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행복/ 유치환

나뭇잎숨결 2020. 7. 17. 12:39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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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올린 이진명, 황동규, 황인숙, 이영도, 유치환 시인의 시들은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랑'에서 나온 시들이다. 그러니, 사소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행복하다는 것은 반어이자, 사랑의 역설인 셈이다. 삶의 본론으로 넘어간 시들이다. 한없이 가벼운 언어로 한없이 무거운 삶의 문제, 사랑의 숙제를 풀어낸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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