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한라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생태를 탐색하는 가이드 오희삼의『한라산 편지』. 한라산의 숨결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풍경 속에서 찾아낸 자연의 숨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한라산 안내서. 신비로운 자연을 품고 있어 낯설지만 때로는 익숙한 엄마의 품같이 다가오는 한라산의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이어도의 내밀한 풍경을 만나보자.
한라산은 제주 사람들에게 이상향의 세계였다. 거센 바다와 거친 화산 땅을 일구며 사나운 바람에 맞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신선이 산다는 한라산은 마음속의 이어도로 망망대해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온몸으로 껴안은 신비로운 산이다. 한라산국립공원에 입사하여 한라산의 내밀한 속내를 드려다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저자는 줄탁동시, 생멸화, 곶자왈, 돌매화, 억새, 제주조릿대, 만세동산, 빙벽, 큰부리까마귀 등 한라산에 터를 잡고 있는 생물들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한라산의 사계절이 모두 들어있다. 대지를 깨우는 봄을 밝히는 꽃과 나무, 자연을 깨우듯 흐르는 폭포와 한라산 정상을 채우는 황금빛 유채물결을 품고 있는 봄. 한여름 수련꽃과 잠자리, 하늘로 통하는 신선의 거처라고 극찬했던 영실의 웅장함, 우거진 고사리로 태고적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드러내는 여름. 순결한 억새들이 제멋을 뽐내는 가을 들판, 가을 햇살에 자신의 몸을 사르는 낙엽,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다람쥐들, 청아한 하늘과 바람을 품고 있는 가을.
저녁 무렵 하루를 건너온 햇살이 눈 덮인 한라산 자락에 마지막 타는 노을 뿌리는 풍경, 하얗게 분칠된 벌판, 힘겨운 겨울을 씩씩하게 이겨내는 노루, 나무 그림자가 하얀 설원에 깊게 드리운 겨울. 15년 동안 신의 정원과도 같은 한라산을 바라보며 찾아낸 순결한 자연의 눈부신 비밀이 펼쳐진다.
우리 국토의 끝자락 환상의 섬, 제주. 이 섬 한가운데 1,950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한라산(漢拏山)은 능히 은하수를 잡아당길 만큼 높은 산이란 뜻을 지녔다. 예부터 신선들이 산다고 해서 영주산(瀛州山)이라 불렸고, 금강산, 지리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여겨지는 성산(聖山)이다. 백두산이 북녘 땅 만주벌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낸다면, 한라산은 망망대해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온몸으로 껴안는 우리 국토의 파수꾼인 셈이다.
이 책은 15년 간 한라산을 일터로 삼아, 온 산을 구석구석 누비고 다닌 필자가 그곳에서 깨닫고 발견한 자연과 생명의 신비로움을 7년여에 걸쳐 한 편 한 편 편지 형식의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것이다. 꽃, 나무, 새, 물, 바람, 돌, 들판, 오름…… 때로는 아주 섬세하게, 때로는 매우 웅장하게 변화하는 한라산의 4계절 모습이 따뜻한 글과 사진 속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1한라산 산정호수인 백록담을 중심으로 오름과 계곡이 벌판을 가로지르며 해안선까지 뻗어 내린 섬, 제주. 해발고도 600여 미터까지는 울울한 원시림이, 그 아래로는 삼백예순 오름과 초원, 수많은 곶자왈이 해안선까지 이어진다.
한라산 너른 들판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유순한 노루의 눈망울, 한라산 숲 보금자리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딱따구리와 까마귀와 휘파람새, 화산 암벽에 가녀린 뿌리를 내리고 혹독한 바람 속에서 청초한 꽃을 피우는 돌매화와 한라솜다리, 온 산을 불사르듯 봄의 한라산을 물들이는 털진달래와 산철쭉. 들판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결결이 노을 속으로 흘러가는 오름 물결들. 신(神)의 정원(庭園)과도 같은 한라산에 살면서 발견한 작은 생명들의 이야기.
고립된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과 고도차에 따른 기후분포 때문에 한라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태계의 보물창고이다. 고려시대까지도 화산폭발이 있었던 한라산은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해발 1700고지의 널따란 고산초원, 계절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며 바람과 구름과 노을이 빚어내는 온갖 경이로운 풍경들. 혹독한 바람과 척박한 화산 땅에 뿌리 내려 살아가는 생명들이 뿜어대는, 삶에의 치열하고 경건한 자연의 모습을 특유의 섬세한 글과 사진으로 담아냈다.
선작지왓의 노루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평화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아무런 욕심도 누구를 향한 원망도 없는 순진한 초식동물의 눈동자 때문입니다. 노루는 커다란 눈동자에 걸맞지 않게 시력은 좋지 않습니다. 대신 쫑긋 선 귀가 먹는 입만큼이나 중요한 신체기관이지요. 이맘때의 노루들이 낯선 소리의 은밀한 내습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눈보다는 큰 귀 때문입니다. 철쭉꽃이 필 무렵 암노루는 유달리 경계심이 높습니다. 이 봄에 출산한 아기노루 때문이지요. 아직 날랜 몸을 지니지 못한 아기노루에 대한 어미의 정이 느껴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애틋합니다.
- p.68 '선작지왓 _ 시름마저 감미로울 천상의 화원' 중에서
땅속의 줄기로 번식을 하다 보니 조릿대는 애써 꽃과 열매를 맺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정할 것 같은 조릿대가 오랜 시간이 흘러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니,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으며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생사고락(生死苦樂)의 삶이 부러웠나 봅니다. 그래서 조릿대도 이 세상에 태어나 생애에 한 번쯤은 꽃을 피워보려고 무진 애를 썼던 것이죠. 그런 비장(秘臧)의 심정으로 조릿대는 꽃을 품었을 것입니다. 익숙하지 못했던 꽃을 피우기 위해 제 몸에 가진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부은 까닭일까요. 꽃을 피우고 난 조릿대는 말라죽습니다. 꽃 한번 피워본 사랑의 대가가 너무 컸던 것일까요. 일생을 땅속으로만 뻗으며 살아오다 꽃 한 송이 피운 죄가 그리도 컸던 것일까요. 아니면 제 열정에 못 이겨 스스로 자결을 택했을까요.
- p.168 '제주조릿대 _ 그 꽃피움의 비장(秘臧)함에 대하여' 중에서
저자 오희삼 1967년 한라산 자락 서귀포 토평에서 났다. 한국항공대학교 입학 후 산악부에 가입하면서 암벽과 빙벽등반을 배웠고 전국의 산을 쏘다녔다. 해병대 제대 후 산악전문월간지 <사람과 산> 편집부 기자로 전국의 산과 암벽을 주유하며 글과 사진에 빠졌다. 고향인 제주도에 내려가 여행안내월간지 <투어투데이> 편집장을 맡다가 한라산국립공원에 입사했다. 15년 동안 한라산 구석구석을 누비며 아름다운 풍경과 생태를 글과 사진으로 더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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