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노란 산수유꽃이 피는 밤, 고흐의 편지를 읽는다.

나뭇잎숨결 2009. 3. 12. 00:25

 

 

 

                    Vincent van Gogh. Still Life with Open Bible. April 1885

 

 

 

 

 

 

 

 

 

 

바깥으로 뱉아 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 몸 속에 있기 때문에 /꽃은 핀다 /솔직히 꽃나무는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게 괴로운 것이다 //내가 너를 그리워하는 것 /이것은 터뜨리지 않으면 곪아 썩는 못난 상처를 /바로 너에게 보내는 일이다 /꽃이 허공으로 꽃대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다 꽃대는 꽃을 피우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자기 몸을 세차게 흔든다 /사랑이여, 나는 왜 이렇게 아프지도 않는 것이냐 //몸 속의 아픔이 다 말라버리고 나면 /내 그리움도 향기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살아 남으려고 밤새 발버둥을 치다가 /입 안에 가득 고인 /피 뱉을 수도 없고 뱉지 않을 수도 없을 때 /꽃은 핀다

 

                                                                                                                                                        - 안도현의 <꽃> 전문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껠 때인 것 같다.

(1879년 10월 15일)

 

 

 

 

 

 

---본의 아니게 쓸모없는 사람들이란 바로 새장에 갇힌 새와 비슷하다.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이 감옥이란 편견, 오해, 치명적인 무지, 의심,

거짓 겸손 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1880 년 7월)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1884년 10월)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1885년 4월 30일)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두려워한다. (1885년)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어떤 것에 병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거나 전혀 알지 못할 때에도,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약국에서 파는 약보다 더 좋은 약이 될 痼甄?   (1887년 여름~가을)
 
 ---철학자들과 마술가들이 많이 있었지만,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생을 확신했고,시간의 무한성, 죽음의 무의미함, 평온과 헌신의 필요성과 의미를 인정했지.
그는 다른 모든 예술가보다 더 위대한 예술가로서, 대리석, 점토, 물감을 경멸하면서 살아 있는 육신으로 일했고 평온하게 살았네.
신경질적이고 둔한 우리 현대인의 두뇌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이 두려움 없는 예술가는 조각을 하지도, 그림을 그리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네. 단지 자신의 말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지.-친구 베르나르에게- (1888년 6월 23일)
 
---우리는 삶 전체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삶의 한 귀퉁이 밖에 알 수 없는 것일까?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 뒷세대에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 타라스코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람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888년 6월)
 

---불평하지 않고 고통을 견디고, 반감없이 고통을 직시하는 법을 배우려다보면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건 가능한 일이며, 심지어 그 과정에서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삶의 다른 측면에서고통이 존재해야 할 훌륭한 이유를 깨닫게 될지도 모르지. 고통의 순간에 바라보면 마치 고통이 지평선을 가득 메울 정도로 끝없이 밀려와 몹시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에 대해, 그 양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러니 밀밭을 바라보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게 그림 속의 것이라 할지라도. (1889년 6~7월)
 
---우리가 용감하다면 고통과 죽음을 완벽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와 자기애를 깨끗이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1889년 9월)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전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 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 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테오에게, 1889년 1월, 215∼216쪽)


---테오가 없었다면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친구 같은 테오가 있었기에 내 그 림의 수준이 나아지고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1887년 여름∼가을, 140쪽)



----이 감옥(무지, 편견 등)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테오에게, 1880년 7월, 24쪽) 

 

 

 

                                                                                 - <반 고흐 영혼의 편지(개정판)>(예담, 2005)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