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자전거의 연애학 / 손택수

나뭇잎숨결 2022. 3. 5. 11:39

자전거의 연애학 / 손택수

 

 

 

 

홀아비로 사는 내 늙은 선생님은 자전거 연애의 창안

자다 그에 따르면 유별한 남녀 사이를 자전거만큼 친근

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일단 자전거를 능숙하게 탈

줄 알아야 혀 탈 줄 안다는 것, 그건 낙법과 관계가 있지

나는 주로 하굣길에 여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점찍어

둔 가방을 낚아채는 방법을 썼어 그럼 제깐 것이 별수 있

간디, 가방 달라고 죽어라 뛰어오겠지 그렇게만 되면 만

사가 탄탄대로라 이 말이야 지쳐서 더 뛰어오지 못하는

여학생 은근슬쩍 뒤에 태우고 유유히 휘파람이나 불며

달려가면 되는 것이지 뒤에서 허리를 꼭 잡고 놓지 못하

도록 약간의 과속은 필수항목이고, 그렇게 달려가다 갈

대숲이나 보리밭이 나오면 어어어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네 이를 어째 가능한 으슥한 곳을 찾아 재깍 넘어지는

거야 그러고는 아주 드러누워버리는 것이지 어째 허리가

펴지질 않는다고, 발목이 삐끗했나보다고, 아무래도 여

기서 쪼깐 쉬어가는 게 낫겠다고......아울러 이 모든 일

엔 품위가 있어야 혀 서화담이 황진이 만나듯인 아니더

래도 서규정이 직녀를 만나듯은 격이 있어야 된단  이 말

씀이지 이것이 요즘 너희 젊은것들 잘 나가는 오토바이

나 스포츠카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자전거 연애라는 것

이야 허허허 좋은 세상이란 그런 것이지 젊으나 젊은것

들이 불알 두 쪽만 갖고도 연애를 걸 수 있는 세상이지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한 말씀 더 남기신다 그런데 그 맛

에 너무 깊이 빠지면 못써, 잘못하면 나처럼 이 나이껏

혼자서 살아야 할 테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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