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Paulson
황홀ravissement
우리는 우선 '하나의 정경'을 사랑하게 된다.
첫눈에 반하는 데에는 (나를 무책임하게 만들고, 숙명에 종속시키고,
사로잡아 넋을 잃게 하는) 갑작스러움의 기호 자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
나를 매혹하여 황홀에 빠뜨리는 것, 그것은 '어떤 상황 속'의 육체의 이미지이다.
나를 흥분하게 하는 것, 그것은 '내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작업 중의 어떤 모습이다. […]
작업의 자세는 내게 어떻게 보면 '이미지의 순진성'을 보장하는 것이기에.
육체corps
나는 마치 그 안에 무엇이 있나 보려는 것처럼, 내 욕망의 무의식적인 원인이 상대의 육체 안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사람의 육체를 뒤진다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려고 자명종을 분해하는 아이들과 비슷하다).
[…] 그때 내가 어떤 죽은 것을 물신화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
그러나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볼 때, 내 욕망은 도착적이기를 멈추고,
전과 같이 상상적이 되며, 나는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전체로 되돌아간다 : 다시금, 나는 사랑한다.
접촉contacts
베르테르는 도착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다 :
그는 언제나, 도처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의미를 만들어 내는데,
그를 전율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의미이다 : 그는 의미의 화로 속에 있다.
모든 접촉은,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대답의 문제를 제기한다. […]
그것은 섬세하고 비밀스런 기호들의 천국이다 : 감각이 아닌, 의미의 축제와 같은.
외설스러움obscène
사랑하는 사람은 착란을 일으키는데 […] 그의 착란은 바보 같은 것이다. […]
니체의 당나귀처럼, 나는 내 사랑의 영역에서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대답한다.
나는 고집을 부리고, 수련을 거부하며,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 나를 교육시킬 수는 없으며,
나 자신도 그러지 못한다. […] 아마도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있겠지만,
그것을 '검열하지 않는다.' 혹은 그의 어리석음은 하나의 분열, 하나의 도착처럼 작용한다 :
'바보 같은 짓이야, 하지만 그래도... 그건 사실이니까', 라고 그는 말한다.
왜pourquoi
나는 '과도함' 또는 '충분치 않음'의 체제 아래 살고 있다 ;
일치를 갈망하기에, 전부가 아닌 모든 것은 내게 인색해 보인다 ;
내가 찾는 것은, 거기서는 '수량이 더 이상 인지되지 않는',
그리하여 대차대조표가 추방된 어떤 장소를 차지하려는 데 있다.
안착한 사람들casés
모든 구조는 '거기 발붙이고 살 만한 것인데', 구조의 가장 적절한 정의는,
아마도, 바로 여기에 있다. […] 결혼하여 정착하고자 하는 것은
평생 내 말을 들어줄 유순한 청취자를 얻으려는 것이다. 지지대로서의 구조는 욕망에서 분리된다 :
내가 원하는 바는, 아주 단순히, 고급 창부나 창녀와 같은 식으로, "부양 받는" 것이다.
광인fou
한 줌의 권력도 없는 자는 광인이다. […] 내 리비도는 절대적으로 갇혀 있다 :
나는 사랑의 쌍수(雙數), 그 둘만의 결투 이외의 어떤 공간에도 거주하지 않는다 :
어떠한 외부적 요소도, 즉 티끌만큼의 군거성(群居性)도 없다 : '나는 미치광이다' :
내가 독창적이어서가 아니라(관례적인 것의 조잡한 속임수), 모든 사회성으로부터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항상,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해도, 어떤 것의 투사라면,
나는, 그 어떤 것의 병사도 아니며, 나 자신의 광기의 병사조차도 아니다 : '나는 사회화되지 않는다'
아토포스atopos
나는 독창성의 진짜 장소가 그 사람도 나 자신도 아니라, 우리 관계 자체라고 짐작한다.
쟁취해야 하는 것은 관계의 독창성이다. 대부분의 상처는 내게는 상투적인 것으로부터 나온다 :
나는 누구나처럼, 사랑에 약해질 수밖에 없다 : 누구나처럼, 질투하고, 버림받고, 좌절하고.
하지만 관계가 독창적일 때, 상투적인 것은 소진되고, 초월되고, 증발하며,
예를 들어 질투 따위는, 머무를 장소도, '토포스'도, 어떤 ≪논의topo≫,
담론도 부재하는 이 관계 속에 더 이상 자리잡지 못한다.
포옹étreinte
우리는 마술에 걸리고, 마법에 사로잡힌다 : 우리는 잠자지 않지만, 잠 안에 있다 ;
잠들기 시작할 때의 그 어린아이의 쾌감 속에 있다 : 그것은 이야기를 듣게 되는 순간이자,
나를 고정시키고, 마비시키러 오는 목소리의 순간이며, 그것은 결국 어머니에게로의 회귀이다 […]
이 재인도된 근친상간 안에서, 모든 것은 유보된다 :
시간, 법률, 금지 :
아무 것도 고갈되지 않으며, 아무 것도 원해지지 않는다 : 모든 욕망이 사라지는데,
이는 욕망이 결정적으로 충족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충족comblement
나는 언어 밖으로, 다시 말해 하찮은 것, 일반적인 것 밖으로 '이송'된다 :
≪견디기 어려운 만남이 그 기쁨 때문에 이루어지며, 때때로 인간은 무(無)로 환원될 수밖에 없어진다 ;
내가 열락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열락은 그것에 대해 말로 할 수 없는 그런 기쁨이다.≫
포옹étreinte
이 어린아이의 포옹 가운데서도, 생식기적인 것은 불가피하게 솟구쳐 온다 ;
그것은 근친상간적 포옹의 막연한 관능을 단절한다 ; 욕망의 논리가 작동하고,
소유의 의지가 되돌아오며, 어른이 아이 위에 이중인쇄된다. 그때 나는 동시에 두 명의 주체이다 :
나는 모성과 또한 생식기성을 원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발기한 아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
어린 에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 나는 충족되었다 (내 모든 욕망은 만족의 충만에 의해 폐기되었다) :
충족은 존재하는 것이며, 나는 그것이 되돌아오게 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긍정affirmation
사랑에는 두 가지 긍정이 있다. 우선,
사랑의 주체가 대상을 만났을 때의, 즉각적인 긍정이 있다
(심리적으로는 현혹, 열광, 흥분, 충족된 미래에의 무모한 투사 :
나는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 충동에 휩쓸린다) : 나는 (무분별해지면서)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말한다.
그런 후 긴 터널이 뒤따른다 : 나의 첫 번째 '긍정'은 의심으로 잠식당하고,
사랑의 '가치'는 끊임없이 평가 절하의 위험에 처한다 : 그것은 슬픈 열정의 순간이자, 원한과 봉헌의 대두이다.
이 터널로부터, 그럼에도, 나는 빠져 나올 수 있다 ; 제거하지 않고, ≪넘어설≫ 수 있다 ; 처음에 긍정했던 것을,
반복하지 않고, 나는 다시 긍정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번에는, 내가 긍정하는 것이,
긍정 자체이지, 그 우연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 나는 첫 번째 만남을 그 차이 속에서 긍정하며,
그것의 반복이 아닌, 그것의 회귀를 원하는 것이다. 나는 (과거의 혹은 지금의) 그 사람에게 말한다 :
'다시 시작하자'고.
방황errance
사람들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나 자신의 낙심이 어떠하다 해도,
나는 사랑이 언젠가는 나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듯, 최고의 선이 가능하다는 듯 행동하기를 고집한다.
바로 거기에 아무런 장벽 없이 절대적인 사랑이 절대적인 사랑을 뒤잇게 하는 저 기묘한 변증법이 있다 […]
내가 다시 시작할 에너지를 길어내는 것은 바로 그 사랑들의 차이, 무한히 재인도된 차이의 모델 속에서이다.
다변loquèle
수다는 인간에게만 고유한 일종의 불행일지 모른다 : 나는 언어에 미쳐 있다 :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지만, (슈베르트의 교현금 타는 악사처럼) 나는 계속해서 말을 하고, 내 교현금을 돌린다.
소유의 의지vouloir-saisir
비소유의 의지에 대한 상념이 상상적인 것의 체제와 단절될 수 있으려면, […]
나는 내가 언어 밖의 어느 곳, 무기력한 상태로 떨어지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이해하다comprendre
나는 체제를 바꾸고 싶다 : 더 이상 가면을 벗기지 않고, 더 이상 해석하지도 않고,
다만 의식 자체로 마약을 만들어, 그것으로 현실의 흔적이라곤 없는 환영에,
선명하고 커다란 꿈에, 예언적인 사랑에 도달하고 싶다.
살갗이 벗겨진écorché
상상적인 것의 지배 아래 있는 주체는 시니피앙의 유희에 ≪빠져들지 않는다≫ :
그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별로 하지 않으며, 동음이의어의 말장난도 하지 않는다.
그가 글을 쓸 때면, 그의 글쓰기는 이미지처럼 매끄러우며,
그것은 언제나 단어들의 읽혀질 수 있는 어떤 표면을 복구하려 한다 : 그 반대로, 더 이상의 소설도,
모사된 이미지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적인 것의 폐기로 정의될 수 있을 현대적 텍스트에 비하면,
요컨대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다 : 왜냐하면 모방, 재현, 유추는 유착의 형태들이며, 결국 유행에 뒤진 것이기 때문이다.
외설스러움obscène
역사적 전도 : 외설적인 것은 더 이상 성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감상적인' 것이다 - 이는 사실,
'또 다른 모랄'에 지나지 않는 것의 이름으로 비판된다. […] 역사는 억압적이며,
역사는 우리에게 당대의 것에서 벗어나기를 금지한다. […] X가 성욕에 ≪큰 문제≫가 있다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 그러나 Y가 그의 감상성(感傷性)에 가질 수 있는
문제들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tel
'있는 그대로'의 사랑하는 대상과 가장 흡사할 지도 모르는 것,
그것은 내가 그 위에 어떤 형용사도 덧붙일 수 없는, 텍스트일 것이다 : 해독할 필요도 없이 내가 즐기는 텍스트.
충족comblement
사실, '정말로' 충족될 가능성은 내게 거의 중요하지 않다 (그 확률이 전무하다 해도 나는 괜찮다).
오직 빛나는 것은, 파괴될 수 없는, 충족에의 의지이다. 이 의지에 따라,
나는 표류한다 : 나는 억압에서 벗어난 한 주체의 유토피아를 내 안에 만든다.
- 롤랑바르트 『사랑의 단상』중에서
Klaus Thuneman , Bassoon
Naville Marriner , Cond.
1악장 Allegro Moderato
2악장 Romanza(Andantino e cantabile)
3악장 Rondo(Vivace)
출처 : |
타불라라사(Tabula Rasa) |글쓴이 : 이나逍遙 원글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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