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절대고독/김현승

나뭇잎숨결 2020. 2. 21. 13:47

 절대 고독

 

김현승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그 체온으로 내게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 ― 나의 시(詩)는.

 

 

 

(시집 {절대 고독}, 1970)

 

  이 시는 그에게 서울시 문화상을 안겨 주고 제4시집 {절대 고독}의 표제가 된 작품이다. 1930년대의 민족적 로맨티시즘과 센티멘탈리즘이 짙게 풍기는 자연에 대한 예찬과 동경의 세계를 노래하던 그의 초기시는 해방 이후 1960년대 초까지 외면적인 자연의 세계에서 인간의 내면적 세계로 관심을 쏟으면서 기독교 정신을 기조로 하는 경향으로 변모하였고, 1960년대 중반에 들면서는 고독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업을 하며 기독교 시 정신을 육화(肉化)시킴으로써 그는 한국 현대시의 깊이를 더해 준 기념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고독'은 결코 절망적인 것이 아니다.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 '키엘케고르'처럼 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고독으로, 노경(老境)의 삶을 더욱 깊게 하여 진실된 자아를 만나려고 하는 즐겁고 유익한 고독이며, 고독을 위한 고독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끈질기게 집착한 고독의 문제가 평가절하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도리어 그를 원숙한 삶으로 이끌어 주는 지남차(指南車)요, 청량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1연에서 '절대 고독'의 경지에 도달한 그는 '영원의 먼 끝'을 만지며 '비로소 오랜 잠'에서 깨어난 즐거움을 만끽한다. 오랜 상념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난 그에게 있어 지상(地上)의 삶에서 바라보며 간구(懇求)하던 '아름다운 별들'은 다만 이상(理想)일 뿐이므로 '흩어져 빛을 잃지만', 이제 그는 별 대신에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진실된 자아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지금까지의 자신의 생이 하나의 환상이요, 무(無)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절대 고독'의 황홀한 경지에 다다른 시인은 자신의 궁극적 삶을 응시하며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주는' 애정을 갖는다. 지난날의 진실되지 못했던 삶을 뉘우치며, 그간 써 온 자신의 글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한 끝에 그는 '언어'와 '언어의 날개들을' '바람에' '티끌처럼' 날려 보내는 철저한 자기 개조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시작하여 자신에게서 끝나는 자신의 삶을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끝'에 다다른 '절대 고독'의 경지에서, '나의 시는' '드디어 입을 다물게' 됨으로써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시의 완성을 이루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깊은 시적 사유(詩的思惟)에 도달한 노경(老境)의 지성(知性) 시인인 김현승이 자신의 삶을 재발견하려는 집요한 노력으로 이룩한 '극치의 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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