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帛書)

차동엽 신부 선종, 마지막까지 “항상 희망을 간직하라”

나뭇잎숨결 2019. 11. 1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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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차동엽 신부

밀리언셀러 《무지개 원리》의 저자로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친숙한 차동엽 신부(車東燁· 노르베르토)가 12일 오전 4시 17분 선종했다. 향년 61세. 빈소는 인천교구청 보나파시오 대강당에 마련되었다.
발인은 14일(목), 장례미사는 같은 날 답동 주교좌성당에서 오전 10시에 거행된다.
 
1958년생인 차 신부는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울대 공대와 서울 가톨릭대,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미국 보스턴대 등에서 수학하였고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까지 인천가톨릭대 교수, 천주교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다.
저서로 《무지개 원리》, 《통하는 기도》, 《뿌리 깊은 희망》, 《행복 선언》, 《바보 ZONE》, 《희망의 귀환》, 《잊혀진 질문》, 《김추환 추기경의 친전》, 역서로 《아가페》, 《365땡큐(Thank you)》 등을 남겼다.

고인은 엔지니어의 꿈을 품고 서울대 공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으나 ‘기계를 발명하여 편리한 세상을 만드는 것보다는 세상의 진정한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생각에 삶의 방향을 틀어 사제가 되었다.
 
차 신부는 수많은 저서뿐만 아니라 왕성한 강연활동으로 ‘희망의 전도사’를 자임해왔다.
 
유독 희망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희망 탐사는 집요하고 끈질기고 장쾌했다. 고인은 언제나 “절망을 치유하는 명약, 그것은 희망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가 《희망의 귀환》(2013년 간)의 서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희망이 돌아온다? 그렇다. 목적을 성취하고 장하게 귀환한다.
일단 끝까지 믿어주면, 희망은 자신의 미션을 수행한 후 승리의 깃발을 들고 개선한다.
희망이 돌아온다? 맞다. 행복 찾아 집 떠난 파랑새처럼 여지없이 귀환한다. 입때껏 밖에서 행복의 꼬투리를 찾아 헤매던 궤적에서 선회하여, 이윽고 희망은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희망이 돌아온다? 옳다.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 속에서 어김없이 귀환한다. 이름하여 변증법적 순환 안에서 희망의 귀환이다. 꼭 누구의 이론이랄 것 없이,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돈다.
희망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새희망으로, 새희망에서 새절망으로, 새절망에서 새새희망으로….〉
 
고인은 지상에서 가장 호소력 있는 희망 경구로 아래의 라틴어 격언을 꼽았다.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스페로, 스페라 · Spero, spera)” 
 
기자는 차 신부를 만나 2012년 1월에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와 나눈 대화를 짧게 소개한다.
 
〈…고통과 슬픔, 이별과 죽음이 ‘생명의 몸살’ 내지 자연발생적 현상이라면 기적은 무엇인가. 기적의 실체란 존재하는 것일까. 기적은 인간사의 운(運)일까. 고통에 아파하는 사람에게 신의 손길이 과연 미치는 것일까.
 
  차동엽 신부는 “신이 개입한다”고 단언한다.
 
  “개입을 합니다. 언제 하느냐? 일종의 ‘자유의지 게임’입니다. 나는 스스로 자유를 지닌 존재지만, 자발적으로 ‘제 자유를 당신께 반납하겠습니다’ 하는 순간, 기적의 통로가 열리기 시작하지요. 이것을 종교적 귀의(歸依)라고 합니다. 귀의가 뭐냐?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고 당신 뜻이 뭔지 헤아리고 소통하면서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신은 ‘로봇’ 부리는 것을 싫어해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제로 따르게 하는 것은 싫지만 맹서(盟誓)를 하면서 ‘당신 원하는 것을 제 기쁨으로 삼겠다’고 하면 받아들여 줍니다. 이것이 자유의지의 심오한 부분이자 가톨릭만이 아닌 모든 종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신적 개입이 시작되고, 기적이 일어나지요.”…〉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9.11.12

 

 

 

 




차동엽 신부의 7가지 선물’을 읽으며

입력2020.12.30. 오전 6:01
 
 수정2020.12.30. 오전 8:25
 
'희망 전도사'로 최선을 다한 고 차동엽 신부. /조선일보DB
어느덧 올해도 거의 저물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했지요. 올해 마지막 편지는 책 한 권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차동엽 신부의 7가지 선물’(위즈앤비즈)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1년 전 돌아가신 차동엽(1958~2019) 신부님은 우리 천주교계에서 특별한 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신부님이라면 ‘엄숙함’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차 신부님은 달랐습니다. 기름 발라 ‘올백’으로 머리카락을 빗어넘긴 외모부터 달랐죠. 게다가 입만 열면 ‘뻥친다’ ‘꼬드긴다’ 등의 세속적(?) 표현을 서슴없이 구사하셨으니 ‘별종 신부님’처럼 보였죠. 본인 스스로도 ‘약장수’라는 표현을 전혀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셨어요. IMF 사태 때 국민을 위로하고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쓴 저서 ‘무지개원리’가 수백만권 팔린 밀리언셀러 저자이기도 하셨죠. 성당의 제대뿐 아니라 TV의 ‘아침마당’ 같은 프로그램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엄숙함’의 둑을 과감히 무너뜨린 분이었죠. 또 말씀을 얼마나 잘 하시는지 연간 강연이 600회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천주교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의 차 신부님 사무실 벽 달력엔 강연 일정이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했지요. 초인적인 일정에 혀를 내두른 기억이 생생합니다. 신부님은 그 빡빡한 강연 때마다 항상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차동엽 신부의 7가지 선물' 표지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차동엽 신부의 겉모습입니다. 연예인 뺨칠 정도의 대중성이지요. 저는 생전에 신부님을 몇차례 만났지만 한번도 심각한 표정의 신부님을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쾌활하고 자신감 넘쳤으며 ‘누구 맘대로 내가 절망해?’라고 자신만만해 하셨지요. 물론 신부님이 희망을 이야기하기 전엔 항상 전제가 있었습니다. 본인이 어린시절엔 너무나 가난했다고요. 관악산 자락 산동네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연탄과 쌀 배달을 했다고요. 돈이 없어 인문계 고교가 아닌 공고(工高)로 진학해야 했다고요. 그런데 신부님 생전엔 그 고생담을 들으면서도 ‘희망’을 강조하기 위한 전주곡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의 1주기(지난 11 12일)를 앞두고 김상인 신부님이 엮은 이 책 ‘차동엽 신부의 7가지 선물’(이하 선물)을 읽다가 울컥했습니다. 김상인 신부님은 신학생 시절부터 차 신부님을 멘토로 모셨고, 현재는 미래사목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책은 생전의 차 신부님이 남긴 글을 교직(交織)해 7가지 키워드로 그의 일생을 재조명합니다. 7가지 선물(주제)은 ‘긍정이 낳은 힘’ ‘믿는 대로’ ‘지혜의 맥’ ‘귀한 말씨’ ‘희망의 샘’ ‘감사의 기적’ ‘행복의 숨결’입니다. 긍정, 희망, 감사 등 생전의 차 신부님이 쓰던 말투가 그대로 묻어나지요?

 
2007 KBS '여성공감'에 출연해 '무지개 원리'를 강연하는 차동엽 신부. 차 신부는 엄숙함을 벗어던지고 방송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래사목연구소
그런데 이 소제목들은 어쩌면 당의정(糖衣錠)입니다. 겉은 달콤하지만 속에는 입에 쓴 이야기, 즉 영성이 담겨있습니다. 제일 첫 장 ‘긍정이 낳은 힘’은 차 신부님의 고통으로 시작합니다. 차 신부님은 걸음걸이가 느릿느릿했습니다. 그 이유는 어린시절의 가난 때문이었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연탄과 쌀을 지게에 지고 산동네 비탈길을 오르내리면서 허리가 휘었고, 그 여파가 간(肝)으로 이어져 간염과 간경화로 악화돼 결국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됐지요. 느릿느릿한 ‘황소걸음’ 역시 연탄과 쌀의 무게 때문에 빨리 걸을 수 없다보니 저절로 몸에 밴 것이랍니다. 게다가 책에는 차 신부님이 오스트리아 유학 중 대형 교통사고로 죽음 문턱까지 갔던 사연도 있습니다. 당시 현지 신문에 사진과 기사가 실릴 정도로 큰 사고였지요. 그런데 차 신부님은 사고가 나던 그 찰나 “난 할 일이 있는데”라고 생각했답니다.

 
차동엽 신부는 1990년 오스트리아 유학 중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는 차가 구르는 중에도 '어, 난 할 일이 있는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진은 당시 현지 신문에 실린 사고 기사. /미래사목연구소
그 할 일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아파해주는 것이 아니었까 생각합니다. 차 신부님이 위대한 점은 고통을 희망으로 승화시킨 것이겠지요. 신부님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최선의 선택은 고통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감내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어려운 말이지요. 그런데 신부님의 다른 글을 읽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신부님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고통을 호소했답니다. 그럴 때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신부님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답이 있어도 설득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고통’의 문제가 바로 그렇다.” “사람들이 나에게 고통의 의미를 물어올 때, 나는 심한 무력감에 휘둘리곤 한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픔이 느껴져 와서!” “누군가가 고통의 문제에 답을 청해 올 때, 정답을 말해 준다고 고통이 없어지진 않는다. 희한하게도 고통은 멋지게 설명될 때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할 때 절감되는 것이다. 사랑이 고통을 분담해주기 때문이리라.”

그는 소설가 최인호의 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지금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 누군가가 겪고 있는 고통 덕이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안락 역시 지구 저편 누군가의 통절한 아픔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행복 총량의 법칙’인 셈이지요. 최인호의 이 문장에 대해 차 신부님은 이런 해석을 붙였죠.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은 내가 동의하건 말건 이미 지구상 어느 누군가에게 선익(善益)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너의 고통이 우리의 희망이다.” 사실 차 신부님은 자신의 고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가셨지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듯 말입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드는 생각은 ‘차 신부님은 행복한 분이었구나’라는 것입니다. 생전에 남긴 글을 이렇게 훌륭하게 편집해서 멋진 책을 만들어주는 후배가 있으니 말이죠. 김상인 신부님은 이 책을 준비하면서 꿈 속에서 차 신부님을 몇차례 만났다고 합니다. 김 신부님은 프롤로그에서 “차 신부는 아직 우리에게 못다 한 말들이 많다. 그는 평생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했던 사제였고, 힘든 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그들 곁을 동행하며, 힘을 불어넣어 주길 원하지 않을까”라고 적었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을 ‘선물’이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2020년은 모두가 힘들었습니다.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제 하루 남은 2020년을 마무리하면서 고통 속에 평생을 살면서도 희망을 노래했던 차동엽 신부님이 남긴 선물을 받아보시면 어떨까요. 독자 여러분, 올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hansu@chosun.com]



 

 




 ‘무지개 원리’ 중에서
 
사하라 사막 서쪽에는 사하라의 중심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매년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하지만 레빈이라는 사람이 이곳을 발견하기 전까지 마을은 전혀 개방되지 않은 낙후된 곳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한 번도 사막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레빈은 믿을 수가 없어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사람들 대답은 모두 같았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결국은 처음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그는 이 말이 사실인지 실험해 보기 위해 직접 북쪽을 향해 걸었고, 3일 만에 사막을 빠져나왔다.
레빈은 답답한 마음에 이번에는 마을 사람 가운데 청년 한 명을 앞세우고 그가 가는 대로 따라갔다.
밤낮 없이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들은 11일째 되는 날 마을 사람들의 말대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레빈은 마침내 그들이 사막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를 알아냈다.
바로 마을 사람 모두 북극성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다.
레빈은 청년을 데리고 다시 함께 길을 떠났다.
그리고 낮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아꼈다가
밤에 북극성을 따라 걷다 보면 사막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청년은 레빈의 말대로 했고, 과연 사흘 만에 사막의 경계 지역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 청년은 훗날 사막의 개척자가 되었고, 개척지 중심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는데,
동상 아래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새로운 인생은 방향을 찾음으로써 시작된다.”
 
그렇다. 사람은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삶의 목표를 정한 그날부터
진정한 인생의 항해가 시작되며, 이전의 날들은 그저 쳇바퀴를 도는 듯한 생활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우리 인생 여정의 길잡이가 될 ‘북극성’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
삶의 목표가 그런 역할을 한다.


 

 

 


『잊혀진 질문』 중에서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묻게 해줍니다. 음식점에 갔는데 종업원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장 나오라고 그래!” 하고 항의하듯이, 우리는 살면서 문젯거리가 생길 때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합니다. 이를 빗대어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고통으로 대표되는 한계 체험을 ‘최종적 포괄자’를 위한 암호라고 말했습니다. 어떠한 것이 되었든지 사람이 겪는 어려움은 ‘최종적 포괄자’ 하느님을 찾게 하는 구실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통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최종적 포괄자와의 상관관계를 짚어보면서 더 넓고 높은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Big Q 1 한번 태어난 인생, 왜 이렇게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워야 하나?〉중에서(36쪽)


홀로 운전을 하거나 일을 하는 동안 또는 설거지나 청소를 하는 동안, 그 침묵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시도해볼 수도 있습니다. 주어진 일, 습관이 시켜서 하는 일을 멈추고, 잠깐 나 자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지금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너를 어떻게 대해줄까? 너 참 사느라고 고달프지?’
이는 독백 같지만 엄연한 대화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내가 내면의 ‘나’와 나누는 소통인 것입니다. 이 대화는 우리가 절친과 나누는 대화보다 훨씬 진솔하고 따뜻합니다.
침묵과 친해지기 위해 가벼운 산책이나 여행으로 시야를 넓힐 수도 있습니다. 오직 나와 일대일로 대면하는 세상 속에 뛰어들면 새삼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1 Real Q 외로움과 고독은 어떻게 다른가요?〉중에서(129쪽)


‘이런 천하의 나쁜 놈’들에게 벼락을 내리시지 않는 신은 신이 아니거나 아니면 없거나 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누군가 울분을 터트린다 해도, 그 ‘의로운 분노’는 옳습니다.
고집스럽게 성실의 법칙을 따라 사는 노력파보다 교묘하게 사기의 법칙으로 사는 요령파가 더 잘사는 꼴을 봐주기란 정말로 분통 터지는 일입니다.
만일 신이 있다면 왜 이런 어거지가 용납될 수 있을까요? 초간단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신은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적어도 현세에서는 말입니다.
흔히 신은 상선벌악賞善罰惡으로 인간의 행위에 보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선벌악의 시행은 궁극적으로 사후 또는 종말의 때에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현세에서 그 중간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마지막 때로 유보되어 있을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죄인 또는 악한 사람에게 회개(또는 회심)의 기회를 주기 위한 신의 자비가 그 이유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으니 언젠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마음을 고쳐먹기를 기다려주는 신의 자비가 바로 그 답답한 침묵의 이유입니다.
〈Big Q 5 악한 사람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례는 대체 뭔가?〉중에서(177~178쪽)


흔히 꿈의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나는 이를 굳이 마다하지도 않지만 적극적으로 권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이를 꿈의 ‘계획농법’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이는 꿈에 농약도 주고 비료도 주고, 때 되면 인위적으로 전지도 하면서 꿈의 결실을 보려는 접근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꿈이 이루어질 확률은 높아질 수 있겠지요. 하지만 꿈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부작용이 남습니다. 주위 환경의 피해, 잔류농약 그리고 건강의 이상 등.
이런 이유로 나는 꿈의 ‘유기농법’ 내지 ‘태평농법’을 권합니다. 꿈이라는 나무를 파종만 하고 생태의 이치에 맡기는 것입니다. 오로지 생태적으로만 경합하고 상생하면서 열매를 맺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아마도 소출이 적어지겠지요. 하지만 그 꿈의 결실은 주위 환경과 농부 그리고 이웃들에게 자연의 환상적인 풍미를 선사할 것입니다.
〈15-2 Real Q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꿈은 자꾸 도망가고 이를 어찌해야 하나요?〉중에서(357쪽)



 

바보는 ‘순수의 무한가능성’이다.

바보존 저자 차동엽 신부 인터뷰

 

 

 

바보처럼 꿈꾸고, 바보처럼 상상하며, 바보처럼 모험하라! 차동엽신부는 바보예찬론자이자 자신도 그런 바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신부라는 사명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그의 삶도 참으로 바보스러웠다. 사회진출의 좋은 기회도 거부한 채 바보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차동엽 신부는 현대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자 대중서적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마음가짐에 대한 감명인지, 현재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있다. 첫 작품을 내놓은 당시만해도 지식인들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기 작들을 통해 그들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바보존’의 저자 차동엽 신부를 만나 그의 삶과 철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자유기고가 허성환

 

바보존의 집필 동기는?

 

살면서 지켜보니 작게 성공한 사람들은 약은 사람들이고, 크게 일군 사람들은 기업정신이 뚜렷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크게 일군 사람들의 그 정신이 바로 바보스러운 정신인거죠. 바보는 동시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범위에 있는데, 뒤처지는 사람도 바보지만 앞선 사람도 바보입니다. 앞선 사람들에게도 바보스러움이 있는 것이죠. 제가 만난 큰 인물들은 바보스러운 면을 많이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진정한 자기계발은 바보의 특성을 보존하고 강화하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막연한 생각이 장기려박사의 “바보소리 들으면 성공한거야”라는 말씀을 통해 밖으로 터져나오게 된거죠.

그렇다면 ‘바보’와 관련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는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최인호씨가 찾아와서 “무지개원리를 읽어보니까 신부님께서는 사상쪽에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신부님께서 그러한 사상 관련된 책을 한권 써주십시면 좋겠습니다”며 주머니에 1,000만원을 넣어주고 갔습니다. 계약도 안하고 그냥 돈만 주고 갔는데, 결국 제가 빚은 지게 된거죠. 바보에 대한 글을 정리하면 사상관련 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바보철학이니까요. 결국 그렇게 바보존이라는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바보에 관심을 가졌는지?

 

원조 바보는 예수님입니다. 바보의 모델중 단연 으뜸이죠. 최고의 지혜를 가진 분이 저자거리 시장통이나 다니면서 자신을 낮추셨죠. “누가 네 오른뺨을 때리거든 네 왼뺨도 내밀어라”는 가르침만 주시는 분이셨죠. 그야말로 대표적인 바보의 교본인겁니다. 가치관으로 보면 완전한 역설, 완전한 뒤집기인거예요. 저는 젊은 시절에 예수님을 만났는데, 제가 만난 예수님은 엄청난 바보였습니다. 그분이 저에게도 바보스러운 주문을 하셨어요. “사회 진출 포기해라. 장가도 가지 말아라. 나를 따르려면 그정도는 해야돼”라는 주문이었죠.

 

그때부터 “누가 네 오른뺨을 때리거든 네 왼뺨도 내밀어라”라는 말 속에 담긴 숨겨진 지혜를 뒤집어서 생각해 보게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 이것이 평화의 길이구나. 상대방도 변화시킬 수 있겠구나’며 그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죠. 하지만 당시 그러한 것들이 제 안에서 언어화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언젠가 바오로 사도의 ‘예수의 십자가는 유대인들의 눈에는 스캔들이고, 그리스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음이다’라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예수는 바보다’라는 말씀인데, 강한 메시야를 기다린 유대인이 보기에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힌 나약한 존재였던거죠. 유대인들은 모세와 같은 기적을 일으키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유대인들이 보기에 예수의 십자가는 스캔들이자 쇼크 그 자체였습니다. 철학자 관점으로 보면 그리스인들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철학자가 보기에 ‘어떤 분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었다’라는 것은 이해 불가한 일인겁니다. ‘그런 바보가 어딨냐?’ 그들이 소화할 수 없는 발상이었기에 어리석음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스캔들로 여기고 남들이 어리석음으로 여긴 것을 저는 지혜로 여겨야 했습니다.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군생활 중이었습니다. 군생활을 하면서 내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고 기도를 하면서 확신을 얻었죠. ‘내가 신부되기를 원하시는구나’고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을 비관하거나 실망해서 신부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예요. 보다 큰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모든 조건을 다 버리기로 결심한 거죠.

 

 

 

바보란 한마디로?

 

제가 생각하는 바보는 ‘순수의 무한가능성’입니다. 순수하니까 바보죠. 하지만 그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작가로 활동하게 된 이유는?

 

장교 임관 전 훈련받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동료와 함께 동초를 서면서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데 “너는 제대하고 뭐하고 싶냐?”고 서로 질문을 했죠. 저는 그때 두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연구소 소장을 하고 싶고, 글을 써서 대중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어요. 그냥 불쑥 나온 말이었죠. 생각해보면 제 안에 그런 에너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질문을 던지자 그게 언어를 통해 밖으로 나온 것이죠. 제 성격상 책임지는 말에 대해서는 거둬들이지 않고, 무엇하나 허투루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결국 연구소 소장과 작가가 제 숙원이었던거죠.

이 이야기는 제 강의 소재 중 하나입니다. “툭 던진 말이 무의식 속에 있다가, 언젠가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것은 꿈의 기적이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현장에서 강의 중에 젊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친구들과 놀다가 그냥 툭 던지는 말도 그게 자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작가 활동이 다른 업무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소 소장, 신부, 교수, 작가의 활동은 결국에는 서로 연관됩니다. 소장으로써 한 일의 결과물이 작가의 글로 나오게 되는 것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중요한 사명중 하나입니다. 현대인들의 아픔과 문제를 외면한 채 교회의 목자활동, 사목, 양을 돌보는 활동을 하는 것은 온전하다고 할 수 없죠. 그만큼 사목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현대인들의 절망을 어루만져주고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인데, 그런 활동을 하다보니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상 교수의 연구 테마나 주제도 책으로 다이어트 시키기도 합니다. 일련의 활동이 결국은 다 연동이 되는 것이죠.

 

 

 

 

글을 잘 쓰는 비결은?

 

글쓰기는 모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모방은 두가지를 통해 형성이 되는데, 하나는 많은 문장가들을 글을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장의 묘미를 느낄 줄 아는 것입니다. ‘이 사람 문장은 폭포수 같다. 이 사람 문장은 미려하기 짝이 없네, 이 사람은 어쩜 뜨개질하듯이 글을 잘 짜낼까’ 등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글쓴이의 리듬을 타봐야 하는데, 이런 연습이 제 몸에 배어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창의성입니다. 창의성도 본인이 계발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남들이 쓰지 않은 조어, 남들이 많이 쓴 단어들의 새로운 배치를 통한 재구성도 창의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제 글의 많은 부분들은 대중에 대한 강의를 통해서 얻어집니다.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웃음의 포인트를 비롯한 공감대를 알고 있는거죠. 말로써 공감대를 많이 알게된거죠. 단어에 대한 공감대도 있습니다. 대중이 가진 체험, 제가 말을 했을 때 어떤 단어가 그들을 울고 웃게 하는가에 대한 감각은 많은 강의를 하면서 체득한 것입니다.

 

 

본인의 작품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책은?

 

무지개원리입니다. 무지개원리는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제 저술의 기초이기도 하구요. 무지개원리라는 기초가 없으면 바보존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점도 있어요. 기초공사가 되어있기 때문에 제가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구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책으로 무지개원리를 꼽고 싶어요.

 

 

무지개원리 개정판을 출간한 이유는?

 

완전개정을 한 이유는 독자들의 피드백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은 자기손으로 직접 이 책을 골라서 읽지 않았습니다. 선배나 형님세대가 권해서 읽었어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 취지에서 개정판은 젊게 만들어졌어요. 목적한 바가 이루어진거죠.

책의 구성을 전반적으로 재편성하였어요. 무지개원리가 저의 첫 작품인만큼 구성에 대한 미숙함도 재구성을 하면서 느꼈습니다. 컨텐츠는 전혀 손댈 필요가 없는데 배열과 설명 방식이 미숙했어요. 그래서 개정판에서는 무지개원리 7가지를 연달아 소개했는데, 보다 효과적으로 재구성된 책이죠.

 

그 후에 ‘바보존’, ‘잊혀진 질문’이 출간되었습니다. 무지개원리는 첫 출간당시 언론인, 출판인들 사이에서는 그냥 호기심거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냥 한 때 지나가는 바람이라고들 여겼죠. 지식인들은 콧방귀를 뀌고 동조를 안했죠.

그런데 놀라운 건 바보존 출간 이후입니다. 무지개원리는 단순히 출세를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판단하다가 바보존을 통해 그 내용의 진정성을 느끼게 된것입니다. 그후 잊혀진 질문이 출간되면서 언론사 주간(主幹)이 반응을 보이고 관심을 갖게될 정도였으니까요. 나중에 출간된 바보존과 잊혀진 질문을 통해 먼저 출간된 무지개원리의 가치를 인정받는 재미난 일이 벌어진거죠.

 

 

잊혀진 질문의 집필 배경은?

 

‘잊혀진 질문’의 ‘질문’에 대한 법적 소유권은 정의채 신부에게 있습니다. 1987년 이병철 회장이 죽음을 예감하고 종교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당시 천주교는 김수환 추기경 등에 의해 무게감있는 종교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 회장도 천주교를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거죠. 그런 마음에 자신에게 천주교를 소개해줄 최고의 신부를 찾던 중 정의채 신부를 알게되고, 그렇게 서로 연락이 되면서 이 질문이 만들어졌습니다. 두분다 철저한 사람들이라서 만나기 전에 질문을 먼저 주고 받았는데, 그 후 이 회장이 병으로 사망을 하여 두분의 만남이 성사되지 못한겁니다.

 

그렇게 그 질문을 보관하고 있다가 24년이 지난 후에 KBS 손병두 이사장에게 보여주었어요. 손 이사장은 평소 천주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본인도 기업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답니다. 그래서 이 질문의 중요성을 직감하고 저에게 가져오게 된 겁니다. 제가 그 대답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겁니다.

 

저는 KBS에 강의를 자주 다니다보니 임원진들과 만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하는데, 참 희한하게도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물론 준비는 안되어있었지만, 제가 평생 이 일을 해왔으니까 답을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죠. 그리고 답을 적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질문’ 소유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진행을 한거 있죠. 걱정스러운 마음에 ‘질문’ 소유자에게 전화를 했는데, 다행히도 너무나 흔쾌히 수락을 해주시는 거예요. 제가 그분의 제자라서 그분에 대해서 잘 아는 데 그분이 안된다면 무조건 안되거든요. 정 신부는 “나는 차신부처럼 쉽게 쓰는건 못해”라고 수락을 하신거죠. 그렇게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감명깊게 읽은 책은?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인데 강한 메시지가 있는 책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빅터프랭클이 살아남게 된데는 그만의 철학이 있기에 가능했어요. ‘의미철학’인데, 의미를 붙잡고 살게 된거죠. 빅터프랭클이 수용소에서 지켜본 결과 그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굶어죽기 전에 절망으로 죽더라는 거죠. 그래서 그런 환경속에서도 어떤 의미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거예요. 그가 유대인들에게 준 그 의미라는건 ‘우리는 순교자다.우리는 개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야훼 하나님을 믿기에 미치광이 히틀러에게 순교를 당하는 것이라는거죠.

이 책은 간단 명료하며 심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 반전을 불러온 책으로, 절망도 뒤집을 수 있다는 간단명료하면서도 강한 메시지가 있는 명작입니다.

 

 

집필 중인 책은?

 

신앙인을 대상으로 하는 글이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에서 공유하고 있는 ‘사도신경’에 관한 책입니다. 젊은 나이에 ‘사도신경’의 해설에 도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만큼 심오한 것이 사도신경이죠. 제 나이쯤 되면 학문에 대한 정리를 할 수 있는 시기이고 더 나이 들면 쓰기도 힘들다는 판단에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집필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은 개신교 신자의 요청 때문입니다. 어느날 개신교 신자가 전화로 “신부님께서 사도신경을 한 번 풀어주시면 좋겠습니다”는 거예요. 마침 준비중에 있었는데 ‘개신교인들도 관심이 있구나’는 판단도 할 수 있게 되었죠.

 

*사도신경
초대교회에서 부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콘스탄트 대제에 의해 로마 가톨릭이 성립된 시기 이후부터 즉, 고대교회 그 이후부터 세례를 줄 때 사도신조로 믿음을 고백하였다고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지금도 천주교회에서는 전례에 포함시켜 각종 예식이나 미사 때마다 사도신조를 통해 신앙을 고백할 수 있고, 성공회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을 되새기는 세례 계약을 다짐할 때와 만도 즉, 저녁 기도를 할 때 사도신조로 믿음을 고백한다. 개신교에서는 예배 초반에 하는 것이 원칙이나, 현대에 들어서 찬양예배에 의한 예배 순서 변경이나, 다른 신앙 고백으로 대체하는 등(이를테면 교리적 선언)으로 예배 내에서 쓰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루터교회에서는 예전적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정해진 예식에 따라 매주 사도신조로 신앙을 고백한다.

 

 

독서는 어떻게 하나요?

 

저의 경우 처음에는 다독(多讀)이었습니다. 양으로 승부했죠. 그러다보니 독서에 대한 방향도 잡히게 되고, 내면의 어떤 욕구와 책 사이에 인연이 맺어지더라구요.

저마다 자신의 직업에 어울리는 책이 있습니다. 교수는 자기계발서적은 절대 안읽어요. 직장인들이 주로 읽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책을 읽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가 정독의 시기입니다. 정독의 시기가 오면 초반에는 다른책 읽을 겨를도 없습니다. 저도 독서에 대해 이렇게 터득을 하였습니다.

 

차동엽(車東燁, 노르베르또) 신부
 
밀리언셀러 『무지개 원리』를 통하여 ‘인생 해설가’라는 별칭을 얻고 방송 및 기업 특강을 활발히 하고 있다.
2012년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1981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84년 해군 학사장교 72기로 군복무를 마친 후, 서울 가톨릭대학교,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수학, 1991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미국 보스턴대학교 교환장학생 시절을 거쳐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 최근 밀리언셀러 『무지개 원리』의 전면개정판을 출간하였으며, 상반기 베스트셀러 『잊혀진 질문』(2012)을 비롯하여, 『바보존(Zone)』(2010), 『뿌리 깊은 희망』(2009), 『행복선언』(2010) 외 다수가 있다.
역서로는 『365 Thank you』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