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도취
-롤랑 바르트
소유의 의지 vouloir-saisir.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관계의 어려움이, 사랑하는 이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전유(專有)하려는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이후부터는 그에 대한 모든 '소유의 의지'를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1.
비소유의 의지 N. V. S. : non-vouloir-saisir는(동양식의 표현을 모방한다면) 자살의 도치된 한 대체물이다. 자살하지 말 것(사랑 때문에)이라는 말은 그 사람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뜻이다. 로테를 소유하려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었던 그 순간에 베르테르는 자살한다. 포기하느냐 아니면 죽느냐(그러므로 그것은 엄숙한 순간이다).
2.
소유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비소유의 의지 또한 보여져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봉헌의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나는 정념의 그 뜨거운 격앙을 "메마른 삶이나, 죽음에의 의지, 그 커다란 무력감"으로 바꾸고 싶지는 않다.
비소유의 의지는 친절함과는 거리가 먼, 격렬하고도 메마른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감각 세계에 자신을 대립시키지 않으면서 내 마음속에 욕망이 자유롭게 회전하도록 내버려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욕망을 "내 진실"에 기대게 한다. 그런데 내 진실은 절대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 사랑이 결핍될 때, 나는 마치 '포위하기'를 단념하는 군대처럼, 물러가거나 자신을 분산시킨다.
3.
그런데 만약 이 비소유의 의지가 어떤 전략적인 생각이라면(마침내!)? 만약 내가 그 사람을 포기하는 척하면서 여전히 그를 정복하려 한다면(물론 은밀하게?) 그를 보다 더 확실하게 소유하기 위해서 내가 사라진다면? '르베르시reversis'란 카드놀이(최소 득점자가 이기는 놀이)는 현자에게는 잘 알려진 그 위장이라는 것에 근거한다("내 힘은 내 약함에 있다"). 그러나 이 상념은 하나의 술책일 뿐이다. 그것은 내 정념 깊숙이 자리잡으면서도 내 강박관념이나 고뇌를 건드리지 않는다.
(마지막 함정 : 나는 모든 소유의 의지를 포기하면서 내가 남기게 될 나의 그 "멋있는 이미지"에 흥분하며 황홀해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 체제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미덕에 대한 어떤 열광 때문에 아르망스는 흥분한다. 그것은 옥타브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기에.")
4.
비소유의 의지에 대한 상념이 상상적인 것의 체제와 단절되기 위해서는 내가 언어 밖의 어디엔가로, 무기력한 상태로 추락해야만 한다(어떤 막연한 피로감을 핑계대면서). 그것은 어쩌면 단순히 자리에 앉는다s'asseoir는 행위일지도 모른다("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어도, 봄은 오고 풀들은 저절로 자란다"). 다시 한번 동양 철학을 빌린다면, 비소유의 의지를 소유하지 않으며, 오는 것을(그 사람으로부터) 가도록 내버려두며,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아무것도 물리치지 아니하며, 받되 보존하지 않으며, 만들되 제 것으로 하지 않는다 등등. 또는 "완벽한 도(道)는 선택하는 것을 피하는 어려움 외에는 어떤 어려움도 제시하지 아니한다."
5.
그러므로 욕망은 여전히 다음과 같은 위험한 움직임으로 비소유의 의지를 적셔놓는다. 내 머릿속에는 사랑해요라는 말이 떠오르지만, 나는 그 말을 입 안에 가두어 발화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나의 그 사람이 아닌, 또는 아직은 나의 그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침묵 속에서 말한다 :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려고 자제하고 있다고.
니체식의 표현 : " 더 이상 기도하지 말고 찬미하라!"
신비주의자의 표현 : "가장 감미롭고도 취하게 만드는 최상의 포도주여, 기진맥진한 영혼은 마시지 않고도 취했네! 자유롭고도 취한 영혼이여, 잊어버린 잊혀진 영혼이여, 마시지 않고 또 결코 마시지 않을 것에 취해버린 영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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