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토 다뇰로 브라만테(Donato d' Aguolo Bramante, 1444년 ~ 1514년)은 이탈리아의 건축가이다. 교황 율리오 2세의 부탁으로 성 베드로 대성전을 고치기 위해 일생을 바친 건축가이다. 처음에는 로마네스크 건축을 배웠으나, 1499년 로마에 이주하여 고대 건축 양식을 연구하고 중앙당 형식의 성당 건축 양식을 확립하여 명쾌한 선과 웅장한 느낌을 살린 바티칸 궁전, 밀라노의 스포르체스코 성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그는 르네상스 건축의 선구자로 건축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기시절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빈치보다 일찍 밀라노에 와서 스포르차 가문에게 상당한 신망을 얻고 있었던 그는 수학, 류트 등 관심사가 많았던 다빈치와 친해져 스포르차 가문에 그를 추천하려 많은 공을 들였다. 그의 추천으로 인해 다빈치는 흰 담비를 안은 여인, 행성들의 가면극 등의 작품을 남길수 있었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로마로 옮겨가는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다. 건축에서도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가 도입한 초기 기법을 이어받아 성기 르네상스라 부를 수 있는 내용들이 완성되었다. 주역은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 1444?~1514)였다. 전기적 기록은 거의 없는 편인데 시를 쓰고 고전문학을 논할 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르비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건축 일에 참여하면서 알베르티 등의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접했던 것 같다.
1477년 밀라노에서 시작한 짧은 화가 경력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건축 경력을 시작했는데 1480년부터 1499년의 밀라노기와 이후의 로마기로 나뉜다. 밀라노기의 작품은 주로 중세 건물을 증개축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자신의 대표적인 건축관인 오더 상징주의와 중앙집중 구성을 선보였다. 1499년 루이 12세의 밀라노 침공을 피해 로마로 이주했으며 몇 년간의 고전유적 답사 후 1503년 즉위한 교황 율리오 2세에게 발탁되어 교황청 공방을 설립했다.
공방에서는 자신의 작품 설계 및 감리, 건축가들의 교육 및 양성, 로마 재건 사업의 입안 및 총괄 등 세 가지 일을 했다. 모두 성기 르네상스의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일들이었다. 공방에서는 라파엘로를 필두로 안토니오 다상갈로 일조반네, 산소비노, 페루치 등 16세기 전반부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주요 건축가들을 배출했다.
로마 재건 사업을 건축가가 총 지휘하면서 르네상스 건축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바티칸 개발계획 초안을 다듬어 바티칸을 로마의 중심지로 부각하는 데 성공해 로마의 건축적 중요성을 배가했다(도 6-21). 로마는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한 번 서양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왼쪽이 성 베드로이고 오른쪽이 브라만테의 벨베데레(Belvedere)이다.
자신의 작품에서는 오더 상징주의와 중앙집중형을 통해 성기 르네상스를 완성했다. 중앙집중형은 초기 르네상스 때부터 모색되던 것을 집대성해서 완성했다. 오더 상징주의는 그만의 창작품이었다. 둘을 합하면 로마 고전주의를 새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완성된 것이다. 알베르티를 이어받아 정통 로마 고전주의의 족보를 확립했는데 이 족보는 미켈란젤로, 다비뇰라, 베르니니로 이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경향을 '울티마 마니에라(ultima maniera) '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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