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명경(明鏡) /이상

나뭇잎숨결 2020. 2. 17. 10:16

명경(明鏡)

 

 

-이상

 

 

 

 

여기 한 페이지 거울이 있으니

잊은 계절에서는

얹은머리가 폭포처럼 내리우고

울어도 젖지 않고

맞대고 웃어도 휘지 않고

장미처럼 착착 접힌

들여다보아도 들여다보아도

조용한 세상이 맑기만 하고

코로는 피로한 향기가 오지 않는다.

만적 만적하는 대로 수심이 평행하는

부러 그러는 것 같은 거절

우(右)편으로 옮겨 앉은 심장일망정 고동이

없으란 법 없으니

설마 그러랴? 어디 촉진.........하고 손이 갈 때 지문이 지문을 가로 막으며

선뜩 하는 차단뿐이다.

오월이면 하루 한 번이고

열 번이고 외출하고 싶어 하더니

나갔던 길에 안 돌아오는 수도 있는 법

거울이 책장 같으면 한 장 넘겨서

맞섰던 계절을 만나련만

여기 있는 한 페이지

거울은 페이지의 그냥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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