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과 식물계의 포식자들의 진화’라는 제목의 크레인 경의 강의는 대가 다운 면모와 지식, 흥미 모두를 고루 갖춘 참으로 멋진 강의였다. 다윈은 자신의 자연선택 이론의 토대를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풀기 어렵지만 일단 풀어내면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할 수 있는 온갖 적응 현상들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식충식물도 그런 연구의 하나였다. 하지만 연구 자체는 사뭇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6개월 후 다윈은 온갖 논란을 뒤로 하고 그의 부인 엠마와 일곱 자식들을 데리고 영국 남부의 하트필드에 있는 엠마의 자매들이 살고 있던 ‘리지(The Ridge)’라는 이름의 대저택으로 비교적 긴 휴가를 떠났다. 이 지역은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상당 부분 자연생태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 다윈은 우연히 커다란 끈끈이주걱(common sun-dew) 군락을 발견하고 그들의 신기한 형태와 생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860년 6월 29일 그의 절친한 친구인 식물학자 후커(Joseph Hooker)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다윈은 그 해 9월 다운하우스(Down House)로 돌아올 때 끈끈이주걱을 가져와 연구를 계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61년 봄 후커는 또 다윈에게 큐 식물원에 있던 비너스 파리지옥(Venus’s flytrap)을 보내 다윈의 식충식물 연구를 지원해주었다. 다윈은 이 연구를 오랫동안 계속하여 그의 말년인 1875년에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들(Insectivorous Plants)’이라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