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새에 대한 반성문/복효근

나뭇잎숨결 2021. 12. 12. 10:58
새에 대한 반성문
복효근

 


춥고 쓸쓸함이 몽당빗자루 같은 날
운암댐 소롯길에 서서
날개소리 가득히 내리는 청둥오리떼 본다

 


혼자 보기는 아슴찬히 미안하여
그리운 그리운 이 그리며 본다
우리가 춥다고 버리고 싶은 세상에

 


내가 침뱉고 오줌 내갈긴
그것도 살얼음 깔려드는 수면 위에
머언 먼 순은의 눈나라에서나 배웠음직한 몸짓이랑

 


카랑카랑 별빛 속에서 익혔음직한 목소리들을 풀어놓는
별, 별, 새, 새, 들, 을, 본다
물속에 살며 물에 젖지 않는

 


얼음과 더불어 살며 얼지 않는 저 어린 날개들이
건너왔을 바다와 눈보라를 생각하며
비상을 위해 뼈 속까지 비워둔 고행과

 


한 점 기름기마저 깃털로 바꾼 
새들의 가난을 생각하는데
물가의 진창에도 푹푹 빠지는

 


아, 나는 얼마나 무거운 것이냐
내 관절통은 또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이냐
그리운 이여,

 


네 가슴에 못박혀 삭고 싶은 속된
내 그리움은 또 얼마나 얕은 것이냐
한 무리의 새떼는 또

 


초승달에 결승문자 몇 개 그리며 가뭇없는
더 먼 길 떠난다 이 밤사
나는 옷을 더 벗어야겠구나

 


저 운암의 겨울새들의 행로를 보아버린 죄로
이 밤으로 돌아가
더 추워야겠다 나는

 


한껏 가난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