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시에게/황지우

나뭇잎숨결 2024. 6. 30. 09:45

시에게     

 

 

-황지우

                                             


한때

시에 피가 돌고,

피가 끓던 시절이 있었지;

그땐 내가 시에 촌충처럼 빌붙고

피를 빨고 앙상해질 때까지 시를

학대하면서도, 딴에는 시가 나를 붙들고 놔주질 않아

세상 살기가 폭폭하다고만 투덜거렸던 거라.

이젠 시에게 돌려주고 싶어.

피를 갚고

환한 화색을 찾아주고

모시고 섬겨야 할 터인데

언젠가 목포의 없어진 섬 앞, 김현 선생 문학비

세워두고 오던 날이었던가?

영암 월출산 백운동 골짜기에

천연 동백숲이 한 壯觀을 보여주는디

이따아만한(나는 두 팔을 동그랗게 만들어 보인다) 고목이

허공에 정지시켜놓았던 꽃들을 고스란히

땅 우에, 제 슬하 둘레에 내려놓았드라고!

産달이 가까운 여자후배 하나가

뚱게뚱게 걸어서 만삭의 손으로

그 동백꽃 주우러 다가가는 순간의 시를

나는 아직까지 못 찾고 있어.

상하지 않고도 피가 도는 그 온전한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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