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공경과 수확', 신에 대한 '공경과 불멸'을 함께 묶어놓았다.
-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 중에서
금요일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서점에 간다. 지난 주, 원서와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를 사기 위해 서점에 가니 두 권 다 없단다. 현암사 진열대를 둘러보다 <우리 나무 백가지>라는 책을 샀다. 서점에 갈 때 산수유 꽃망울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나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신간 간판대를 둘러보다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라는 책을 보았다. 양피지하니까 두르마리가 떠오르고 중세적 분위기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손에 닿는 책의 질감. 이런 느낌을 즐긴다. 뭐랄까, 저자가 누군지, 책의 내용이 무엇이지도 모르면서 다만 제목이 주는 암시와 종이가 주는 물리적 감촉에서 전해지는 어떤 끌림. 책을 만나는 것도 사람을 만남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는 뉴턴의 중력이 작용하는 중력장이 아닌가. 집에와 첫장을 여니 '누구나 <기적의 양피지>를 손에 쥐게 되면 “나는 뭐든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어”라는 용기와 자신감이 생긴다.' 라는 주술적인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저자가 헤르메스 김이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라, 웃었다. 그리고 누가 이런 이름을? 오호라, 김용규선생이 헤르메스 김이었던 것이다. 한참 웃었다. <씨크릿>과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다. 요즘, 이런 주제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먼저 생각할수 있는 것이, 살기가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희망이 전무할 때 우리는 자신의 내부나 신화의 공간으로 떠난다. 혹은 종교의 보호속에서 안도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시대에도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시기는 아주 신비롭게 문이 열린다는 것이기에 보편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나 역시 인생을 바꾸었던 몇 번의 터닝포인트가 있었다. 그때,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들이 나를 이끌었다. 나는 직감으로 그 메시지를 알아 들었고, 두려움없이 그 소리와 함께 여행을 떠났고, 언제나 참으로 보시니 좋았던 일들이 내 인생에서 펼쳐졌었다. 솔로몬의 지혜와 헤르메스 김, 시공간을 초월한 지혜의 만남, <기적의 앙피지, 캅베드>를 읽으며 내내 설렜다. 너무나 당연한 지혜가 아주 달콤했다. 절망이나 상실감, 비극은 현실에서 목격한 것만으로 너무나 충분하다. 희망을 주는 책에 끌린다.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와 김용규 선생의 전작도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김용규 선생의 철학은 뒷짐지고 폼재지 않는다. 그분의 저서로는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이론과실천. 2004), <다니>(지안출판사. 2005),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웅진지식하우스. 2006), <알도와 떠도는 사원>(웅진지식하우스. 2006), <철학통조림>등이 있다. 김용규 선생의 저서 대부분이 누구에게 권해도 부족함이 없다.
시절이 수상하다. 경제가 어렵고 정치는 어지럽다. 가슴에 어둠이 내리고 마음의 길들이 끊어졌다. 나누어가질 믿음이 말랐고 함께 간직할 소망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 궁벽한 시절이 더 깊어질 것이라 한다. 하지만 삶을 위해 희망은 아니더라도 소망은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소망에 관한 이야기다.
- 저자의 글’에서
“못 믿는 것 같군. 그런데 당신이 믿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소. 사실은 내가 누구인가도 마찬가지지.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요. 내 이야기를 잘 들으시오. 그러면 당신은 세상에서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소.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오. 알겠소? 나보다 더 큰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나보다 더 많이 아름다운 여자들을 가질 수도 있을 거요.”
-프롤로그 ‘이상한 노인’에서
“잘 들으시게! 위대한 랍비 시므온은 동굴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신비주의 사상인 카발라를 연구했다네. 결국 우주창조와 인간창조의 비밀을 풀어냈지. 주께서는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창조의 원리 열 개씩을 비밀스럽게 숨겨놓으셨던 거야. 지금도 우주를 운행하고 인간의 운명을 움직이는 신성한 빛들이지. 그걸 랍비 시므온 벤 요하이가 알아낸 거라네. 그 가운데 하나인 공경에 관한 부분이 이 안에 든 양피지에 적혀 있어. 공경 말일세!”
- 1장 ‘신비한 양피지’에서
유다 벤 게림을 만난 이후부터 양피지에 대한 아리의 막연한 믿음과 기대가 날로 커가고 있었다. 양피지만 생각하면 그때마다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뭔가 황홀하고 신비한 미래가 바로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품속에 든 가죽주머니를 만져보곤 했다.
- 2장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더 많이 공경할수록 더 많은 수확을 얻는다.
돈을 더 많이 공경하는 사람은 더 많은 돈을 얻는다.
명예를 더 많이 공경하는 사람은 더 많은 명예를 얻는다.
권력을 더 많이 공경하는 사람은 더 많은 권력을 얻는다.
친구를 더 많이 공경하는 사람은 더 많은 친구를 얻는다.
여인을 더 많이 공경하는 사람은 더 많은 여인을 얻는다.
지혜를 더 많이 공경하는 사람은 더 많은 지혜를 얻는다.
솔로몬이 그랬다.
그래서 솔로몬은 모든 것을 다 가졌다.
- 47쪽, 「캅베드」 양피지의 내용 중 일부
아리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존중하지 않고 『캅베드』의 가르침대로 공경했다. 공경은 존중을 포함하지만 항상 존중을 넘어선다. 방법은 간단했다. 아리는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나 아름다운 여자를 만날 때마다 상대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재빨리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사전에 사람들을 시켜 상대의 취향이나 처지, 그리고 삶의 철학까지 알아보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잘 듣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소망하는 것을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8장 ‘욕망과 소망’에서
“평사원들은 보통 이렇게 말하오. ‘내게도 사장직을 맡겨 봐요. 나도 잘할 수 있어요.’라고. 그러면서도 생각하고 일하는 것은 여전히 평사원처럼 하오. 만일 그가 사장처럼 생각하며 일하면 내가 곧바로 그를 사장으로 만들어주려고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전혀 모르고 말이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소. 그들은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일하는 것만큼 그들을 만들어주려고 신이 항상 지켜보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단 말이오.”
- 10장 ‘그리스 영사’에서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아리는 자기가 선박업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데 기적은 그가 “자신을 공경하려면 첫째는 자기 자신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둘째는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해야 한다. 셋째는 자기 자신이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라는 「캅베드」의 가르침을 따라 자기 자신을 공경하기로 하면서 시작되었다.
-13장 ‘위기를 기회를’에서
「캅베드」의 신비는 결국 「캅베드」가 사람을 새롭게 만든다는 데에 있었다. 「캅베드」는 나약한 사람을 강한 사람으로, 소심한 사람을 대범한 사람으로, 부정적인 사람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겁 많은 사람을 용기 있는 사람으로, 수동적인 사람을 능동적인 사람으로, 의심 많은 사람을 믿음 있는 사람으로, 불행한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바꾸어놓는 힘을 갖고 있다.
- 14장 ‘행운의 비밀’에서
아리는 처칠 경을 둘러싸고 있는 저명한 인물과의 교류에 커다란 희열을 느꼈다. 그는 그들이 세계와 역사를 이끌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처칠 경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유럽 귀족들과는 달라. 진짜 품위 있는 사람들이야. 품위는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지.”
- 29장 ‘윈스턴 처칠’에서
“기억하게나. 이 양피지에 적혀 있는 대로 따라한다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네.”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를 가진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용기와 자신감이다. 누구나 <기적의 양피지>를 손에 쥐게 되면 “나는 뭐든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어”라는 용기와 자신감이 생긴다.
이제 당신도 <기적의 양피지>를 손에 넣었다. 당신은 이제부터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는 마법사가 된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이제 그 누구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 당신의 마법에 행운이 있기를!
<기적의 양피지>와 함께 이제 당신에게도 기적이 시작된다! 이 책의 화자는 터키 이즈미르 지역을 여행하는 미국인 윌리엄으로 그곳에서 한 노인을 우연히 만나, 어려움에 처한 그 노인을 돕는다. 도움을 받은 노인은 자신이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 즉 선박왕 오나시스라고 밝히면서,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을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도록 만들어주었던 비밀의 양피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그 양피지의 내력, 자신이 그것을 얻게 된 과정, 또 그것을 사용하여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세세하게 전해준다. 그 후 그 노인이 전해준 양피지와 그에 얽힌 경험담에 담긴 교훈을 이용하여 역시 커다란 성공을 거둔 윌리엄은 이제 오나시스가 전달한 성공의 원리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그 <기적의 양피지>를 세상에 내놓는다.
세계 각지를 넘나드는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오나시스, 처칠, 그레이스 켈리, 마리아 칼라스 등 시대를 주름잡던 수많은 유명인물을 아우르는 장대한 스케일의 이 팩션에는 저자의 드넓은 지식과 안목, 치밀한 자료조사,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이 한데 버무려져 있다. 순식간에 빠져들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끔 만드는 이 이야기는, 솔로몬 이래로 세계 최고의 부를 거머쥔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던 성공의 비결과 인생의 의미를 첨단의 속도로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인생의 기본 원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혜안을 담은 『기적의 양피지』는 독자들의 삶에 기적과 같은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캅베드’는 ‘공경하라’는 뜻의 히브리어로, 유대교 랍비들은 신을 영화롭게 경외한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하였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심어놓은 열 가지 원리 중 하나를 적은 양피지 두루마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캅베드>를 가진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용기와 자신감이다. 누구나 「캅베드」를 손에 쥐게 되면 “나는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라는 용기와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데 아리도 이야기했듯이 「캅베드」의 모든 마법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제 당신도 「캅베드」를 손에 넣었다. 당신은 이제부터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는 마법사가 되었다. 어쩌면 당신은 아리나 빌이 이룬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 내 작은 바람이 있다면, 당신의 마법에도 세상의 고통을 줄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포함되는 것이다. 당신의 마법에 행운이 있기를 빈다!
- 에필로그 ‘더 나은 세상’에서
여기 철학이 세기의 문학과 만나 우리의 삶을 ‘철학’하게 하는 독특한 철학 교양서가 있다.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지식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며 독특한 철학 담론을 펼쳤던 저자 김용규는 세기의 문학 13편 속에서 주옥같은 철학적 담론을 꺼내 독자와 소통하고자 했다. 《오셀로》에서 ‘사랑과 질투’의 함수관계를, 《구토》에서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파우스트》에서는 ‘신과 구원’의 문제를 건져올리는 등 만남, 사랑, 성장, 자기실현과 같은 개인의 물음에서 시작하여 유토피아, 인간공학, 사회공학 등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다양한 문제까지 아우르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명사가 읽은 고전 OO선’과 같은 책들이 고전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반면 이 책은 문학에 철학자의 사유와 철학적 해석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철학자 김용규는 문학 속의 주인공들을 일상의 무대로 불러들여 그들의 고민을 통해 독자들에게 우리 자신과 주변의 삶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며, 결국은 독자 스스로가 세상을 향한 자기 이해와 자기실현의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때론 원작보다 흥미롭고 때론 깊이 있는 철학을 맛보게 하는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는 고전을 읽는 새로운 시각과 폭넓은 삶의 이치를 제공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철학 교양서들이 새로운 옷을 입고 있다. 철학의 영역과 무관한 듯 보이는 역사, 영화, 미술, 연극 등 다양한 분야와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 교양서들의 다양한 변주는 고상한 취미 정도로만 여겼던 문학과 예술을 인문교양의 영역으로 확대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상아탑에 갇힌 학문으로만 치부되던 철학이 대중과 소통의 창구를 만들어내려는 참신한 시도이다.
책머리에ㅣ카페라테 혹은 에스프레소? 신은 누구를 구원하는가? 괴테의 <파우스트>1부 : '자기 체념'에 대하여 /악마마저 이겨낸 남자 괴테의 <파우스트>2부 : '자기 실현'에 대하여 질풍노도를 잠재우는 법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 '성장'에 관하여 관계의 미학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 '만남'의 의미 사랑과 질투의 함수관계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 '질투'에 관하여 가족에 관한 냉혹한 진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 '가정'의 의미 참을 수 없는 일상과의 결별 사르트르의 <구토> : '일상'에 대하여 텅 빈 무대의 대본 없는 배우, 인간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 '권태'의 의미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 '반항'의 의미 그 섬은 어디에 있을까? 최인훈의 <광장> : '유토피아'에 대하여 당신들의 유토피아, 우리들의 디스토피아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 '디스토피아'에 대하여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 '인간공학'에 관하여 빅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년> : '사회공학'에 관하여 나를 찾는 시간여행, 회상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회상'의 의미
세상을 이해하고 삶을 꾸려나가는 데에 철학만큼 좋은 안내자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쉽게 풀어썼다 해도 우리 일상과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철학 입문서들을 읽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에 문학은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철학을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화제 같은 구실을 한다. 이성적인 철학과 감성적인 문학의 만남.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문학을 통해 철학을 배워왔다. 청소년기에 《데미안》을 읽으며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구토》를 읽으며 ‘삶의 무의미성’과 ‘아찔한 의식의 순간’을 경험했다면, 이미 우리의 마음에는 ‘철학’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는 문학 특유의 풍부한 감수성과 현실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빌려, 실존 철학이나 낭만주의와 같은 철학의 흐름이나, 종교적 구원이나 가정의 의미와 같은 우리 삶의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한다.
《어린 왕자》에서 만남은 ‘길들이기’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저자는 이를 통해 만남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나-너 관계맺기’라는 개념을 자연스레 풀어낸다(p.72~, 관계의 미학).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이야기하면서는 카뮈의 《이방인》과 《시지프의 신화》를 거론하며, 그의 작품 속에는 ‘부조리’와 ‘삶의 무의미성’이라는 의식이 깊게 흐르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페스트》를 읽을 때 ‘페스트’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부조리’나 ‘삶의 무의미성’을 바꿔 넣어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하게 이해된다고 이야기하며 ‘일상’의 의미를 짚는다(p.183~,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현대 철학의 첨예한 논쟁들도 이 책 속에 녹아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 저자는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인간 사육’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독일의 전 언론과 하버마스와 같은 대가들이 격렬하게 반대 의견을 냈던 이 논쟁의 핵심은, 오늘날 모든 휴머니즘 문화는 동물이었던 인간을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가축으로 ‘사육’하는 문화였으며, 그 결과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그 다음 대목이다. 그렇기에 인간을 길들이는 새로운 도구를 찾아야 하는데, 인간을 유전학적으로 선별하고 사육할 수 있도록 ‘유전공학’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뉘앙스를 짙게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p. 257~,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 외에도 독일 낭만주의 전통에서 탄생한 《파우스트》와 《데미안》, 자연주의 철학에서 눈여겨보는 《오셀로》, 실존주의 철학의 정수를 담은《페스트》와 《고도를 기다리며》등 이 책에서 만나는 문학은 우리 삶의 문제들을 짚어주는 훌륭한 텍스트이다. 우리나라에서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와 같은 철학서를 꼽으라면 단연 이 책의 저자 김용규의 《다니》와 《알도와 떠도는 사원》을 꼽는 사람이 많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저자는 두 책을 통해 소설이라는 형식 속에 논쟁적인 철학 담론들을 풀어내는 ‘지식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바 있다.
이후로도 그는 철학을 엄숙한 학문이 아닌, 우리의 삶을 새롭고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 여기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철학 교양서를 꾸준히 펴내고 있다. 《지식을 위한 철학통조림》에서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입맛에 맞게 철학을 조리해내고, 《영화관 옆 철학카페》《데칼로그》와 같은 작품에서는 철학을 영화에 접목시키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을 만큼의 경쾌함과 성인들의 지적 유희까지를 절묘하게 아우르고 있는 이 책은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저자 김용규는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책 곳곳에서 음악이나 미술 이야기, 때론 커피숍 창가에서 바라보는 정경을 이야기하며 철학과 문학의 만남을 주선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이야기하며 실존인물이었던 파우스트의 삶을 들여다보거나, 《어린 왕자》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진정한 ‘만남’을 갈구하던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이 책의 한 켠을 장식하기도 한다. 또한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가 끈질기게 캐물었던 ‘실존’의 문제를 우리의 일상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때론 무소륵스키의 가곡이나 신경림의 <사막>과 같은 시, 살바도르 달리의 <시간의 지속>과 같은 작품을 끌어들이며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는 문학에 접근하는 방법 자체를 바꿔, 문학 작품이 던지는 질문 에 주목해보라고 제안한다. 단지 문학을 읽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새로운 존재 가능성을 찾는 ‘철학적 해석’을 시도해보라고 주문한다. 문학 작품을 읽으며 항상 궁금했지만, 쉽게 해답을 찾기 어려웠던 질문들은 바로 우리들의 삶의 변화시키는 열쇠라는 의미이다.
부조리 연극의 대명사 《고도를 기다리며》는 변하지 않는 시공간과 성격 없는 인물을 내세워 ‘권태’라는 문제 제기를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시종일관 궁금증을 자아내는 질문은 ‘도대체 고도는 누구이며, 왜 그를 기다리는 것일까?’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이데거는 ‘권태’의 의미를 짚으며 ‘시간 죽이기’에 몰두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실존의 의미를 찾으라는 대답을 제시한다(p.162~, 텅 빈 무대의 대본 없는 배우, 인간).
수많은 성장 소설의 전범이 되는 《데미안》에서 ‘싱클레어의 꿈에 나타난 양성적인 신 아프락사스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는 헤르만 헤세에 많은 영향을 끼친 조로아스터교와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에서 해답을 찾는다. 진정한 성장의 의미는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라는 극단에서 자신의 중심의 찾을 때 이뤄진다는 것이다(p.53~, 질풍노도를 잠재우는 법). 왜 이청준은 책 제목을 “우리들의 천국이 아니라 ‘당신들의 천국’이라고 했을까?” 와 같은 질문도 가능하다. 이에 대한 답은 계몽주의 시대에 내놓은 유토피아 공학의 한계와 제3의 길 모색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다(p.233~, 당신들의 유토피아, 우리들의 디스토피아).
이렇듯《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는 문학의 깊은 매력에 빠져 있는 독자들에게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책이다. 또한 고전이라는 이름의 무게 때문에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독자들에게는 문학작품의 의미를 파악해가며 즐겁게 철학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책이다.
독일에 사는 알도는 인공두뇌학자인 아버지를 만나러 인도로 향한다. 그러나 알도를 맞이한 건 아버지의 갑작스런 출장과 아버지의 동료인 알브레즈 박사, 그리고 인공두뇌 소녀인 레나뿐이다. 한편, 뭄바이 대학의 고문헌학자 아지프 탈란 교수는 강신술을 통해 영생의 비밀이 적힌 나칼의 서를 찾으려 하고, 그 과정에서 알도를 이용해 나칼의 서를 얻으려는 계획을 꾸민다.연구소에서 주최한 파티에서 신임 연구소장과 태양의 사원 교주 산자이의 대화를 엿들은 알도는 산자이의 계획에 의해 아버지가 납치되었음을 알게 된다. 알도는 인도에서 사귄 고오빈다, 레나와 함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환상의 공간인 제8구로 향한다.
제8구에서 알도 일행은 온갖 모험을 겪는다. 갖가지 논리퍼즐을 헤쳐가며 나칼의 서가 보관된 유와 무의 방에 도달한 알도 일행은 마녀 나긴스의 함정에 빠져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지만, 연꽃의 정령 프시케의 도움으로 사흘간의 말미를 얻어 지상으로 돌아온다. 마침내 알도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 후 무사히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진리란 결국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서 구현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알도와 떠도는 사원》은 두 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나선 알도의 모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강신술의 힘까지 빌려가며 영생의 비밀이 적힌 '나칼의 서'를 찾는 데 집착하는 고문헌학자 아지프 탈란의 이야기이다. 이 두 개의 이야기는 아지프 탈란이 나칼의 서를 얻기 위해 영혼의 공간인 '제8구'로 알도를 유인하면서 하나로 합쳐진다.
모험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구미가 당길 만한 스토리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완성품이지만, 이 책의 진가는 스토리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온갖 지식들에서 드러난다. 인공두뇌 컴퓨터인 레온과 레나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연역법과 귀납법의 차이를 매끄럽게 이야기하고(<레나와 레온>), 알도와 고오빈다의 대화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서양과 동양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가를 환원주의적 방법론과 전일론적 방법론으로 명쾌하게 설명해낸다.(<신비의 비눗방울>) 이밖에도 칸트의 구성주의 인식론, 마투라나의 급진적 구성주의, 사회진화론, 유전자 재조합 등 누천년에 걸쳐 인류가 이루어놓은 사상의 정수와 첨단지식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소설의 주요 무대인 인도의 역사와 문화, 생활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다.
알도 일행의 모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더욱 치밀하게 전개되는 논리퍼즐이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환상의 공간 '제8구'로 들어선 알도 일행은 궤변론과 딜레마라는 비논리적 괴물에 맞서 싸우고(<거짓과 무지의 땅>), 프랙털이론을 이용해 기하학적 도형뿐인 유니콘의 성에 나무와 꽃, 눈송이 등의 자연물을 만들어낸다.(<어둠과 악의 성>) 미로에 갇혔을 때는 황금각과 황금비율을 이용해 탈출을 시도한다.(<유와 무의 방>)
'철학판타지'라는 머리말을 달고 있지만 철학뿐 아니라 논리학, 유전공학, 인지과학, 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사상이 곳곳에 녹아 있다. 이야기 전개를 해치지 않는 자연스러운 구성으로 첫 출간 당시 독자들에게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대단한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즐기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무궁무진한 지식의 세계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감동이 담긴 지식소설 알도와 고오빈다, 레나가 자신들이 지닌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해 위기를 헤쳐 나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지식과 지혜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삶의 무기'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알려주는 '지식'과 '지혜'는 흔히 떠올리기 쉬운 실용적인 전문지식이 아니다.
저자는 실용적 지식만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지식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보편적 주제'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자연과 인간, 자유와 평등, 개인과 사회,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삶과 죽음의 문제 등은 고대의 문제이자 오늘날의 우리가 함께 당면한 보편적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바른 지식과 견해를 쌓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예술, 과학, 철학 등 각 분야에 관한 다양한 사상을 습득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사상들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지식과 지혜이다.
《알도와 떠도는 사원》이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이유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최우선하는 데 있다. 저자는 소설 초반부에 등장하는 알도와 아버지의 대화에서 '신이 되려다 추락한 이카로스'의 이야기를 통해 양날의 칼과 같은 이성의 속성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이 책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현대 사회는 합리성과 효율성, 실용성을 최고로 여기지만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소설 속에서 극단적 이성주의자인 산자이 교주는 카스트제도를 고착시키기 위해 유전자 조작으로 각각의 계급에 가장 충실한 인간을 양성하려 한다. 합리적 과학지식을 진리로 여기는 극단적 이성주의가 사회 진보를 자연 진화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배아 상태에서 질병 없는 유전자만 골라내 자궁에 착상시켜 태어난 '맞춤아기'를 연상하게 한다. 이 책은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사회에 엄청난 편의와 이득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인간 사회는 참됨, 선함, 아름다움, 자유, 평등, 사랑, 정의, 희생 등 삶과 사회를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하는 보편적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저자는 따라서 수많은 지식과 사상 역시 이러한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고 수호하는 데 쓰여야 하며, 그럴 때에야 지식은 비로소 진리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이 책을 철학과 사상을 쉽게 풀어쓴 여느 철학소설과 비교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알도와 떠도는 사원》은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철학 통조림〉 시리즈 등으로 교양인에게 꼭 필요한 지식과 사상을 탁월하게 풀어내며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철학저술가로 주목받고 있는 김용규의 첫 번째 저서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 책과 또 한 권의 지식소설 《다니》를 통해 소설이라는 형식 속에 논쟁적인 철학 담론들을 풀어내며 지식소설의 전범을 보였다. '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뛰어난 스토리 구성과 논리적 전개, 무수한 지식을 엮어낸 그의 소설은 출간되는 책마다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지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된다. 저자후기에서도 밝혔듯이, 첫 출간 당시에는 많이 낯설었던 이 책에 담긴 지식과 사상은 그동안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대중들에게 익숙해졌고 유행처럼 번지기까지 했다.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라면 시대의 흐름을 내다볼 줄 아는 저자의 놀라운 감식안이 다음에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전해줄지 자연스레 기대하게 될 것이다.
2001년 『알도와 떠도는 사원』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판타지를 결합한 철학 소설을 선보인 김용규씨는 다음해 여섯 가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열여덟 편의 영화를 통해 철학적으로 성찰한 영화 해석서인 『 영화관 옆 철학카페』를 내놓았다. 철학과 현실, 영화를 접목시키는 그의 시도는 계속되었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열 편의 영화 《십계》를 통해서 본 인간 존재에 관한 해석서 『데칼로그』에 이어 20세기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로 꼽히는 러시아 태생의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일곱 편 모두를 해석한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를 이제 독자들 앞에 내놓는다.
단 일곱 편의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칸 영화제 그랑프리,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많은 영화상을 수상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한때 우리 나라 지식인들과 영화 마니아들에게도 유행처럼 다가왔다가는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너무 어려워.' 또는 '졸리운 영화군'이라는 탄식만 남겨 놓은 채 난해한 영화로 관객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영화가 되고 말았다.
타르코프스키는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일' 곧 플라톤이 말하는 상기(想起)임을 분명히 했다. 예술영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환영들 속에 불변하는 이데아들을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저자 김용규씨는 이 책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감독은 일종의 철학자가 되었을 때만 비로소 예술가가 되며, 그의 영화도 예술이 될 수 있다."라는 타르코프스키의 말을 논증하기라도 하듯이 플라톤, 플로티노스, 아우구스티누스, 칸트, 헤겔, 프루스트, 마루쿠제, 에리히 프롬, 라캉 등 철학자들의 철학을 통해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다. 모든 타르코프스키 영화들이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영화에서 추구했던 세계, 인물, 그리고 영화에서 사용했던 화법 등등이 일곱 편의 영화로 나뉘어 표현되고 있으나 결국은 하나임을 역설하고 있다.
나아가서 파멸될 위기 앞에 서 있는 인류를 절망적 국면에서 구하려는 노력과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았던 한 예술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이념이야말로 자신의 모든 영화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했던 그 하나였음을 이 책에서 저자는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언제나 철학을 보여주고 철학은 항상 영화를 읽어준다. 저자는 '철학을 영상과 이미지를 통해 보는 일', 그리고 '영화를 철학적 개념들을 통해 읽는 일'이 그 자체로 즐거운 모험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모험의 끝에는 삶의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을 보고 읽는다는 것도 흥미진진한 모험이고 이 모험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1. 이반의 어린 시절 - 브르통의 '초현실'을 통해 이루어지는 마르쿠제의 '유토피아' 사르트르는 이 작품을 사회주의적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 정당성은 단지 1929년 브르통이 발표한 '초현실주의 제2선언'에 입각해서 말해질 때에만 그리고 동시에 마르쿠제가 주장한 유토피아론과의 연관 속에서만 보장된다. 우리는 이 작품을 해석하며 브르통의 '초현실'을 통해 이루어지는 마르쿠제의 '유토피아'를 본다.
2. 안드레이 루블료프 - 하르트만의 '신념'으로, 키에르케고르의 '믿음'으로 ,하르트만은 "충분한 근거, 또는 객관적인 확실성을 가진 눈뜬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거기에는 자기인격의 모험이 없다. 보지 않고도 믿는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관건이다"라고 했다. 같은 말을 키에르케고르는 "부조리의 힘으로 믿었다"라고 했다. 우리는 15세기 러시아 성화상(Icon) 화가인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생애를 다룬 이 작품에서 인간에게 신념이 무엇이고 믿음이 무엇이며,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본다.
3. 솔라리스 -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하이데거의 '양심, 하이데거는 양심을 불안 속에서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자신의 본래적 자기에로 돌아가라고 '탓하는 부름'이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름의 소리는 오직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의 통일체로 존재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 안에서만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솔라리스>를 해석하면서 인간에게 시간이 무엇이고, 양심이 무엇인지를 본다. 나아가 스스로 이러한 양심의 부름을 듣길 원한다.
4. 거울 -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과 싸우는 라캉의 '거울 이미지' 인간의 욕망이란 상대의 인정을 받기 위한 욕망이라는 사실 때문에, 라캉의 '거울 이미지'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과 손잡는다. 그러나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에서는 이 둘은 저항하고 투쟁한다. 타르코프스키 작품 중 가장 난해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자전적 작품을 해석하며 우리는 오히려 가장 분명한 메시지를 듣는다. "행복하려고 욕망하는 자는 바로 그것을 위해 행복하고자 하는 그 욕망을 초극해야 한다"라는 타르코프스키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5. 잡입자 - 플로티누스의 '비행'을 위한 칸트의 '도덕' 플로티노스에 의하면 인간들 가운데 신을 닮은 행복한 자의 삶이란 낯설고 세속적인 것들과의 부단히 이별하는 것이며, 세속적 쾌락을 초월하는 것이고 단독자의 단독자로의 비행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수확에 대한 기대 없이도 씨를 뿌리라는 칸트의 도덕이 언제나 함께 해야 한다. 도덕적이지 못하면 날지 못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잠입자>를 통해 우리에게 바로 이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전부인가? 전부이다.
지식소설은 소설 속에 논쟁적인 지식담론을 담아내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나아가 등장인물간의 갈등 못지않게 담론의 대립을 작품의 중요한 축으로 삼는다.
"지식도 진화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건전한 지식에는 대부분 그와 대립하는 지식이 존재한다. 서로 대립하는 이들 지식 쌍은 경쟁하면서 어느 한쪽이 자연도태하지만, 상당수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한다. 지식들은 갈등하고 싸우며 승리하거나 패배하고 또 살고 죽는다. 이러한 지식들의 갈등 구조와 진화과정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소설이 '지식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다니』는 김용규?성규 형제가 『알도와 떠도는 사원』 이후 4년여에 걸친 취재와 토론을 거쳐 완성한 장편 소설이다.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을 배경으로 침팬지들과 이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여성 과학자가 종(種)을 뛰어넘어 나누는 우정과 사랑이 씨줄로, 제노사이드(동종학살)로 상징되는 인간과 동물의 폭력성에 관한 철학적 분석, 진화론과 사회생물학, 인류학의 다양한 지식이 날줄로 교차하며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수백만 년 진화의 시간을 뛰어넘는 애틋한 교감, 동물행동학을 전공한 제니퍼 모건은 야생에서 침팬지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맡아 탄자니아로 떠난다. 빅토리아 호수로 이어지는 그곳의 나망가 계곡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뉜 숲에는 각각 다른 집단의 침팬지들이 살고 있다. 제니퍼는 이들에게 튀들덤과 튀들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니퍼는 수가 적은 서쪽 숲의 튀들디 침팬지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그들을 인간처럼 대하기 시작한다. 특히 갓 사춘기가 지난 암컷 침팬지 '다니'와는 수화로 거의 완벽할 정도의 대화를 나누면서 특별한 애정을 갖는다.
하지만 환경이나 야생동물 보호는 안중에 없이 오직 개발 이익만 노리는 헨리 웨슬리 경이 동쪽 숲을 벌목하면서 침팬지 서식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동쪽 숲의 침팬지들은 생존을 위해 서쪽 숲으로 건너와 수가 적은 서쪽 숲 침팬지들을 제노사이드(동종 집단학살)하기 시작한다. 제노사이드로 수컷들은 모두 죽고 암컷들은 튀들덤 집단의 성노예로 전락할 처지였다. 제니퍼의 부모는 중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였지만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들의 집단 광기에 희생되었다. 그 후 미국에 입양된 아픈 과거를 갖고 있는 제니퍼는 침팬지들이 인간의 개발욕에 희생되는 것을 막아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원주민들도 개발 이익을 함께 보려고 제니퍼에게 등을 돌리고, 갈등하는 사이 다니의 언니 멜을 비롯해 다니 집단의 침팬지들은 하나둘 죽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지적 파노라마! 『다니』는 '제노사이드'로 대표되는 인간의 폭력성이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 나타나는지를 침팬지 집단간의 학살을 통해 되돌아본다. 저자는 제노사이드를 "인간이 가진 폭력성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사례"라고 말한다.
소설 속에서는 폭력성을 포함한 인간의 행동을 유전자가 결정한다고 보는 생물학적 결정론과 환경요소를 인간생활과 문화형성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는 환경결정론이 대립하고,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영향을 받아 약육강식이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본능주의와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폭력적인 행동이 습득, 강화된다는 행동주의가 논쟁한다. 『사회생물학』을 쓴 에드워드 윌슨의 이론을 웨슬리 경이, 『풀하우스』의 저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펼치는 논지를 제니퍼가 대변하는 식이다.
저자들은 '지식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니』의 내용을 엄밀한 사실에 기초해 썼다. 등장인물도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으며, 역사적 사건과 생물학 인류학 사회학의 이론은 모두 전문가에게 검증을 받았다. 이론이 등장하는 중요한 대목마다 모두 15쪽에 달하는 부가설명을 붙였으며, 책 말미에는 참고문헌까지 소개했다. 소설에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부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까지 생물학의 명저들이 두루 등장하고, 짐바아도 박사의 '모의 형무소' 실험 등 중요한 과학, 사회학 이론이 60여 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 책은 과학과 철학의 주의주장을 적당히 읽기 쉽게 풀어낸 아류 소설이 아니다. 제니퍼와 웨슬리 경의 갈등, 다니와 나누는 사랑 등이 나망가 계곡의 이국적인 풍광을 배경으로 매우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청소년층부터 인문사회과학자들까지 읽어도 좋은 지적인 파노라마 속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존경과 애정이 녹아 든 감성적이고 따뜻한 소설이다.
'사유(思惟)'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멘토에서 소울메이트로, 소울메이트에서 자신으로 (0) | 2009.03.19 |
---|---|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0) | 2009.03.17 |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을 읽는다. (0) | 2009.03.16 |
따귀맞은 영혼, 한낮의 우울에서 벗어나기 (0) | 2009.03.16 |
트라우마(Trauma)는 망각된 역사다 (0) | 2009.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