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거울에 비친 괘종시계 /황지우

나뭇잎숨결 2024. 6. 30. 09:49

거울에 비친 괘종시계

  

 

 

-황지우

 

 

  나, 이번 生은 베렸어

  다음 세상에선 이렇게 살지 않겠어

  이 다음 세상에선 우리 만나지 말자

  ……

 

  아내가 나가버린 거실;

  거울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나이가 있다 치자

  그는 깨우친 사람이다

  삶이란 게 본디, 손만 댔다 하면 中古品이지만

  그 닳아빠진 품목들을 베끼고 있는 거울 저쪽에서

  낡은 괘종시계가 오후 2시를 쳤을 때

  그는 깨달은 사람이었다

 

  흔적도 없이 지나갈 것

 

  아내가 말했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야

  당신, 이 지독한 뜻을 알기나 해?"

  괘종시계가 두 번을 쳤을 때

  울리는 실내:

  그는 이 삶이 담긴 연약한 膜을 또 느꼈다

  2미터만 걸어가면 가스 밸브가 있고

  3미터만 걸어가도 15층 베란다가 있다

 

  지나가기 전에 흔적을 지울 것

 

  괘종시계가 들어가서 아직도 떨고 있는 거울

  에 담긴 30여 평의 삶: 지나치게 고요한 거울

  아내에게 말했었다: "그래, 내 삶이 내 맘대로 안 돼!"

 

  서가엔 마르크시즘과 관련된 책들이 절반도 넘게

  아직도 그대로 있다

  석유 스토브 위 주전자는 김을 푹푹 내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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