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위하여
-황인숙
우리는 서로 얼마나 닮았는가, 새여
그대 날개에 돋는 소름으로
땅거미를 지나칠 때
나무들은 둥지를 기울여 보인다.
일기장 갈피에서
잘 마른 시간이 너눌너울 떨어져
부리 끝을 스친다.
나무를 지워버리렴.
그 둥지가 여기가 아니고
항상 저 너머인 나무.
항상 한 가지에서 다른 가지로
날으는 순간만 '여기'일 새여.
내 굴 입구의 금빛 나무가 쓰러지며
내뻗은 검지손가락에
지평선이 걸려 터졌을 때
내가 방향을 버리고 고개를 쳐들었듯
그대, 나무를 지워버리렴.
글쎄, 그대가 왜 날개에 소름이 돋아
땅거미에 걸려 바둥거릴 것인가?
나무를 지워버리렴.
그러면 그대는
어디서나 자유.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둥지를 위해서는 날을 것 없이
온 벽이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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