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미사
-김승희
어둠이 태양을 선행하니까
태양은 어둠을 살해한다.
현실이 꿈을 선행하니까
그리고 꿈은 현실을 살해한다.
구름의 벽 뒤에서
이제는 태양을 산책하는 독수리여,
나는 감히
신비스런 미립자의 햇빛 파장이
나의 생(生)을 태양에 연결시킬 것을
꿈꾸도다.
나의 생(生)이 재떨이가 되지 않기 위하여
나의 생(生)이 가면의 얼음집이
되지 않기 위하여
나는 감히 상상하도다.
영원한 궤도 위에서 나의 불이
태양으로 회귀하는 것을.
언제나, 그리고 영원토록.
나의 생명(生命)과 저 방대한 생명(生命)을
연결해 달라,
어떤 방적기계
어떤 안개의 무(無) 속에서
우리의 실은 풀려지는 것인가?
어떤 증발
어떤 채무자인가, 우리들은?
나는 감히 상상하도다,
어둠이 태양을 선행하니까
그리하여 태양이 어둠을 살해하듯,
현실이 꿈을 선행하니까
그리하여 꿈이 현실을 살해하기를.
나는 감히
꿈꾸도다,
나의 생(生)이 안개의 먹이로 환원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기에
살기 위해 더 많이 사랑할 것을
오직 나는 바라기에
나는 감히 상상하도다,
영원의 궤도 위에서 나의 불이
태양으로 회귀하는 것을.
그리하여 존재의 실[絲]패를 태양에 감으며
신비스런 미립자의 햇빛 파장이
나의 생(生)을 태양에 귀의시킬 것을.
태양미사, 고려원,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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