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관념 / 이준규

나뭇잎숨결 2023. 9. 24. 09:14

관념

 

-이 준규

관념은 조금 빈 잔이고 모서리가 있다. 모든 관념은 딱딱한 모서리를 가진다. 바람은 불었다. 언덕은 부드럽게 무너진다. 나는 언덕 아래로 내려가 언덕 위를 바라보는 하나의 뚜렷한 관념이었다. 관념은 두부 같고 관념은 두부를 찍어 먹는 간장 같아서 나는 조랑말을 끌고 산을 넘었다. 만두가 있을 것이다. 관념적인 만두. 봄이다. 강은 향기롭다. 봄이고 강은 향기롭고 홍머리오리는 아직 강을 떠나지 않는다. 흰죽지도 그렇다. 물 위엔 거룻배. 하늘엔 헬리콥터. 그것은 모두 사라진다. 관념적인 동그라미와 함께. 어떤 연인들처럼. 비처럼. 눈물처럼. 봄은 향기롭다. 나는 길을 갔다. 어려운 네모와 함께. 아네모네를 물고. 너를 향하여. 언제나 그윽한 너를 향하여. 너의 잔을 마시러. 나는 길을 떠난다. 마른 것. 떨어지는 것. 그것처럼. 더는 없었다. 네모는 구름. 관념은 조금 빈 잔이고 모서리가 있다. 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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