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멘토에서 소울메이트로, 소울메이트에서 자신으로

나뭇잎숨결 2009. 3. 19. 21:02

 

  헤르만헤세의 <데미안>과 <싯타르타>는 인류와 동행하는 멘토이자 소울메이트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누가 번역을 했든 그 안에는 헤르만헤세의 육성이 잔잔하면서도 뜨겁게, 때론 고독하게 울린다. 번역자와 상관없이(번역자의 영성을 넘는 원작가의 목소리, 語靈이 압도한다.) 작가의 육성이 들리는 책이야말로 진정한 고전이며, 그 자체로 소울메이트인 셈이다.  <데미안>은 청소년시절 필독서로 읽었던 책이지만 사실 그 시절에는 암송하듯 밑줄긋기 정도로 읽은 것이지 영혼으로 받아들이기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책이었다. <데미안>은 밖에서 위로를 구한다 싶을 때 집어드는 책이다. 싱클레어라는 두려워하고  방황하는 한 영혼(바로 나자신)이 어떻게 자신을 찾아가는지, 그 여정을 보여주는 성장소설 혹은 입사식에 관한 것이지만, 그 안에는 헤르만헤서의 영성이 깊이 녹아있어 영적 독서로도 손색이 없다. <데미안>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나는 항상 먹먹했졌던 거 같다. 본래의 자신을 만나는 것보다 더 지난한 길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안의 목소리를 신성으로 알아듣고 더이상 밖에서 위로나 조언이나 스승(피스토리우스)을 구하지 않게 될 때까지, 얼마나 쩔쩔매면서 뻥 둟려버린 존재의 구멍을 두려워하였나?

 

  <데미안>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본다.

 

 

  그 별 중에서 한 개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곧장 나에게로 날라왔다. 나를 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소리를 내면서 수천 개의 불꽃으로 갈라지고, 나를 끌어 당겼다가는 다시 땅바닥에 팽개쳤다. 내 위에서 세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무너져 내렸다.

  나는 포플러나무 옆에서 흙에 파묻힌 채 많은 상처를 잊고 발견되었다.

  나는 지하실에 뉘어졌다. 내 위에서는 총알이 날아다녔다. 이윽고 나는 차에 실려서 텅 빈 들판 위를 덜그럭거리면서 갔다. 나는 거의 언제나 자고 있지 않으면 의식을 잃고 잇었다. 그러나 깊이 자면 잘수록 나는 무엇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어떤 힘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얼마후 나는 마구간의 밀짚 위에 뉘어졌다. 마구간 안은 어두웠다. 누군가가 내 손을 밟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더 멀리 갈 것을 원했다. 어떤 힘이 나를 보다 강하게 끌고 가려고 했다.

  나는 다시 차에 태워졌고, 나중에는 들것인지 그 대용품인 사다리 같은 것에 실려갔다. 나는 점점 강하게 어딘가로 갈 것을 명령받은 것같이 느꼈고, 마침내 그곳에 가고 싶다는 욕망 이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햇다.

  드디어 나는 목작지에 닿았다. 밤이었다. 나는 완전히 의식이 깨어 잇었고, 나의 내부에서 강한 끌림과 충동을 느꼈다. 나는 어떤 방의 바닥에 뉘어졌는데, 내가 부름을 받은 곳이 바로 여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내 침구 바로 옆에 한 개의 침구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누가 잇었다. 그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나를 보앗다. 그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나를 보았다. 그는 이마에 표적을 갖고 이ㅅ었다. 그는 막스 데미안이었다.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말을 못했다. 또는 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다만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얼굴에 벽에 걸린 등불의 빛이 비치고 잇었다. 그는 나에게 미소지어 보였다.

  긴 시간 동안 그는 계속해서 내 눈속을 들여다보았다. 천천히 그는 얼굴을 나에게 가까이 가져왔다. 마침내 거의 부딪칠 만큼 가까워졌다.

  "싱클레어!:하고 그는 속삭였다.

  나는 그에게 그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표시로 눈짓을 했다.

  "꼬마!"하고 그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의 입은 내 입 바로 옆에 잇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아직도 프란츠 크로모가 생각나니?"

나는 눈짓으로 그에게 대답을 했고 미소를 지을 만한 여유도 있었다.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서로를 알아본  표지가 바로 카인의 표지다. 카인의 표지- 아프락사스-를 이해하려면, 아니 받아들이려면 선악구분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싱클레어는 스승 피스토리우스로부터 아프락사스, 카인의 표지가 무엇인가를 알게된다. 어둠과 빛을 나눠놓고, 선과 악을 재단하여 한 쪽 세계만을 신성한 것으로 인정하는 진부한 세계를 보게되면서 싱클레어도 자신에게 카인의 낙인이 있음을 알게된다. 동시에 그것을 알게해준 스승, 피스토리우스를 아프게 하면서 그를 떠나게 된다. "우리가 습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적 욕구에 의해 사랑과 공경을 바쳤을 때, 그 마음 속에서 친구로 인정해온 경우, 우리의 내부에 있는 주류가 갑자기 우리를 이제까지 사랑해 온 그 대상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괴롭고 끔찍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멘토에서 소울메이트로, 결국 싱클레어 자신이 되어야 하는 바로 그 자신의 참모습,  혹은 내면의 목소리, 진아, 혹은 본질, 궁극의 신성이다.  멘토(Mentor)라는 말의 기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이타이카 왕국의 왕인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떠나며, 자신의 아들인 텔레마코스를 보살펴 달라고 한 친구에게 맡겼는 데,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멘토였으며. 그는 오딧세이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텔레마코스의 친구, 선생님,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 주었다. 그 후로 멘토라는 그의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의미의 멘토링은 기업에서도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도 멘토에 의지해서 인생의 모든 과정을 갈 수는 없다, 그때 우리는 <운명적>인 만남인 소울메이트를 상정한다. 멘토가 현상적인 세계를 살아가는데 조력지라면 소울메이는 좀더 형이상학적인 차원으로 넘어간 관계를 의미할 것이다.  생을 반복하면서 만난 영혼의 동반자!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프란츠 클로머라는 두려움의 정체를 벗어나는데 힘을 주는 멘토에 머물지않고 싱클레어의 생의 고비마다  함께 하는 소울메이트 였다.

 

"알겠니, 싱클레어! 내 말을 잘 들어! 나는 가야만 한다. 그런데 너는 언젠가 다시 내가 필요하게 될 거야. 클로머와 같은 사람때문이거나 또는 다른 일로. 그러나 그때는 이미 네가 나를 불러도 이제까지처럼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달려갈 줄 수가 없어. 그때엔 너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될거야. 알겠어?- 그리고 또 한가지! 에바 부인이 부탁한 것인데, 나한테 키스를 해주면서, 언제든지 싱클레어가 불행하게 되었을 때는 그녀가 해주는 것이라고 하며 너에게 키스를 해주라고 했어......눈을 감아, 싱클레어!"

  나는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데미안이 내 입술--- 결코 멎지 않을 것처럼 계속 피가 흐르는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는 것을 느끼며 곧 잠이 들어버렸다. 

 

 

 

 

  멘토가 늘 함께 동행해 줄 수 없듯 소울메이트- 정신 혹은 영혼의 동반자- 역시 함께 할 수 없다, 그것이 예외없는 인간의 조건이다.  소울메이트 역시 우리 곁에 육신을 지닌 존재로 동행할 수는 없음을 아신 누군가가 우리 안에 영혼이란 신성의 공간을 만드셨다. 싱클레어! 혹은 싱클레어와 데미안만의 특별한 호칭 꼬마! 라고 불러주는 그 따뜻한 목소리를 더이상은  들을 수 없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의 소울메이트인 당신은 단숨에 내게 달려와 줄 수가 없을 때, 그때, 육체 너머의 세계로 싱클레어가 넘어가야 하듯, 자신의 목소리를 듣을 수 있어야 한다.- 그가 혹은 그녀가 진정 소울메이트였다면 이제 육체를 취한 목소리가 아니라 싱클레어 안의 신성의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아침에 잠에서 깼다. 나는 붕대를 감아야 한다고 해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나는 급히 옆자리를 돌아보았는데, 거기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이 누워 있었다.

  붕대를 감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열쇠를 발견하고 나 지신의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을 들여다본다, 그럴 때면 그 캄캄한 거울 위에 나 자신의 모습이, 그---이제까지 내 친구이며 길잡이였던 데미안---와 닮은 나 지신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그때엔 너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될거야. 알겠어?-  데미안은 곧 나, 싱클레어의 진아, 신성이었던 것이다. one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