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모래시계 /이문재

나뭇잎숨결 2021. 6. 18. 13:41

모래시계

-이문재

이쯤에서 쓰러지자
이쯤에서 쓰러져서
조금 남겨두기로 하자
당분간 이렇게 쓰러져 있기로 하자

누군가 나를 일으켜 세워
멈춰 있던 자신의 시간을 살릴 수 있도록
자기 시간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누군가의 아픔이 기쁜 아픔이 될 수 있도록
누군가의 기쁨이 아픈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아니다
상체를 완전히 비우고
우두커니 서 있도록 하자
누군가 나를 뒤집어
자신의 새로운 시간과 만날 수 있도록
이렇게 하체의 힘으로
끝끝내 서 있도록 하자

숨을 죽이고
가느다란 허리의 힘으로
꼿꼿이 서서 기다리기로 하자
누군가 나를 뒤집어
누군가의 맨 처음이 시작되도록
누군가의 설레는 맨 앞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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