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새를 위하여/황인숙

나뭇잎숨결 2021. 11. 20. 09:58

 

새를 위하여

 

 

-황인숙

 

 

 

우리는 서로 얼마나 닮았는가, 새여

그대 날개에 돋는 소름으로

땅거미를 지나칠 때

나무들은 둥지를 기울여 보인다.

일기장 갈피에서

잘 마른 시간이 너눌너울 떨어져

부리 끝을 스친다.

 

나무를 지워버리렴.

그 둥지가 여기가 아니고

항상 저 너머인 나무.

항상 한 가지에서 다른 가지로

날으는 순간만 '여기'일 새여.

 

내 굴 입구의 금빛 나무가 쓰러지며

내뻗은 검지손가락에

지평선이 걸려 터졌을 때

내가 방향을 버리고 고개를 쳐들었듯

그대, 나무를 지워버리렴.

 

글쎄, 그대가 왜 날개에 소름이 돋아

땅거미에 걸려 바둥거릴 것인가?

나무를 지워버리렴.

그러면 그대는

어디서나 자유.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둥지를 위해서는 날을 것 없이

온 벽이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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