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생명의 서(書) / 유치환

나뭇잎숨결 2022. 2. 15. 17:23



생명의 서(書)/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死滅)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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