 맑스의 상부구조-하부구조의 도식에 존재론적 위엄을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로 독립적이고 이질적인 이념요인과 실질요인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느냐?” 하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한 전통적인 철학적 대답은 관념론과 유물론이다. 그러나 순수 정신적인 것으로부터 물질적인 것을 추론(연역)하는 관념론이나, 순수 물질적-경제적인 것으로부터 정신적인 것을 추론(귀납)하는 유물론은 그 자체 편협한 대답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셸러의 생각이다. 셸러에 의하면 인간의 행동은 “정신적인 동시에 본능적이다.” 그런 만큼 셸러의 지식사회학은 맑스의 상부구조-하부구조의 도식에 출발하지만, 경제적 결정론의 입장에 서 있는 맑스의 ‘경제주의’에 대항하여 정신과 자연(충동)의 관계에 대한 엄밀한 재규정을 역설한다. 즉 인간에 있어서 정신과 자연은 셸러에 의하면 원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으로 환원되어도 안 되고, 다른 쪽의 표현이나 유출로 간주되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셸러의 입장은 전통적인 관념론과 유물론의 견해 및 이로부터 파생되는 의식과 존재의 관계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서 셸러는 “실질요인의 의미맹목적인 운명의 작용에 대해 정신은 무력하다”는 공리를 제시한다.25) 이 공리는 실제로 독일 지식사회학의 중심적 모티브가 되었지만, 동시에 셸러 ‘철학적 인간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4. 지식사회학의 종착지로서 철학적 인간학
지식의 사회적 피제약성 분석에서 출발한 셸러의 지식사회학은 존재론적으로 구분된 두 영역―이념요인과 실질요인―이 역사 속에서 보여주는 협동을 인과적으로 분석하는데 이르러 마침내 완성된다. 셸러에 의하면 인간의 역사는 영원한 정신(즉 이념요인)과 의미맹목적인 생물학적으로 구조화된 충동(즉 실질요인) 사이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이 상호작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먼저 셸러는 실질요인(즉 혈연, 권력, 경제)이 정신사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분석은 문화발전을 설명하는 종래의 지배적인 시각, 즉 인종생득주의, 정치주의, 경제주의를 상대화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왜냐하면 이들 각 입장은 모두 위에서 언급했듯이 하나의 충동을 유일한 결정요인으로 삼는 실체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셸러는 세 요인이 역사적으로 불변한 것이 아니라 발전의 도식 위에서 서로 상이한 작용적 우위를 나타낸다고 본다. 이로써 문명성장의 세 단계가 확정된다.26)
① 혈연관계가 사건의 독립변수를 이루고 집단의 조직형태를 결정하는 단계
② 정치적 권력의 요인들이 국가의 효력에 관련된 활동을 지향하는 단계
③ 경제가 인과적으로 우월성을 갖고 있으며, 경제적 요인이 ‘정신의 수문’을 열고 닫는다는 의미에서 실제적인 사건을 결정하는 단계
이 단계들은 맑스의 경제주의적 분석이 ―경제적 충동이 봉건사회의 권력의지를 대신한 근대적 특성에 비춰볼 때― 정당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사적 유물론의 경제주의적 역사해석은 셸러에 의하면 오직 근대 독점자본주의 상황에서만 통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유물론이 역사적 일반성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역사적 유물론이 잘못이라 하여 셸러는 사회적 존재에 대한 정신적인 것의 자율성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는 종래의 관념론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역사적 유물론은 이미 ‘이성의 간지’를 주장하는 헤겔의 관념변증법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의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오늘날 인간의 문화적 성취는 또한 그때마다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 연원하며, 이때 진리란 특정한 시간의 진리라고 보는 역사적 사고가 사회학적 분석의 공리로서 자리 잡게 된다. 이를 셸러는 이념이 역사적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적 기초를 필요로 하는 동시에 사회집단은 자신들의 성격과 열망을 표현해 주는 적합한 이념을 찾는다는 말로 해석한다. 이와 같이 인간의 역사를 구성하는 두 요인을 이념과 존재로 구분한 것은 맑스의 상부구조-하부구조 도식을 차용한 것이지만, 맑스가 하부구조를 나타내는 집단들이 자신에게 유용한 이념들을 인식하고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전제한 것과 달리, 셸러는 ‘실질적인 역사의 흐름은 정신적 생산의 의미논리적 요구에 대해 전혀 무관하다’는 말로서 이념과 존재 사이의 선택적 친화성을 배격한다. 실질적인 역사와 정신의 역사가 서로에 대해 전혀 상관이 없고, 이념요인과 실질요인이 내용상으로 서로 하등의 형성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영역이 특정한 역사단계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물음과 관련하여 셸러는 실질요인에는 이념과 관련한 사실연관성만을 인정하고, 그 타당성연관은 이념 그 자체에 부여한다. 이것은 예를 들어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이 그 사실연관에서 보자면 일본이 조선을 침공한 것이지만, 그 타당성연관에서 보자면 임진왜란의 성격을 ‘도자기전쟁’으로 규정되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셸러에 따르면 여기서 이념요인은 사실의 인과관계로서 설명될 수 없는 ‘엘리트’의 자유의지와 자유행동으로 환원된다.27) 위에서 우리가 특정한 이념과 가치라고 부른 것도 결국 엘리트의 자유의지와 행동을 가리키는 말인데, 인간의 역사에서 실질요인은 이런 엘리트의 특정한 이념과 가치가 구체적-역사적 상황에서 어떻게 활성화되는가를 결정한다. 이 점에서 엘리트는 인간역사의 ‘적극적인 실현요인’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이들 엘리트는 역사에서 활성화된 이념들의 효과적인 문화보급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구체적 역사에서 엘리트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한 실질요인의 의미 맹목적 작용에 대한 정신의 무력함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셸러에 의하면 그것은 다음과 같다. 즉 이념의 구체적-역사적 운명은 실질요인에 의해 규정되지만, 실질요인 그 자체는 완전히 의미 맹목적으로 발전한다. 정신은 이런 실질사(實質史)에 대해 지체시키거나 촉진시킨다는 의미에서 다만 소극적으로 관여할 따름이다. 그리하여 이념요인과 실질요인은 각기 존재론적으로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고, 각기 자신의 법칙에만 복종하며, 서로에 대해 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두 요인이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실현되었을 때 정신과 충동은 상호작용이 가능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정신은 스스로 자신의 내용에 생명을 불어넣을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바로 이 점에서 정신은 무력한 것이다.
이와 같이 정신의 무력함은 ―관념론과 달리― 실질요인의 가치 맹목적 작용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지 형성적 또는 변화적 간섭을 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렇다고 하여 유물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실질사의 변화 가능한 운명이 정신작용의 지적 내용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구체적 역사 속에서 실질요인은 정신이 현실화되어 출현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정신의) 갑문(閘門)을 열거나 닫는다는 측면에서 규제할 따름이다.28) 여기서 정신과 충동(즉 자연의 충동구조)이 관계하는 고도의 메커니즘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메커니즘이 실제로 일어나는 장소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셸러의 지식사회학은 마침내 ‘철학적 인간학’으로 이행한다. 철학적 인간학이란 지식의 산출자인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근원적 통찰을 말하며, 이런 인간학적 문제제기는 셸러 철학 전반을 관통하는 일관된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 철학의 모든 중심문제들은 인간이 무엇이며, 인간이 존재 전체와 세계, 신 가운데서 어떤 형이상학적 지위와 위치를 차지하는가라는 물음에 귀착된다.’29) 철학적 인간학의 문제란 다시 말하면 근본적으로 존재 전체 속에서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종(種)이 차지하는 형이상학적 위상에 관한 것이고,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정신’과 (생물학적) ‘충동’의 관계에 관한 물음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지식사회학의 ‘이념요인’과 ‘실질요인’의 개념을 정신과 충동의 개념으로 바꿔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
셸러의 철학적 인간학은 먼저 ‘정신’과 ‘충동’의 개념을 해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볼 때 데카르트(R. Descartes)의 ‘심신이원론’의 구조와 유사한 이원론적 구조를 이룬다. 물론 데카르트와 셸러는 정신의 존재가 외연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로 일치하지만, 데카르트의 정신이 ‘자족적’ 특징을 갖는 반면에, 셸러의 정신은 충동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 한에서는 단지 가능성을 지닌 속성일 뿐이며 또한 충동과의 조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려는 어떤 적극적인 ‘힘’도 지니고 있지 않는 무력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의 존재가 의의를 가지는 것은 삶의 충동과 더불어 인간존재의 완성(즉 인간됨)에 관계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신의 존재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생명’(Leben)이라 불리는 모든 것의 바깥에 놓여있고, 정신이라는 말은 ‘아마도 이성이라는 개념도 포함하기는 하지만, 관념적인 사고와 동시에 또한 일종의 직관, 즉 근원적인 현상 또는 본질적인 내용에 대한 직관도 포함하고, 나아가 호의, 사랑, 후회, 외경, 정신적 경탄, 지복과 절망, 자유로운 결단과 같은 특정한 부류의 의지적이고 정서적인 작용도 포함하는 말이다.’30)
이와 같이 정신을 생명과 분리시킴으로써 셸러는 ‘초월’과 ‘비약’이 가능하다고 말한다.31) 즉 정신은 초월과 비약에의 ‘작용’(Akt)이고, 그 작용의 중심에 인격(Person)이 존재한다. 인격이란 셸러에 있어서 매우 특수하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그것은 인간성의 이념인 동시에 고대 그리스와 중세 그리스도교 신화(神化, Gottwerden)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런 인격의 개념이 정신의 작용 가운데 실존한다는 것은 정신이 인간의 생명과정을 이념화한다는 것을 말하고, 이런 의미에서 이념화는 하나의 영원한 과제이고, 영원히 빛나는 목표이다. 그런데 이념화는 위에서 말한 정신의 ‘무능력’과 관련하여 하나의 문화적 내용을 실행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셸러에게 이념은 하나의 ‘결정요인’(Determinationsfaktor)이지 결코 ‘실행요인’(Realisationfaktor)이 아니다. 여기서 셸러의 입장이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정신이란 일종의 소극적 능력으로서 오직 ‘제지(hemmen)하거나 또는 제지하지 않는(enthemmen)’ 능력이다. 따라서 실제적인 행동에서 정신의 능력은 셸러에 의하면 언제나 ‘소극적’(negativ)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정신은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사회와 역사에 대해 ‘힘없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문화의 결정요인으로서 정신에 대응하는 실행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충동이다. 충동이란 ―정신이 우주(또는 가능한 모든 세계)의 관념, 근원현상, 가치, 목표들이라면― 일종의 (근원적) 물질, 에너지, 적극적 능력, 힘 등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충동 그 자체는 정신과 함께 지고(至高)한 존재, 즉 신의 두 속성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기원을 지닌 충동은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고 어떤 목표도 갖고 있지 않지만, 정신에 실질적인 힘을 실어주어 정신이 의도하는 바를 활성화시킨다. 이와 같이 정신이 의도한 바를 활성화시킨다는 점에서 본다면, 충동은 또한 정신에 의해 제지(non fiat)당하거나 제지당하지 않거나(non non fiat) 하는데, 충동은 실행력만 가지고 있을 뿐이고, 결정력은 정신에게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정신이 부재한 충동 그 자체를 상정할 수 있는데, 셸러에 의하면 정신이 충동을 제지하지 않을 때 그 실재성(Realität)은 최대에 이른다. 이와 같이 충동으로부터 형성되는 실재성에 ‘생명 그 자체’가 포함됨으로써 생명은 정신에 대비된다. 그리하여 인간에 있어서 정신과 생명이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불가분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정신과 생명의 이원론이야말로 셸러가 철학적 인간학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의 핵심이다.32)
정신과 생명의 상호작용에 관해 셸러가 제기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즉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력한 정신이 한 특정한 문화적 시기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점이고, 또한 ‘충동이 맹목적이라면 무력한 정신과의 조화도 순조롭지 않을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사실 이런 문제제기는 이원론이 봉착하는 공통된 문제의식 가운데 하나이다. 이에 셸러도 또한 정신과 충동이 서로 활발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종의 매개적 역할을 해주는 ‘사랑’(Liebe)을 요청하게 되고, 이로써 사랑은 인간의 가장 심층적 부분에 놓이게 된다.33) 이런 사랑의 활동에 대해 셸러는 가치를 발견하는 기능을 부여한다. 이 말의 의미는 셸러의 인식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셸러는 인간의 ‘앎’(Wissen)을 단순히 새로운 개념의 취득이라 보지 않고, 모든 (가능한) 사물의 본성에 관계하는 일종의 ‘존재관계’라고 이해한다.34) 바로 이런 존재관계를 일깨워주는 것이 사랑의 역할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어떤 사물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랑은 ―정신의 이념화 작용과 관련하여― 지고한 존재인 신에게까지 확대된다. 그리하여 어떤 지고한 앎의 목표가 (사랑에) 주어지면, 우리는 이를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앎의 주체 스스로가 다른 존재인 신과 역동적으로 관계하는 일종의 ‘됨’(Werden)인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정신은 신과의 수동적 관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신 속에서 사랑하고 관조하며 생각하고 의지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구체적 세계인 대우주와 결합하게 된다.35) 이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철저한 ‘자기희생’에 기초한 아가페적 사랑도 의미를 갖게 된다. 이때 신적인 일에 관여하는 것은 오직 정신 혼자서 가능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충동과의 합일이 있어야만 하는데, 문제는 정신의 활동이 (사랑에 있어서) 신적인 것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충동이 이에 동의해 주리라는 보장이 있겠느냐는 점이다. 더욱이 무력한 정신이 충동을 강요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에 셸러는 다시금 사랑이 어떻게 충동을 정신과의 조화로 유도해 갈 것인가의 문제에 천착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은 사랑을 통해 정신과 충동을 매개하려 한 셸러의 철학적 인간학이 봉착하는 새로운 문제인 셈이고, 이에 대한 대답은 결국 그의 종교철학에서 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이 셸러의 철학적 인간학이 새로운 문제에 봉착한다고 하여 그것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새로운 문제제기는 셸러의 거대한 철학체계가 지닌 유기적 생명력과 역동성을 말해준다. 셸러의 철학은 영원한 ‘생성’ 속에 있다. 즉 셸러는 현상학적 방법론과 가치론에의 관심으로부터 지식사회학의 핵심적 물음에 도달했고, 지식사회학적 물음은 철학적 인간학을 정초하는 토대가 되지만, 철학적 인간학은 다시금 ‘신 생성’이라는 새로운 종교철학의 물음에의 길을 열어준다.
5. 맺는 말
지식사회학에 관한 셸러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는 지식 형성의 인식론적 전제에서 불변적인 이성의 절대적 원칙을 부정한다. 이를 바탕으로 칸트 식의 형식주의는 모든 인간에게 타당한 인식범주라기보다 유럽적인 사고체계의 기반이라는 점을 규명하려 했다. 둘째로 그는 지식의 이데올로기적, 주지주의적, 자연주의적 개념의 특수성을 극복하고 역사에서 지식이 평가되는 과정과 그 다양한 지식의 형태를 찾아내고. 이로써 20세기 초 근대 유럽적 사고의 편협성에 기초한 실증주의에 의해 왜곡되어 온 종교와 형이상학적 지식의 존재 의의를 재평가하려 했다. 셋째로 종래의 세계를 인식하는 범주적 형식과 대상을 위한 이론적이고 관조적인 정신적 태도와 대조적인 실질적-기술적인 태도가 지식 형성에 미친 영향과 유의성을 파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형이상학적 지식과 공리주의적 지식 간의 종합을 이루고자 했다.
이런 셸러의 노력이 가능했던 것은 원천적으로 현상학이 있었기 때문인데, 현상학은 세계를 ‘감각적 소여’(sense-data)로 환원시켜 파악하려는 실증주의에 대항하여 현상 속에서 직접적으로 본질을 직관하는 방식이다. 이런 연유로 셸러의 지식사회학은 처음부터 반실증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더욱이 셸러는 칸트의 형식주의 비판을 통해 현상학에 접근했고, 현상학을 다시금 가치파악에 적용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현상학적 가치론은 자명한 가치기준을 상실한 역사주의와 같은 가치 상대주의적 지향을 공격하고,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가치존재 그 자체의 내용적 파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가치절대주의에 기초하는 셸러의 지식사회학은 나아가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경제결정론’에 의해 설명하려는 맑스의 경제주의를 그 근원에서 비판한다. 이로써 셸러는 역사적으로 제약된 우리 사고를 유형화하는데 ―콩트의 지식발전의 3단계설 비판을 통해 지식의 형태를 유형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성공했다. 이런 그의 방법론적 논리는 ‘지식과 사회의 관계’, ‘인식의 주관적-정신적 과정들’, ‘지식 범주들의 성격 규명’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 적용된다.
그렇다고 하여 셸러의 지식사회학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만하임이 셸러의 지식사회학을 ‘정태적’이라고 비판한 것이라든지, 아도르노가 셸러의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의 도식이 너무 조잡하고 역사의식을 결여한 것이라고36) 비난한 것은 그 만큼 셸러 지식사회학의 현실사회에의 적용 가능성이 낮음을 말해준다. 이런 비판과 비난은 셸러의 학문적 의도가 지식과 사회 간의 경험적 연관성을 논리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인간’에 관한 탐구인 철학적 인간학을 개진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셸러의 철학은 방법론으로서 현상학과 가치론, 지식사회학, 철학적 인간학, 종교철학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이런 관심의 다양성을 간파한 머턴(R. Merton)은 ‘항상 마지막 통찰력을 위해 지적 영감을 발휘해 온 (셸러의) 논리전개의 독특성은 그의 지식사회학적 인식체계 전반에 대한 성격 규명에 어려움을 더해 준다’고 평가한다.37)
이런 저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셸러 지식사회학의 의의를 찾는다면, 역사적 사회와 이념적 문화세계를 창조적인 현실 인간 의식의 지평에서 탐구하여 지식의 사회적 속성을 근원적으로 밝혔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이런 셸러의 지식사회학은 1960년대 이후 ‘현상학적 사회학’의 대두에 기여했는데, 현상학적 사회학은 사회학에서의 계량적 방법이 지닌 한계점이 드러나면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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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 Scheler, ‘Probleme einer Soziologie des Wissens’, Die Wissensformen und die Gesellschaft , 3판, 전집 8권, Bern, 1980, S. 17 참조.
2) Th. W. Adorno, "Beitrag zur Ideologienlehre", Kölner Zeitschrift für Soziologie, Jahrg. 6, Heft 3/4, 1954/5, S. 363.
3) K. Mannheim, Ideologie und Utopie(5 판), Frankfurt/Main, 1969, S. 55.
4) 전태국, 『지식사회학』, 서울: 사회문화연구소 출판부, 2001, 287쪽 참조.
5) K. Mannheim, Essays on the Sociology of Knowledge(London: R.K.P., 1952), 전태국, 위의 책, 307쪽에서 재인용.
6) 이런 의미에서 셸러의 철학적 인간학은 ‘초인간학’(Meta-Anthropologie)이라 불린다.
7) Ed. Husserl,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 전집, Husserliana VI, Haag, 1962, S. 3-4.
8) M. Scheler, Der Formalismus in der Ethik und die Materiale Wertethik(이을상 외 옮김, 『윤리학에 있어서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 서울: 서광사, 1998), 40쪽.
9) H. Spiegelberg, The Phenomenological Movement 1권, the Hague: M. Nijhoff, 1960, p. 240 참조.
10) M. Scheler, ‘Phänomenologie und Erkenntnistheorie’, Schriften aus dem Nachlaß Bd. 1, 전집 10권, Bonn, 1986, S. 380 und 381.
11) M. Scheler, ‘Lehre von den Drei Tatsachen’, Schriften aus dem Nachlaß Bd. 1, 전집 10권, Bonn, 1986, S. 443 참조.
12) M. Scheler, ‘Probleme einer Soziologie des Wissens’, S. 68 참조.
13) 셸러는 세 개의 지식형태를 다른 말로 형이상학 또는 구제의 지식, 본질 또는 교양의 지식, 지배 또는 성취의 지식으로 구별한다. M. Scheler, 위의 책, S. 29. 그리고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M Scheler, ‘Die Formen des Wissens und die Bildung’ Philosophische Weltanschauung, in Späte Schriften, 전집 제9권, Bern, 1976, S. 77 이하 참조.
14) M. Scheler, ‘Probleme einer Soziologie des Wissens’, S. 68 참조. P. Hamilton, Knowledge and Social Structure, An Introduction to the Classical Argument in the Sociology of Knowledge, London: R.K.p., 1974, p. 86.
15) 이런 셸러의 생각은 자연지배를 향해 정위된 서구의 실증과학적 사고에 대항하여 ‘영혼기술’(Seelentechnik)을 지향하는 동양의 형이상학과 종교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으면서 궁극적으로는 서양의 실증과학과 동양의 영혼기술 사이의 조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런 유럽과 아시아의 조화는 근본적으로 유럽 중심의 편협한 실증주의 지식을 지양시켜 장엄한 하나의 문화적 종합(예를 들어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종합)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바로 이 거대한 문화적 종합에서 셸러는 명실상부한 본질적으로 가능한 ‘전인’(全人, Allmensch)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M. Scheler, 위의 책, S. 146, M. Scheler, ‘Erkenntnis und Arbeit’,Die Wissensformen und die Gesellschaft , 3판, 전집 8권, Bern, 1980, S. 210 참조
16) P. Hamilton, 위의 책, p. 75 참조.
17) 이 구분은 셸러에 의하면 방법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것이다. M. Scheler, ‘Probleme einer Soziologie des Wissens’, S. 20.
18) M. Scheler, 위의 책, S. 171.
19) 같은 책, S. 172.
20) 맑스주의는 바로 고대 유대교의 메시아주의를 합리화한 형태이고, 신의 영역에 대한 희망을 세속화시킨 것에 불과하고, 이 점에서 맑스주의는 하층계급에 전형적인 이데올로기라고 하겠다. 같은 책, S. 171.
21) 같은 책, S. 175
22) 이 점에서 셸러는 지식사회학을 특히 ‘계급의 지식사회학’(Wissenssoziologie der Klassen)이라 부른다. 같은 책, S. 173.
23) 하층계급에 전형적인 이데올로기로서 맑스주의는 셸러에 의하면 바로 고대 유대교의 메시아주의를 합리화한 형태이고, 신의 영역에 대한 희망을 세속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같은 책, S. 171.
24) 같은 책, S. 17. 이에 따르면 위에서 말한 계급 구속적 사고의 일면적 실체화란 실질요인에 의해 제약되고 있는 사고를 보편적인 이념요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설명하려 할 때 생겨나는 것이며, 또한 사실에 부합하는 객관적으로 타당한 사고를 가치평가의 형태와 동일시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25) 같은 책, 21-22.
26) 같은 책, S. 44-45.
27) 같은 책, S. 39.
28) 같은 책, S. 40 참조.
29) M. Scheler, ‘Zur Idee des Menschen’, Vom Umsturz der Werte, 전집 3권, Bern, 1972, S. 273
30) M. Scheler, Die Stellung des Menschen im Kosmos, Bern, 1978, S. 38.
31) 여기서 말하는 초월과 비약이란 정신적 존재로서 인간이 그의 신체와 환경의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고, 그것을 넘어서 전진적으로 비약할 수 있는 운동을 말한다. 이로써 인간은 자연과 신 사이에 놓여있는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두 영역간의 ‘다리’, ‘이행’ 또는 ‘운동’임을 나타내게 된다. 초월과 비약에서 인간은 모든 자연과 본질적으로 구별되고 모든 삶을 능가하는 한편, 또한 대상을 파악하는 작용으로서 대상 존재의 ‘여기 지금’(hic et nunc)의 현존재로부터 독립하여 내용의 연관에 관계하는데, 이를 셸러는 ‘세계개방성’이라 부른다. 즉 세계개방성이란 ―동물이 그의 환경 속에 몰아적으로 몰입해 있음에 반해― 인간의 정신은 동물과 반대로 환경을 저항의 중심체로 파악함으로써 세계를 소유하는 능력을 말한다. 즉 세계개방성은 환경을 세계로 확대시키는 능력이다. 이로부터 또한 인간 정신에 의한 이념화도 가능해진다.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이을상, ‘막스 셸러에 있어서 인간의 본질과 형이상학의 문제’, 『철학논총』, 제9집, 1993, 79-101쪽 참조.
32) 생명과 정신을 존재론적으로 분리시킴으로써 셸러는 정신의 정체성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셸러는 인격의 개념을 제시하는데, 셸러에 의하면 인격은 첫째로 어떤 대상화할 수 없고, 둘째로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본질적 징표가 되며, 셋째로 이로 인해 인간은 전 우주와 본성적으로 동일하고(소우주), 넷째로 인간이 인격으로 나아가는 그 지점에 정신의 핵심적인 측면, 즉 ‘삶의 정신화’가 놓여있다는 것이다. 셸러의 인격론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이을상, 『가치와 인격』, 서울: 서광사, 1996, 149쪽 이하 참조.
33) 셸러의 사랑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이을상, ‘막스 셸러의 사랑의 本質巧’, 『철학논총』제6집, 1990, 159-185쪽 참조.
34) M. Scheler, ‘Erkenntnis und Arbeit’, S. 204.
35) M. Scheler, Der Formalismus in der Ethik und die Materiale Wertethik, S. 396.
36) Th. W. Adorno, "Beitrag zur Ideologienlehre", S.173.
37) R. Merton, Social Theory and Social Structure, New York: Free Press, 1968, p.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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