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9칸 대형건물 '고창 선운사 만세루' 보물 된다
박상현 입력 2020.03.27. 09:54
정면 9칸, 측면 2칸으로 지은 조선 후기 대형 사찰 건축물인 고창 선운사 만세루(萬歲樓)가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전북유형문화재 '선운사 만세루'를 '고창 선운사 만세루'라는 명칭으로 바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7일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누각에는 보통 범종이나 북을 두는데, 만세루에는 없다"며 "조선 후기에 누각을 예불하는 불전 공간으로 변모시킨 양상이 확인되는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정면 9칸, 측면 2칸으로 지은 조선 후기 대형 사찰 건축물인 고창 선운사 만세루(萬歲樓)가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전북유형문화재 '선운사 만세루'를 '고창 선운사 만세루'라는 명칭으로 바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7일 밝혔다.
만세루는 천왕문과 대웅보전 사이에 있다. 선운사에 전하는 기록물인 1686년 '대양루열기'와 1760년 '만세루 중수기'에 따르면 만세루 자리에는 본래 1620년에 세운 중층 누각인 대양루가 있었다. 대양루가 화재로 사라지면서 1752년에 재건한 건축물이 바로 만세루다.
만세루는 대양루와 달리 단층이고, 책을 엎어놓은 듯한 맞배지붕을 얹었다. 대양루의 정확한 규모는 전하지 않는다.
만세루는 사찰 누각으로는 드문 정면 9칸 건물이다. 정면 길이는 23.7m, 측면 길이는 7.8m다. 면적은 185.92㎡. 사찰 누각은 보통 3칸이고, 5칸이나 7칸이어도 큰 편에 속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누각에는 보통 범종이나 북을 두는데, 만세루에는 없다"며 "조선 후기에 누각을 예불하는 불전 공간으로 변모시킨 양상이 확인되는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만세루의 또 다른 특징은 지붕 하중을 지지하기 위해 놓는 대들보다. 가운데 세 칸은 기다란 대들보를 두고, 양옆 각 세 칸에는 중앙에 높은 기둥을 세운 뒤 짧은 대들보를 설치했다. 건물의 구조적 안정을 도모하면서 중앙 공간을 강조한 건축기법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가운데 높은 칸에는 두 갈래로 나뉜 나무를 종보로 사용했다. 종보는 대들보 위에 놓는 보를 뜻한다. 가공하지 않은 자연산 나무를 의도적으로 활용해 보가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만세루는 불교 사원 누각 건물이 시대 흐름에 맞춰 적절히 변용된 사례"라며 "자재를 구하기 어려운 건축 환경을 극복하고, 독창성이 있는 건물을 지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선운사 만세루, 청룡사 대웅전 그리고 대교약졸
선운사 만세루 내부
안성 청룡사 대웅전 내부
선운사 만세루와 청룡사 대웅전 그리고 大巧若拙
아래에 게재한 글에 대한 답 글을 쓰고 그래도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문화재청싸이트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문화재청사이트의 자료에는 건축물 내부사진이 별로 없어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만세루 만큼은 내가 필요한 부분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해서 나의 상식을 넘어선 어떠한 것도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중간에 기둥이 있는 것은 가운데 기둥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를 설치하였고 기둥이 없는 것은 긴 보를 보냈습니다. 앞에 게재한 글 말한‘이어서 보를 만들었다'는 것은 보 윗 부분에 부재를 덧대었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덧댄 부분은 구조상 필요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뒤에 있는 보를 보면 보의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아 덧댄 부분이 없어도 충분히 구조재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위에 올려진 동자기둥이 작아 덧대어 만들었는데 그래도 모자라 동자기둥 밑을 별도의 나무로 받친 듯한 느낌도 듭니다.
집은 한마디로 말해 당시의 열악한 건축상황을 말해 줄뿐입니다. 역사적 사료로서 가치가 있을 지는 몰라도 건축 전반으로 보면 수준이 낮은 건물이었습니다. 시공의 수준, 재료의 수준 모두 수준이 낮습니다. 예전 선운사의 만세루를 찾았을 때 어쩌면 이렇게 막 집을 지었을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다시 보아도 그 수준이었습니다. 한가지 보아줄 것이 있다면 열악한 상황에서 그런 대로 노력하였다는 점일 것입니다.
어쨌든 이 만세루에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도 문제가 있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청룡사 대웅전의 글을 읽고 과거에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대교약졸’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할 기회를 가졌습니다.‘대교약졸’이라는 단어를 붙일 정도의 수준이라면 집 자체에서 품격이 솟아나야 합니다. 그러한 집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의 기품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한 듯하면서도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사실 돌아다니면서도 잘 지어진 집은 많이 보았어도 ‘대교약졸’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집은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림이나 공예품에서는 그런 대로 볼 수 있지만 건물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림으로 치면 장욱진 또는 박수근 정도 서양화가로 치면 피카소가 말년에 그린 도자기의 그림 정도가 ‘대교약졸’이라는 단어를 쓸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집에 ‘약졸’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쉽지 않은 것은 건축의 성격상 작가의 성향이 일방적으로 나타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입니다. 최근에 와서야 건축가의 개성을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건축은 거의 집주인의 취향에 左之右之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지어진 집은 있어도 ‘약졸’인 집은 보기가 쉽지 않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어수룩하게 지어졌다고 ‘약졸’이면 제가 지은 모든 집이 ‘약졸’일 것입니다. 최소한 제가 설계한 집에서는 세련미는 있습니다. 아직 저도 ‘약졸’의 경지를 느껴보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정도에 다 달아야 ‘약졸’이 될까 고민하지만 아직 손이 그렇게 자유롭지 못하고 생각이 남의 시선을 무시할 만큼 자유롭지 못합니다. 손과 생각이 자유로울 때 그 때쯤 아마도 ‘약졸’이라는 단어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만세루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만세루 기둥과 보를 보면 고민한 흔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민한 흔적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경험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집을 지을 때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재료와 부재를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 입니다. 매우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만세루를 보면 있는 재료를 그저 가져다 맞춘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 뒤 그리고 옆의 재료들과 이것이 어울릴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맞춤’을 보아도 정치하게 다루려고 한 노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원래 어려운 과정에서 집을 짓다보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보 위에 놓여진 동자기둥도 길이를 맞춰 사용한 것이 아니라 길이가 맞지 않자 밑을 별도 나무로 괴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이 부재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해도 작은 동자기둥조차도 제대로 만들 수 없는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것이 만세루를 높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집을 많이 보았다’는 것, ‘집을 설계하였다’는 것, 그리고 ‘집을 지어보았다’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느끼게 되면 집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집을 직접 지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변수들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집을 죽이고 살리는 지는 더욱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지도 모릅니다.
저는 설계를 하지만 집을 지을 때 시공하는 사람을 봅니다. 시공자가 얼마나 능숙하게 집을 짓는가에 따라 집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되면 집이 결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상의 문제 만으로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집을 짓고자 마음먹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과정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잘 지어진 집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이 들어간 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을 짓는 과정에서 다른 것 보다 더 우선하여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사이는 설계라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시대나 환경에 따라 건축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는 변화하게 됩니다. 덥고 추운 날씨, 나무가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자연환경, 농업과 상업과 같은 경제환경, 무슨 종교를 믿는가 또는 봉건사회인가 민주국가인가와 같은 사회환경에 따라 집은 변화합니다.
따라서 집을 단순한 정신적인 문제만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부분에 사회 환경을 읽고 난 후에 집을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세루에 ‘대교약졸’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당시의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현상만을 보고 말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세루는 경제, 자연, 사회환경의 한계상황에서 만들어진 집일 뿐 장인의 집념의 산물이 결코 아닙니다.
이에 비하여 청룡사 대웅전은 수준이 많이 높습니다. 고민한 흔적을 여기저기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청룡사의 내부는 매우 깔끔합니다. 내부의 부재를 보면 나름대로 있는 부재를 잘 다듬어 사용하였습니다. 내부를 잘 꾸미기 위하여 대들보 감을 쓰고 나니 기둥을 다듬을 목재가 부족했겠지요. 그러니 외부의 기둥은 현재와 같은 형태로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우선할까? 내부인가, 외부인가? 있는 부재를 적절하게 우선 순위에 따라 잘 배분하는 것이 바로 장인의 능력입니다. 이러한 솜씨를 청룡사 대웅전에서는 장인이 보여주었고 선운사 만세루에서는 보여주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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