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오월은 / 피천득

나뭇잎숨결 2022. 4. 30. 11:04

오월은

 

 

- 피천득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득료애정통고,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실료애정통고,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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