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환상가에게
-고정희
황제의 굳건한 안정을 믿으며
죽음의 집으로 돌아와
사방 넉 자짜리 자유의 벽지로
아방궁 같은 무덤을 도배했어
무덤은 언제나 밝고 아늑하네
황제가 내려 주신 모닥불에 둘러앉아
야구 경기와 권투 시합을 보며
입이 아프도록 승리를 신봉하고
머리맡에 예비된 숙면의 술잔으로
보다 깊이 잠드는 최면을 거네
황제는 꿈 속에서 빙그레 웃으시니
우리의 충정은 가이 눈물겹게
5호 활자 속에서 <예언>도 잠드시니
그제는 고향을 팔아 버렸고
어제는 의령을 잊어버렸고
오늘은 공약을 삼켜 버려야 하네
새 법이 오리라 믿어야 하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또 하나의
튼튼하고 아름다운 무덤을 건축하며
밤을 낮이라 어둠을 빛이라 이름함으로써
<새 시대는 열렸다> 믿게 되었네
오 우리들의 두 귀는 운다네
암호로 떠도는 이 시대의 언어를
망각으로 망각으로 망각으로 흘려 보내고
이 땅의 젊은은 잠시 전율하지만
그것을 잊는 데는 두 주일이 안 걸린다네
애오라지 밝고 아늑한 무덤의 평화
사방 넉 자짜리 미래를 의지하여
탐스런 꽃봉이들 영그는 중이니
황제는 꿈속에서 빙그레 웃으시고
우리들의 나날은 가이 고요하네
---------------------------------------------------------高靜熙 詩集 <<이 時代의 아벨>>
'시(詩)와 詩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 나의 어머니/고정희 (0) | 2021.03.25 |
---|---|
디아스포라 슬픔에게 /고정희 (0) | 2021.03.25 |
하늘에 쓰네 /고정희 (0) | 2021.03.25 |
강물에 빠진 달을 보러 가듯 /고정희 (0) | 2021.03.25 |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0) | 2021.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